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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1  1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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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권(Authority of a minister)

박상기 목사(안산 빛내리 교회, 광나루 목양문학회)
   
 
1. 사람들은 소속과 지위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민으로서의 권리 즉, 행복 추구권,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을 보장받는다.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의무 즉, 교육, 근로, 납세, 국방, 환경 보전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혹 어떤 이유로든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면 저항을 받게 될 것이며, 의무를 이행하지 않게 될 때는 법의 강제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2. 교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의 직분은 크게 성직자인 목회자와 평신도로 구분된다. 성직자는 소명을 받아 정규 신학과정을 거친 후 오로지 목양에만 일념 하도록 세워진 직분이다. 근자에 평신도가 성직의 개념으로 그 사역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엄연히 목회자와는 구별 된 직분임은 분명하다. 이 둘은 각각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평신도는 공 예배 출석과 헌금, 그리고 교회 치리에 복종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리고 성찬 참여권과 공동회의 회원으로서의 권리를 지닌다. 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렘3:15, 벧전5:2-4, 고후5:20, 엡6:20, 벧전5:1-3, 딤후1:11, 딛1:9, 딤후4:5, 눅12:42, 고전4:1-2)대로 의무를 지니며 목사로서의 권리, 즉 목회권(Aauthority of a minister)을 가지는데 크게는 예배권, 성례권, 치리권으로 요약된다.

3. 특히 목사에게 있어 목회권(Aauthority of a minister)은 고유한 권리이며 그 누구와도 타협이나 의결하지 않고 오직 내밀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통한 신앙고백적인 결단으로 행사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이를 위해 목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무오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목사의 목회권을 존중하고 성심으로 따라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것은 교회의 관할과 치리에 복종하는 의미도 된다.

4. 금번 코로나사태로 인해 예배권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바 이에는 목사에게 부여해 주신 고유한 권리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결과로밖에 이해될 수가 없다. 코로나 확산의 슈퍼 전파자들이 신천지인들로 밝혀지고 신천지가 언론에 집중 조명되면서 싸잡아 교회까지 불똥이 튄 형국이 되어 버렸다. 엄연히 신천지는 사이비 이단 집단이며 정통교회와는 확연한 구분이 있음에도 일반인들이나 당국자들은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예배’에 확산 원인이 있다는 판단으로 기성교회의 예배에 집중 경계와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행정명령을 운운하며 거침없이 겁박 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5. 교회는 갑작스러운 이 같은 사태에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확산 방지를 위해 당국에 협조한다는 미명 아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예배당에서의 공 예배를 내려놓고 급하게 온라인예배, 가정예배로 대치해 버리고 말았다. 예배당은 텅텅 비었고 교인들은 졸지에 예배당을 잃어버리고, 예배인지 아닌지 모를 모호한 예배를 통해 단지 예배를 드렸다는 안도감만을 챙기게 되었고 그나마 그 같은 예배에 익숙하지 않은 교인들은 예배를 아예 포기하며 예배 방황이라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개중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일부 교회는 그러거나 말거나 예배를 강행했지만, 당국에서 시시로 보내는 예배를 삼가라는 ‘안전문자’에 불신가족들의 눈총을 받으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불안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6. 목사는 지금까지 ‘예배는 생명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먹이며 ‘예배에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예배가 세워지면 인생이 세워지고 예배가 무너지면 인생이 무너진다.’는 슬로건을 내 걸고 예배를 강조해 왔다. 뿐만 아니라 “예배란 ‘워십’(Worship)이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앵글로 색슨어인 ‘Worthship’에서 나온 말로서 가치(Worth)라는 말과 신분(Ship)이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이 말을 좀 더 구체화시킨다면‘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란 뜻이다.”라고 원어를 풀어서 예배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너무나도 쉽게 고유한 ‘목회권’인 예배를 내려놓는 웃지 못 할 처신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예배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냐?” “하나님이 예배당에서만 계시냐?”는 말로 예배를 중지한 것이 아님을 항변하고 있지만, 그 모든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성전 예배에 대한 그 어떤 단서나 기준 없이 내려놓은 것은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그 속성상 당회의 의결을 통해 예배의 방법을 결정했을 진 데 목회권을 가진 목사가 얼마나 ‘예배권’에 대한 주관을 가지고 결정했는지는 자신만 알 일이다.

7. 이제 한국교회는 몇 가지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우선 시급한 것은 ‘예배당에서의 예배를 언제 다시 시작할 것이냐?’에 대한 딜레마인데, 벌써 한 달 가까이 모이는 예배를 드리지 못한 교회와 목회자는 불안과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필자에게도 “언제쯤 다시 모여야 할까요?”라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물어오는 목회자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하는 것을 당연시했던 교인들에게 새로운 형태, 즉 예배의 제삼지대를 제공함으로써 모이는 예배에 대한 전통에 심각한 크랙에 와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예배에 대한 예배학적인 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배의 장소적인 전통을 벗어난 것만은 틀림없으며 이제 더 이상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라는” 구호는 그 명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지나친 우려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교회의 갈등이다. 즉 이 같은 상황에서 예배의 형태에 대해 옳고 그름, 찬성 반대가 첨예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교회의 분열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8. 코로나의 슈퍼 전파의 주범인 신천지가 등장하고 이단과 사이비, 그리고 정통교회와의 차이 등이 온통 매스컴에 도배될 때 번뜩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을 타고 ‘아, 사탄은 드디어 교회를 무너트릴 수 있는 신무기를 발견했구나!’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자와 비신자, 교회와 세상 구별 없이 교회를 통제하고 예배권을 간섭할 수 있는 너무도 확실한 명분,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명분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너무 쉽게 모이는 예배권을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스스럼없이 세상은 교회를 간섭할 것이며 통제할 명분을 찾았다. 필자는 일찍이 이를 예견하고 경계했으며 확실한 목소리를 여러 경로를 통해 요구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중한 시기에 교회가 당국에 협조해야 한다는 소리만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만에 하나 교인 중에 확진자나 전파자가 생기면 교회가 입게 될 피해에 대한 염려와 우려의 목소리가 힘이 실렸다.

9. 교회와 믿음의 생명인 예배권은 기독교 역사 이래로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그야말로 신성불가침한 것이었다. 교회의 역사와 함께 숱한 박해와 순교는 바로 이 같은 거룩한 공동체에 대한 도전과 응전에서 일어났었다. 이제 세상은 예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대로 오메가포인트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그만큼 험해졌으며 온갖 환란과 시련과 재해로 인해 지금까지 누렸던 평범한 신앙생활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와 상관없이 교권은 수호되어야 하며 성직자에게 부여된 신성한 권리인 목회권(Aauthority of a minister)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장 고유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인 ‘예배권’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수호해야 함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작금의 어려운 사태를 위해 기도하며 보건당국에 협력함은 물론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데 선수적인 노력을 통해 교회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당국의 지나친 교회와 예배권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통해 예언자적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할 때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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