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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망교회 이택한 목사 설교오병이어 이야기 / 요 6:1-15
이택한 목사  |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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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8  15: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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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망교회 이택한 목사 설교 

이택한 목사(그리스도 소망의 교회)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2026145251&lst=100002565091407%3A100002026145251%3A1532758679(페이스북)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저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가끔 마술 쇼를 보면 빈 상자에서 비둘기, 토끼, 강아지, 뱀 등이 계속해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보면서도 그것이 눈속임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마술이라도 자연의 물리 법칙을 떠나서는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우리가 매달 한 두 번 하는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그대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물론 저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사건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시도들이 쭉 있어왔습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해석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독일 신학자 파울루스(1761-1851)의 해석입니다. 그는 오병이어 기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시 군중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도시락을 미리 준비해 왔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온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사람들과 나눠 먹기를 꺼렸다. 그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소년을 설득해서 그가 가져온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게 하자, 군중들도 이를 따랐다. 그 결과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병이어 사건은 기적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 만들어낸 윤리적 미담입니다. 이 때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 몫을 움켜쥐지 말고 이웃과 함께 나누자는 이웃사랑의 촉구이지요. 좋은 해석이긴 한데, 결정적으로 본문의 맥락과 맞지 않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이 단지 이런 윤리적 미담이라면, 14절에서 이를 굳이 ‘표적’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표적이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특별한 기적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부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까지 총 7개의 표적이 나오지요. 오병이어 사건을 포함해서 그 중에 기적이 아닌 표적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이 모든 표적을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모두 나오는 유일한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만큼 이 사건을 특별한 기적 사건으로 기억했다는 것이지요. 한편 14절에서 오병이어 표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즉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고백합니다. 15절에서는 아예 그들의 왕을 삼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이웃 사랑의 윤리적 모범을 발견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체험한 놀라운 오병이어 기적을 날마다 일상 속에서 경험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의 힘겨운 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해결될 테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이해하기 어렵긴 해도, 오병이어 사건을 기적이 아닌 다른 어떤 사건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병이어 사건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100%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현장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예수님의 기적을 100% 믿었던 사람들이 몰려오자,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피해 홀로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15절,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결국 우리가 오병이어 사건을 기적이 아닌 이웃사랑과 같은 어떤 윤리적 교훈을 가르치는 합리적 이야기, 또는 기록된 그대로 문자적,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오병이어 사건에서, 윤리적 교훈이나 역사적 사실과는 또 다른 측면의 신앙적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9절에 나오는 한 아이의 헌신입니다. 오병이어는 원래 그 아이의 것이었지요, 그것이 예수님께 드려지지 않았다면 그냥 오병이어 그대로 있었겠지만, 그 아이가 예수님께 드렸을 때, 비로소 오병이어가 ‘오천 병 이천 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 나라 기적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병이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보다 우리의 헌신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헌신하자!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내가 가진 것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런 주장들이 나올 법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자칫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한낱 인간의 헌신이 만들어 낸 인간의 행위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한 아이의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조차 하나님 나라의 표적으로 사용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경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애매한 헌신을 마치 신앙의 표준인 양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문의 뉘앙스는 어린 아이가 가져온 오병이어가 위대한 헌신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부스러기와 같음을 말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하나님의 나라의 표적이 그 아이의 헌신이 아니었으면, 전혀 나타나지 못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에서도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 사건이 윤리적 미담을 넘어서고, 단순한 역사적 사실 이상이며, 종교적 헌신과도 다른 차원에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읽을 때마다 궁금해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찍이 사탄이 40일간 굶주리신 예수님을 유혹할 때 사용했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는 단지 굶주린 예수님 혼자만을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기적을 통해 일거에 해결하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명기 8장 3절 말씀으로 사탄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왜 지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돌을 떡으로 만드는 기적이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나,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날 정치적 용어로 말하면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는 파퓰리즘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셨고, 우려했던바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몰려오자, 그 자리를 피하고 산으로 사실상 도주하신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사건은 역설적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 사건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3...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이스라엘이 옛날 모세 시절, 40년간 광야훈련을 받은 것은, 단지 만나를 배불리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군중들이 과거 조상들의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기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 2의 출애굽, 새로운 구원의 때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은 옛날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한 날이지요. 또한 예수님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쳤던 것처럼, 3절에서는 산에 올라가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무엇보다 옛날 이스라엘이,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아무런 먹거리도 구할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하나님이 날마다 내려주신 기적의 만나를 먹고 살았던 것처럼, 지금 예수님은 아무런 식재료도 구입할 수 없는 빈들에서, 단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군중들은 당연히 옛날 출애굽 사건을 회상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메시야의 때에 만나의 기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고, 마침내 예수님을 신명기 18장 18절이 예언한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로 고백합니다. 14절,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하지만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과거 모세시절 유월절 출애굽 사건을 회상한 군중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보다 떡으로만 살기를 더 원했습니다. 그러기에 2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신이 우리 임금이 되면,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인 힘겨운 먹고 사는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형편이 바로 보잘 것 없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만 명이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광야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도 살기 힘들고, 그들에게 임금을 주는 자영업자, 중소기업도 살기 어렵고, 집 없는 사람은 물론, 집 한 채 가진 사람도 죽겠다고 다들 난리입니다. 구직자는 ‘지옥’,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전쟁터’에 있다지요? (객관적 지표가 있음에도, 주관적으로는 다 오병이어 신세!).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우리가 오병이어로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남은 부스러기를 모아보면 12바구니에 가득 차서, 마음만 먹으면 곳곳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구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우리가 어떻게 더 맛있고 더 배부르게 먹을 것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즉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예수님의 오병이어 이야기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곧 참된 구원의 때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마침내 이 땅에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모세 시절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구원의 모형이라면, 제 2의 출애굽을 선포한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은 구원의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오병이어 그 자체를 위해 한평생 힘쓰기보다, 오병이어를 통해 우리에게 참 생명 주시는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이나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 심지어 제자들도 실족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힘겨운 광야에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부디 오병이어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의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018. 7/29, 성령강림주일 후 열 번째 주일, 그소망교회 이택환 목사 교회력 설교)
요 6:1-15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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