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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평화 포기’는 ‘구원 포기’의 다른 표현이다
양재섭 원장  |  pillhum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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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9  09: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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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

‘평화 포기’는 ‘구원 포기’의 다른 표현이다

양재섭 장로 (필휴먼평화통합연구원장)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제99회기 우리교단 총회의 새로운 주제인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 분명하게 뜻을 전해 주는데, 복음의 핵심은 바로 평화로 연결된다. 예수님의 산상설교 중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마태복음 5:9).”는 말씀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선포이며, 역으로 평화를 해치거나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녀의 명단에 결코 넣지 않겠다는, 칼날 같이 시퍼런 단호한 선언이시다.

하나님의 자녀 호명 거부는 바로 구원의 문 밖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을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평화인식에 대해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으며 평화실천에의 명령에 늘 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하루의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의 범위를 이탈하는 위험에 직면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여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일상생활의 안부인사가 평화를 갈망하는 “샬롬!”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오늘날 지구촌의 현실은 평화보다 갈등이 더 보편적이며, 상당수의 전쟁이 종교적인 갈등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9.11 테러처럼 때로 잘못된 종교적 열정이 상당수의 평화를 깨기도 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라는 같은 조상을 가진 자손들의 종교들이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비극적으로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 역시 단일민족을 자랑하던 한 형제자매가 아닌가? 비록 인류의 역사가 아벨에 대한 카인의 형제살인으로 초창기를 장식하였다고 해도 미움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주로 오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평화의 사역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남북관계나 국제관계는 제쳐 두고라도 우리 사회는 온갖 분열과 갈등으로 온 나라가 어지럽다. 청소년 범죄나 학교 폭력도 걱정스럽지만 성인사회에 난무하는 평화파괴 상황은 더더욱 염려스럽다. 따라서 이 시대에 있어서 평화교육은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평생교육을 강화하여 성인들에게도 평화에 관한 기본 인식을 가르치고 또 실천하도록 모든 교육체제를 전면적으로 가동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평화교육이다.

그렇다면 이 암담한 사회에서 교회는 바르고 건강하게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교회 밖의 일반 시민들이 기독교를 평화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있을까? 아니다. 거꾸로 분열과 분쟁으로 점철된 이미지가 강하여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고 있다는 여론 조사들이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하루하루의 일상생활 그리고 매주의 교회생활에서 샬롬이 느껴지고 행복이 넘치는지 냉정하게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흔히 세상이라고 규정하는 사회 속에서 평화를 이루는 존재인가 또는 평화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지는 않았는지 냉정하게 점검해 보고 만약 잘못되어 있다면 즉시 회개하고 바른 길로 돌아서야 한다.

이제 교회는 평화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교육의 출발점이 되기를 결단해야 한다. 혹시 매년 기독교교육주간을 지키면서 잠시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교육을 떠올리다가 잊어버리고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세밀한 교육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교단은 이름까지도 태생적으로 평화의 원천이 되는 ‘통합’을 지향하였고 평화는 복음적 기독인의 삶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평화교육과 함께 성인들의 평화교육에도 힘써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포함되어 구원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 포기’는 ‘구원 포기’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 신문' 사설로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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