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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에 대한 폭력, 이것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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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8  1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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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 이것은 안 된다

이 글은 연세대학교 교목 정종훈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허락받아 올립니다. 모두가 두려워 피하는 주제에 대하여 신학자로 목회자로 지성인으로 말씀해주셔 감사합니다. 정 목사는 연세대와 장신대를 마치고 독일의 Goettingen 학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부친과 동생도 우리교단의 목회자들이다. 

교계에서 유명세가 있는 어느 목사의 “동성애 합법화, 이건 안 됩니다”라는 페이스북의 글이 회자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호응을 얻는다는 말에 줄을 그어가며 진지하게 읽어 보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자 적어본다. 그의 글을 언뜻 읽으면 많은 것을 다각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동성애와 관련한 핵심을 요약하면, 동성애는 성적 타락의 죄이고 비정상이니, 정상이 아닌 동성애자를 정상인 이성애자가 되도록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동성애자를 품고 구원받아야 할 자로 여겨야 하지만, 동성애를 합법화하면 동성애의 죄를 빌미로 해서 인간의 무한한 죄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성경을 예시하면서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니 동성애는 죄다”라고 단언한다. 물론 구약성경에는 동성애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돌에 맞아 죽어야 할 더 많은 죄의 항목은 이성애자들이 범하는 성적인 죄들임을 그는 간과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편적인 진리로 믿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에 의해서 시대상황이 반영된 한계를 인정하고 문자적인 해석은 절제했어야 하는데, 그는 동성애에 한해서는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듯싶다. 그렇다면 그는 이 시대에 허용되지 않는 성경의 일부다처제나 형수취수제,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먹는 각종 음식 관련한 율법규정 등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한편으로 그는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은 예수께서 돌로 치려던 무리가 물러나고 여인만 남았을 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했다. 그러나 간음한 여인의 죄는 동성애자로서 범한 죄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애자로서 범한 죄였다. 더욱이 그는 동성애에 대해서 항문성교를 운운하면서 동성애를 매우 추악한 이미지로 만들고 있는데, 그 대목에서는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에 대한 고려는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이처럼 그는 간음한 여인이 잡혀온 현장과 관련해서는 여인보다 문제가 더 컸을 통간한 남자의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그가 운운하는 동성애자의 자리에서는 여성 동성애자를 무시함으로써 마치 여성을 이중으로 억압하고 차별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금 한국교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성애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고, 동성애자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인 것은 맞지만,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죄인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차별해야 하는, 조금이라도 호의를 베풀면 안 되는 죄인의 괴수처럼 취급하고 있다. 교계에서 조금은 포용적인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동성애는 분명 죄라는 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죄인은 사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인데, 한국교회의 상황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해서 이 정도 논리를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조차도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도발적으로 묻고 싶다. 동성애가 죄인가? 예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 이웃은 이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아버지로서 딸만 사랑하지 않고, 아들도 자식으로서 동일하게 사랑한다. 나는 교수로서 여학생들만 사랑하지 않고, 남학생들도 제자로서 동일하게 사랑한다. 나는 목사로서 여성 교우들만 사랑하지 않고, 남성 교우들도 성도로서 동일하게 사랑한다. 예수의 사랑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개의치 않고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사랑이라면, 동성에 대한 사랑, 동성애를 왜 죄라고 함부로 단언하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성애자들이 이성과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할 사람은 없다. 성적인 욕망을 성적인 행위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이 동성을 상대로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성애자들은 성적인 욕망이 본능적인 것이라서 해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반면에, 동성애자들은 성적인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본능에 대한 억압이 아닌가? 동성애자의 존재는 성적인 타락이 극대화된 특정한 어느 시대에 갑작스레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함께 언제나 존재해 왔던 현상이다. 다만 다수의 이성애자들 중심의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소수라서 인정받지를 못했을 뿐이다.

오늘 우리는 선천적 장애자나 후천적 장애자에 대해서 장애가 죄의 결과라느니,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느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장애자가 죄인이나 비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취급당하던 시대가 있지 않았던가? 오늘 우리는 여성에 대해서 남성보다 열등하다느니, 집에서 살림하면서 남자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느니 말하지 않는다. 그

러나 남성 가부장의 권위 아래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채로 입 다물고서 살아야 했던 시대가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제는 생물학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형성된 동성애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 동성애적 욕망에 근거한 사랑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성적인 타락의 측면은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 주변의 이성애자라 하더라도, 이성에 대해서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서 해소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직 사랑하는 이성으로만, 그것도 대게는 결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로만 한정한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라고 하더라도, 동성이기만 하면 무조건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성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성관계를 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동성애자의 성관계는 난잡하다고 편견을 갖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 보통의 사랑은 성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해야 할 이유가 성립한다.

하지만 성적인 관계를 가지려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사랑하는 상대나 배우자로 제한해야 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법적이다. 성적인 관계를 하는 당사자들 사이에는 신뢰를 금가게 하는 그 누구도 끼어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적인 관계를 이야기할 때는 동성과의 성관계냐, 이성과의 성관계냐를 묻기보다는 사랑에 기반한 책임적인 성관계냐, 사랑이 없는 무책임한 성관계냐의 여부가 보다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성애자다. 혹시 어느 동성애자가 나를 성적인 파트너로 삼고자 한다면,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성추행의 모멸감을 느낄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를 집요하게 자신의 성적인 상대로 삼으려는 동성애자가 있다면, 나는 성추행이나 성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다. 그(녀)에게 이성애자를 성적인 파트너로 삼으라고 하면, 그것은 내가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될 수 있다. 모든 종교에서 황금률은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나아가 내가 상대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방식 그대로 먼저 상대를 대접하라고 보다 적극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이성애자로서 나의 이성애성을 동성애자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나는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동성애자를 일방적으로 정죄하거나 판단하기보다 동성애자의 동성애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역지사지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제 말을 맺으려고 한다. 누군가가 동성애자를 포용한다고 말하면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거나, 이성애자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은 포용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는 어디까지나 동성에 대해서 성적인 욕망을 갖는 존재인데, 그것을 부정하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존재의 부정이야말로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크고 더 강한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교회가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고, 교회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는 일들조차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그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관대하면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할 동성애의 문제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최대의 위협처럼 과대포장하려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고 안타깝다.

최근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연대를 표명했던 장신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이 동성애를 지지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로서의 동성애자들을 품자고 했던 것인데, 그들까지 징계했다고 하면, 앞으로 장신대학교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의 약자 우선의 정신을 어떻게 가르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모든 인간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귀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때문에 차별을 당해도 좋은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을 선봉에 서서 반대하는 아이러니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어, 누구라도 사랑하고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누구와도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게 하옵소서!

Chong-Hun Jeong, Dr. theol.
Chaplain Professor of Christian Ethics
United Graduate School of Theology
Yonsei University

E-Mail : chjeong59@yonsei.ac.kr
죽은 물고기는 물의 흐름대로 흘러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의 흐름을 역류하여 헤엄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진리 안에서 자유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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