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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미디어, 저널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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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05  13: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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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미디어, 저널의 변화

글싣는 순서
1. 뉴스 미디어 저널리즘의 변천
2. 종이잡지의 공헌과 위기
3. 가르칠 것인가, 아는 걸 일반화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접한다. 전통적으로는 종이 신문이다. 이 신문은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라 문예와 정신사를 풍요롭게까지 했다. 해방전후 창립된 일간지는 전국민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특히 만화만평은 그날의 사건을 압축한다.

초기 언론은 시민적 대중적 욕구의 반영이 아닌 국가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함이다. 예전에 영화관에서도 그렇고 국정홍보 반공 뉴스를 보면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의 관심사를 읽고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그 매체는 외면 받기에 대중의 욕구를 찾지만 진보와 보수로 갈려 도생한다.

종이신문 시절에는 기사도 기사지만 제목이 더 중요했다. 데스크(편집부)는 소위 미다시(제목)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서 기자로써의 근성을 을 보이느냐를 가름한다. 독자들도 기사 전체를 읽지 않고도 제목만 보고도 결론을 도출하고 보는 데 그게 거의 맞는 다. 신문기사를 꼼꼼히 다 읽는 사람은 당사자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라디오의 출현으로 뉴스는 더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정보를 갖게 한다. 신문은 읽는 이의 지적수준이나 전 이해로 받아드리는 게 다르지만 들리는 뉴스는 다르다. 그 외에도 연속극과 광고물, 노래, 스포츠와 스타까지도 생산해내는 과거엔 없던 것들을 함께 담아내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고정된 영상매체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는 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동성이 있는 매체인 스마트폰의 출현이다. 여기 카메라와 동영상 기능까지 추가되자 뉴스판도는 완전히 역전된다. 일방적으로 봐야만 하는 것에서 선택적 접근권도 생겼다. 그리고 과거의 레거시(전통매채)미디어는 변화를 겪게 된다.

언론자본에 대항하는 독자들
그러나 예전에 비하여 공룡처럼 커진 미디어를 자본들이 지배하면서 문제가 된다. 정치적으로 각성된 독자들의 알권리와 그 NEED를 역행하면 외면 받는 다. 그나마 생존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보수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알아차린 독자들은 공듭된 뉴스를 소비하는 청자에서 생산자가 된다. 미디어 컨텐츠와 기기의 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유투브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로 나타나는 문제점이 없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공중파의 편향성 때문이다. 이렇게 1인 미디어는 정치평론만이 아니라 취미와 먹방 강의 설교등 장르를 불문한다. 그것도 기능을 다룰 수 있는 청년에 머물지 않고 모든 세대들의 것으로 다양한 1인 미디어들에 의하여 뉴스 시장이 재편된다.

현재 과거 50%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TV라는 매체의 시청자녔지만 이제는 엣말이다. 그나마 드라마나 스포츠 예능프로외에는 거의 전멸이다. 최근 과거 영화를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이미 대세는 SNS로 넘어가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국론통일 혹은 정치적 통합은 더 어려월 질 것으로 보인다.

종편의 위기
최근 들어 TV의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보도 내용에도 있지만 뉴스의 초점과 결론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뉴스라도 어떤 시각에서 무엇을 부각시키는 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진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뉴스를 돌려보고 확산시킨다.

NEWS(뉴스)라는 말이 영어로 동서남북(North East West Sout) 그 어원이라고 하지만 믿을 수는 없다. 한국에서 뉴스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7년부터 라디오를 통해서 뉴스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뉴스 프로그램은 스트레이트 위주였으며 당연히 일제선전 위주였다.

해방후 분단 된 이래로 뉴스는 국영이었다. KBS와 조선중앙방송이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에 민간방송사들이 참가하면서 뉴스 내용의 시각이 다양화된다. 1970년대 TV의 대중화는 TV가 라디오 뉴스를 밀어놓았다. 그러나 이것도 마이카의 보급으로 몇 개의 프로그램은 장소에 방해을 받지 않는 다는 장점으로 인기 장수한다.

TV나 라디오로 방송되는 뉴스는 신문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전달이 가능하므로 다른 매체에 비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이 생명이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YTN이나 CNN처럼 24시간 내내 뉴스만 틀어주는 방송국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SNS의 발달로 개인 페이스북으로 생산된 기사를 다시 해석하거나 찬반을 달아서 재생산한다

모든 사람이 기자다.
어떤 때는 개인이 사건이나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린다. 이렇게 되면 전문 기자나 뉴스공급원 보다 더 빠르게 전달되고 퍼진다. 한마디로 뉴스의 실시간 소통이다. 이에 대한 문제가 없지는 않치만 뉴스 시장의 변화는 확실하다. 이제는 전문가 시대에서 누구나 기자이고 고발자고 평론가 시대다.

지금은 막을 내리는 유시민의 “알릴레오” 나 홍준표의 “ 홍카콜라”는 1인 미디어 임에도 100만 독자에 둘이 출현한 토론 베들은 역사상 최고의 흥행이었다. 고가의 장비를 갖은 대형방송국이 엄두를 못내는 시청율을 만들어 낸 것은 정치적 의식이 높아지는 독자들의 힘이다. 이제 시민은 누가 정해주는 뉴스에 귀를 기우리지 않는 다. 그런 뉴스나 매체를 생각한다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잘못된 기사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쓰여진 기사의 작성자는 공격받고 실명으로 털리는 시대다. 기레기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과거 지성인이고 저널리스트라는 칭호에서 형편없이 타락한 직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확실히 뉴스시장에 경천동지 할만한 일이 일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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