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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소망교회 이택환 목사 설교“제자로의 부르심”(눅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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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4  00: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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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로의 부르심”(눅 14:25-33)

2016. 9/4, 성령강림주일 후 열여섯 번째 주일

눅 14:25-33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980-90년대 한국교회 부흥은 제자훈련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1976년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의 본질을 제자훈련에서 찾았습니다. 사랑의교회는 초창기부터 제자훈련을 통해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흥했고, 오랫동안 ‘한국교회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동안 옥 목사님이 인도하신 제자훈련 세미나를 이수한 교회 지도자들이 2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을 통해 제자훈련이 한국교회 저변으로 확대되어, 어떤 형태로든 제자훈련을 시도해 해 보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랑의 교회가 이런 저런 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제자훈련이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제자훈련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옥 목사님의 생각, 그 자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나는 제자까지 될 생각 없습니다. 그저 평신도로 남고 싶어요.”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특별히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도와는 달리, 누구라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세상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28:19-20). 그렇다면 이 명령을 따라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 전 세계의 모든 성도들은, 이미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부름 받았다고 다 제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일까요? 그동안 많은 한국 교회가 제자훈련이라는 특정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사랑의 교회는 교회에 등록한 지 1년 이상 지나고, 세례 받은 지 3년 이상 된 사람 중에, 새 가족 모임과 큐티 세미나, 구약/신약의 파노라마, 또는 성경대학 등을 이수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32주 동안 훈련했습니다. 기도와 큐티는 기본이고, 성경암송과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 과제들이 있습니다. 훈련이 힘들다보니 낙오자도 많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랑의 교회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30년 동안 열심히 제자 훈련을 한 덕택에 한동안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닙니다. 정작 제자다운 제자들을 한국 교회가 잘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자훈련을 표방하는 유명 교회가 오히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온 면이 있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도 멈춘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성도들이 줄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우리 교단만 해도 2만 명의 성도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제자다운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몇 년 전 타계한 영국의 존 스토트 신부가 2010년에 낸, 마지막 유언과 같은 책 한권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피를 토하듯” 강조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라!”입니다. 그 책의 제목은 ‘제자도’입니다. 영어 제목은 “The Radical Disciple” “급진적 제자”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온전한 제자의 8가지 특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가 ‘세상을 거스름’입니다. 다원주의, 물질주의 등, 그리스도인을 삼키려는 현대사조에 순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종종 세상을 거스르기보다 순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차라리 더 잘 순응해서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신앙도 좋은 "강남 스타일 크리스천"이라고나 할까요?

두 번째 특징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세 번째 특징이 ‘성숙’입니다. 그는 “목회 사역이나 리더로 부름 받은 이에게 성숙보다 더 큰 목표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목회자 중에도 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시설물을 관리하고, 교회 봉고차를 운전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그분이 성도들을 태우고 교회에 와 보니 주차장이 꽉 차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빈 곳이 담임목사 전용 주차 공간이라서, 임시로 그곳에 차를 세웠는데, 얼마 후 담임목사가 와서는 화를 벌컥 내더니 왜 여기 차를 세웠느냐 질책하더라는 겁니다. 사정을 말하니, 건방지게 말대꾸 한다면서 반말로 화를 내고는, 3개월 동안 사례비를 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3개월 동안 사례비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제자에겐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 중요합니다.

참된 제자의 네 번째 특징은 ‘창조세계를 돌본다’입니다. 급진적 제자도는 개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령 환경 문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문제이지, 단지 최병성 목사님 한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존 스토트는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소유인 이 땅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제자의 다섯 번째 특징은 ‘단순함’입니다. 특별히 존 스토트는 돈과 소유의 단순함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할 목회자의 돈 문제가 복잡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몇 년 전 PD수첩 제목이 “목사님, 교회 돈은 어디 쓰셨습니까?”였습니다. 그 프로가 고발한 부천의 C교회 담임목사는 본인과 가족, 지인 명의의 아파트가 여덟 채나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재정을 공개하지만, 목회자 사례비가 정확히 얼마인지 성도들이 알 수 없도록 복잡하게 작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돈 문에 대해 떳떳하지 않는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여섯 번째는 ‘균형’, 특별히 신앙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종종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교회의 장로, 집사, 순장들을 보면 마치 교회가 직장처럼 보입니다. 대학 청년부 리더들도 거의 교회에서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압니다. 그러다보니 소위 제자급 성도들은 가정이나 직장, 학교보다 교회를 우선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여깁니다. 그 중의 일부는 아예 신학교로 갑니다. 이 처럼 교회생활에 매몰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오히려 제자도가 실종됩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이 많은데,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교회 생활에 질린 사람들입니다. 일곱 번째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강한 ‘의존성’입니다. 그리고 존 스토트가 마지막으로 꼽은 것이 ‘죽음’입니다. 참된 제자는 죽음의 역설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은유를 통해 약함에서 드러나는 능력, 고난에서 드러나는 영광, 희생에서 나타나는 생명 등, 예수 그리스도의 역설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 교회가 이런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을 잘 길러내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제자훈련이 만들어낸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제자라기보다는 담임목사의 제자, 또는 리더의 제자, 그리고 교회에 충실한 일꾼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제자훈련의 틀과 방법론이 달라져야 합니다. 마침 오늘 말씀이 제자로의 부르심과 관련된 본문인데, 정작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어떤 훈련과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그 방법론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세 번씩이나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강조하심으로,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길이 어떤 길인가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할까요? 첫째, 자기 부모와 처자식과 형제, 자매, 나아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26절,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사실 우리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족을 사랑할 수 없고,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지녀야 할 당연한 가치죠. 그런데 제자들은 이러한 당연한 가치를 예수님 앞에서 상대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 앞에서 랜턴이 어둡게 느껴지는 것처럼, 예수님 앞에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차라리 미움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역설법!).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절대시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든 가치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지니신 절대적인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입니다. 27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십자가의 형벌, 즉 죽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곧 자기 목숨까지 상대화해야 한다는 첫 번째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 번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자기 소유는 단지 돈이나 재산만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가족들과 자신의 목숨, 그 외에도 학식과 명예와 권세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에 대한 총칭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서 상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상대화의 대상 중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목사와 교회와 신학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제자들은 누구인가? 예수님을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는 자라는 것입니다(세 번씩이나 강조!).

한편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를 위해 가족도 포기하고, 자기 생명과 재산도 버리는 바보, 미련한 자들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예를 드셨습니다. 먼저 망대를 세우기 전에 비용을 계산하라!입니다. 비용을 미리 따져보지 않고 망대를 짓다가는 결국 기초만 쌓고, 완성은 하지 못함으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한 대형건물이 건축 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이방 이두메 출신이었던 헤롯대왕이 주전 20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성전이 완성된 것은 주후 63년입니다. 무려 80년 이상이나 걸려 자신이 죽은 후까지 계속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헤롯 성전은, 완공 된지 불과 7년 뒤인 주후 70년, 로마의 침공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의 망대의 비유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빗대어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헤롯 성전에 거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헤롯성전은 결국 무너져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전 파괴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고, 유대 민족은 세계로 흩어져 이방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절대로 가족과 자기 생명과 자신의 모든 소유를 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망대를 짓기 전에 계산을 하지 않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도 실패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이미 헤롯 성전에 계시지 아니하셨습니다. 헤롯이 돌로 된 화려한 성전을 장기간 짓고 있을 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되고 영원한 성전,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요 2:19-21,

요 2:19-21)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제 새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절대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예는 전쟁을 하기 전에 승산을 따져보라! 입니다. 승산이 없다면 왕은 처음부터 전쟁을 하지 말고 적과 화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멸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후 66년 유대전쟁을 일으켜,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를 예루살렘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로마의 침공으로 당시 유대인이 백만 명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 1000명가량이 마사다 요새에서 항거하다가 주후 73년 어느 날, 결국 집단자살로 끝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무모한 전쟁을 벌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로마제국과 싸우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진정한 원수인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그 전투가 벌어진 곳은 마사다 요새가 아닌,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그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원수 사탄에게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전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도 됩니다. 가족과 생명과 소유를 그분에게 모두 맡겨도 좋습니다. 아니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가족과 생명과 소유를 모두 맡기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입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현세와 앞으로 도래하는 세상(곧 하나님 나라)에서 모든 것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금 그렇게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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