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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세계기도일 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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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3  1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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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교회/이훈삼목사   

요한 5:2~9 제목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세계기도일’(World Day of Prayer)은 전 세계의 개신교회 여성들이 연 1회 공동기도일을 정하여 세계 복음화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이다. 1887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점차 국제적인 기도운동으로 확대되었고, 한국은 1925년경부터 ‘세계기도일’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매년 2월 하순부터 3월 상순 사이의 금요일을 정하여 개교회, 지방회 단위 혹은 교파 연합 등의 형태로 실시하였다.

1941년 2월 28일 실시된 세계기도일 예배는 1940년 10월경부터 준비가 시작되었다. 1940년 10월 20일경 당시 선교부연합공의회 회장이었던 블레어(H. E. Blair) 선교사는 북장로회의 버츠(A. M. Butts)와 감리교 쇼 부인(Mrs. W. E. Shaw)을 준비위원으로 추천하였다. 그러나 쇼 부인이 그해 11월 귀국하자 무어 부인(Mrs. J. Z. Moore)이 대신하게 되었다. 버츠와 무어 부인은 본부에서 보내온 영문 순서지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도록 각 사항을 취사선택하고 내용을 추가하여 영문 원고를 작성하였고, 이 영문 원고는 11월 말경 한글로 번역되었다.

12월 중 전국의 선교 거점(station)으로부터 필요한 순서지 주문을 받아 15,000부가 인쇄되었고, 인쇄된 순서지는 1월 하순부터 남장로회 선교구역이었던 호남지방을 제외하고 전국에 골고루 배포되었다. 남장로회가 불참한 이유는 1938년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안이 상정된 후 남장로회 선교부가 소속 노회를 탈퇴하여 개별적인 선교사업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써 일제의 폭압적 강요에 굴복하였고, 영미관계의 악화와 일제의 탄압으로 현장에 있던 선교사들 대다수가 철수한 때였다.

1941년의 세계기도일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주제로 당시 국제 간의 분쟁과 혼란을 돌아보고 그에 대한 기독자의 책임을 성찰하고 화평한 세상의 도래를 기원하고자 하였다. 전시체제를 강화해가던 일제는 이 기도회를 기도회의 명분을 빌렸을 뿐 실제로는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고 특히 반전적(反戰的) 분위기를 야기함으로써 인심을 교란시켜 치안을 방해하려 획책한 반전모략사건으로 규정하여 ‘만국 부인 기도회 사건’으로 불렀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평양경찰서에서 2월 28일 모든 인쇄물을 압수하고, 버츠와 무어 부인을 체포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선교사는 1차 심문 후 석방되었으나, 버츠는 며칠 후 다시 구금되어 사방 1.8m도 안 되는 작은 감방에서 4주간을 갇혀 있었다. 선교부연합공의회 회장 블레어 역시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채 12일간 심문을 당하였다. 기도회 사건의 실질적인 책임자들을 체포, 구금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한 일제는 3월 26일을 기해 선교사들을 본격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선교사 반전모략사건에 대한 당국담(談)’이라는 담화문을 내어 종교의 정당한 포교에 대하여는 방해하거나 박해를 가할 의사는 절대로 없으나 종교라는 이름하에 반국가적인 책동을 꾀할 시는 엄중 단속할 방침임을 천명하였다.

함북·평북·평남·황해·충북 등 5개도 지역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제는 기도회의 준비와 실시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교인들 27명을 기소하는 한편 그 외의 주동적인 교회 여성들을 비롯하여 672명에 달하는 한국 교인들을 심문하였다. 기도회 사건을 빌미로 체포되어 선교사역 전반에 걸쳐 수사를 당한 선교사들의 수는 일제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보다 훨씬 많았다.

사건은 1941년 10월 기도회 사건에 연루된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남으로써 일단락 지어졌다. 1940년 11월 선교사들의 대거 철수가 미국의 훈령에 따른 것으로 선교사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라면, 만국 부인 기도회 사건으로 인한 철수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 8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전시 상황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폭압적인 것이었다. 일제가 이 기도회를 반국가적 모략으로 규정하고 사건화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선교사를 추방하고,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사상통제를 강화하여 일본기독교에의 종속을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세계기도일은 해방 후 1948년에 다시 시작되었고, 1953년에는 세계기도일 한국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또한 1967년에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이 기도일을 주관하고 있다.
   
 
                           1. 세계기도일과 짐바브웨

1887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기도일예배는 현재 180여 나라의 여성들이 중심 되어 진행하고 있다. 매년 예배문 작성 나라가 달라진다. 올해 예배는 3월 6일에 연합으로 드려지려고 했으나 현 시국으로 4월 3일로 연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회장: 정연진, 성공회)의 총무 신미숙 목사(통합)가 주관한다. 이 설교 내용은 성남 주민교회가 2월 23에 드린 것을 허락받아 게재한다.

2) 올해는 아프리카 남쪽의 짐바브웨 교회가 작성한 예배문으로 예배드리는 데 133회째다.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그렇듯이 짐바브웨도 수난의 식민지 역사를 지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주제 그림은 짐바브웨 여성화가 '논란라 마테' 라는 여성 화가의 것이다.  아프리카와 고난과 희망에 대하여 잘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1885년 탐험가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면서 영국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촉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식민지로 삼기도 했다. 1980년에 독립했지만 37년 간 독재로 신음했으며 2017년에는 다시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있다. 정치의 혼란으로 경제가 무너져 화폐 가치가 하락하여 미화 1달러에 200억 짐바브웨 달러가 환율이 되었다.  

3) 광대한 자연과 새로운 문명이 공존하면서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산림은 불타고 코뿔소 등 동물들은 밀렵이 성행하고 수질은 오염되어 2008년에는 콜레라로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도시나 외국으로 나가서 노동하며 국내에는 여성이 51%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전통과 문화와 경제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당하고 있다.  

4) 영국이 지배하기 전부터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져 국민의 80% 정도가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교회와 기관들은 세계 교회와 함께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여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지난 1998년 총회를 짐바브웨 수도인 하라레에서 열어서 전 세계 교회 대표들이 참가하여 선교의 과제를 논의하였다.  

2. 누워 있는 사람들 

1) 예루살렘 성의 양문 옆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다. 양문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들 중 양을 제물로 데리고 가던 사람들이 드나들던 문이었을 것 같다. 그 옆에 ‘은혜(자비)의 집’이라는 뜻의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고, 불치병 환자들이 주로 이곳에 모여서 지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며 오갔을 테지만 환자들은 평생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베데스다 연못에 일어나는 기적이다. 기적은 자주 일어나면 기적이 아니다. 평생에 한번 정말 어쩌다 일어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에 환자들이 목매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 말고는 달리 치유의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38년 동안 중풍 병으로 누워있는 환자가 있었다. 중풍도 지겨운데 38년이란 세월은 우리의 공감을 멎게 만든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기적이었다. 어쩌다가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연못의 물을 한번 헤집어 놓는데 그 때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에게는 그 기적의 당첨자가 되는 것도 그만큼의 기적이 필요했다. 그보다 훨씬 잘 움직이는 환자가 기적을 먼저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양보란 거의 불가능이다. 그 간절함과 아쉬움과 절망이 오늘 본문에 묻혀 있다.  

2) 베데스다라는 희망의 공간,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절망과 아쉬움과 희망 고문의 공간을 지금 주님이 지나가신다. 주님은 먼저 그에게 묻는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6절) 

대답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뻔한 질문을 주님은 왜 굳이 하시는 걸까? 기적은 전적으로 주님이 베푸시는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기적의 조건은 우리의 간절한 의지다. 내가 원할 때 주님께 간구하게 되고 그 결과로 기적을 경험하여 주님의 권능을 믿게 된다. 우리의 간절함이 없는데도 주신다면 그것은 오히려 나쁜 습관을 길러줄지도 모른다.

주님의 물음에 중풍병자는 당연히 낫기를 원한다고 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아무리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물에 들어가려해도 다리가 멀쩡한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자신의 몸과 다리를 얼마나 원망하고 야속하게 여겼을까!

그 간절함과 아쉬움과 절망의 자리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평생 일어나지 못하고 걷지 못하던 중풍병자가 자기 자리를 걷어들고 일어나 걸어간 것이다. 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이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거야말로 베데스다라는 이름에 맞게 주님이 베푸신 은총이 전부였다. 믿음이란 주님의 이 사랑과 은총을 구하는 것이다.  

3) 짐바브웨 기독 여성들이 세계기도일 예배문을 만들면서 논란라 마테라는 여성 화가가 작성한 포스터를 함께 실었다.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이지만 어둡고 절망의 기운이 한쪽에 배치되어 있다. 벽돌로 쌓은 성벽은 짐바브웨의 과거 역사를 상징하고 그 오른편 위 하늘은 어둠이 짙은 가운데 이파리나 꽃과 열매는 하나도 남지 않은 나무가 줄기만 남은 채 고목으로 서 있다. 

생기 없는 회색 공간에 맥없이 전통에 기대어 앉아만 있는 남성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는 이는 여성이다. 여성이 남성을 구원한다. 이제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과 역사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 아래에는 농업국가 짐바브웨의 생산적 농업 경제를 표시하는 식물을 그려 놓았다.   

생기 없는 역사를 지나 왼편으로 오면 짐바브웨 국기가 나부끼면서 찬란하게 펼쳐지는 햇살이 펼쳐진다. 그 희망의 빛에 호응하여 짐바브웨의 건강한 여성이 빨간 바탕에고 노란 무늬의 전통 옷을 입고 두 팔을 힘차게 벌리고 있다.  이 희망 아래 엄마와 아들이 어깨를 걸고 내일을 노래한다, 희망의 눈으로 하늘을 우러르면서! 

독재와 신자유주의의 파고 아래 파탄 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짐바브웨의 남성들은 대부분 도시나 광산 또는 먼 이웃 나라로 빠져나가 짐바브웨는 여성이 더 많이 남아서 살림살이를 책임진다. 고단한 삶과 역사를 지나왔지만 그들은 더 이상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걷어들고 일어나 걸을 것이다. 권력이 아무리 부정해도, 세상이 아무리 자본의 논리에 따라 각박해져도, 그들 속에 예수 계시니 새 힘을 얻을 것이다. 베데스다의 은총이 오늘 짐바브웨의 여성, 아이들, 그리고 남성들에게 함께 임하시기를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두 손을 모은다.  

3. 일어나 걸어라!

 1) 우리를 누워있게 하는 것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마음껏 삶을 누리라고 복 내려 주셨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행복과 생명 충만한 삶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든든히 있을 때에만 가능한데, 인간이 자꾸만 하나님을 떠나 살려하기 때문이다.  

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 스스로 교만하여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 말라버리고 만다. 또 어떤 경우는 꼭 인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고난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욕심과 죄의 결과든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뜻이든,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우리의 삶이 다시 생기를 되찾는 길은 하나다. 주님께 나아가 내 삶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 거기에 새 인생이 숨겨져 있다.  

2) 일어나 걸어라

개인이든 국가든 주님께서 38년 된 중풍병자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듯이 우리에게 명령 하신다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자신의 삶을 옭아매던 지긋지긋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사람에게 새로운 인생과 역사가 열린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연연하지 말라. 더 이상 우리의 죄와 욕심에 붙어있지 말라. 나를 붙잡고 있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라.

3) 나의 등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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