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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아니면 자연사(히틀러의 어용목사)김인주의 "역사속의 오늘"
김인주 편집인  |  thpr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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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30  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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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주의 "역사속의 오늘" 

1945년 7월 31일 베를린에서 루드비히 뮐러(1883-1945)가 죽었다. 약간의 수면제가 발견되었기에, 자살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심신이 약해져서 자연스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부정할 증거도 없다. 독일역사상 유일한 제국주교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뮬러와 히틀러

1차대전이 일어나자 뮐러는 군목으로 종군하였고, 이후 그는 계속 군목으로 머물렀다. 1927년경 히틀러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933/34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되자, 그는 제국주교로 옹립되었다. 천주교는 바티칸의 하부조직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만, 총통은 개신교를 마음대로 요리하고 싶었다. 뮐러를 통해서, 개신교를 통째로 장악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녹록하지 않았다. 반발하는 주교들이 생겨났고, 목사긴급동맹이 결성되어 마틴 니묄러를 중심으로 저항하는 움직임이 번져나갔다.

권력은 교회를 직접 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뮐러는 이제 실권이 전혀 없는 허수아비가 되어, 모두에게 따돌림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고 죽어갔다.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에, 법무참모였던 신직수를 기용하여, 검찰을 장악하였다. 사상최연소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8년간 연임하도록 하였고, 그 후에도 법무장관, 중앙정보부장으로 지근거리에 두고 활용하였다. 뮐러의 행로를 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게, 어쩌면 성직자의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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