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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편집인 칼럼미래 교회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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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3  22: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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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회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예장뉴스 편집인 칼럼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장)는 그의 책에서 2028년 경의 한국교회의 미래모습에서 존재의 지속성을 가늠할 재정과 미래세대인 교회학교 학생들이 절반으로 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현실로도 나타나고 있는 데  저출산과 인구 절벽현상의 결과이다.  그 외에도 청년과 청소년들의 급격한 의식변화는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도덕이나 윤리는 물론 가르침을 주었던 부모나 종교의 가르침과 권위를 받아드리지 않는 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서구의 교회처럼 공동화 현상이 빠르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교회가 노인들만 남았고 건물을 유지하기 어려워 극장이나 바(bar)로 팔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오늘날 이런 추세를 외면하는 대형교회들이라고 해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물적 토대인 교인 수와 헌금액이 줄어든다면 이는 남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암울한 한국교회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미래를 우리가 예측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준비한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시기에 한국교회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30년전 언더우스드 선교사는 미지의 낯선 땅 조선에서의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심정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다. 

미래학자들은 어디까지나 다가올 시대를 수치나 통계로 예측하여 준비하자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리냐는 것이 관건이다. 준비 없이 간다면 그런 예측을 맞이할 것이지만 준비하고 대안을 낸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힘과 자산이 우리에게 없지 않다는 것이 희망이다.

건물 중심의 교회론으로 안돼

이제 도시에서 건물을 짓거나 소유하는 일은 예전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도 교회들은 지속적으로 신자들의 주머니를 볼모로 건물을 확장하거나 새로 짓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이론이 나온지가 벌써 얼마인가? 서구의 실패와 교훈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론으로는 자라나는 세대와 사람에게  투자하자고는 하면서도 막상은 안 된다.  

소유와 건물 중심의 사고는 과시형으로 자기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다. 이런 교회 지도자들의 정신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절망이다. 건물이 없거나 모자란다면 지역의 공공시설과 학교 등 주일이나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자는 소리가 나온지도 오래다. 이미 지역과 호흡하며 협력 상생하는 방안들을 시도해 온 교회가 하나 둘이 아니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권위는 급속히 퇴락하고 있는 데 이는 사회문화의 변화에 기인한바 크다. 이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가상세계의 확대로 인하여 더 이상 개인이나 모이는 것에 대한 의미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원화된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어떤 기준이나 모델이 아니라 다원화와 다각화 그리고 창의성이 필요하다. 

   
 

이제 공항에서 위와 같은 그림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있다.  군대에서 군목과 군승, 신부들의 교류가 일상화 되고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로 편입이 될수록 차별금지법 문제는 거부할 수가 없다.  더 이상 기독교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특혜를 누릴 수 없다. 모든 종교는 똑같이 취급받고 차별받지 않는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 

주일이나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거의 대다수 교회에서 나타나는 주일예배 참석자의 감소와 자발적인 봉사와 헌신의 저하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주부들도 일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시대에 직면해 있기에 더 이상 교회에서의 봉사는 힘들어졌다. 도심의 오래된 교회당 인근에는 주거지도 사라지고 주일에는 창립 초기의 신자들과 그 자녀들로 채워지고 있다. 아직은 남아 있는 효심과 교회 사랑 때문이다. 

노년 세대의 증가는 인구문제만 아니라 건강식품과 의료 서비스의 향상으로 수명의 연장과 같이 한다. 이제 80은 보통이고 100세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5세가 700만 명을 육박하여 청년과 다음 세대 못지 않게 실버 세대의 중요성이 대두 된다. 교회에 나오는 노인세대는 그나마 연금과 노후가 과거보다는 준비된 이들로 한 마디로 빈털터리는 아니다. 

이런 교회의 변화와 신앙의 다원화에 주목하고 연구하는 연구소와 연구물들이 없지 않지만 교회와 현장의 목회자들이 귀담아 듣지 않거나 무시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교회주의로 자신의 교회는 예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더 이상 소유에서 네트워킹으로 보여주려는 의식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 관계 중심으로 인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목회 리더십의 변화  

더 이상 성직자 중심의 목회 리더십을 내려놔야 한다. 담임 목사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동사목사 협력목회 등으로 수직적이고 즉흥적인 1인 리더십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 폐해를 수도 없이 겪었어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안 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신도 지도자들의 역할론이 부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교회의 기저에는 설교 중심의 듣는 청자(聽者)형의 모임에서 연구와 심화를 통한 제자훈련 등이 효과 있는 것은 참여와 나눔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학교식 훈시형 목회에서 대화와 토론형의 참여를 통한 목회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제 목회를 마무리하는 선배들의 고민과 소회를 듣고 싶다. 그동안 20년 이상 목회하고 충분한 예우들을  받고 퇴임한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될 수 있다. 정년 70세를 보장받는 것도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65세 조기 은퇴의 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목회자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과 존경이 쇠락하고 있다. 성직자도 직책으로서가 아니라 직무수행에서의 본을 보이지 않는 한 남의 얘기다. 그렇게 되면 위임목사(70세 정년 보장)의 의미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도제형의 수직적 부목사 제도도 이제는 손을 봐야 한다.

미래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을 감지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사람들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의 모습은 무엇일까? 고민을 시작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나 혼자 살고 보자는 식의 목회나 은퇴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설마 나까지 미치랴' 하는 생각은 안 된다. 모두의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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