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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 목사 설교고난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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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5  00: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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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고후 1: 3- 7)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목사)                             2014. 6. 16. 서울노회 은목회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하여 304명이 죽거나 실종된 지 벌써 62일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직도 실종자 12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느님
이번 여객선 침몰 참사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과 이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은 우리의 이런 고통을 알고 계실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외적인 구조나 지원・보상 등은 정부나 사회단체가 하겠지만, 내적 상처와 슬픔은 하느님이 함께 하실 때 치유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치유의 기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과연 하느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알고 계시며 거기에 함께 하시는가? 이 답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친히 종의 형체로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과 무관하게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그 고통을 친히 맛보시며 아파하신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결국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고통을 알고 계시며 아파하심을 뜻합니다. 2천 년 전에 십자가의 고통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일어나는 모든 고난을 하느님이 아파하고 계심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안의 고통 중 하느님의 고통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와 무관하게 계신 분이 아니라 그 역사를 아파하시면서 그것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고자 일하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2천 년 전 예수님을 못 박았던 나무토막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모든 고난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죄악과 불의와 죽음과 고난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대만의 민중신학자 송천성 박사는 “예수의 십자가가 나타내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하나의 긴 수난주간이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04쪽). 현재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고난을 하느님이 외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난 한복판에 하느님이 계시며, 그 고난 때문에 아파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고난은 하느님의 것이며, 따라서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하느님께서 그 고난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이렇게 이해할 때 하느님은 세월호 침몰 참사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계시며 그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의 고통을 친히 감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계심을 뜻하며, 이 고통을 통하여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뜻합니다. 이 역사의 고난과 아픔을 함께 짊어진 예수의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지므로 오늘날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부활로 나아가도록 새로운 미래가 우리 앞에 열렸음을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땅의 모든 고통을 자기 안에 짊어지신 하느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 땅의 모든 죄악, 부조리와 부정의 그리고 고통과 죽음이 극복될 하느님의 새로운 미래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1) 우리를 위협하는 죽음의 세력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 기가 꺾였고, 새롭게 열린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는 그 세력을 뻗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우리를 괴롭혔던 고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열린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는 침범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비극은 우리에게 큰 고통을 가져왔지만, 그 고통 속에는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도 함께 하신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가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자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며 사과하고, 해안경찰청을 폐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권은 언제나 그 폭력성을 강화하면 하였지 절대로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정부에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국민이 정신을 차려서 정권의 실상을 똑바로 보고 계속 저들을 감시하며 비판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권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교회도 이때에 반성하고 정신을 차리고 예언자의 자리로 복귀하여 민중과 더불어 정권을 감시하고 저들의 폭력에 맞서며 정의에 기초한 평화를 다져갈 때 이 땅에 치유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고난에 연대하라
고린도후서 1장 7절에 보면 “여러분이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여러분은 고난에 참여하는 이들인 것같이 위로에도 참여하는 이들이다”가 됩니다. 여기서 “참여하는 이들”로 번역된 원어는 ‘코이노노이’(κοινωνοί)로 친교 또는 연대의 뜻을 가진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이런 어원을 따라 다시 번역하면 “고난에 연대(連帶)하는 이들” 혹은 “고난 받는 자들과 친교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심은 우리의 고난에 동참 또는 연대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이 땅의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과 연대하고 계심을 뜻합니다. 고난 받는 자들과 친교하고 계심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의 고난에 동참할 때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는 수많은 시민이 있어 생명을 경시하는 세력들을 질타하고 비판하면서 인간성의 따뜻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가 난 후 어떻게 저들의 슬픔을 함께 나눌까 생각하던 어떤 여집사님이 안산에 가 한 아이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는데, 그 옆방에 아직 장례를 치루지 않은 어머니가 낙심하여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찾아가 같이 껴안고 한참을 울었답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안 되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피켓이라도 들겠다”고 약속을 하였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섯 아이의 엄마인 이 집사님은 4월 28일부터 하루 네 시간씩 일주일에 네 번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였고 지난 6월 2일 비바람 부는 날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 마지막 1인 시위를 하고 마쳤습니다.

39세인 이 집사님은 자기가 낳은 아이와 입양한 아이까지 다섯 명의 아이를 돌보느라 매우 분주하지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따라 이런 방법으로 집사님은 이 고난에 연대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그 남편 등 몇몇 사람들이 5년 이상 안산에 머물 결심으로 거주할 집을 마련 중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현지에서 ‘사고 관련 기록 수집’, ‘심리치료’, ‘문화공연’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깊은 상처를 입은 유족들에게 다가가 저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하려고 한답니다.2)

한국교회는 이제 좀 더 낮은 자리로 내려와 작은 자들과 연대하고 그 고난에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높은 자리를 향하여 나갈 때 교회는 반대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 거기서 고난당하는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그곳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큰 세력으로 성장하여 우리 사회의 무시 못 할 자리를 차지하면서 특권을 누리려 한다면 서구 교회처럼 그 영광은 곧 사라지고 교회는 텅 비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성장해온 과거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고난의 현장으로 내려가 아픔을 당하는 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아픔을 싸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그 영성이 깊어지면서 하느님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충실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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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 만, 현대 삼위일체론 연구, 2003, 대한기독교서회, 122'
2) 한겨레 2014.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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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121.XXX.XXX.44)
아멘 아멘 아멘 샬롬
(2017-02-10 01: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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