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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고난 당하시는 하느님유경재 목사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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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2  13: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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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고난 당하시는 하느님
(시편 116: 1-14 / 베드로전서 2:18-25)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휼이 많으신 하느님
구약성경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만난 하느님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삶과 역사 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그들의 역사를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면서 그 하느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만난 것은 출애급의 역사에서입니다. 이집트에서 4백년 간 노예로 고난당할 때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으로 믿게 되었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느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좀 더 분명하게 하느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은 바벨론 포로를 통해서입니다. 이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면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만난 하느님은 결국 인자(仁慈)와 긍휼(矜恤)이 많으신 하느님이었습니다. “주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다라는 고백은 그들의 역사체험에서 우러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는 하느님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에 직접 들어오셔서 위로하시고 구원하시며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요? 그냥 하느님이 계시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라고 시큰둥하게 생각하며 그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그런 신앙생활은 아닌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만 그 전능하심이 나를 고난에서 건져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별로 기도하지 않는 생활은 아닌지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역사에 하느님이 개입하셔서 그 역사를 바꾸고 계시다고는 믿지 않는 그런 신앙생활은 아닌지요? ‘공의의 하느님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이 땅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 하느님은 어떤 공의로운 조치도 취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리 머리 속에만 존재하실 뿐 실제로 우리의 삶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분, 결국 있으나마나 한 그런 신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내 생활 속에서 만나야 합니다. 설교로만 들었던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난 하느님, 신학이나 철학에서 말하는 유신론(有神論)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서 경험된 하느님,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나 기억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매일매일 치열하게 기도하면서 만나는 하느님, 이 하느님이 바로 살아 계신 하느님이며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신 하느님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은 저 하늘 위에 고고하게 앉아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고난당하는 인간의 역사 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친히 고난을 당하시는 분임을 신약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유일하신 아들이 친히 종의 형체로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친히 체험하셨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과 무관하게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그 고통을 친히 맛보시며 아파하신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히 그 순간의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고통을 알고 계시며 아파하심을 뜻합니다.

2천 년 전에만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일어나는 모든 고난을 하느님이 아파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안의 고통 중 하느님의 고통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와 무관하게 계신 분이 아니라 그 역사를 아파하시면서 그것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2천 년 전 예수님을 못 박았던 나무토막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모든 고난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죄악과 불의와 죽음과 고난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그 고난의 역사에 하느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뜻합니다. 오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고난을 하느님이 외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난 한복판에 하느님이 계시며, 그 고난 때문에 아파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역사의 고난과 내가 개인적으로 만난 고난 가운데 모두 하느님이 함께 계시며 그 고난을 친히 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난은 하느님의 것이며, 따라서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하느님께서 그 고난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 가운데 와 계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파할 때 긍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아빠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그 고난을 친히 끌어안으심은 인간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24절 말씀에

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을 친히 당하시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신 분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에 대한 하느님의 최후의 승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죄악과 죽음을 극복하셨음을 뜻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부활로 나아가도록 새로운 미래가 우리 앞에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역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 기가 꺾였고, 새롭게 열린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는 그 세력을 뻗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맹위(猛威)를 떨치면서 우리를 괴롭혔던 고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열린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는 침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다시는 죽음을 맛보지 않으며, 고통을 당하지 않으며, 다시는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을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내가 당한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만날 때 그 주님은 나의 고난을 감싸 안으시는 긍휼의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그 고난을 극복하시는 부활의 주님이 되십니다. 오늘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새 날이 우리 앞에 마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는 하느님이 정말 살아 계신 하느님이며, 머리로 아는 하느님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하느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야훼 하느님은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해서 알게 되는 신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이시며, 내가 당하는 고통 속에 와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저 멀리 하늘 위에만 계셔서 우리의 고난을 잊고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인간의 고난 가운데 오셔서 그 십자가를 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고난의 역사를 떠나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고난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아파하며 투쟁할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힘을 더하시고, 마침내 죽음의 세력을 꺾고 승리의 부활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제 내게 다가온 고난을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기다리며 그 고난 가운데 와 계신 긍휼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역사의 혼란을 한탄하며 저주만 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그 모든 죄악과 불의를 소멸하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므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 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역사의 고난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매일 만나므로 새 힘을 얻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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