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원영 장로님(1926-2012)을 추모 글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故 최원영 장로님(1926-2012)을 추모 글한알의 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교회/하은규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6.14  09:07:18
트위터 페이스북
                         故 최원영 장로님(1926-2012)을 추모하며
 
   

                지난 5월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을 졸업한  최은주 사모와 같이 

한알의 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교회
 
동역자들과 믿음의 형제들에게

(1) 무더운 여름 날씨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도 모두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염려와 관심 가운데 처음으로 갔던 미국 여행을 도중에 중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심장병으로 고통을 겪으시던 장인 어른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했지만, 임종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엊그제 영결예배를 드리고, 장인어른을 하나님의 품에 맡겼습니다.
장인께서는 주후 2012년 6월 5일 (화) 아침 7시 20분에 하나님의 품에 영면하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부족한 목사를 위해 늘 기도하고 도와주는 “시냇가” 교회의 김영래 집사, 밤 늦은... 시간에 목사를 위로하러 멀리 서울대 분당병원까지 찾아와 조문해 준 젊은 양정웅집사와 박남문 전도사, 영결예배에 참석해 조의를 나누고 위로해 준 정인조 장로와 안임상 박사, 조위금을 보내 준 강남훈 집사와 현재만 선생, 그리고 소식을 듣고 기도해 준 “한 알의 밀” 형제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 저의 장인이신 최원영 장로님은 1926년 7월 14일 (음력),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조부님이 감리교회의 첫 교회인 인천 내리교회의 초대감독(아드님 중에 한 분이 감신대 초창기의 정경옥 교수님으로 미국 유학 후 감신대 신학의 확립과 제자 육성에 큰 공적을 남겨, 감신대에서 2005년 그 분의 유고 전집 3권을 발간하며 감리교의 지도급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출판기념회에 장인 어른과 함께 참석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어서, 외조부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 가정과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장인 어른의 부친인 최상린 장로님(서교동 교회)은 일제 당시 배화학당의 역사 선생님으로 우리나라의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시다가 일경에 투옥되어 3년 반이 넘는 수형 생활을 마치신 후 (나중에 독립 유공자로 추서되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 일제가 다스리는 식민지에 살지 않겠노라고 상해로 이주하셔서 장인은 프랑스 조계지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장인의 선친께서는 역사 선생님이었던 탓에 아들에게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영어가 세계 언어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하시며 영어 공부하기를 독려하셨고, 마침 미 군정 하에서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고문장학사로 와 계시던 홈펠트(Homefeld )씨의 일을 돕다가, 그 분의 도움과 주선으로 1948년, 미국의 켈리포니아 주의 Pacific College로 유학을 갔습니다.

유학 중에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하고 총영사를 찾아가 귀국하게끔 여권을 발부해 주기를 간청했으나, 그 분이 지금 돌아가 전선에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일찍이 유학와서 공부할 기회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고, 오히려 이런 기회를 잘 살려 지금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이후에 나라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인어른을 간곡히 설득하며, 여권을 발부해 주지 않아 귀국할 수가 없어, 마침내 1955년 우리나라에 돌아오셨습니다.

화학을 공부하신 장인은 귀국 후에 유일한 박사의 요청으로 유한 양행과, 그 후 파이자(Pfizer) 제약 등에서 일하시다가, 나중에 미국 회사인 모빌(Mobile) 석유화학 등을 거쳐 미국 에소(Esso 나중에Exxon) 석유화학의 한국 지사장으로 은퇴하신 후에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서교동 교회의 장로로 교회 일에 많은 봉사를 하시며 신앙생활로 위로와 기쁨을 얻으시며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3) 제가 장인 어른을 처음 뵙게 된 일은 1979년 여름이 지난 어느 날,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 중에, 흰색의 회사 승용차를 타고 가시던 중에 우리를 보고 길에서 차를 멈춰 차창을 열고 “은주야 어디가니? 태워줄까?” 라고 딸에게 말을 거시던 50대 초반의 단정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이미 머리는 하얗게 백발이 되신 신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가까이 뵙게 된 일은, 같은 해 11월 어느 날 장인 어른의 사무실이 있던 조선호텔로 찾아 뵙고, 당돌하게 “딸을 제게 주십시오!” 라고 간청드린 후, 그 분의 맏사위가 되어 32년의 세월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장인 어른은 저와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떠나, 제가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으로 존경하는 몇 분 안되는 중의 한 분입니다. 어른의 삶을 정직, 성실, 겸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쟁 후 우리나라가 어수선한 시절에 미국 물자가 쏟아 들어 올 때 장인이 치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언제나 정한 월급 이외에는 다른 한 푼도 쓰지 않고 외국 출장 등으로 남은 회사 경비는 정확히 계산해 회사에 되돌려드려, 경영 강좌에 정직한 삶의 모범으로 소개되기도 했다는 말을 영결예배 때 조문하러 오신 친구 분으로 부터 들었습니다. 외국 회사였기에 고액의 월급을 받았지만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떼면, 딸 여섯을 교육시켜야 했던 장모님은 늘 돈이 모자라 쩔절매는 생활을 해야 했답니다. 그러했던 탓에 장인어른은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장인 어른 만치 주어진 자신의 일에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을 그리 알지 못합니다. 은퇴하신 후에도 자신이 공부하셨던 화학의 수식을 끊임없이 연마하시기를 원하시어 아마존(Amazon)을 통해 미국 대학의 화학 교과서의 최신 개정판과, 원폭을 개발했지만 불우하게 일생을 마친 Robert Oppenheimer에 깊은 동정을 가지셔서 그의 전기의 최신판을, 각종 영어 성경과 더불어 구입해 드린 일이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장인 어른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일찌기 미국 유학을 하시고 회사의 직책으로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니시며 좀 권위를 부리고 거드럭 거리며 살 수 있었지만, 언제나 누구에게나 깍듯이 존댓말을 쓰시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시며, “감사합니다!” 란 말을 빠지지 않고 하시는 언제나 단정하시고 말쑥한 모습의 그야말로 ‘신사’ 였습니다. 언제나 즐겨 쓰시던 중절모의 잘 어울리시는 모습은 우리 딸 혜원이가 “할아버지 같은 멋쟁이는 없어!”라고 감탄하게 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우리 사회에 더욱 봉사하고자 하셨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그 분의 정직, 성실, 겸손의 덕목에 덧붙혀 뛰어난 영어 실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인간적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는 아직도 경상도 사투리 식의 영어를 겨우 말하지만, 장인 어른의 낭랑한 음성으로 말하는 영어는 제가 에딘버러 유학 중에 저희를 방문하러 오셨을 때 영국 공항의 이민국 관리가 장인 어른의 영어 발음을 듣고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한국 국적이 믿기지 않는다고 감탄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어른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수고와 아픔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시며, 그토록 사랑하던 가족들과, 섬기시던 교회와 나아가서 우리나라 기독교와 교회 (작금의 교회의 현실을 많이 개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와 국가 (제가 가난한 목사로 생활비를 도와드리지 못해, 독립 유공자의 아들로 100여만원 받으시는 국가연금으로 생활하시며, 나라를 위해 한 일도 없는 데 이런 돈을 받고 생활하며 국가를 위해서는 하는 일이 없노라고 한탄하시며, 오직 기도 밖에 할 수 없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 분의 나라 사랑은 늘 철저했습니다) 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장인 어른을 추모하며, 다시금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함께 나누며, 부족한 저와 우리 “시냇가”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강림절 후 두째 주일에, 인왕산 중턱에서, 하은규 목사 드림.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5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6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7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명성교회 후임 청빙위원회 발표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