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를 모르는 비루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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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를 모르는 비루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진실에 대한 대가, 필요 하다면 치러야 할 것이다
이 진 기자(충남, 대전)  |  ckaskan1@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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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25  20: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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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를 모르는 비루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진실에 대한 대가, 필요 하다면 치러야 할 것이다

평범한 농촌지역 면소재지의 성탄일은 지나치도록 고요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학교 아이들이 꽤나 바글댔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교회당은 금방 적막해졌다. 그래도 가끔은 목사님 생각 난다고 늦은 밤 하굣길에 한 번씩 들러주기도 하지만, 성탄절 행사는 물론 반짝이 전등 줄 하나 켜놓는 일을 그 아이들의 빈자리와 함께 그만두고 말았다. 유년시절 성탄절, 그 설렘과 풍성한 웃음들로 그만 교회당 붙박이로 살게 되었기에 사실 이런 성탄절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디 빈 둥지처럼 된 농촌교회들 뿐이겠는가.

불야성처럼이나 눈부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온 도시를 삼킬 듯 위세를 부리는 중대형교회들, 그 아래 낮은 건물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반짝이 전등이 쓸쓸히 점멸하고 있다. 가난하고 형제가 없는 외로운 집, 명절이면 더 쓸쓸하고 서글퍼지듯 한 것이 가난한 작은 도시 교회들의 성탄절 모습이다. 자기 과시에 눈이 멀어 엄청난 전력을 끌어 쓰며 늘여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대충 재료 가격만으로 계산을 해 본다. 입이 쩍 벌어진다. 이게 다 뭐하는 짓들인가? 그나마 조금씩 매달아 두었던 장식 전등이 낡아 새로 마련하는 일도 벅차 그만두면서 생긴 공연한 심통일까?

   

경주 최부자 고택의 낮은 굴뚝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ntersjh&logNo=70190114196

경주 최 부자가 오래간 이유
저 유명한 경주 교동 최씨 가문의 '육훈(六訓)'과 함께 그 댁 고택의 '굴뚝 이야기'가 떠오른다. 최부자집의 굴뚝은 놀랍게도 아주 낮은 곳에 마당을 향해 누워있다. 넉넉한 집에서 굴뚝을 높이 세워 연기를 피우고 사는 일이 어렵게 살며 굶주리는 이웃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되리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설치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댁에는 대대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구휼미를 따로 저장해 두는 열린 창고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덕을 알고 나누는 부자이니 그 집안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6.25때 사적재산몰수도 모자라 반동이라고 처벌을 받은 이들 중 가혹하게 혹세무민하던 지주들은 대부분 자기 머슴들에게 당한 것이었다.

경주 최부자댁의 이런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덕목, 오늘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리는 <염치>라는 것이다. 더 힘있는 자가 무조건 이기는 격투기가 아니라 하나의 ‘도(道)’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근대 태권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태권도의 5대 정신이 있는데 그것은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이라고 한다.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매일 큰 소리로 외우며 외쳐댄다. “염치!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행동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안다!”

얼마 전 아무개 재벌 집 딸이 공사를 구분 못하고 해서 안 될 일을 한 것도 모자라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나 구속이 된 바 있다. 한 사람의 일탈이 이렇게 일파만파다. 권한과 힘을 가진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비단 그런 일반기업에만 있을까? 아니다. 대형교회에도 넘친다. 말로는 머슴이라 하고 실은 제왕처럼 해먹고 행동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교인들과 특히 부교역자들을 종으로 부린다. 중세의 왕이나 제후, 기사들이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총회장과 노회장 총대들이며, 중대형교회의 위임목사들일 것이다. 교권은 행정적으로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존재하고 사용되어야 함에도 그것이 권력으로 둔갑하여 여러 사람을 타락시킨다. 이러니 그런 권한을 부리는 자리에 앉거나 그 배후가 되려고 혈안들이다. 그런 자들이 벌이는 파벌 정치와 파워 게임은 또 다른 중세시대로의 복귀이니 그런 이들 또한 중세 인간으로의 퇴화이다.

자칭, 한국 대표 교회의 비루한 염치
그리고 이 기막힌 비루함의 정점은 서울 명성교회에서 일어났다. 올해 우리사회의 사건 중 가장 큰 것이 세월호 참사라면 명성교회의 고 박영목 장로의 자살 사건은 교계의 세월호 사건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도 교회에 다니며 복 되고 감사한 생을 살기 원했을 것인데 왜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그 놈의 돈 때문이다. 그것이 그처럼 감당 못할 정도로 넘쳐나지만 않았어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제직회를 통해 관리되는 교회 본 재정과는 별도로 김 목사와 소수의 측근 장로들만이 아는 괴 자금  8백-1천억 원대를 관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인계하라는 동료 장로들의 요구와 압박에 그는 그런 죽음으로써 응답을 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가 남긴 3통의 유서만이 그 진실의 실체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온전히 사실 그대로 알려지려면 누군가가  법정에 서야하는 데 하나님께서는 진실 규명을 위하여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 중 본 [예장뉴스]의 기자를 법정에 세우실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용기와 함께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 종들만이 규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보도기사가 명성교회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그들이 고발하여 주어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박 장로의 자살 이유도 감추어 속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돈을 주체 못하고 있다. 이런 몰염치는 이미 자신들 스스로가 저버린 명성교회의 명예만 중요하다는 오만함이다. 그들이 속한 시찰과 노회, 총회와 전국 교회들의 명예 쯤은 그들의 안중에 없다 것을 반증하는 행태다.

   
 

가난과 작음이 빛나는 성탄절
2014년 성탄절 이브. 평범한 농촌의 면소재지는 더 없이 고요했다. 반짝이 장식등도 새벽송을 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이 그렇게 한 작은 마을은 잠들어 또 한 해의 성탄절을 맞이하였고 또 한 번의 성탄일은 그저 평범한 여느 하루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보내는 성탄일이야말로 ‘그 말씀께옵서 육체(σαρξ)가 되신, 그 '철저한 화육(化肉)'이신 이 한 분 앞에서 감히 하루를 가장 제대로 사는 일’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드디어 이렇게 이웃한 마을 사람들의 성탄일과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되기 전, 작은 성탄 행사라도 들떠 치르던 때는 이런 놀라운 은총의 한 단면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 그리고 작음... 이 아름다운 것들이 비로소 빛나는 계절! 우리는 아직도 성탄절을 지나고 있다.

(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아멘이신 분이시요,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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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현
(14.XXX.XXX.94)
농촌의 성탄절의 아픔을 새롭게 느낍니다. 활기찬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의 한 가운데에 농촌교회가 세워지기를 기원합니다.
(2014-12-26 08: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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