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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그러나 김동호 목사 만큼 만 하자
유재무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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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25  19: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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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 아닌가?

  이 글은 두개의  내용이다.  그중 첫째는 년초에 김동호 목사가  자기 식대로 페이스 북에서 "나꼼수" 을 비판한 것을 비판하는 것에 김목사를 변호하려고 써 논 글이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가 중간에 논쟁을 그만 두워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주간 페이스북에서 김동호 목사가 다시 메가톤급의 선언  "나는 은퇴, 원로 안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에 대하여는 좀 이견이 있다.  그 분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 글들은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내용이 얼핏 보기에는 자기 포기선언이며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논쟁을 예상하는 것이지만 그 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감히 그 분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용서를 구하며 독자들의 알권리는 위하여 쓴다.  

   
 

그러나 김동호 목사 만큼 만 하자

김동호목사는 목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시는 분이다. 매사에 교만할 정도로 자신 있고 당당하다. 그러니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수 있는 내용도 소신있게 서슴치 않고 발언한다. 그런 자심감은 뚜렸한 신앙관과 주체성에 남이 이루지 못한 분야에 도전하여 성공한 자신감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사적이시고 사고의 폭도 개방적이며 진보하는 분이다. 그러니 때론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모두로 부터 정체불명으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분의 의식과 사고는 무엇으로 분류될까? 하지만 어느 진영도 아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하여 진보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누가 되였던지 김목사의 글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한다. 그 분은 느리던 더디던 자기의 방식과 스타일 대로 진보하는 목사라는 것이다.

영락교회 부목사는 엘리트 코스

 내가 김목사의 이름을 공식으로 본 것은 1983년경 영락교회 부목사로 재직시 기독공보에 쓴 칼럼이다. 그때 그 글을 본 소감과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 영락교회의 목사가 그래 겨우 이 수준인가? 보다는 교단지까지는 그런 정치성향의 기사가 올라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언론은 그래도 진보에 대해서도 그렇고 보수에 대해서도 그렇게 놀아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산업선교와 진보세력에 대하여 공세적인 오제도 검사, 나학진 교수가 모두 영락교회 교인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당시 구테타로 집권한 신군부의 전두환 장군의 최대 정적인 학생운동의 폭력성에 관한 비판 글이다.

그렇다고 내가 학생들의 폭력을 옹호 하거나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후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부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 감옥에 갔으며 엄청난 벌금을 추징당했거나 미납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를 옹오한 사람들의 고해성사는 없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얼마전 지구촌 교회를 은퇴하는 이동원 목사외에도 여러분들이 독재의 시대에 희생당한 분들에게 죄송하고 침묵하고 무임승차 한 것을 회개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데도 김동호 목사를 비롯하여 우리 교단내에서는 누구도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치만 당시 야당은 물론 언론과 지성, 기독교 마져도 이 불의한 정권을 축복하던 판이며(한경직 목사 주도로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 열림)그러니 사실상 학생운동외에는 감히 누구도 신 군부의 폭력성을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이 없었다는 면에서 당시 언론과 사회의 여론 주도층에서 당시 학생운동을 재갈물리려고 과격하고 불법적이며 폭력적으로 좌경 용공(북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을 할 때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대다수 대형교회의 정서였을 것이다. 당시 집권층과 교회에서는 고마운 글이고 칭찮받을 글이지만 적어도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건 아니였다.

 내용이 그 분의 수준과 정서를 솔찍하게 표현한 것인지 정치적으로 썼는지는 잘모른다. 당시 언론들중 그런 류의 글을 쓴 분들이 후에 국회의원이 되였고 공무원이라면 진급들을 했고 대기업의 간부들은 출세를 하였다. 아마 목사로써 그런 글을 섰다면 사상적 검증을 피하고 좋은 예우를 받았을 것이고 다른 곳으로도 소개되여 부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지 몰라도 김목사는 같은 노회의 승동교회에 부임하였다가 어려움을 겪자 얼마나 영락이 사랑하고 아꼈는지 88년에 다시 영락교회의 협동목사로 불러  복귀한다.

당시 영락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아이콘이였다. 90년 이후에는 많은 대형교회들이 생겨났지만 영락교회는 장로교회의 보수적이며 안정적인 한국 기독교를 상징하는 곳이였다. 구성원들도 당시 우리사회 주류들로 상층부였다. 그들의 사랑과 후광을 입으시고 안정된 생활을 하시다가 그후 강북의 중견교회에 부임한다. 그러나 공채로 가지는 못했다. 그때만 해도 영락교회의 부목사 출신이면 이북노회가 아니라 어디 교회라도 못갈 곳이 없었다. 영락교회 부목사 출신 하면 모든 것이 검증된 보증수표와 같다고 보면 된다. 

동안교회와 높은 뜻 숭의교회의 성공목회 

동안교회 역시 동서울 지역의 주변부로 아직은 개발의 덕을 입지 못한 곳이였지만 나름 안정된 교회였다. 그러나 그 분의 고백처럼 지역교회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자기 주관을 가지고 숫자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성공신화를 이루신 분이다. 교회의 관성에 눈치보고 적응하고 생존형 누리형 목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트랜드로 새로운 세대를 맞을 준비를 했고 높은 뜻을 이루셨다.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흉을 보는 게 아니다. 인정하던 안하든 김목사는 그때의 의식과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분은 많은 글과 말에서 자신의 목회관과 목회철학을 솔찍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말로만 하는 개혁이니 민주니 하는 것을 나름대로 자기의 목회여정에서 이뤄가셨다. 이전의 선배들과는 물론이고 동년배의 목회자들과 후배들도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일들을 이룬 분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진화했고 성공한 목회자다.

 2004년 경인가 김목사는 자기 사례비가 년봉 1억이라고 매우 솔찍하게 밝혔고 자기용도 자기 것과 사모 것으로 2대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 자기 나이 또래에 성공한 CEO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열심히 사역하고 형편이 되는 교회에서 받은 것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말한 단 하나의 목사이다. 논란이 되자 연구위원회를 두워 그 규정대로 원래 받던 것에서 삭감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만약 진짜로 그렇게 했다면 정말 대단한 분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하고 제대로 받자” 는 분이다. 지금도 대형교회 담임들이 자기 지급내역을 분산해서 증액하고 부목들을 2년 이상 안두는 이유도 인건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 전통은 영락교회에서 시작되였다.              http://pessi.tistory.com/9168

 이렇게 자신감으로 목회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 또 “청부론” 에 대하여도 그렇고 자신의 목회철학이나 가치를 공적으로 발언하고 또 비판받고 논쟁하는 몇안되는 목사이다. 그런 면에서 김목사는 열려있는 분이고 건강한 목사이다. 전에 자칭 타칭 설교 잘한다는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설교를 뉴죠에서 공개적으로 박종호선생이 까댔다. 자기 교회에서 완전 은혜받고 난리 부르스인데 정수리 부터 까이니까 억울하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억울하다는 전 목사에게 박종호 선생은 전 목사 설교나 되니 분석을 하던지 비판을 하지 다른 것은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에 약간의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언젠가 높은 뜻 숭의교회 홈피에 올린 교회재정 보고서는 스캔하여 통채로 올린 것을 보았다. 내용 구성은 차제하고 보통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회와 작당하여 상회비 적게 내려고 이중보고서를 쓰지 않나 대형교회들이 주로 그렇다. 그러나 그분은 정직하게 목회하고 정직하게 내는 분이다.  교회 분립도 개인적 욕심을 내자면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한 분이다. 후배들에게 사역의 기회를 널리 열어준 분이다. 김 목사를 비판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다 감안해서 해야 할 것이다.

섣부르게 건드린 나꼼수 문제

 얼마전 페이스북에서의 “나꼼수” 현상에 대하여 일면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면에 대하여 페이스 북에 비판적으로 올린 글로 인하여 비판받고 있다. 눈치 빠른 김 목사가 페북친구 반은 떨어질 각오로 한다고 했으니 작심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비판 내용은 좀 시시한 내용이다. 그것은 내용은 좋은 데 욕설이나 속어를 사용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욕은 나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욕설과 속어에 더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난 어찌되였건 그분의 도전과 패기에 먼져 점수를 주고 싶다. 그 나이에 그렇게 솔찍하게 그런 주제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소신 있는 말하는 목사가 몇이나 되나? 그의 인식과 수준, 내용 보다 먼져 평가받아야 할일이다.           http://mahlerian.org/519

 그리고 김목사는 자기에 대한 주장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 누구나 자기의 생각이 있듯이 그 분은 그분의 정서와 생각을 조심스럽게 친구들과 나꼼수의 거스린 점을 비판하고 아쉬움을 표현해본 것이다. 내가 볼 때도 "나꼼수" 가 우리 사회에 질식할 수밖에 없는 기성언론의 보도에 식상한 세대들에게 기여한 점은 있지만 반드시 그런 방법으로 해야 옳은 것이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분은 뉴죠에서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나 꼼수가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 라고 그분은 더 욕을 먹어야 할 분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중 한 가지를 했다면 몰라도 그것이 교회라면 사실 심각한 상태라고 본다.

   
 

 이 시대의 최고 화두인 나꼼수가 뭔지도 모르고(컴맹) 그러니 아무생각(무뇌)도 없는 분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과 관심은 본받아야 할 일이다.

 김목사는 눈팅만 하는 분이 아니다(인터넷에서 글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거나 비평할 능력이 없음) 비판을 받던 말든 자기 생각을 표현한 풍토는 격려 되야 한다. 그후 몇꼭지의 글을 주고 받다가 체력과 체력과 지력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후퇴했다고 하는 데 약간은 위축 된듯 하지만 겸허하고 진지하게 자기성찰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그 논쟁을 통하여 새로운 배움이 있었다고 하는 것도 권위적인 성직자들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러나 나꼼수도 비판 받아야 한다. 

 김목사가 나꼼수에 대해 비판 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리고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모두가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자기 식으로 되야 정상은 아니다. 어떤 논의가 되였든 열린 광장으로 나와 모든 이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에 나는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고 본다.

 김목사가 나꼼수에 대한 비판을 다시 비판하는 것도 자유이다. 사실  비판을 금하는 사회는 독재와 광기의 시대다. 그러나 그 분은 비판만 하고 반대만 하는 분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지 발언과 참여도 그 분의 정서와 수준으로 볼때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옥에 티는  “나는 입으로 하고 당신은 몸으로 한다” 라는 식의 논리는 말장난이다. 그런 논리로는 백번 깨지게 되어있다. 그렇게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과학적인 지식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거수 일투족 그분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고 바라본다는 것도 사실 문제다.

 또 김목사는 교권에 목메고 살지도 않는 다. 노회장, 총대, 총회 부서 이런거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자기 일을 하는 분이다. 김목사 보다 어리고 목회내용도 안되는 이들이 뭔가 해보려고 동부서주 하는 것을 보면 우습다. 그런면에서 나는 김목사가 건강하고 정직하게 자기 식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감사하게 지켜보고 있다.

공론의 장에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 

 더 많은 목회자들이 사회공론의 장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무슨 말이든 좀 하도록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왜 그것에 열광하는지를 보고 읽고 비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김목사의 페북 논쟁과 소통은 먼져 칭찮받고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그의 소신있는 태도를 좋게 보고 좀더 성장하게 한후 까야 한다.

 몰론 김목사의 발언을 비판하는 부류도 여러 가지인 것 같다. 사회과학적인 인식의 틀이든 내심은 기대치와 바램을 가지고 하든 그분이 한국교회를 위하여 더 성장하고 진화하고 기여하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그분 말고도 설교 잘하고 유명하고 많이 배운 분들 있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비평하지 않는다. 논평이 없다는 것은 개무시 당하는 거다.

 비판받고 옹색한 변명을 해도 김목사는 멋있는 사람이고 이 시대에 소중한 자산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그 분이 지금 처럼 진화했듯이 앞으로도 기대를 가진다. 그렇게 되면 그의 진보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교회적이고 공적인 유산이 될 것이다.

 교세 자랑이나 하고 제왕적인 군림목회, 교권에 줄 대고 지역과 학연에 메몰 되고 높은 사람 앞에서는 설설기고 아랫사람에게는 군림하는 분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분이다. 그런 면에서 김목사는 이제 개인이 아니다. 그는 시대에 따라서 끊임없이 향상되고 진화된 분으로 희망 없고 소통없는 목회자들중의 보배이며 한줄기 빛이다.

이전의 목회자들과 동시대의 목회자들과 근복적으로 목자상

 맹목적의 교회성장과 철학 없는 목회자들에 비하면 보배이다. 복음전도라는 명목으로 엉터리 설교를 하지도 않고 생활비는 지교회서 받고 나돌아 다니는 싸구려 부흥사에 비하면 백배 낳다. 세속정치와 교계 정치판에 기웃대고, 자기목회 자기교회를 소중하고 진지하게 돌보는 평범한 목회자가 많치 않은 이 때에 많은 목회자들이 본받을 분이다.

 그런 김목사가 몇일전 페북을 통하여 “65세에 은퇴하겠다. 은퇴시 무리한 요구 하지 않겠다. 원로목사 하지 않겠다. 은퇴 후 교회재정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 열심히 나누며 줄이며 살겠다” 라고 밝힌 것이 기사화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발언에 대하여 좀 비판적으로 보려고 한다 지난 번에 김목사가 나꼼수에 대하여 한 발언에 대하여는 옹호적인 입장으로 윗 글을 썼지만 다음의 내용은 비판적으로 썼다.  그러나 기본은 김동호 목사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참 좋은 분이시고 멋있는 분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개인의 결단과 인심으로 하는 문제는 아니다. 이것에 관한한 우리교단의 법이 있다. 개인의 판단과 양보에 의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법과 제도에 맞게 하면 된다. 그래야 누구도 예외가 없게 되고 구조와 시스템에 의하여 움직여야 안정되게 운영될 수가 있다. 그래야 모두가 승복할 수가 있다. 모든 법은 우연하게 생기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관계하면서 이해가 상충하는 것들을 정리한 것으로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그래서 시대가 가거나 환경이 변하면 바꾸워 나가는 것이다. 지금의 제도가 낡은 것이면 바뀌여야 할것이지만 .....

한목사는 한 교회만 목회 하도록 

현재 우리교단의 헌법은 목사가 허락받은 교회의 목회지 이외에 다른  곳의 목회지에서 목회를 허락하지 않고 있으며 유급 이중직을 금하고 있고  반드시 노회의 허락을 받게 되여 있다. 다시 말해서  두개의 교회에서는 목회하지 못한다. 그곳은 당연히 다른 목회자가 파송받아 독립적인 목회를 하여야 한다. 이 법의 제정 정신에서 선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개인의 능력도 한계가  있지만 목회는 여러 동역자들과 나누워서 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새로운 도시나 인근 지역의 발전에 눈독을 드리고 기존에 성장한 지역의 교회들이 자기 지역 주민들과 이룬 부흥과 성장의 열매들을 그리로 빼돌려서 이전을 한다. 

자기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킨 지역과 자리에서 책임있는 봉사와 헌신을 하기 보다 새로운 신 시가지에 토지나 건물을 구입하여 확장 이전을 계획하다가 이전을 하기도 하고 아예 두 곳을 운영하는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 이렇게 두개 이상의 교회을 운영하는 것이 능력이고 그 교회에 소속한 교인들에게 이익이고 이 복일 까? 짐일 까? 두 개의 교회를 섬기는 교인들은 이중 고역을 당하고 이중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교인들은 동네 북이며 행사 동원대상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시작된 이 지 성전 개념은 처음에는 위성예배를 드리다가 지금은 기하성의 여의도 총회로 구성이 되였다. 그 교회들은 헌금만 걷어서 본부로 올리고 지역교회로써의 나눔과 소통은 아무 것도 없다.  온누리 교회의 양재성전과 소위 캠퍼스형 교회라는 것도 그것이다. 초기에는 그곳에 투자해 주지만 결국은 모 교회의 브랜치다. 그 교회의 교인들은 바쁘고 먹기 살기 어려운 판에도 자기가 섬기는 교회외에도 그 지교회의 행사나 자리를 체우는 일에 동원되야 한다.  

그런면에서는 다일 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가 처음 개척하여 세운 청량리의 다일교회는 이후 교문리로 이주하였고 최목사는 얼마전 교회를 은퇴(사임)했지만 설곡산의 영성 공동체를 하고 개교회에 대한 부담을 덜고 더 바쁜 사역을 한다. 외국에 가 다일을 수출해서 다일공동체 혹은 "밥퍼사역"을 하고 있다. 성탄절에는 대대적인 기업 모급을 위한 청량리 길거리 예배로 유명한다. 노숙자들의 처지는 안중에 없고 모금을 위해서는 길바닥에 않혀놓고 서울시장과 힘있는 기업가들을 단에 세운다. 그런면에서 능력도 있고 돈도 있지만 그런 일은 하지 않는 소망이나 명성은 이런 비판에서 제외된다.  그들이 생각이 없고 할줄 몰라서 지역이 없어서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동호 목사가 숭의학원을 빌려서 시작한 높은 뜻 숭의교회가 숭의학원에서 더 이상 있기가 어려워서 이주를 하려고 했고 오라는 곳도 있었지만 획기적인 분립을 결정하게 된다. 사실 이것도 엄청한 일이다. 모으려고 하는 게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속성인데 나눈다는 것은 역시 김동호목사만의 역발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4개의 교회로 분립을 하였다. 그러나 이 교회들을 독립한 것은 아니다. 창립의 정신과 의미를 유지하기 위하여 높은 뜻 연합선교회를 세운 것도 이해는 간다. 그리고 이 선교회의 대표를 김동호 목사가 하는 것도 뭐랄고 할 사람이 없다. 그리고 이 교회들은 지역을 달리하지만 그가 소속한 평북노회(이북노회는 경계가 없다)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http://www.godswill.or.kr/index.php?mid=intro_1

 그런데 분립된 교회가 다른 이름과 담임목사를 세우고 행정적으로 독립을 했지만 그들은 노회나 상회보다. 높은 뜻 선교회에 더 강한 유니티를 갖고 있다. 본부 격인 높은 뜻 선교회, 광성, 정의, 푸른, 하늘, 씨앗이 되여, 동경 오차노미즈교회 까지 7개의 지교회로 구성되여 있는 데 이는 노회의 시찰급이지만 예산이나 규모는 아마 노회급일 것이다. 그 교회들이 센타 운영비로 재정도 내고 있다. 지 교회에 장로들이 있는 곳도 있지만 아직은 어느 교회도 독립된 위임목사로 칭빙된 곳은 없다. 다만 정의교회가 이번 가을노회에 위임식을 준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 이 교회들의 목사들은 전도목사이다. 부목사도 전도목사이다. 정식 당회장으로 시무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 현행법에는 부목사는 위임목사만 둘 수 있고 안수청원도 그렇다. 그래서 그 산하의 교회에선  안수을 받거나 청빙을 받으려면 실제로 시무하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청빙을 할수가 없어서  전도목사로 한다. 이런 것들이 평북노회의 내규와 맞는 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장로교회 일반의 조직원리로 볼때 어디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직이다.  여기서 김동호 목사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한번 묻고 싶다. 

교회는 교회법을 준수해야

 교회가 성장하면 항존직자를 세우고 나아가 당회원을 세우고 당회를 만들고 위임목사를 두는 것은 노회구성을 위한 기본 요건이다. 그것이 변화된 조건들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현행 법은 그렇다. 교회들은 독립된 당회를 만들고 책임있는 개 교회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 그 자리에 높은 뜻 연합선교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평북노회 노회록을 보면 김동호목사는 기관목사 이다. 기관목사의 우리 교단이나 노회와 관련이 있는 기관으로 청빙은 기관의 이사회에서 결의 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김동호 목사가 기관목사인 것은 매우 정직한 일이다. 그래서 기관목사와 전도목사는 노회 국내선교부가 청빙하여 설교를 할수는 있지만 개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로는 청빙받을 수 없다. 기관목사는 기관으로 전도목사사는 전도지에,  개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는 오직 임시목사나 위임목사 부목사로만 청빙하도록 되여 있다.  

그렇기에 한 교회의 위임목사였던 김동호 목사는 그 교회가 폐지되거나 분화되는 순간 위임은 폐지된 것이다. 노회의 위임은 한 당회가 한 교회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는 은퇴목사도 공로목사도 사실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저의는 한국 교회가 고질적인 은퇴자와 후임자의 갈등(통합과 합동의 광성교회 소망교회 그외 은퇴자들의 과다한 요구로 인한 교회의 불신, 은퇴후에도 교회에 민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며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강조점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김동호 스타일을 좋아하고 그분에게 거는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서이다.   

 알려지기는 김동호 목사는 초기에는 분립된 지 교회에 한주씩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강사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높은 뜻 숭의 교회가 분립을 하면서 그 중의 한 교회를 맡아서 담임을 했더라면 위임목사로써의 직위는 유지 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체와 동시에 그는 개 교회를 시무하는 담임목사로써의 직분은 사실상 사임을 한 것아닌 가? 그러나 그런일로 그가 잃은 것도 있지만 사실 얻은 것도 많다. 그에게 시간은 더 많아졌고 당임목사로써의 책임은 면제되였다. 그래서 해외도 그렇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간다. 말하자면 이제 교회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는 일생 마지막으로 천안에서 개척을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것도 시무지가 없거나 생존형의 개척이 아닌 자신의 이름과 높은 뜻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도전을 한 것이다. 사실은 주일 설교한번 하는 것으로 그친 것으로 안다. 물론 지역에서는 반대 여론도 있었고 비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개척된 교회를 목회한다는 말은 없다. 사실 담임목사라는 것은 무척힘든 것이다. 교회의 대소를 무론하고 무한 책임을 지는 면에서 그렇다. 같은 목사라도 담임이 아닌 사람들은 교회의 행정과 상회로 부터의 의무, 심방과 전도 애경사와 예식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그런지 김동호 목사가 최근에 페북에 올리는 내용은 평범한 목회자로 현장에서의 일상적인 삶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사건의 이야기들이 아니라  옛날에 있던 얘기들 재탕 삼탕하거나 주석이나 해석을 달거나 하는 일과 사회적 발언이나 은퇴와 관련된 큰 담론을 다루고 있다. 

새로운 지평을 연 목회행태

 그러나 김동호 목사는 이런 발언들인 교회 개혁의 아이템이나 사회적 이슈 제기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높은 뜻 숭의교회와 그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분야에서 실제로는 대기업 회장식 경영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 대로 하나님의 높은 뜻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교단의 법과 상식에 기초한 직제와 운영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목사는 교회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하여 위임목사가 되기 위하여 당회원들을 세우고 위임목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회의 설립요건을 체우고(당회 15처 이상이 되야 노회 구성) 는 기초가 되도록 완전당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합법적이지만 헌금을 경상비로 쓰지 않고 아끼거나 목적 헌금으로 자산을 만들어서 청어람과 열매은행등 남이 하지 못한 일을 많이 이룬 목회자 이지만 지금 와서 본인이 은퇴 원로 안하다고 운운하는 문제는 다른 목회자에게 어떻게 들릴까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이것들 보다 교단의 법을 잘지키면서 정년까지 하는 것이 조기 퇴직이나 원로 안하는 다는 것 보다 더 후배들이나 한국교회에 더 크게 기여하고 남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조용히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얼마전 분당 우리교회의 이찬수 목사가 낮설교에서 10년후 교회 해체 선언을 던져서 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찬반이 있었지만 대형교회 목회장의 고뇌라고도 보지만 배부른 소리라는 말도 있다. 자신의 교회에 대한 교인 집중화 쏠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우리는 작은 노력이 중요하지 이대로 한 10년 그대로 가고 자기가 은퇴 할때 쯤 되는 시기에 분화 분립 해체라는 것은 선전에 불과한 것이고 신종 마켓팅이다. 왜 유명한 사람들은 말들을 앞세울까?

김동호 목사가 영락교회을 사랑한다면 고 한경직 목사님의 청빈 사상과 실천을 본받아야 한다. 김동호 목사는 높은 뜻 숭의교회를 분산하는 동시에 사실상 은퇴목사가 된 것이나 다름 없고 원로목사도 날라간 것이다. 그게 교회법상 가능한 일인지는 그가 소속한 평북노회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북노회로 부터 허락받고 시작한  높은 뜻 숭의 교회는 해소되거나 분화되였고 지금의 지교회들은 각기 다른 시찰에 소속되였지만 높은 뜻 연합선교회의 내규에 의해서 이중적인 지휘를 받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원로목사가 되려면 한 교회에 20년 이상을 시무하고 그 시무가 성실하게 되였다고 판단할 교회의 결론( 공동의회에서) 에서 결의되고 또 한 노회에서도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러면 평북노회의 어느 교회에서 김목 사가 그런 요건을 충조시키고 원로가 될지 궁금하다. 높은 뜻 연합선교회인가? 김목사는 분화하면서 이미 그런 교회의 직제와 제도 명예는 다 버린 분인데 지금 그런 말을 하니 이상하다는 것이다. .

실제적으로는 이미 은퇴했고 시무교회는 없는 무임목사다.

 65세 은퇴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 그것은 개인들의 자유의사이다. 여건이 되는 분은 하면 되는 것이고 못하는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비난 할일도 아니다. 당장 은퇴를 하면 여러 가지 문제도 있는 분도 있다. 그러나 김동호목사는 지금 은퇴를 하여도 아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많은 도서를 발간하여 인세도 있고 높은 뜻의 법인 대표이기도 하다. 평범한 목회자가 아니면서도 마치 평범한 목회를 하고 앞으로 있을 명예와 이익을 포기 하는 듯한 발언으로 폼 좀 잡으려는 것은 비슷한 년령대와 동역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65세 은퇴를 기정사실로 하고 교회창립의 규정에 넣았던 갈릴리교회의 인명진 목사도 65세가 지났지만 아직은 은퇴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사정들은 있다 후임자가 마땅 잖다던지 해결할 것이 있다 던지 그러면 조용히 살면 된다. 자기는 다 준비하고 65세 은퇴을 강조하거나 자랑하는 것은 사실 코메디다. 

 다음은 김동호 목사의 글이다.

“은퇴할 때 목회자가 노후에 어려움이 없도록 신경을 써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목회자가 지나친 요구를 할 때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며 “저보다 앞서서 모범을 보여주신 좋은 선배들을 따라 미리 약속부터 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 교인들은 목사를 직업인보다는 어떤 특별하고도 성스러운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에 평범한 대중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들 생각한다”며 “대개 하나는 주의 종이니 잘 섬겨야 한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주의 종은 청빈해야 하니 잘해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둘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 중에는 일반 직업인들과 비교도 안 되는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지만, 직업이 아니라는 걸 핑계삼아 일반 직업인들의 상식을 넘어선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저는 목회자들이 더 잘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직업인의 상식만 갖춰도 교회가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의 종을 잘 섬겨야 한다고 교인들은 세상에서 받지도 못하는 이런저런 혜택을 과하게 베푸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며 “아무리 잘해도 세상에서 잘 대우받는 직업인 이상을 넘어서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은퇴한 후에도 계속해서 원로니 은퇴니 하며 교회 일에 계속 관여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은퇴 후 교인 노릇을 하는 것은 모르나 어떤 모양으로든 목사 노릇을 하는 것은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좋은 일이 아니다”며 “교회 재정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손을 대지 않아야 하고, 교회는 은퇴목사로부터, 은퇴목사는 교회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또 “원로목사가 되면 죽을 때까지 월급을 받으면서도 퇴직금은 퇴직금대로 받는데, 객관적 기준 없이 지나치게 받는 경우가 있고 10억, 20억 단위의 퇴직금이나 아파트까지 받았다는 이야기가 요즘은 가끔, 아니 자주 들린다”며 “너무나 큰 빵가루가 교회에 있기 때문에 교회가 나빠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저도 은퇴 후 노후를 챙겨(?)야 할 때가 됐고, 누구 못지 않게 잘 챙길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면서 “정당하고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우는 받고 싶으나, 위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 대우는 절대로 이 꼭 깨물고, 눈 꼭 감고 사양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염치 없는 목사는 되고 싶지 않고, 염치 있는 목사가 되고 싶다”며 “이 글은 누구를 비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제 은퇴를 몇년 앞둔 저 자신에게 올무를 놓는 심정으로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호목사는 한 목사가 할수 없는 일을 이룬 분이고 모든 목회자들이 본받을 만한 내용이 많이 있지만 따라해서는 안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의 사역이나 발언이 더 이상 미화되거나 개인의 선심으로 자기만 좋은 사람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이제 김동호 목사는 개인이 아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개혁의 아이콘이다. 그의 영향력과 공적직무와 기대 때문에 그렇다. 

 모든 사람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언론의 본연 사명이다.  그래서 김동호 목사의 이 발언에 대하여는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소통을 하며 진화하는 분으로 후배들이 본 받고 배워야 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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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125.XXX.XXX.58)
김동호 목사는 자가당착에 빠진 율법적 바리새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자기 율법적 잣대로 난도질을 하고 있다. 그 정도의 위치 그 정도의 명성이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미 양지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자신은 완전 예수님과 같은 성자로 변신하여 많은 사람을 비판하는 바리새인이 되어 있는데..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2017-03-18 17: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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