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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성대히 열려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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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4  21: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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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성대히 열려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4.3 평화공원에서 지난 4월 3일 오전 9시부터 있엇다. 작년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불참하고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등 여야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제주도는 이번 추념식을 위해 원희룡 지사를 위원장으로 각계각층 342명이 참여하는 '4.3희생자 봉행위원회'를 구성했고 추념식 전날인 2일 오후6시부터 제주시청 정문 앞에서는 ‘제주민예총’ 주최로 전야제가 개최되었다. 이는 4.3희생자에 대한 도내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고 추념식을 홍보하기 위한 대형아치를 도처에 설치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봉화를 올리며 시작된 군경과 토벌대의 주민학살은 장장 7년동안 이뤄졌다. 당시 인구 1/10 인 3만명이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정식재판도 없이 기록도 없이 지식인으로 불온사상을 갖은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이 일어났던 것이다. 제주도는 해방후 일본에서 공부한 지식인들이 대거 입국하였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것이 당시 이승만정권의 미운털이 박혔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날행사는 사전 제 종교단체의 추묘예식에 이어 퍼포먼스에 이어 도올 김용옥 선생의 '4.3 평화선언' 낭독과 각도를 대표하는 이들과 유아인 배우의 낭송이 있었다. 이후 원희용도지사와 이낙연 총리의 추모사에 이어 증언과 광주와 전국에서 온 합창단과 안치환 씨와 공연이 이어졌다.
   
 
제주 4.3이 지난 역사속에서 ‘공산폭동’ 으로 불리워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망자의 슬픔보다 더한 고통으로 침묵으로 일관한 세월이 더 가혹했다. 대부분이 고향을 등지거나 알아도 모른 체 입조심을 하고 살아온지 지난 60년이었다. 그러나 이 ‘폭동’이 ‘사건’ 으로 그리고 다시 ‘운동’ 이나 ‘항쟁’ 으로 불리울 날은 언제인가?

함께한 순례단중 한분은 지금 와서 보니 제주도의 4월 초순은 벗꽃과 유채꽃의 만개로 온 섬이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것을 보는 데 이렇게 좋은 봄날에 동족이 동족에게 피의 학살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며 웬지 이 섬이 낮설과 쓸쓸했던 분위기를 이제야 할 것 같다는 고백을 하였다. 이 아름다운 날에 꽃처럼 진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애틋함이 가슴을 져미는 것 같다.     
   
 
4.3에 대한 역사적 전환점의 단초는 김대중대통령이  1987년 처음 정치적 공론화를 시작했다. 집권후 4.3특별법을 제정하였고 그후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그 문을 열었고 최초로 4.3 아픔의 현장 제주를 방문하게 된다. 모두다 민주정부에서 이뤄졌던 일이다. 그리고 2018년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이 4.3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서울 광화문에서 추념행사를 하게 되므로 4.3의 명예회복·진상규명의 단초를 열게 된다.
   
 
(4.3과 기독교)http://www.vop.co.kr/A00001393878.html?fbclid=IwAR054KQYT6a_XyLKe1_qSrI4OZqYrG4jGJL-PfgDG4oZEB8zoslGZea3-9I  
   
 
정향신 학생의 할머니 사연에 눈물바다

이날 추모행사를 울음바다로 만든 희생자 가족인 김연옥 할머니(78)가 자신의 기구했던 4.3 경험담을 발표한 손녀 정향신 씨의 낭독에서다. 안덕면 동광리가 고향인 일곱살이던 아이가 일흔 여덟.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고 아픔의 이야기는 손녀 정향신 씨를 통하여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요.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무엇보다 할머니가 생선을 드시지 않는 이유를 전할 때는 자신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남은 4.3희생자 유족들이 4.3 트라우마로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인데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할머니는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을 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 여덟살. 이후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희생자 가족들의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향신 씨는 할머니를 향해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 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해요" (http://www.jejusori.net/?editcode=MAIN_9&vodidx=6419, (학생의 증언 영상)
   
                      * ‘현의합장묘’ 에 NCCK가 세운 기념석과 동백나무 앞에서
4.3 추모제에 종교계도 참석

72주년 추모행사에는 NCCK총무 이홍정 목사와 김형주 목사를 비롯하여 제주와 순천등에서도 참석하였다. 천주교에서는 강우일 주교와 교황청 대사도 참석했고 불교계에서도 다수가 참석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 지선 스님과 부위원장 000 목사도 참석했다. 한편 일본 오사카의 유족회를 대표하여 오광현 상과 한라산모임이라는 일본인들도 참석했다.

이후 이홍정 목사와 개신교 참석자들은 김인주 목사의 인도로 북촌마을과 의귀마을 의 '헌의합장묘' 참배했다. 이곳은 군인들에 의하여 주민 80여명이 학살되 터를 옮긴 곳으로 1983년 ‘의로운 넋들이 함께 뭍혔다’ 고 하여 ‘현의합장묘’ 라고 명명하였는데 2018년 4월 3일에 NCCK가 위령비와 기념식수를 한 곳이다.

이외 ‘승령이 골’ 이라는 곳은 의귀초등학교에 주둔한 부대를 공격하러온 무장대가 역습을 당하여 51명의 사상자를 낸 곳으로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체 흙만 덮혀 방치되었다가 현재의 장소로 이전 되여 추모지가 된 곳이다. 여기도 작년에 NCCK가 기념석과 식수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4.3 기념사업회는 NCCK가 4.3 역사 바로세우기에 적극협력하고 함께 하는 것에 대하여 큰 감사와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하여 올해 UN에 기념사업회가 초대받아 4.3에 대한 증언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기념사업회을 위하여 NCCK가 노정선 박사를 추천하여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이외에도 너무승이, 무등이왓마을 학살터와 한림의 만뱅듸묘역등을 참배했다.
   
                                        * 모슬포 군비행장 인근의 섯알오름 추모지
4.3의 남은 과제
현재 국회에는 4.3 특별법에 3개가 게류중이라고 한다. 이것들에 대해서도 국가는 국가폭력으로 인정하고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날 이낙연 총리는 추념사에서 제주도 도민이 그만이라고 할 때 까지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바 있어 도민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 듯하다.

그러나 당시 진압자의 위치에 있었던 경찰이나 군인들의 후예들은 불만이 여전한 것 같다. 그중에 대정교회 목사였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건 이도종 목사에 대한 순교비가 이미 제주노회에서 건립하였음에도 지난 2013년에 건립된 점이다. 여전히 도내에는 4. 3과 관련하여 이견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제 4.3의 역사는 뒤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서울 정부청사에 걸린 4.3 현수막과 경찰청장과 군수뇌부의 공식 사과는 역사상 처음 나온 일로 국가공권력의 과잉과 남용으로 앞으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아픔의 역사라는 것을 대내외에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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