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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문제에서 교회는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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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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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교회 문제에서 교회는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가?

최종원 교수(벤쿠버소재 기독교세계대학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현재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교회사와 지성사 강의를 한다. 그동안 FB을 하지 않다가 올해 여름부터 시작하여 개인적인 단상을 쓰기 시작한다. 이번 명성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의 페북에 쓴 글을 허락받아 게재한다.  

1. 사대의 변화에 둔감한 성직자  

신학 공부 배경 없이 역사학을 공부했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대상의 대다수는 목회자나 선교사, 목회자 후보생들이 되었다. 충분히 익숙해 질만도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가끔씩은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꼭 대다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목회자로 훈련된 사고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새로운 여지가 들어갈 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반 사회의 보편적인 사고구조나 정서와 다른 층위의 사고를 하면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내 편에서 보자면,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약간은 겉돌게 되고, 논지 표현에서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신학적 어휘로 두리뭉실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그런 나를 학생들은 “같은 편이 맞나?” 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의 원인 중의 하나로 라틴어 미사도 집전하지 못할 정도의 ‘무지한 성직자들’을 든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점이 없지 않으나, 나는 그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의 절대적인 교육 수준에 비해 보았을 때에는 여전히 성직자들의 교육 수준은 높았다. 다만, 말을 약간 바꾸어 보자면 그들의 무지함은 시대의 변화하는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지함이었다.

여전히 오늘 한국의 목회자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한 느낌을 언뜻, 언뜻 받는다. 인격의 부족도 아니요, 열심의 부족도 아니요, 배움의 부족도 아니요, 신학적인 훈련의 부족도 아닌데, 뭔가 불투명의 차양이 드리워져 있음을 느낀다. 최소한의 합의된 일반적 사회 정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르게 보는 것이 목회자로서의 자존심이라고, 존재의미라고 느끼는 부류도 현실에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들의 이런 정서가 내가 오랜 동안 같이 있으면서도 ‘외부인’의 자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이다.

2. 명성교회 목회자들만의 문제인가? 

문득 나는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나가기 위한 시선에서 이를 또 다시 확인한다. 대상을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통합’ 측으로 좁혀 보자. 장신 각 기수별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통합목회자연대’를 결성한다고 한다. 그리고 총회가 세습 문제에 대해 바른 판결을 내릴 것을 촉구하고, 명성교회가 한국 교회 앞에서 사죄하도록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쪽팔리다’는 것이다 (더 나은 표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용서를 구한다). 그들의 진심 자체는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지금의 전선에 딴지를 걸어 균열을 낼 의도는 아니다.

다만, 몇 가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하나는, 명성교회의 불법적인 세습 문제를 끝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최선을 다했다고, 우리가 할 만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정말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이 정도 갖고 될 일은 아니다. 이미 역사는 여러 차례 말해 줬다. 역사는 돈다. 돌고 또 돈다. 충현교회, 광림교회 세습, 그 때도 이와 같은 흐름은 있었다. 그 뿐이다. 인간은 역사와 경험에서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는 헤겔의 자조도 돌고 또 돈다. 정말 돌겠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회자’ 연대라는 것은 의미가 뭐란 말인가? 이 문제가 목회자들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교인들 부끄러우니 이름이라도 올리자는 얘기일까? 정말 의지가 있다면, 여기에야말로 교인들을 ‘동원’해서라도 촛불시위를 벌이는 것이 그나마 진정성이 있어 보일 것이다. 이 문제를 목회자들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칫하면 ‘침묵의 카르텔’의 또 다른 변형된 버전에 머무르기 쉽다.

두 번째는, 명성교회 문제의 핵심이 세습이라고 보는가?
내가 보기에 이 세습 문제를 대하는 목회자들과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다. 목회자들에게 교회 세습은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이다. 교파를 불문하고 이미 목회자 2세, 3세들이 많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모두 잠재적 ‘사건 당사자들’이다. 목회자들에게는 여하한 이유로든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초미의 관심이겠지만 일반 그리스도인들이나 대중의 정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JTBC라는 방송에서 다룬 핵심이 정말 ‘대형교회의 세습’이 본질이었을까? 세습으로 구현된 오늘날 일그러진 교회에 대한 고발이다. 자, 세습 문제가 의도한 대로 해결되었다고 보자. 아마, 통합 측 목회자들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감사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개신교를 달리 볼 것이라는 여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용종 하나를 제거한 수준이지, 아직 환부의 핵심에는 매스가 닿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3.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왜 이렇게 냉소적으로 볼까? 얼마 전 바로 그 ‘통합’ 총회에서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입학 불허, 교회의 직원, 신학대학 교직원이 될 수 없다”, “통합 교회 산하 교회에서는 요가와 마술을 금지한다”는 보고서를 수용했다. 솔직히, 나는 이 인지부조화를 목회자들이 어떻게 이겨내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관심은 일반 사회가,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가 자신들을 어떻게 쳐다볼 것인지에 있지 않는 듯 보인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내부자의 시선으로, 내부자의 목적으로만 세습 문제를 바라본다는 혐의를 거둘 길이 없다. 세습 문제와 통합 총회 결의 문제는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일언반구도 없던 이들이 전자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것인 양 목소리를 낸다.

통합 출신으로 몇 안 되게 통합 총회의 ‘반동성애’ 결의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김근주 교수는 다른 교단 신학교 수련회 강사로 가기로 했다가 막판에 취소됐단다. 그 교단 일부 동문 목회자들이 동성애 관련 언급에 문제 제기를 해서 취소했다고 한다. 핵심은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다. 동성애나 타자화의 문제가 이 사회에서 모두가 깊이 고민하고 있고, 더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목회자들이 이를 고민하면서 논의해 나갈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시대와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수준의 천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부끄러움은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몫인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비분강개할 일에 웃으면서 하고픈 말을 다하는 김근주 교수는 내가 제일 ‘겁나’하는 목사님이다. 상식이 겁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되어 바라보는 것이다. 외부자의 시선,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 그리고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명성교회를 보는 시각은 세습 자체가 아니라, 세습이라는 것으로 드러난 자본화된 교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점에서 통합목회자연대가 ‘명성교회가 한국교회 앞에 사죄하도록 촉구한다’는 요구는 번지수가 잘못된 것이다. 한국 사회 앞에 사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 의제가 아니라, 사회 의제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사회의 어젠다’로 진화되어야 한다.

4. 출발지점에 섰다면 다행

이 지점이 내가 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지점이다. 통합 측 목회자들은 이 문제가 사회적인 어젠다라고 인식을 하는가? 그렇게 진화되길 원하는가? 그것을 감당할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올바른 출발지점에 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 결국 이 문제도 교회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한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교회 문제에 대응하는 당사자들의 수가 너무 뻔해서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다 영험한 박수가 될 지경이다.

JTBC의 ‘손’이 안수해 준 핵심을 교회가 곱씹어 받아들이고 사회의 눈높이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치유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안수한 손이 개신교인이 아니라서 안 된다고? 그건 교회역사를 잘 몰라서 그런다. 세례를 구원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던 중세교회에는 갓 태어난 아이가 세례를 받는 것이 절체절명의 중요성을 가졌다. 영아사망률이 40%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세는 사제가 아니라도 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라도 영세를 줄 수 있었다. 그만큼 세례를 받는 것이 천국에 가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회 문제가 이처럼 중차대할진대 안수를 한 주체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아마도 의식 있는 내부자들은 이 문제가 교회의 개혁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를 다들 바랄 것이다. 하지만, 비그리스도인들 같은 외부자들은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새삼스럽지도 않을뿐더러,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안 된 말이지만, 이 문제에 앞장 서는 어르신 몇 분들은 다른 중차대한 사회적 어젠다에서 그야말로 어중간한 입장을 취했던 분들이다. 많은 분들이 연로하신 분들이 고생하신다고 눈물을 글썽이지만, 글쎄다… 그 분들의 진심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분들이 세월호나 박근혜 게이트 때 지금처럼 일인시위를 하고,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셨더라면 한국 교회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생각날까? 그야말로 뜬금없다.

5. 더 이상 교회의 문제만일 수 없어

이 문제는 더 이상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 부조화하는 ‘사회악’의 문제이다. 사회적인 이슈를 교회가 다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하고 보면 명확한 것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근대 세계에 가장 항구적인 영향을 준 프랑스혁명은 단순히 가톨릭 성직자회, 귀족 세력을 중심으로 한 앙시엥 레짐에 대한 계몽주의자들의 혁명이라는 구도로만 볼 것이 아니다. 당시 성직자회의 사상적, 신학적 배경이었던 예수회와, 하부 성직자들 중에서 가톨릭의 칼뱅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얀센파’의 대립 구도 역시 선명하였다. 다시 말해 구체제에 대한 하부 성직자들의 투쟁 역시 프랑스 혁명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세속 역사는 그들의 역할을 주도적인 것으로 주목하지 않는다. 교회 역사는 프랑스 ‘혁명’ 자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반감 때문인지 몰라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역할을 외면한다. 내가 보는 한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 사건이라면,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자 한 때 교회 개혁의 상징이었던 클뤼니 수도원의 철저한 파괴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끌어가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역사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면에는 그 믿음을 고백하는 교회가 신의 섭리를 이끌어가는 역사의 주체라는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신적 섭리와 계시는 교회가 아닌 ‘공평과 정의’를 지향하는 주체들을 통해 구현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역사는 말랑말랑하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심판’이라는 말을 무겁게 써야 한다. 심판의 대상에 교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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