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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징", 그 의미나 알고 판결하는가?
이 진 기자  |  diakono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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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9  09: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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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징", 그 의미나 알고 판결하는가?

우리교단 총회의 헌법에 제3편 권징편 제2조 [권징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위하여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자의 회개를 촉구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재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고 이 책벌로 인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독려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총회나 노회의 몇몇 재판의 판결들이 과연 이 권징의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알고나 내는 판결인지 의문스럽다.

교단법을 통하여 누군가의 혐의를 주장하고 그 대가를 주문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권징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곱씹으며 자신의 책무를 대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권징(勸懲)이란 “권하여 징계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인데 “회개와 바른 신앙생활을 유도하기 위함”이며 "회개"를 위한 것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권징에는 엄중한 절차와 규정이 있고 판결에는 경중이 있는 것이다. 범한 죄과나 결과의 경중에 대하여 이치적으로 맞는 책벌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책벌을 받는 이들도 기꺼이 순복하게 되고 공교회 치리회들의 권위가 세워지는 것이다. 명목상의 의미라면 몰라도 교회법의 가장 강도 높은 출교(교인명부에서 제명하고 교회 출석을 금지) 판결은 문제가 있다.

이 "면직과 출교"는 일반 조직에서는 직위 해제에 해당하고 나아가 사형에 해당한다고 볼 것인데 교회사적으로도 "출교"란 바티칸이 종교개혁가 루터에게 내린 성직 “파문" 에 해당되는 것이니, "출교"는 사실상 중대 범죄자로 교회 명부에서 제하는 것 이상으로 '지옥에 간다'는 의미로 받아 드리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통 치리회가 이런 최고 강도의 책벌을 하려면 상당한 이단 활동이나 심각한 공교회 파괴 행위 등 죄과가 명백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중범자에게나 내릴 수 있는 책벌이다. 그래서 많은 치리회의 경우 “출교와 책벌”이 총회 헌법에 존재는 해도 사실상 거의 남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우리 총회 내에서 이 “면직과 출교”가 몇 년째 거리낌 없이 남발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헌법의 권징에서 규정하고 있는 '권징의 목적'과 명백히 상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징은 그것을 받는 자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공교회의 질서와 화평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도록 그 책벌에 대하여 당사자는 감사까지는 아니라도 기꺼이 받아드리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도리어 치리회의 결정에 반감을 갖고 저항을 하게 만든다면 이미 그 책벌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 된다.

한 마디로 '양형의 기준'이 없으니 재판의 권위와 권징의 의미가 사사로이 감정적으로 남발되는 일이 발생하고 그로써 도리어 공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해치고 인격을 손상시키고 큰 상처를 주어 새로운 분쟁을 야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예를 들어 열 대를 때려야 하는 벌인데 때려 죽인다면 그게 올바른 판결이나 상식적인 권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몇 년 간 우리에게 보여온 '사법 살인'에 해당하는 과도한 치리 권징에 대하여 실례를 들어 비판하고자 한다.

남해읍교회, 서울교회, 태봉교회의 경우

첫째로 지난 해 남해읍교회 정동호 목사가 은퇴하는 과정에서 교인 일부와 틀어져 노회가 개입하게 된 일이 있었다. 남해읍교회는 공동의회에서 절차에 따라 정동호 목사를 이미 원로 목사로 추대하고 예우를 결정하여 노회에 안건으로 헌의하였는데 이를 노회가 부결시키고 오히려 정 목사의 모든 것을 박탈해 버리는  출교 처분을 내린 일이 있었다.

이분이 30여 년 간 노회나 교회에서 목회한 것에 대한 보답 치고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의견들이다. 부득이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은퇴하면 이미 교회와 노회를 떠나는 것이니 상당 기간 노회나 교회의 출입을 금하는 정도의 주문은 몰라도 그만 두는 사람에 대하여 “출교”는 과했다는 지적이다.

이후 총회 재판국에서 노회의 그런 판결이 모두 무효로 처분 되기도 했지만 이는 예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처럼 말도 안되는 형을 내린 진주남노회가 총회의 무효 판결에 불복하여 다시 사회법에다가 이 문제를 제소를 하였다는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서울교회 설립자이고 은퇴한 이종윤 목사이다. 아무리 교회 분쟁의 배후인이라고 하여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원로인 목사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분쟁의 공모자라는 말을 듣도록 은퇴한 교회의 당회나 공동의회를 주관한 것들은 분명히 절차에 어긋난다.

그러면 그런 회의들을 무효화 하고 권면하여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회의 지도력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서울강남노회는 은퇴한 목사를 출교 처리했는 데 이것이 서울교회를 세운 분에게 가한 과도한 치리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결국은 이 역시 지교회의 평화를 권해야 하는 노회가 서울교회의 분쟁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세 번째는 지난 3월 20일에 서울동남노회 재판국에서 판결한 태봉교회 김수원 목사에 대한 노회의 "면직과 출교” 처분 파문이다. 판결 이유야 이미 알려진 대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김 목사가 '정상적인 노회가 있는 데 노회정상화위원회라는 단체를 노회의 허락없이 조직하고 활동하여 노회의 질서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김수원 목사나 비대위의 활동으로 서울동남노회는 무슨 해악을 어떻게 받았는 지 그 판결 근거를 분명히 명시해줘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총회 재판국에서 그 노회의 분쟁 원인이 된 노회장 선거문제에 대하여 김수원 목사에게 승소 판결로 해소된 것이기에 더 심각하다. 그런 판결이 나지 않았다면 모르나 상회가 판결을 내린 것을 알면서도 노회가 '면직 출교'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양형 기준이 없는 판결, 승복 못해

이런 것은 모두 우리 총회 재판의 '양형 기준'이 없기 때문으로 사사롭게 보복형 결정을 내린다는 소리를 듣는 판결을 남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동남노회 비대위 활동이 과연 노회나 교단에 무슨 해악을 어떻게 주었기에 그 대표자를 면직 출교까지 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외부인들과 연대하여 명성교회의 세습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신임 속에 버젓이 목회하고 있는 위임목사이고 앞으로 노회장을 할 사람을 사형에 처한 것이니 과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총회나 노회의 재판국들은 그 구성이나 양형에 대한 기준이 없이 감정이나 보복형 또는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판결을 거듭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당연히 그런 결과에 쉽게 승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공교회로서의 권위를 그런 재판국들 스스로가 추락시키고 위해를 입히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기 어렵다. 

입장을 한 번 바꿔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노회 내에서 설령 이견이 있고 갈등이 있다고 해서 서로 죽기까지 싸워 무조건 반드시 무너뜨리고 이겨야만 하는 적은 아니다. 우리가 서로 경쟁한다고 해서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상대방이 없어져야 할 존재일 수는 없다. 출교는 심각한 이단성으로 판정을 받은 사유가 아니고는 내릴 수 없는 책벌 아닌가.

명성교회의 세습을 반대했다고 해서 그렇게 한다는 오해를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 될 수 있고 또는 그런다고 해서 명성교회가 행한 세습이 면죄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문제를 푸는 과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결국은 김수원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태봉교회가 저항하고 있고 다른 당회가 재판국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등 서울동남노회의 정상화는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직책 상 남을 판단하고 부득불 책벌해야 하는 재판에 임하는 이들은 총회 헌법에 나타난 권징의 의미를 먼저 심사숙고하여 자신의 임무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가르쳐 권면하고 교훈으로 주기 위한 적절한 양형으로 순복을 이끌어냄으로써 재판국의 권위와 정당성을 스스로 세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니 "재판국의 판결은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분쟁의 시작이다"고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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