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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8  18: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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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도자인가? 

   
 

지도자(指導者)란 '가르쳐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라고 국어사전에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지도자란 특정한 집단이나 사회의 어떤 조직을 앞장서 거느리고 이끄는 사람을 리더(leader) 라고 할 수 있다. 리더는 존경을 받지만 그 존경심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희생과 공적 복무가 수반되어야 한다. 지도자라는 사람이 자기 조직을 위하여 희생은 없으면서 권한만 누리려고 한다면 욕을 들을 것이다.

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다음의 4가지 덕목을 모두 겸비하였다고 한다. 그는 몸가짐이 겸손했고, 윗사람 섬김에도 충성을 다하였고, 백성을 돌봄에는 애정을 다했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대의에 맞게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사회의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은 거의가 모든 일에 본이 되고 앞서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지도자란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드리는 것이 현실이다.

목사와 장로를 교회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데 교회에서 그럼 이와 같은 사회적 의미의 지도자상을 볼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상당히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의 지도자의 의미는 가르치고 훈계하고 대접받고 명령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지도자에 대한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군사정권과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은 위로부터의 권위와 질서를 대단히 중히 여겨왔다. 특히 군사부일제(君師父一體) 라는 말에서 보듯이 국가 지도자와 스승, 부모를 일심동체로 절대권위로 받아드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연령대가 60이라고 본다면 이들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대학교육 이상을 받은 이들을 포함하여 거의가 반공주의, 국가우선주의, 권위주의,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있는 분들이다.

이들은 세월이 가고 시간이 가서 연령적으로나 직임으로 지도자급이 되었지만 제대로 훈련을 받고 지도자로서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배운 이들은 드물다.  그러니 그저 예전처럼 인사 받고 지시하는 어른의 모습에 국한되어 있다. 좀 낫다는 사람들도 거의가 왜곡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카리스마와 절대 권위다.

이런 부류는 공무원, 기업, 사회, 교회에서 최상급의 자리에 있다. 이들은 훈련받지 못해서 자리는 높아지고 결정 권한은 많아져도 생각은 거의 개인주의적이거나 지엽적이며 아래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가로채는 등 이도 저도 아닌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자질 중 으뜸인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는 마음의 자세 즉 소통 능력이다. 왜냐하면 그 지도자가 소속한 곳의 사람들의 능력이나 한계가 바로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소속한 조직의 상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서 지도자는 참모와 측근들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 들을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하는 지도자상이란 참으로 한심하여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축소하여 버린 것이다.

그러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어떤 것이 있는가? 모두가 잘 알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지도자는 그 조직의 목표와 목적을 위해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 지도자가 그 조직에 헌신하려면 정직과 신뢰로써 조직 구성원들이 지도자를 믿고 따르도록 하여 구성원들의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둘째, 지도자는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조직에는 '라인 조직'과 '참모 조직'이 있다. 지도자가 라인 조직과 참모 조직과 잘 소통함으로써 수직적인 의사소통과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이끌어 낼 수 있다. 참모 조직은 수평적인 조직으로 수직적인 라인을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참모 조직이 비대하여 라인 조직을 무시하면 조직에 소통부재의 문제가 발생하고 '비선 조직'이 설치게 된다.

셋째, 지도자는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별하여야 한다. 지도자가 공과 사에 엄격해야 조직을 공정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개인 친분이나 감정을 뛰어넘어 조직원들의 인사, 보수, 체벌, 휴가 등 모든 면에서 공정히 처리하여 구성원들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

지금 이른 대선을 앞둔 이 나라에서 너도나도 나서는 차기 대통령 예비후보군들을 보면서 우리는 지도자에 대한 역할에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노년 세대에서 통용되는 지도자로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지도자의 사표(師表)로 많이 든다. 그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만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이었다. 특히 세종의 경우 소통의 왕이었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여 학문의 꽃을 피웠다.

이순신도 왜적의 침입에 맞서 오로지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며 사즉생(死則生), 생즉사(生則死)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신 분이다.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모함과 조정의 오해,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편단심으로 백의종군하며 12척의 배로 300척의 왜적을 물리쳐 명량대첩에서 승리하게 한 헌신의 사표이다.

그러나 근대 시기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 밝혀지듯이 권모술수와 정파적 이해관계로 독재자가 되어 3.15부정선거의 주인공으로 결국 하야(下野)의 길로 갔으며 그 후의 박정희의 친일과 공산 사상, 말년도 개인이나 집단의 탐욕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특히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도 전혀 준비되지 못한 지도자로 밝혀지는 바가 놀라울 따름이다. 아버지처럼 정상 근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정이 없으면 사가에서 출근없이 정적 감시와 야당 탄압, 언론 감시, 재벌 길들기로 일관하다가 밤이면 술파티를 하고 늦잠을 잤던 부친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게 되어 있지만 그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재생의 길이 있다. 그러나 과오를 인정치 않고 거짓을 일삼는다면 한 개인은 물론 대통령이라도 국민은 용서하지 않으며 나라 전체를 큰 위험에 처하게 한다. 탄핵을 당하고도 박 대통령은 국민 정서와는 다르게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데 누가 기획을 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청와대의 비서관이나 일부 참모, 장관들도 모두 한 통속이 되었다는 것이 연일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의 탄핵 사유라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면 교회의 지도자들의 전형은 어떠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표상으로 특정한 인물들을 예로 들지만 이는 주관적으로 위험하다. 우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지도자 상에 대하여 원칙을 삼고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대목을 하나 든다면,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막 10:42-44)

이게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종의 모습이요 섬기는 도리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지도자가 우리 주변에 있느냐 할 것 같으면 말로는 자임할지 모르지만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런가? 지도자에 대한 세속적인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써서 높아지려고 하고 힘이 있는 이들과 거래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비난받고 퇴출받고 무시 받아야 되는 데 그것이 아직도 용납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는 지도자를 출세와 명예의 자리로 가는 발판으로 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학교와 성경에서는 섬기는 종의 도리를 배우고 설교를 하면서도 자신은 제외하고 지배하고 높아지려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직임에 주어지는 힘을 사사로히 쓰는 것이다. 교회가 목회에 전념하라고 주는 것들을 주로 사적 유익을 위하여 오용하지를 않나,  활동비와 출장비도 교회와 목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맥과 품앗이로 비슷한 부류들을 부르고 친교들을 한다. 검을 잘 쓰면 나라와 국민을 이롭게 하지만 잘못 쓰면 나라를 망치고 패가망신하는 것과 같다. 목회자에게 주신 권과 힘을 사사로히 쓰는 것이 문제다.

로마제국이 천 년 이상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들이 나라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민주주의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의 고급 정보를 공개하니 백성들이 솔선하여 전쟁에 참여하기 하였고 강한 군대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을 가르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은 이런 정신이 결여되고 일신의 영달만을 생각하여 권력과 재물을 탐했기에 오늘의 국가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탄핵 조사도 거부하고 방문 조사도 거부하고 자료제출도 거부하고면서 국가법의 최고 수장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용납 되어서 안 된다. 법을 어긴 사람은 더 이상 대통령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이번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역사 속에서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모아진 촛불과 광장의 민의를 정치권의 정권욕에 무조건 위임해서도 안 된다. 이제 금년 봄에 있게 될 '벗꽃 대선'에서는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국민이 알았기에 과거의 대선과 다르게 치러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누가 후보가 되든 높아진 국민의 정치 의식과 욕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이다. 특정한 그룹과 지역의 지도자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권위주의, 국민 분열, 재벌 중심이 아닌 국민과 소통하고 공과 사를 엄격이 구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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