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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엘리트라면 멀리 보고 가야김정한, 고민호 목사님에게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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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0  23: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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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엘리트라면 멀리 보고 가야

Power elite 라는 말의 사전의 의미는 ‘한 사회에서 여러 문제에 대하여 의사 결정과 정책 수행 등을 이루어 내는 권력자 집단’ 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북한사회, 미국사회에는 그에 상당하는 중요한 것을 결정하는 상층부의 사람들일 것이다. 

이 말은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 1916~1962)로 텍사스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가 된후 1946년 이래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강의한 교수다.

 그는 학문적으로 당시 미국사회의 이론적 아카데미즘인 프래그머티즘과에 있으며, 듀이의 영향이 크다. 또한 베블런과 거스를 통해 베버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는데, 이런 점에서 사회적 행위 이론의 계승자로 여겨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화이트 칼라』(1951),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1958), 『사회학적 상상력』(1959), 『들으라, 양키들아』(1960),  등이 있다.

‘파워 엘리트’에서 밀즈는 미국에는 4개의 힘이 있는 데 밀리타리 파워, 위민 파워 브랙파워, 스투던트 파워에 대하여 얘기 하고 있다. 지금의 미국은 파워엘리트가 좀 달라졌는 지는 모르지만 어느 시대이고 그 시대의 주류인 파워 엘리트들은 존재하나 이제 그들만의 리그만으로는 안된다. 

한국의 파워엘리트라고 하면 경상도 출신에 일류대학, 유학파, 대기업군, 강남구 거주자일 것이다. 교회로 치면 대형교회를 이룬 보수주의 목회자, 60대로 설교를 잘하고 총회에서 한자리 하는 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주류라고 하여도 그들만의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예와 책임은 반 비례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과거 처럼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특혜를 받는 것이 불가능 하다. 어려워 지는 시대에 낙오자와 소수자들의 친구가 되고 피난처가 되야 한다. 도움이 필요하고 지지가 필요한 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위치다. 특히 파워 엘리트들은 승리자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파워 엘리트는 자신들이 이룩한 것을 유지, 확대하기 위하여 연계되는 학연과 지연, 정치적 친소관계와 미래기대치에 부합하는 하부조직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 자신만으로는 힘을 더 확장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은 주류(메인 스트림)는 아니지만 대를 이어 자라나는 세대들이 자신들을 이어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걸어야 한다. 

교회로 치면 신학교가 그 구룹이다. 현재의 우리교단의 파워 엘리트는 앞으로 5년 이내로 그  정점에 다다른다고 보겠다. 그래서 진짜 파워 엘리트는 자기 다음 세대에 대하여 믿음과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왔던 지내 세기는 가난했지만 기도하고 열심을 내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대는 오지 않는 다. 미래세대는 미래세대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최선을 다하고 ㄱ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낳은 미래를 꿈꾸고 우리의 사고와 한계를 넘어설 기개나 패기 비젼없는 후대라면 희망은 없다. 앞으로의 세태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환경과 조건이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래서 그들이 준비해서 이겨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치 못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있는 일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고 이것들이 경쟁도 하고 연합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다른 것을 공격하고 죽이는 방식의 사고는 안된다.

큰 배움터에서는 폭넓은 학문를 보장해야

지금 장신대에 총장과 교수들을 압박하고 학생들을 마녀사냥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제도와 어른들의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교단의 지침이 아니라 일개 노회의 목사가 주창하는 의견을 갖고 장신대를 압박하고 평신도 단체인 장로들을 이용하여 왜곡된 정보로 총장을 해임하자는 서명을 받는 행위는 위험한 일로 평신도들을 교권정치에 이용하는 나쁜 전례를 만드는 것이다. 

외부인들이 신학교를 압박하고 교수들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모두 적이고 배제되야 한다는 주장은 정말 신앙인이나 지성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캄보디아 킬링핀드 학살이며 중국의 문혁과정에서의 홍위병의 폭력과 같은 맥락으로 위험한 사회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과대 평가와 망상은 안된다. 또 서구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교회에 대한 침투를 막아야 한다면 그것은 당신들만의 책임이나 임무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에 어떻게 대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자신이 만들어논 틀에 사람과 조직을 넣고 피아를 구분없이 공격을 하는 것은 안된다. 한번이라도 진지한 토론과 여론의 수렴도 없이 말이다. 거기다가 공격의 무기로 이단으로 공격을 하자는 말도 나왔다. 그 말이 실행이 안되기를 바란다. 

동성애에 관한한 사실 고만호 목사는 승리자다. 6분 발언으로 총대들을 움직여 법으로 규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파워 엘리트가 된 셈이다.  그후 103회기 총회장의 자문위원이 되었고 동성애대책위원회 위원장도 거머쥐었다.  이제 우리총회를 좌우지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권위(Authority) 는 두 가지인데 직책으로 부터 오는 것과 직급이 없지만 영향력으로 부터 나오는 힘이다. 이 둘은 손을 잡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아래로 부터 직무 수행으로 부터 권위를 부여받지 못하면 결국은 버티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더러운 것은 질나쁜 소재로 남을 공격하는 것이다. 비겁한 소재로 반론하지 못하게 입에 자갈을 물리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은 보수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기 진영을 만드는 식이다. 그런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고  배제하고 추방부터 하자는 것인가? 지금과 같은 행위는 낙인찍기다. 몇 사람의 주관적인 신앙관과 미래에 볼보 잡혀 놀아나는 꼴이다. 이건 과거  냉전시대에 너 빨갱이지에서  이졘 너 동성애 지지자지? 로 십자가 밟기를 강요 것 밖에 안된다.

파워 엘리트라면 멀리보고 가야 

다른 것은 왜 다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공론의 장에서 해소해야지 법으로 규제하고 금하는 것부터 해서는 안된다. 동성문제는 세계적으로 거스릴 수 없는 물결이다. 이것을 장막을 치고 못보게 하고 금하는 것으로는 못 막는 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 우리교단 신학대학들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하여 존폐의 시련에 직면해 있다. 거기다가 이런 문제로 신학교를 흔들면 어떻게 되겠는 가? 교단에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고 비판할 수 없다.  그들에게 연구와 토론의 기회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무조건 반대부터 해야 한다. 거론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식이다. 이게 대학에 요구할 수 있는 말인가? 그것이 왜 그러한가? 라고 상고하였던 베뢰아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은 신사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교회들과 사람들은 이 주제를 어떻게 대하고 결정했는 지를 아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가? 

오늘날 처럼 민주화되고 다양화된 사회에서 자기 종교의 우월만으로는 다른 종교인이나 무종교인들과 공생하기는 힘들다. 적어도 우리가 고백하는 복음은 누구를 공격하고 판단하는 도구로가 아니라 어디서나 녹아지고 스며들어 변화시키는 것이다. 복음은 소독약도 감미료나 조미료가 돼서는 안된다. 

지난 7월 17일에 열렸던 총회 사회문제 대책위(동성애) 세미나와 장로수련회에서 우리 총회의 파워 엘리트로 분류될 수 있는 분들이 “동성애는 공산주의이고 해방신학에 기초하였고 장신대 학생들의 징계를 반대하는 서명을 한 동문들은 동조자" 로 그들은 이단으로 몰고 가야 빠르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참으로 유감천만이며 큰 명예훼손감으로 공개 사과를 하던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자신이 우리총회의 여론의 담지자라면 좀 더 진중하고 지혜롭게 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총회나 교계 일은 자기 목회하듯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돌출적이며 과격한 분들은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우리의 선배들은 법으로나 영적으로 범죄한 교인이라도 자기 손으로의 치리는 피해왔다.  

교인들 좀 모이고 말좀 된다 하면 자기가 뭐든지 마음대로 할 것 같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브레이크가 발명되므로 자동차는 더 높은 속도를 낼 수 있었듯이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위험한데 자기 고객을 많이 태우고 간다면 더 위험하다.

신학대학은 총장과 이사회 교수들에게 맡겨야

동성애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듣고 소통해야 한다.  우리의 복음은 세속주의를  피하고 도망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대결하고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총회의 직영신학교라고 하여도 거기 맡겨놓은 이사회도 있고 어른도 있으니 교직원들을 믿어야지 총장이나 교수들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교수들이 동성애자를 두둔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데도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배우는 일에 전념하는 시기도 지적 호기심도 다 때가 있는 것이다. 학문을 폭넓게 배우고 그것들과 논쟁하고 이겨내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세 수도원식으로 눈을 가리고 금지와 세속에 대한 피안의 교육으로 어떻게 이 세상을 정복할 수가 있겠는 가? 

이제 김정한 목사나 고만호 목사님은 작년 총회에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셨으니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가시면 좋겠다. 신학교에게는 그 만큼 하셨고 임성빈 총장도 20일(금)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응답하셨으니 이 시대의 선생님의 권위와 믿음을 한번 믿어 주시고 맡겨놓는 것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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