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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민족의 강단(황남덕 목사)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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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8  12: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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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삼하 11:26-12:13a; 엡 4:1-16; 요6:24-35

   
 

요한복음서 전반을 보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수께로 와서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중심적인 주제는 예수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하는 정체성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신약의 어느 책보다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대답들은 여전히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본문에도 표적, 표적의 뜻, 영원한 양식, 인자, 하나님의 일, 믿음, 생명의 빵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만큼 요한복음서의 신학이 깊게 깔린 말들입니다. 

그럼 오늘의 요한복음의 본문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란 전날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체험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이 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14절)하고 말하며 예수를 왕으로 세우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15절)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그들 가까이에 없는 것을 알게 되자 배를 나누어 타고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24절)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무리들을 피해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다가 날이 저물자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가는 길도 기적 이야기로 묘사되는데 제자들이 배를 타고 먼저 갔고 조금 후에 예수께서 물위로 걸으시다가 제자들을 만나고, 제자들의 배를 타고 가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윽고 가버나움에서 예수와 그를 찾던 많은 무리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다…

여기서 누군가가 혹시라도 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예수를 찾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그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어쩌면 왜 자신이 그렇게 주님을 찾는지도 모르는 채, 많은 무리들 속에 휩싸여서 그곳까지 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왜 찾느냐는 질문에 우물쭈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왜 찾느냐고 더 물어보면 그 때서야 이런 저런 이유를 댈 것입니다. 추측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생생한 어제의 기억, 즉 광야에서 배불리 먹었던 그 기억에 의존해서 왔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제와 같이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뭔가를 또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기대로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만나자 마자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냐고” 묻습니다. 비록 이 말은 공손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내심 오늘은 또 무슨 표적을 주시겠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그들의 심중을 정확히 꿰뚫어 보셨습니다. 실은 그들은 빵을 얻기 위해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모습은 오늘도 재현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닙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일단 물음을 왜 교회에 다니는가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교회를 다니는가?
 

모태신앙이니까, 내 무력감을 구원해 주실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복잡한 마음이 잠시라도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축복을 받아 직장에서 승진할 수 있고, 사업이 잘 되기를 바래서… 또 사업상 인간관계 때문에 (새민족은 이런 경우는 없다고 본다)

 

예/ 강남의 교회(고소영: 고려대학교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니고 영남 출신…) 

이렇게 주님께서 뭔가를 나에게 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에 교회에 나옵니다. 여러분은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오랫동안 맺어왔던 인간관계를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주님을 찾는 것은 표징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했습니다. 이 표징으로 말하면, 이미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요2:11) 병자를 고치신 표징들로 계속적으로 일어납니다(6:2). 

표징이라는 단어는 공동번역에는 ‘기적’이라는 말로 나오는데 그런대 이 표징/기적의 진정한 뜻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표징(기적)의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배가 불렀으니 또 배를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표징/기적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그 표징/기적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려고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성령) 가운데 하나님과의 깊은 차원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일을 제쳐 놓고, 오랜 세월 맺은 인간관계 때문에, 나 자신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 하는 일이 잘 되기 위해,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화/쌀 기독교인, 병을 고치고자 모인 사람들, 아침에 쌀을 씻는다는 물을 먼저 받기 위해 싸우는 모습

주님은 무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예수의 사역을 비교하는 하는 것을 예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조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준 것이고 지금 이 생명의 양식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자가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시면서, 그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을 믿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든 것이 일을 하는 것이라니! 무슨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쉽게 젖을 수 있는 현대인의 귀에는 이 말이 매우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신앙과 삶이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이성과 신앙이, 사유와 삶이 서로 만나게 되고 그것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33절) 여기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의 빵으로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그리고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살리고, 피조물을 포함한 온 우주의 생명의 근원이신 생명의 빵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허둥지둥 찾아온 무리들에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늘의 참 빵” “생명의 빵” ”하나님의 빵”을 말씀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허둥지둥 바삐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 “생명의 빵” “하늘의 빵”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바로 “생명의 빵”임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빵인 그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 고 말씀하신 뜻을 깨닫고, 사람의 아들을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힘쓰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 뜻을 깨닫지 못하면서 힘쓰는 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것까지도 자기만족을 추구하거나 자기과시를 위해서 힘쓰는 헛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빵인 주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인 것은 무엇인가? 겉으로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가서…). 때로는 장마철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빗소리를 들어가면 잠자리에 누울 때, 사무실 밖, 거리의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면서, 지하철 안에서 엄마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순간 순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것에 질문하면서 내가 내 삶을 통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일은 무엇인가도 함께 질문해야 합니다. 이렇게 궁극적인 관심은 현실 속의 실천적인 영역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가 영원한 생명의 빵이라는, 어떻게 보면 애매모호할 수 있는 이 은유를 요한복음은 성육신을 강조함으로서 영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바로 잡아줍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적인 것은 성육신적인 것이고, 이 세상, 현재 그리고 지금, 여기와 연결됩니다. 

오늘,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따르는 교회가 특별히 영적인 것을 이해하려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성만찬의 식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성만찬에서 경험하는 영적인 신비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영적인 출발점입니다. 

생명의 빵으로 오신 주님을 성만찬에서 경험한 신비의 공동체에게는 이제 이 생명을 세상 속에서 피워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생명- 가장 반생명적인 것 그것은 전쟁이다. (상상-남과 북의 군인들이 총을 내려놓는다/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총을 내려놓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의 평화)

예화) 극우 유대인 소행으로 추정되는 방화로 18개월 아기가 팔레스타인 서안지역 발생했고 그 죽음에 항의하는 14세 소년이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죽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은 다시 긴장이 고조 되고 있습니다. (미가서 4:3 – 칼을 보습으로 창을 낫으로 만든다) / 군사훈련을 중단

올 해는 우리 민족이 미완의 해방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남북한에는 천만의 이산가족이 있고, 전쟁 중에 잠시 쉬자고 정전협정을 했을 뿐 전시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 생명의 빵으로 오신 주님께서 생명을 일구어 평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고 주체이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평화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빵을 경험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평화의 일꾼”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무리들은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34절)라고 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 빵을 달라고 합니다. 이제는 그 빵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생명의 빵을 받아 생명의 사람으로 평화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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