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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목사와 후임 목사 갈등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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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9  13: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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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목사와 후임 목사 갈등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지난 2017년 2월 6일 한목협 주최로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 주제로 발표회가 있었다. 김승호 교수(영남신대)는 “원로목사와 리더십을 이어받는 후임목사, 새로운 리더십에 적응해야 하는 교우들은 모두 신중하고 진지한 협력과 기도가 필요하다”며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갈등은 교회 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원로목사는 목회에 관한 한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후임목사에게 이양했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성도들에게도 이 사실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며 “후임목사는 원로목사에 대한 교우들의 향수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장흠 목사(한우리교회 원로)는 “원로목사를 부담으로 여길 게 아니라 협력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후임목사는 원로목사의 흔적이나 사역을 완전히 고치려 하지 말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원로)도 “후임목사는 원로목사가 한평생 희생과 헌신으로 생명처럼 사랑으로 양육한 교회를 물려받았다”며 “안정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전임목사의 은공, 성도들의 사랑 때문인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임목사들은 교회를 이어받은 입장에서 원로목사와 필연적으로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기에 잠시는 희생과 수고가 되더라도 모두의 화평을 위해 인내하면서 적응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교회 역사는 선진들의 노고
한국교회가 이제 130년을 넘어가면서 믿음의 대가 이어지고 많은 교회들이 전임자들의 노고와 열정으로 대형교회를 만들어 놓고 은퇴들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고생만 하고 영광을 누리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은퇴를 하면서 무언가 허전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후임자가 와서 그런 공적을 지우듯 자신의 철학과는 다른 유형의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하여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후임자로 부임한 이들도 나름대로 조심을 해가며 낮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하여 지도자들의 성향을 살피며  목양하면서 느끼는 압박감과 외로움도 없지 않다. 자신이 개척한 곳이 아니니 무임승차한 교회에서 어떻게 지도력을 보여주고 전임자 보다 더 낳은 목회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양에 대한 전념보다는 교권정치를 향하여 총대가 되려고 하는 분들도 본다. 

전임자가 개척를 했거나 공적이 크고 유명세를 탈수록 그리고 열정적일수록 후임자와의 갈등의 폭은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교회에 부임했다면 자신의 존재감을 빨리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많이 배우고 잘난 후임자 일수록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보여주려는 욕망으로 인하여 실패를 하게 된다. 

또 잘만났다고 하여 지방에서 대학원이나 박사공부를 하러 서울로 오르내리는 것도 화를 부른다. 또 많이 배우고 잘난 분들은 이전 목회자들이나 지역 노회의 정서를 우습게 알고 튀는 행동을 하다가 제풀에 지친다.  그렇게 사면초가가 되여 그만 두고도 자신의 인내심이나 수련 부족이 아닌 교인들 무지와 보수탓만 하는 것은 여전히 아마츄어다.

합동측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는 후임으로 신성종 목사와 이종윤 목사를 청빙했지만 모두 안좋게 헤어지고 이종윤 목사는 통합측으로 분립온다.  결국 미국에 있는 아들 김성광 목사를 드리지만 이 마져도 실패한다.   몇 년전 고령의 김창인 목사가 휠췌어를 타고 나와 자신이 아들을 이사장직에서 해임을 하고는 자신의 후임자로 삼은 것에 대하여 후회한다는 기자회견은 아들로도 안되는 구나 하는 얘기들이 나왔다.

지금도 여러교회에서 은퇴들을 하고 후임자들이 부임을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다만 과거와 비교하여 전임자의 입김은 많이 쇠퇴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저출산으로 인하여 교회성장은 정체되어 은퇴한 장로들의 증가로 시무장로들 보다 숫적으로 앞선 곳도 많다. 이런 역전 현상은 전에 없던 일로 잘못하면 전임자와 당회원 그것도 원로파와 시무파를 다 섬겨야 하는 고충에 빠진다. 따라서 원로, 공로같은 제도를 폐지하고 모두 은퇴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어디에 있나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전임자 일수록 후임자들과 실패가 더 높았다는 통계다. 우리교단만 하더라도 대표적으로는 광성교회(김창인, 이성곤 목사)와 봉천제일교회(박영선, 정준 목사), 두레교회(김진홍, 이문장 목사)가 있다 또 서울교회(이종윤,박노철 목사) 와 강남노회 한교회(이광수, 문성모 목사)이외에도 여러 교회들이 전임자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낙마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원로 제도에서 온다는 말도 한다.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분들로 한 교회에서 장기목회를 한 것 자체가 신화고 전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열정을 바친 교회에서 법 때문에 몸은 물러가지만 마음 만은 쉽게 물러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쉽게 간다면 오히려 애정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다만 교회사랑를 어떤 식으로 해야 옳은 것인가가 문제로 보인다.

그래서 크게 전임자와 후임자 문제는 그 개인들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한국적인 문제다. 옛 어른들을 숭상하고 예우하는 유교적인 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후임자가 힘들고 적응못한 것만도 아니다. 경북 안동교회는 유일하게 김광현 목사와 김기수 목사 생전에 후임자로 김승학 목사(17년 시무중)가 부임하여 두 상, 원로를 모시고 있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후임자가 잘 참았건 전임자들이 잘했건 상관없이 겉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전임자와 후임자 문제를 개인들의 성향이나 인격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우리에게 장로교를 전해준 미국장로교회나 호주 뉴질랜드는 어떨까? 거기는 일단 청빙에서 부터 우리와는 다른 시쓰탬을 갖고 있다. 청빙을 지교회 맘대로 하지 못한다. 

공석이 나면 노회가 행정위원회를 파송하여 지도와 협력을 해준다. 우리처럼 당회원들이 청빙위 구성하고 자기들 끼리 다 정해 놓고 당회장이 와서 낙점이나 하는 구조가 아니다. 지 교회의 인사 청빙권한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만 행정적으로나 목회적으로 교회가 무엇인지에서 부터 공교회성에 대한 훈련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 지교회는 여전히 정실과 연에 메여있어 객관적으로 인사 문제를 처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빙부터 객관성 갖아야
최근에 한 교회에서 후임자로 전 전임자의 자녀가 지원을 했는 데 청빙위원장은 지원자의 가족이었다고 한다. 이런 조합자체가 구설수다. 그러면 청빙위원장은 사임을 하던지 제척을 해야 한다. 결국 그 청빙은 문제가 되어 무효가 되아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하여 다행이지 그대로 강행되었다고 하면 노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뻔했다.

또 자기가 자식처럼 키운 이를 후임자로 데려왔지만 실패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것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전임자의 카리스마와 공적이 큰 경우 그렇다. 이것은 거의 후임자와 밀월을 통하여 자신의 어떤 입지를 유지하려는 사적인 생각이 더 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전임자는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교인들이 원하는 사람을 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런 교회들을 보면 우선 이론적으로나 외형으로는 그럴 듯한 논리와 목표들을 내세우는 것을 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녹여내지 못하면 그것은 누군가에 의하여 사유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어떤 조직이고 모임이고 모두 사라졌지만 교회만이 2천년 이상을 유일하게 이어지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특정한 목표들을 세우고 따로 모여서 무슨 훈련이니 뭐니 하는 것은 장로교헌법이나 교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교인들이 교회내의 남여선교회나 구역등 자체 조직을 떠나 다른 이론이나 모임을 내세우는 것은 모두 공교회를 망가트리는 행위다. 이는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을 소홀히 알게 하고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로 공교회성에 대한 공부나 학습이 부족한 분들의 일탈에 불과하다.

원로들은 인생이나 목회는 한마디로 전쟁이고 영적 전투이기에 노련한 명장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명장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선대로부터 배우고 다져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수도 맹장과 지장,덕장이 있듯이 일괄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이런 고정 관념들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이전의 지식이나 업적이 반드시 유효한 것은 아니다. 과학의 진보와 윤리성의 급변은 온고지신처럼 통합이 필요하지 선후가 아니다. 과거를 고수하는 것 자체가 고루하기에 새술은 새부대에 담듯이 새로운 세대가 목양을 펼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당신의 시대다. 라고 하고는 묻는 것 외에는 일체 간섭을 배제하는 것 지혜로와 보인다.

현재 문제가 된 교회들 모두 원로 갈등
가장 최근에 분쟁교회으로 구설수가 된 서노회 응암교회나 강남노회 0교회도 그렇고 자기가 후임자를 데려오고도 그 후임자와의 갈등으로 법적인 공방까지도 간적이 있다. 그럴만한 이유들도 있겠으나 누구 한 사람만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그 뒤면에는 추악한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20년 이상 시무한 원로목사를 앞에 놓고 후임자가 설교를 하고 교회를 이끌어 간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고 걱정이다. 그래서 생각있는 분들은 교회를 아예 떠나주긷 한다, 경천교회 김순권 목사도 그렇고 많은 어른들이 은퇴한 교회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나간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 마음도 편하고 후임자들도 더 좋아하고 잘한다는 평이다.

그렇치 않고 한 교회에 태양이 두 개이면 우선 문제는 교인들로부터 온다. 평소의 존경과 사랑을 하루아침에 내려놓는 것도 말이 안된다. 따라서 신구 세력들이 만들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거기다가 전임자의 자녀들이나 인맥들이 많은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도 전임자들은 직장처럼 떠나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부산에서는 은퇴하신 어른들이 초교파적으로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린다. 경안노회에서도 은퇴목사들이 노회회관에서 예배를 드리며 돌아가면서 설교들을 하신다고 한다. 헌금도 거기다 하시고 좋은 시간과 노후들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에게 무조건 손발을 묵는 것도 사실 문제다. 그러나 그것 까지 교회가 예우를 할 이유는 없다. 본인이 전도를 하시던지 선교지를 가시던지 하면 되는 데 후임자들에게 부담은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 많은 후진들은 말하기를 원로가 되시고 은퇴를 했다면 몸과 마음의 쉼을 누리시는 것이 좋다고 본다. 아니면 은퇴 목사들 모임에 가셔서 친교를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또 그간 목회로 인하여 가정이나 사모님과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으니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라고 권면해드리고 싶다. 그런데 설교나 강의에 메진하는 분들도 계신데 이것도 사실 민폐라는 지적이다.

어른들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
요즘 목사들에 대하여 선배들은 어떻게 생각하실 까? 사명감이나 희생보다는 대우나 받고 편하게 지내려고 한다는 소리들을 한다. 그러나 이제 당신들이 하신 고생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것은 옛말이다. 이미 좋은 여건에서 성장하고 자란 세대들로 청빈을 강요하기에는 맞지 않다. 따라서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목회를 기술과 처세로 아는 분들은 이런 저런 비법으로 전임과 후임자의 갈등해소 및 처신을 말하는 데 그것도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서로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갖았기에 만고진리는 없는 것이다. 모두 저 알아서 개척을 해가는 것이다. 어린이가 난로 앞에 가면 본능적으로 손으로 살짝 만져 보듯이 말이다. 뜨거운데도 만지면 손을 델 것이다. 맨손으로 만지면 뜨겁다고 느끼면 조심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자질을 신앙이나 도덕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한경직 목사가 말한대로 마귀처럼 해도 따르는 이가 있고 천사처럼 해도 반대자가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일단은 목사가 되었다면 그 인격이나 신앙은 말할 바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안그럴 것 같은 분들이 후임자와 갈등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보는 데 모든 것을 잘해도 후임자와의 관계가 틀러지면 이는 둘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전체의 문제로 비화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열을 조장하는 교인들
또 하나의 문제는 교인들의 사랑 때문이다. 전임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존경심 때문인데 이것도 문제다. 서울시장이 바뀌면 새 시장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은 그 시장을 중심으로 하여 일해야 한다. 교회도 그렇다 새로운 목회자가 왔다면 그분이 선장이다. 당회나 기관들은 모두 그 목회자의 지도를 받아서 가면 된다 과거와 다르고 하는 말을 할필요가 없다.

전임자에 비하여 년배나 훈련부족으로 세련되지 못한 것도 있을 수도 있기에 비교할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잘 섬기고 받들어 훈련을 시키면 된다. 이것은 시간이 해소할 문제다, 그게 아니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면 몰라도 그것 조차도 지 교회가 나서서 판단하지 말고 노회에 제소하여 지도를 받으면 될 문제다, 따라서 서로가 너무 조급하게 비교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지말고 기다려야 한다.

서두에 미국장로교 얘기를 했는 데 미국은 은퇴하면 교회로부터 100마일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것 외에도 교인들도 만나는 것도 자제하라는 의미다. 또 교회나 기독교 기관의 직원 채용도 그 교회 교인이거나 자녀는 제외하는 이유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모가 원장을 아들이나 친인척들이 중요한 유급 보직을 맡고 있는 것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서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을 알아야 한다. 야박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개인의 양심이나 신앙에 호소하는 식의 선함을 기대하기 보다는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원로 목사나 장로라는 직도 모두 내려놔야 한다. 은퇴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후진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고 교회도 발전하고 인물들이 커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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