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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 삭개오를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을 배우자!!99회 총회 참석 해외 동역 교단 대표, 부천 약대동 방문 경험과 강남순 교수의 『코스모폴리탄 신학』을 중심으로!
이원돈 목사  |  (부천 새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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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2  15: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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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 삭개오를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을 배우자!!

 강남순 교수의 『코스모폴리탄 신학』을 중심으로!

최근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우리 기독인들의 선교 영역은 다문양한 문화와 여러 곳으로의 이주 등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등장하고 부상하는 현실을 맞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의 선교 영역은 전통적인 나와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 타자 나그네가 이 세계화의 시대 전도와 선교의 중요한 화두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텍사스 대학의 강남길 교수는

『코스모폴리탄 신학』(Cosmopolitan Theology: )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 책에서 그녀는 이러한 다문화 이주민과 나그네와 타자의 시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적 덕목은 ‘예수의 시선을 배우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면서 코스코 폴리탄 신학을 주장한 강남순 교수는 오늘 우리의 이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우리가 이 삭개오 이야기를 통해 예수의 시선을 배우는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먼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가는 삭개오의 모습이 첫 번째 인상적 모습이다.

1. 그는 이미 그의 육체적 조건으로 인해 평생 무수한 차별을 경험한 사회적 소수자이며  아무도 그를 “평등한 동료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을 무수히 경험한 사람입니다,

2. 그의 “장애적” 육체성은 이미 “ 그러한 육체적 조건으로 인해 그는 일생동안 무수한 수모와 차별, 천대를 받아 온 삶을 견뎌냈어야 했을 것이다.

3. 그의 주변에는 진정한 친구나 동료가 있을 리 없었을 것이고, 그는 생존하기 위하여 세 리로서의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의 삶을 “보호”하려는 삶만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3. 그런데 예수가 무수한 사람들 앞에서 이러한 “비존재”(non-being)와 같은 삭개오를 “존재”의 영역으로 “전이”시키신다.

4. 그런데 이러한 기적과 같은 전이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은,  예수가 삭개오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우리는 여기서 5절에서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하는

예수님의 이 삭개오를 “바라봄”의 시선을 배워야 한다,   예수가 삭개오의 얼굴을, 삭개오의 존재를 “바라봄”으로서  그의 “비존재”로서의 삶이 “존재”로서 긍정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 한다.    예수가 만난 사람들이 왜 변했을까?에 대한 답은  삭개오는 예수로부터 따스한 “연민의 시선”,  “자신을 진정으로 한 고귀한 온전한 사람”으로 대하는 시선을 받게 되어 예수의 시선에서 생전 처음 자기를 사람 취급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그는 비 존재에서 존재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된것 이라는 것이다,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누가19;5)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천진 난만성과 니체의 어린아이성을 보아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새로운 시작을 하고 창조적이 될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무에 오른것 하나만 보고  그를 긍정하고 그와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선교를 할때 가끔 섬짓 할때가 있다.   우리는 사람을 새로 한두번 만나고는  수많은 선입견과 평론으로 품평을 일삼을 때가 많이 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선입견과 편견으로  서로를 삐둘어진 시각을 보고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지금 삭개오를 보는 시각이 아니다, 이러한 시작으로 보면 우리는 삭개오을 그 나무에서 내려오게 할수 없다. 그러나 오늘 수많은 이방인과 타인을 만나는 세계화의 시대 예수님이 지금 소수자요 작은자인 삭개오를 본 시각은 우리의 시각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순순한 마음으로 대하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무위에 오를수 있는 그 가능성만을 하나만 보면서 그져 마음을 열고 속히 나무에서 내려오라하고 삭개오와의 새로운 만남의 출발을 시작한다. 

 이처럼 순순히 삭개오를 조건 없이 만나다가 예수님은 속기도 하시고 좌절 절망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속기도 하고 문제가 발생한다하더라고 이러한 믿음의 낙관성 때문에 수많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시작되고 열매을 맺는다.

   
 

  또 삭개오는 실제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이처럼 수많은 문제와 편견으로 삭개오를 보기 시작할 때  이러한 뒤틀린 시각으로는 우리는 삭개오에게서 속을 일 , 잘 안될 일,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않좋은 일을 자꾸 예견하고 들춰낼수 있을뿐 오늘 예수님과 삭개오가 만들어낸 이처럼 아름다운 사건과 만남을 만들어내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만남의 편견과 전제 조건없음이 어느정도인가가 9절에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누가 19;9)라는 소외되고 죄인취급 받던 사람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선언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것은 여기서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오늘 너희집에 묵겠다 하시는 것이다.

“내가 오늘은 네 집에서 묵어야하겠다”(I "must" stay at your house, 눅 19:5)는  하는 이 말씀이 놀라운것은 예수님의 초대에는 어떤 윤리적인 조건과 종교적인 전재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삭개오에게 회개하라든지 또는 죄인이라는 종교적 정죄를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사람이 사고를 칠거야, 결국 배반하고 배신 할거야 라고 정죄하지 않으셨다.    다만 삭개오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 “내가 오늘은 네 집에서 묵어야하겠다”

(I "must" stay at your house, 눅 19:5)14)는 선언을 하셨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꼭 되집어 보아야 할것은   삭개오가 삭개오의 집의 주인이므로 삭개오가 예수님을 초대 해야 하는데  “내가 오늘은 네 집에서 묵어야하겠다”하시면서,,  에수님이 삭개오와 자신을 삭개오의 집에 초대하고 만다!   이쯤 되면 우리는 벌써 제자들과 바리사이인들 사이 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음을 예상해야 한다.

 

   
 

 제자들은 주님! 삭개오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당신이 일방적으로 그의 집에 들어가서 묵고 잔치를 벌이자고 선언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 너무 급하거나 빠른것 아니십니까?  또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아마도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에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고 예수님의 어린아이성과 축제성에 결점과 흠집을 잡으려는 반응과 움직임을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바라봄” 그리고 자신을 삭개오의 집에 “스스로 초대”한 것 예수의 이 두 가지 행위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는 하나님 나라 사건의 핵심을 보여준다.(눅 19: 2-10)

  여기에서 “주인”과 “손님”의 경계는 돌연히 사라지며,   초대자와 손님을 넘어서는 경계를 넘어선   따스한 “환대적 긍정”만이 남게 된다는 것 이다.

 예수님을 만나서 이러한 비존재를 넘어서는 따뜻한 환대와 존재적인 만남을 경험하면서 삭개오는 자신이 그동한 토색질한 모든 것을 4배로 갚는다는 파격선언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큰 잔치을 열개 된다.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의 결론은 무엇인가?  결론은 사람들이 예수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지만.. 예수도 삭개오도 거기에 개의치 않는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의 집에 머무를 것을 요청하고,  그리고 삭개오는 물론 너무 기뻐서 기꺼이 예수를 모셔 들였다는 것 이다.    새롬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맛보아야 할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하나님나라의 긴박성과 축제성을 자주 느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삶에 초대도 않했는데 자기 흥에 겨워  오늘 너희 집에 내가 유하겠다고 하는 경계를 넘어서는 환대와  그러한 시선과 환대에 내가 토색질한 모든 것을 4배로 갑겠다는  파격적인 초대가 일어나야 이것이 진정 하나님 나라의 축제인 줄 믿는다,

 

   

      그리고 그 다음주 인도네시아 백진식 선교사님이 약대동에 다녀가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삭개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여러장벽을 넘어 결국은 삭개오의 집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좋다”고 하는  “절대 긍정의 신”(God as always-yes)의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 보게되고,  이러한 절대 긍정의 신이 바로 오늘 세계화 시대의  작은자와 타인과 나그네가 되어가는 세상을 긍정하고 환대하는 긍정과 책임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잔치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러므로 올해의 추수와 감사의 계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 일을 하는 동안

우리 안의 모든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서   “어서 그 나무에서 내려와라 내가 너의 집에 거하겠!”다고 하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사건과 축제를 일으키는  가을의 추수 한마당을 만들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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