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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운 삶유경재 목사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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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2  1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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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운 삶
 (
빌립보서 4:4-9)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을 보면 매일 매일이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단조로운 삶입니다. 아침 해가 뜨면 하루의 삶이 시작되고 저녁에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반복되는 가운데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달력을 걸어 놓고 또 다시 비슷한 생활을 살아갑니다. 이런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은 습관화되고 타성이 생겨 미래에 대한 기대와 모험을 포기하고 안이하게 그날그날의 삶에 만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반복되어도 우리의 삶은 그렇게 공식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편안한 삶을 지냈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주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립니다. 설교는 다르지만 그것도 몇 년 같은 목사에게서 계속 들으면 그 설교가 그 설교 같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예배에 몇 년 참석하다 보면 신앙생활이란 별 것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거기에 습관과 타성이 생기게 됩니다.

매년 표어를 정하고 새로운 선교 정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전 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일들입니다. 결국 교회생활이란 이미 규격화된 것입니다. 이미 틀이 짜인 것입니다. 또 이렇게 틀이 짜인 교회라야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교회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신앙도 틀이 짜이게 마련입니다. 공식화됩니다. 일단 이렇게 틀이 짜이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 틀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틀이 짜인 교회에서는 전혀 예상치 아니하였던 새로운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특히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교회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거나 혹은 교회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사회참여를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옛 신앙의 틀을 고집하면서 보수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올바른 신앙의 생활일까요? 신앙의 본질이 과연 이런 것일까요? 과연 신앙이 공식화 될 수 있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그들의 삶은 매일 같이 새롭고 놀라운 체험의 연속이었습니다.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고, 반석을 터쳐 샘이 솟게 하셨으며, 만나를 내려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고,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저들로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날마다 새롭게 그들 앞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에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은 불안정한 광야보다는 공식화된 이집트의 삶이 훨씬 안정되고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틀에 갇혀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갑자기 해방된 자유의 삶을 맞이하였을 때 오히려 불안을 느꼈던 것입니다. 저들은 항상 저들 앞에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따랐어야 했는데, “저희는 계속하여 하느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계신 야훼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이집트에서 하던 대로 하느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어 거기에 예배하였습니다. 하느님을 규격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으로 어떤 형상으로도 담을 수 없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분이며, 교리화 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미래의 기대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분이지, 과거의 경험 속에서 만나지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과거의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열어 보이시는 미래에 대하여 항상 기대를 갖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민수기에 보면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쳐서 샘을 터지게 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때에 하느님께서 즉각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20:12)

하느님께서 반석을 치면 물이 나게 하셨다는 과거의 사실에 의지하여 모세와 아론은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은 결코 공식화 될 수 없는 것임을 저들은 잠시 잊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동판매기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항상 새롭게 만나야 할 분입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의 신앙은 율법 속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고집스럽게 그 율법에 집착함으로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어 그들 가운데 오셨는데도 그들은 율법의 잣대로만 판단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신앙이 이렇게 규격화되고 공식화 될 때 그 신앙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모순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처음 백 년 동안은 조직신학적인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초보적인 신앙의 훈련을 위해서는 조직신학이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 년 동안 거기에만 집착하다 보니 한국교회가 보수화 되고, 그 신앙이 지극히 독선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신앙을 규격화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변동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교회는 이런 보수신앙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공식이 오늘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개방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갖추는 대신에 폐쇄적이며 자기 보존에만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역동적입니다. 역동적이라는 말은 정해진 틀이 없이 마구 변화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마치 큰 강의 흐름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좁은 계곡을 흐를 때는 소용돌이 쳐 급하게 흐르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그런가 하면 넓은 곳에 이르러서는 흐르는 듯 머무는 듯 유유히 흘러갑니다. 마침내 그 강은 흘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하느님의 역사를 따라 산다는 것은 아무도 가보지 아니한 거대한 강 상류에 조그마한 배 한 척을 띄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 변화가 무쌍하고 그 길이 정함이 없어 불안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고, 용기와 확신이 없이는 그 배를 저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물길만 잘 따라가면 바다에 도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고 우리가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새로운 신비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험과 고통이 따르는가 하면 거기에 전혀 알지 못하였던 새로운 신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강 상류의 경험과 하류에서의 경험이 전혀 다른 것처럼 하느님의 역사는 따라갈수록 더욱 신비롭고 더욱 새롭습니다. 강의 흐름을 규격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구원 역사도 어떤 공식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신앙의 배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때는 캄캄하고 답답하며 안타까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노를 젓듯 계속하면 환히 트인 넓은 세계로 인도될 것입니다.

빌립보서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주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길 때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삶은 날마다 새로운 모험임을 기억합시다. 안이하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열어 보이시는 미래의 세계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탐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래는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 신앙의 삶을 규격화시키지 말고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신앙의 삶을 이룩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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