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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 이대로 좋은가?(1)비젼트립 문제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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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5  15: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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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선교 이대로 좋은가(1)

위키백과에 보면 '선교' 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선교사(宣敎師, missionary)는 기독교에서는 복음을 타국에서 가서 전하는 사역자이다. 넓은 의미로 여러 종교들에 속한 사람이 소속된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사람을 말한다" 라고 되어 있다.

충분한 설명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은 해외에 나간 사람만이 아니라 내국에서도 선교사라는 직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사용하는 ‘선교사’ 라는 표현은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는 사람들로 한정해서 말하려고 한다.

개신교에서 공식적으로 선교사라고 한다면 공인된 교단에서 정한 룰에 따라서 선발되고 훈련을 받고 파송받은 선교사로 교단의 정책과 지침을 따르는 선교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선교단체나 자원하여 나가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논외로 한다.

우리교단 파송 선교사는 목회자들이 중심이고 대게는 현지 교단과 협력하여 하는 선교사도 있고 하는 일도 다양하지만 불가피하게 선교가 불법이거나 정치체제가 다른 곳도 있어 공식화된 것만을 산교로 말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예을 들어 선교권 조성을 위한 조사활동이나 언어훈련 적응훈련도 모두 선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현지 교회협력이나 교단, 기관사역도 있고 초창기에는 적응을 위하여 그냥 섞여서 사는 것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선교사 중요하다. 의욕에 넘쳐 무언가를 하려는 선교보다는 배우는 자세가 우선 이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최근에는 비거주 선교사제도라는 것도 있어 은퇴한 분들이 경험을 살려 역할을 하는 분들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해당 지역에 교회나 기관을 세우거나 현지 교회를 돕거나 선교지 개발을 위한 복지와 구제 구호같은 것도 모두 선교사들의 중요한 사역이다. 그외 전문인 선교사 혹은 평신도 선교사들의 역할도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목회자 위주의 선교가 다양화되기도 하고 현지요청과 경비 절감등의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송기관이 어디냐?

선교단체 파송 선교사의 경우는 결론적으로 자신도 현지도 아닌 파송단체의 이익이나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사역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교단이나 교회 단체 파송 선교사들의 사명이나 사역의 결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평신도 선교사들이 느는 것은 전문인이라는 점과 목회자에 비하여 자비량이거나 경비가 적게 든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교회 개척에서 성경 번역이나 출판, 의료, 복지, 개발등으로 선교의 내용도 다변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평신도들 중에 은퇴후 전문영역을 개발하여 현지에서 다른 지원없이 노후를 봉사하면서 보내는 분들도 없잖아 있다. 이것은 정말로 귀한 일이다.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파송이나 후원은 없지만 더 크고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읗 보안다.

한국 개신교 선교사는 세계 최대

한국 개신교의 선교사는 1979년에는 79명에 불과했던 개신교 선교사가 1994년에는 3,272명으로 늘어난 이후, 2005년에는 14,086명, 2010년에는 22,014명으로 급성장하였다. 2010년도 선교사 현황에 의하면 이 중 교단 소속 선교사는 9,825명,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는 12,860명으로 선교단체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최근 교단 소속 선교사가 증가하고 이중 파송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향후 선교단체의 우위가 증가할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최다 파송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순으로 나타났으며, 선교단체별로는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국제기아대책기구, 국제대학선교협의회, 인터콥, 예수전도단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 선교사의 고백에 의하면 “저는 선교 사업이 저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사업이라는 것을 배워야 했어요” 라는 고백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선교사들은 자신이 일한다고 생각한다. MIssio dei(하나님의 선교) 라는 개념이 나온지 오래지만 선교는 기본적으로 개인화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선교사로 헌신한다면 목회자라는 일반 헌신에 하나의 서약을 더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파송을 할 때 이런 서약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고 모든 것은 선교사 본인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예가 헐씬 많다. 따라서 자신이 사는 나라와 지역의 사정 지리 관계에 대하여 배우고 고도의 경건과 훈련을 멈추면 안된다. 

선교사가 아무데나 깃발꼽고 사역지라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청빙기관이 있어야 하기도 하고 현인도 그렇고 선배 사역자들과 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원칙은 내가 맘에 들고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배치도 필요하지만 선교사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지 억지는 반작용만 난다. 
   
 
비젼트립 약인가 독인가?

이런 논의는 추후에 더 하기로 이번 글에서는 비젼트립(단기선교)이라고 불리우는 유행처럼 번져가는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한국 사화와 교회가 부유하게 되고 유행처럼 선교를 하면서 지방의 교회도 그렇고 규모가 있는 교회는 안가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단기선교를 위해 사용되는 비용에 대한 것은 조사되고 밝혀진바 없지만 엄청난 비용이 사용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단기선교에 대하 부정적인면으로 비판보다는 극복해야할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기슬하려고 한다.

단기선교에 대한 효율적인 방식과 어떻게 하면 잘 갈 것 인가?에 대한 ‘보내는 방법론’으로의 연구나 분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내는 방법론’ 이 문제가 아니라 선교사 현장에서 ‘맞이하는 방법론’ 에 대한 연구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단기선교의 대한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이 교회에 주신 지상 명령을 현장에서 체험한면서 선교를 이해하고 전 지구적인 하나님의 사역의 관심으로 신앙의 폭을 넓히며 감사와 헌신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현장은 다르다.

아무리 기획을 한다고 하여도 해외라면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그런 조건들을 이해하고 철저하게 현지에서의 요구와 상황에 탄력적으로 수용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치 않고 짜여진 스케줄대로만 요구한다면 이는 맞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기선교는 겸손함으로 일관해야 한다. 해외 여행과는 좀 다른 컨셉으로 접근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하나 같이 선그라스 쓰고 영어티나 입은 관광복장은 이질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세심한 지도자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가자 개인이 이 단기선교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목표를 설정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져 이 나라 저 나라 가봤다는 정복형 선교여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 나라 지역이라고 제대로 알게 세심하게 준비하고 연구하고 가도록 해야 한다.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방문하는 선교지가 소속한 교회나 단체에서 단독 후원지거나 안면이 있는 거부 선교사가 있는 곳과 가이드형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 남의 필드를 방문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배려와 접근이 달라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좀 여유로운 곳과 조심스러운 곳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숫적이고 재정적인 여력으로 인하여 가난한 나라에 대한 우월감은 금물이다. 그런 가치는 세속적인 것이지 그들 현실에 대하여 불행해 하지 않음에도 너무 측은히 여기거나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그들이 더 행복하고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지에서 가이드를 하는 분의 인도을 우선으로 하여 궁금한 질문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그들을 당화하게 하는 것 보다 우회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식과 관점에서 보고 왜 안되는 지, 못하는 지는 물어 볼 말이 아니다.

현장은 당신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선교 현장에서 한번도 선교팀을 만난적이 없는 곳도 있고 처음으로 만나는 곳도 있지만 특정한 곳은 자주 보여주는 현장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은 단기선교 지도자들이 알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외부인에 대하여 갖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보여줘야 할 것도 있고 동원된다는 느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예의가 필요한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입장을 한번 바꾸워서 생각해보면 현장에 누군가 온다. 반갑고 설레는 일이다. 기대도 있고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들은 지도자들에 의하여 오는 이들의 수준과 기대에 대하여 준비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 지만 사실 자연스럽지는 않다는 말이다. 인솔자는 이에 대한 세심한 준비와 마음이 필요하다.  

현지인들이 외부인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불쌍하고 어려운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까?  그들의 요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잘사는 나라에서 누군가가 온다면 기대가 있다. 따라서 그런 기대에 부합보다는 가서 기도하고 손잡고 율동하고 사진이나 찍고 오는 선교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은 누군가가 방문해주기를 원한다. 그런 기회를 통하여 선교적 열매를 맺게 되고 후원자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사의 기대와 선교현장의 기대는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점을 배려하지 않는 비젼트립은 그만하고 그 돈으로 선교사를 돕던지 현지를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어떤 선교인지 정확히 공개해야

선교현장은 그 선교사가 거주하는 사역지와 비거주 사역지인가 많이 다르다. 선교사가 자기 현장을 갖고 지역과 사람들과 긴밀하게 호흡하는 사역을 하는 선교사와 방문형 선교사와는 완전히 다르고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드러난 활동을 하는 선교만 선교는 아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자기들의 사역의 열매나 현장을 다 공개하거나 보여주지는 않는 다. 어느 선교사는 일체 단기 선교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하게 왔다가 마음이나 들뜨게 하고 가는 일을 한두번 아니 년중 행사처럼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해 본다면 답이 나온다.

여전히 많은 선교사들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고 있다. 그러나 공개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필드다. 그러나 몇몇 선교사들은 사역현장이 없음에도 남의 현장을 휘져으며 마치 자신의 영역을 자랑하고  홍보하고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현지 선교회나 동료들로부터 질시를 받는 일이 되고 갈등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은 자기의 사역만이 최고이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기져에는 모든 선교들 가운데 자신은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고 이런 작은 것들이  모아져 하나님의 선교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는 겸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의 논쟁과 갈등은 필요하다.

우리나라 선교역사에도 보면 평양의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평양의 신학교육에 중심을 두자는 이들이었고 경성의 선교사들은 교육이나 의료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방의 어떤 이들은 학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사유화가 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다 잘된 일이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선교사들 끼리는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선교지에서 더 아름답게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우선순위와 신학적인 논쟁이나 갈등은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선교사들의 논쟁이나 갈등은 이런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영역과 밥그릇 쌈이 전부다. 작은 나라에서 골욕지책으로 나온 것이 지역이나 시니어들 중심으로 헤쳐모여를 하는 곳도 있다.

그 뒷배경에는 추악한 이권과 영역주장이 있다. 선교사에 대한 예우로는 총회가 정한 생활비와 사역비가 있다 문제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을 가져오기 위하여 사업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 단골매뉴가 바로 학교나 건물건축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걸 선교사만 믿고 할 일은 아니다. 현지 교단의 협력과 요청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나다 장로교회 일본내 한인 선교

해방전 카나다 장로교회는 북한지역에서 사역을 했는 데 본국에서 교단이 통합이 된다. 그러나 당시 연합에 가담하지 않는 한 교단 선교부가 철수를 하게 되는 데 사로운 선교자를 찾게 된다. 그들에게 마침 일본내의 조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들을 돌보는 사역이 제시되고 카나다 장로교 선교수가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고베와 오사카등에 터를 잡고 선교사 사택들을 구입하고 조선인 교회(재일대한기독교회)를 돕는 다. 어떠한 방식으로 일까? 돈으로다. 매달 L.L 영이라는 선교사는 조선인 목회자들의 생존을 위한 돈을 나눠준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달 이 돈을 받는 이들은 어떤 자세이고 심정일까?

나이든 분들은 이것에 익숙해져 머리를 조아리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성과를 보고서로 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달랐다. 교토교회의 유석준 장로를 위시한 젊은이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돈만 나눠주는 방식의 선교를 그만두고 선교사들이 깔고 앉아 있는 현지의 자산과 달러를 이양하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그것은 재일대한기독교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나 비굴하게 선교사에게 종속되어 돈이나 타는 선교에서 본국에서 선교지에 준 것들을 현지 교회에 넘기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다. 이에 대하여 갈등이 있었고 이런 요구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선교사는 철수까지 한다. 그러나 다시 귀국하여 이런 요구를 수용하고 일생을 일본에 마친다.

현지에서 취득한 자산과 시설은 모두 현지로

이건 100년이 다 된 옛날 얘기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은퇴를 하고도 선교지를 교단이나 지역 후배들에게 이양하지 않고 개인화 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선교지의 시니어들의 갈등으로 후배들을 줄세우고 있다고도 한다. 교단선교부와는 소통없는 선교사도 있고 영주권이나 시민권 재산권을 취득한 분들도 많다고 들었다.

출장보고 사역보고 구좌의 일원화는 언제나 가능한 것일 까? 선교사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야 역사에 남는 것이다. 그 외에는 모두 사적인 일에 불과하다. 교단 파송선교사의 경우는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고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을 이행하도록 하지 못하는 선교부도 문제고 현장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교단 선교부가 중요하다.

우리교단 선교부가 지금 세계에 흩허져 선교하는 모든 선교사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느 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인 답을 할 사람은 많이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선교부가 우선  권위가 없다는 데서 온다고 본다. 그 점이 극복되야 한다. 사실 선교사라면 쥬니어라도 고급교육과 훈련을 받은 분들로 누구 지도를 받을 이유도 없다. 

다만 현지에 대한 선배들의 수고와 노력 문제점을 배우는 정도면 된다.  그런데 지역 선교회가 자체 룰을 정하고 군기를 잡고 졸병 부리듯이 하는 곳도 없잖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신들의 초임 시절도 생각하고 텃세를 부리지 말기를 바란다. 이건 인격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역지의 배분이나 파송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원하고 맞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역이 교단으로 통합이 되고 이어지고 남지  못하는 것은 교단의 선교 역사로 남지 않는 다. 미국장로교회도 남북장로교회는 한국에서의 선교사역과 기록들을 모두 필라델피아에 모아 놓았다. 우리도 하루빨리 선교사들의 사역일지와 활동이 통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원받은 재정으로 지은 건물이나 허가받은 시설들을 현지교회나 후계자들에게 이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와 경험을 갖고 후배들에게 갑질을 하고 이권을 누리는 선교사들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적어도 우리에게 선교를 해준 미국남북 장로교회나 호주장로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듯이 우리 선교사들도 거져 받았으니 거저주는 심정으로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선교사들로부터 학교와 병원을 이양받았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사유화 한 것이 한국교회의 흑역사다. 안팎으로 먼져 본 놈이 임자라는 식으로 해먹은 것이다. 피어슨 성경학원, 대구 동산병원, 광주 기독병원, 부산 일신 기독병원, 전주의 예수병원, 대구의 애락원 갈등이 바로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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