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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당 토론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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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9  13: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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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정당 토론회’ 유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교수)

지난 2016년 9월 14일 오후 2시부터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라는 대토론회에 대타(代打)로 참석했다. 토론은 찬성 측에서 전광훈 목사와 김충립 박사, 반대 측에서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필자가 참석했고,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이억주 목사가 사회를 맡았다.

이 날 토론은 사회자의 불공정성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가운데 전광훈 목사의 자기 신상 해명 발언과 김충립 박사의 자기 저서 선전이 편파성 시비에 한몫을 더 했다. ‘토론 주제’라는 것이 당일 그 장소에서 필자에게 전달되어진 것도 납득하기 어렵거니와 찬성 측에서는 ‘토론 주제’에 대한 참고 자료까지 만들어 와 배포했다. 이는 주최 측과 찬성 측에서 교감이 있었다는 증거다. 토론 주제 10가지 중 첫 번째가 ‘왜 기독교 정당이 필요한가’라고 한것부터가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다소 중립적인 토론회 주제보다는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에 가 있었다. 둘째부터 열 번째 토론 제목에 이르기까지는 아예 기독교 정당이 필요하다는 전제 위에서 주어진 제목들이었다. 이날 필자가 사회자와 주최 측을 불공정하다고 공격한 것도 바로 이런 의제 설정의 불공정과도 관련이 있다.

전 목사와 김 박사는 기독교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몇 가지로 설명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슬람교는 아랍 국가들의 국교이기 때문에 아예 정치가 필요없을 정도이며, 불교는 속세를 떠나도록 되어 있어서 정치와는 관계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구약의 말씀과 “이웃을 사랑하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 세상을 변화시켜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타종교와는 달리 정치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유럽에는 기독교당이 세상 정치의 주역”이고, 미국도 청교도들이 기독교 국가를 세워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정치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공산주의국가가 되지 않았던 것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현실 여건상 기독교 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기독교인 1,200만을 대표하는 사람을 국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현재 국회의원의 40%가 기독교인이기는 하나” 이들은 기독교를 대변하지 못하므로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국회의원 4~5명을 국회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 정당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들이 내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고 다음 선거 결과 다시금 노무현 정권과 같은 친북, 좌경 정권이 들어설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들은 “그렇게 되면 기독교의 존재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우익, 보수를 표방하는 기독교 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아마도 그들이 내세운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하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전 목사는 전교조 교사 중 ‘반미주의’를 고취하는 교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반감을 나타냈고, ‘반미주의’를 설명하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해 3.1절 경축사에서 이 땅에 들어온 미군을 ‘침략군’이라고 말했다면서 열을 올렸다.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반박했어야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해방 직후 미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스스로를 ‘점령군’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고 노 대통령도 이를 받아 ‘점령군’이라고 표현한 적은 있지만, ‘침략군’이라고 부른 적은 없다. 기독교 정당을 주장하는 이들은 결국 앞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친북 좌경 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익 보수 정권인 기독교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공격함으로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정교분리의 미몽에서 깨어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기독교는 정말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의 기독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사회적․정치적 사명을 다 해야 공신력을 회복하게 되고 젊은 세대가 교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교회와 국가가 동반 성장,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기독교 정당의 정당성을 엉뚱하게 선교와 연결시킨다. 글쎄, 기독교 정당이 나와 정치적 사명을 다 하면 젊은 세대가 교회에 돌아오게 될까? 여기서 그들이 왜 기독교 정당을 하려는지에 대한 노골적인 의도가 보인다. 이런 주장은 자칫 이슬람 모양으로 아예 ‘정교(政敎) 합일’을 주장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독교 정당 찬성론자들이 토론회장을 자기변명의 장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전 목사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빤스 발언’을 작심하고 해명하는 듯했다. 비판 측에서 이 말을 꺼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변명했다. 어느 인터넷 신문기자가 잘못 전한 것이라고 전제한 후, 그 기사에 대해서 30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자신이 경고한 후에도 계속 댓글을 다는 8만여 개에 대해서는 일일이 형사고발하여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가 30만 개의 댓글을 찾아낸 것도 대단하지만 8만여 명을 찾아서 일일이 형사고발하겠다는 주장은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몇 년 동안 매일 검찰과 법원을 들락거려야 할 것이다. 그는 ‘빤스 발언’을 들었다는 교역자 100여 명이 하등의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험구가는 그 말에 그 100여 명의 목회자가 더 이상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은 전 목사가 그 뒤에도 여성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그런 발언을 목회자가 입에 담았다는 것이 놀랍다. 

그날 토론에서 비판적 입장에 있던 송평인 위원과 나는 대개 다음과 같은 요지로서 기독교 정당에 대한 반대 의견을 말했다. 우선 기독교인이 자연인 신분에서 기독교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당 활동을 하겠다는 데 대해서는 시비할 생각이 없지만, 그 정치 활동에 ‘기독교’라는 이름을 노골적으로 붙이는 것은 반대했다.(이 말에 대해서 전 목사는 참고하겠다고 했다.)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한자인데 따라서 ‘기독당’은 ‘그리스도당’이다. 그리스도를 내세워 노골적으로 정치적 권력까지 잡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취했던 방식일까.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런 데에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현재 영적 세계에 대한 책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비난과 비판을 혹독하게 받고 있는 기독교가 세속적인 권력까지 잡겠다는 것이 과연 기독교적인가? 정치 활동을 통해 기독교를 노골화하는 것은 오히려 선교의 문도 닫아버리는 것이다. 특히 ‘기독당’ 하겠다고 설치고 있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 다분히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로 내세운 것은 때와 준비가 문제라고 했다. 왜 하필 총선과 대선이 있는 때를 노리고 다시 기독당 운운하는가, 이런 현상이 전에 두 번 이상 나타났던 것을 감안하면, 심하게 말해서 때가 되면 일어나는 일종의 ‘발작 증세’ 비슷하다. 기독당을 하겠다는 분들이 평소에 어떤 준비를 해 왔는지 묻고 싶다. 기독당이라면 기독교적 이념과 철학 위에서 정치적인 경륜을 정강해야 한다. 기독교의 사랑과 희생과 봉사와 소외된 자 구제 등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정치 이념으로 다듬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런 것도 전혀 없이 기독당을 하겠다면 선거용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다. 누가 그 진심을 모르겠는가. 결국 기독당은 1인 2표제의 선거법에 편승하여 몇 사람의 국회의원을 만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복음주의권에서 장차 정치 활동을 목표로 공의정치포럼을 한다든지, 지방자치단체 진출을 목표로 희망정치시민연합활동을 한다든지 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기독교’라는 간판을 달지 않고 기독교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적 훈련을 쌓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4~5년에 한 번씩 주기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기독당’ 행태는 오히려 건전하게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적 이념에 입각한 정치운동의 가능성을 뭉개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셋째 기독당 하겠다는 이들이 과연 그동안 한국 기독교의 중의(衆意)를 모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또 기독교적 대표성을 갖고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이런 운동을 하는 이들이 과연 도덕적‧윤리적으로 신뢰성을 주고 있으며,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고 일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는가. 한때 기독교 정당을 하겠다고 나선 이들 중에는 과거 정교분리를 빌미로 기독교의 예언자적 사명마저 포기했던 소위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부를 비판해야 할 때에는 용기가 없어 정교분리를 내세워 그 뒤에 숨었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일수록 정부를 지지․찬양․고무할 때에는 스스로 내세웠던 정교분리라는 틀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를 지지하고 박수하면서 아부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예언자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정부와 사회를 비판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을 향해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판했지만, 정작 자기들은 정부 여당을 대놓고 지지했고 나아가 3선 개헌까지 지지했다. 이렇게 위장된 정교분리론자들과 그 아류에 속하는 이들이 지금에 와서는 정교분리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기독당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이들을 어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이 염치없는 일에 나서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정직하게 기독교의 예언자적 사명부터 회복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한 뒤에 기독교적 이념에 입각하여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정도라고 본다.

 기독교 정당을 주장하는 분들이 자기 교회에서 제대로 민주적 지도자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거론된 면면을 보면 대부분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으로 교우들에게 군림하고 있었던 이들이다. 그의 주장대로 ‘빤스 발언’ 및 그와 유사한 발언이 교인들에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다면 그것은 더 문제다. 거룩을 전제로 한 성도의 모임에서 그런 저속한 언어들이 여과 없이 통용되고 있다면, 더 이상 성도의 모임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말대로 돈독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교회에서는 그런 몰상식하고 저속한 발언을 목회자가 입에 담아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런 분위기는 곧 목회자가 안하무인격으로 교인들에게 군림하고 있는 상황을 웅변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그런 분들이 과연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공의와 사랑의 지도자로서 구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기독교 목회자들이 정치운동에 참여하려면, 자신이 세금을 내고 안 내고에 관계없이, 목회자로서 세금에 대한 시민적 본분에 확고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내고 있다”는 것으로 종교인의 납세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 가운데 납세의 의무를 감당하는 이들이 없진 않지만, 그들에게 목회자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독교 정당을 하는 이들은 자기들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으로 변명해 버리고 그 입장 밝히는 것을 회피한다. 그러면서 목회자들이 대부분 면세점 이하의 처우를 받고 있다는 점만 강조한다. 기독교회의 이름으로 정치하려면 이제 국가로부터 받았던 각종 세제의 특혜를 포기해야 한다. 교회의 세제 혜택은 정교분리라는 전제 하에 받는 것이다. 기독교가 정당운동을 함으로써 정교분리의 문턱을 허물어 버리면 이제 교회도 일반 영리단체처럼 회계 처리에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것까지 각오하고 기독교 정당 운운하는지 묻고 싶다. 종래 모양으로 각종 세금과 회계 처리에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혜택까지 누리면서 교회가 정치운동을 자유롭게 하겠다면 그것은 기독교회가 또 다른 특권을 누리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독당을 하려는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으로 인해 한국교회(교역자 포함)가 국가의 세금 부과와 회계감사의 대상이 되어도 좋다는 뜻인지 그 문제부터 대답해야 한다. 기독당운동은 결국 정부와 시민사회에 대해 이런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넷째 흔히 말하는 다종교사회론이다. 기독당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치 활동을 하게 된다면 한국 사회의 다른 종교와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서울시가 무상급식문제로 주민투표를 한다고 했을 때 한나라당은 대형교회의 지원을 받겠다고 했고, 대형교회 또한 한나라당의 정책에 찬동하도록 격려했다. 이런 일을 통해서도 기독교는 보수 우익을 지지함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한국은 다종교가 공존함에 비교적 좋은 모범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앞으로 기독당의 출범은 이런 종교 간의 안정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는 이슬람의 스쿠크 법안을 반대하고 나섰는데 그 전에 우리가 유의할 것이 있다. 이슬람이 그런 제의를 하기 전에 기독교는 그 많은 재원으로 왜 이슬람의 스쿠크법을 능가하는 사회 구제 법안을 제안하거나 만들지 못했는가? 기독교계에서 스쿠크법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반대하는 것인가. 우리는 기독당이 그런 것을 반대하면서 거기에 대한 학술회의나 공청회 같은 것을 개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다른 종교에서 하니까 곤란하다는 식의 자세는 성숙한 종교계나 시민사회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아직 기독당이 출범하지 않았는데도 기독교가 이렇게 분열과 갈등을 유발, 조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정당으로 탄생하게 되면 갈등을 더 부추길 것으로 본다. 

다섯째 이 점은 송평인 논설위원이 강력하게 주장한 바로, 한국의 헌법이 엄격히 정교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20조 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했다. 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교회(교단)가 교회(교단)의 이름으로 정당을 조직하거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정교분리를 명시했기 때문에, 목회자가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재산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을 때에 그 교회 재산에 대해서 세금이 부과되었던 적이 있다. 실정법인 헌법의 정교분리 조항을 개정한 후에 기독당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정교분리에 대해 의견 개진이 있었다. 필자는 정교분리란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가 종교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나온 이론이라고 했다. 여기서 교회의 정치 관여란 교단 혹은 개교회적으로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 정당을 찬성하는 분들과 필자 사이에 정교분리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다. 정교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교회 혹은 교단도 다른 정치 단체와 같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교회(교단)이름으로 직접 정당,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나, 국가 정책에 대한 교단(교회)의 비판은 가능하며 기독교인 개개인도 정당 활동 등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교회가 성경의 진리와 기독교적인 정의에 따라 예언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현실 정치의 모순과 비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하고 대안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은 정교분리의 틀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기독교당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의견에 대해서, 전 목사는 4년 전에 45만표를 얻었다는 것을 들며 정당성을 옹호했다. 나아가 그 때 5만표만 더 있었다면 국회 진출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새 선거법이 1인2표제를 도입함으로 지역구에 한 사람의 의원을 내지 못하더라도 정당 투표에 의해 국회의원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술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말하자면 기독당은 정당투표제라는 선거법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등장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목사는 4년 전에 한나라당의 간청에 의해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45만의 지지표가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 목사는 또 목회자 다수가 기독당 창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그 사례로 김홍도 목사의 금란교회에 1만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여 기독당을 지지했다는 것을 들었다. 필자는 그의 발언에 대해서 열왕기상 22장의 아합의 예를 들어서 반박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아합왕과 여호사밧왕이 길르앗 라못을 치려고 했다. 여호사밧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했을 때 그 때 부름을 받은 선지자 4백 명은 올라가 치라고 아부하면서 승리를 예언했다. 다만 한 사람 미가야만이 승리를 예언하지 않았다. 천상에서 하나님이 아합을 전선으로 내몰아 죽게 할 것을 의논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어 그 거짓말하는 선지자들로 하여금 아합을 독려하여 전장으로 내몰도록 하겠다고 했다. 1만 명 아니라 더 많은 목회자가 찬성한다 하더라도 거짓 영에 홀려 기독당을 지지한다면 그 많은 숫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독당 찬성 관계자는 세계에 기독교를 내세운 정당이 85개나 된다고 하면서 기독교 정당 창당을 정당화하려 했다. 백종국 교수의 ‘한국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라는 논문에 의하면, 기독교의 정치 참여 방법으로 특정한 정파와 연계시키지 않는 영미식과 정당을 결성하여 기독교적 일체성을 유지하려는 대륙식이 있는데, 같은 대륙식이라 하더라도 매우 진보적인 정책을 수용하여 사회 통합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독일식과 군사독재와 연계되어 특정한 계층을 대변하는 남미식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기독은 사회정의와 복지를 구현하려는 독일식보다는 극우 세력과 관련되어 있는 남미식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그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기 힘들다. 

한국의 기독당은 ‘친북 좌경 세력을 척결하여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려는 등 극우파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기독교가 대결 상황을 극대화하여 분열과 쟁투로 이끌어 가는 종교여야 하는가, 화해와 용서를 추구하면서 평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종교인가. 대결을 증폭시키고 원수 갚는 일에 앞장서는 일은 굳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실현하기에 노력하는 종교이다. 가령 그런 이상이 실현하기 힘들더라도 그 말씀과 이상을 끝까지 파수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노력하는 종교이다. 그걸 내버리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악은 악으로 갚겠다는 것을 실현려는 정당이라면 기독교 정당이란 이름으로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정당들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굳이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정당마저 거기에 동참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 목회자 그룹이 언급한 바와 같이, 기독교정당운동을 하려는 뿌리는 “과거 군사 독재정권 시절, 앞에서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불의한 권력을 비호하고, 뒤로는 야합하며 이권을 챙겨왔던” 교회 정치꾼들이었다. 이들은 민주화와 1인2표제의 선거제도 채택과 수백만의 기독교 신자들의 수를 믿고 기독교 정당을 당하여 정치권에 진출하려고 한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자신의 부패와 타락을 감추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때문에 사회로부터는 기독교가 나라걱정일랑 접어두고 교회 걱정이나 하라는 비아냥을 듣게 만들었다. 

기독교 정당 추진론자들은 한국에서 수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는 기독교가 수적 우세만큼 세력화하여 한국 정치에 관여하여 정치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회 변혁은 수와 힘을 믿고 세력화하는 것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데에 있지 않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죽은 자 같고 힘없는 자 같이 됨으로 오히려 승리할 수 있다. 거대한 군사 집단인 로마를 변화시킨 것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예수를 따르는 소수의 힘없는 무리였다. 한국 기독교가 심사숙고하면서 지향해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독당 문제로 기독교 선교에도 큰 장애가 올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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