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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타임스 창간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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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2  20: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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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교 타임스 발간에 대하여 

장로교 타임즈라는 종이 잡지를 창간했다. 7월 27일(월) 100주년에서 헌정예배를 드렸다. 믿는 이들이 분열된 한국장로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 장로교 정신의 르네쌍스를 염원하면서 대의제를 표방하는 장로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장로, 권사,집사)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지성적 담론을 만든 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종이잡지나 신문이 퇴조하는 때다.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가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종이 잡지라니 걱정들도 당연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란 역설적이라고 본다. 세상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거스르는 것이 신앙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옳고 정의로워서가 아니다. 인터넷 신문만으로는 담아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못했다. 가볍고 즉흥적인 글에서 긴 호흡과 아카데믹한 구성으로 장로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겸손하고 소박하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 잡지의 특색은 억지나 강제의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다만 구매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창간호를 묻지 않고 일괄적으로 1천명 이상 모이는 조직교회에 5부씩 보내드렸다. 창간을 알려드리는 의미니 돈을 주시든 안주시던 보시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앞으로 나갈 예정이다.     

이 잡지를 내면서 하나님께 보고 드리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다짐을 했다. 돈을 더 벌고 이름을 내려고 함이 아니다. 남은 시간 한국교계에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제 근심을 드리기 보다  감동과 유익한 방행제시로 마무리 하고 싶다. 따라서 이제 걸음마를 했으니 평가는 미뤄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 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바란다.

장로교회가 바로서야 한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교회의 문제라고 시작하자. 4/1이 되는 천만 기독교가 분열되어 있지만 장로교단이라도 바로서면 우리사회 문제중 반은 해결된다고 본다. 이제는 더 이상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에 한국 기독교가 성취한 유산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시선으로 이 사회와 역사를 의식하고 바라봐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안의 큰 담론들을 담아내고 토론과 비평의 마당이 필요하다. 앞으로 큰 혼란과 갈등이 보이는 동성애, 차별금지법, 창조과학, 목회환경, 기독교와 정치(정당), 공정무역과 윤리 경영, 복지와 생명평화, 통일, 대형교회와 작은교회의 공존의 길등 빅 이슈들이 줄비하다.

그간 개별적인 차원에서 인터넷매체를 통한 한국교회와 교계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 받은 사랑과 제기된 과제을 하나로 담자는 것이다. 영국서 성직자라고도 쓰는 Cregy라는 말은 읽고 쓸 수 있는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교회 장로교 지도자들의 성장을 위한 지성과 영성의 견인차가 되고자 한다.
   
 
지금은 어떤 때인가?
2020년 4.15, 21대 총선의 판도로 한국사회는 안정화에 들어갔다고 보여진다. 정치는 우리사회에 가장 뜨겁고 불안정한 것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여당의 유래없는 180석이라는 절대적 우위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와 제 1야당의 101석이라는 참패에도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장차 2022년의 다가올 21대 대선을 놓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투표성향과 결과는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 얘기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앞으로는 절대로 세속 정치의 둘러리나 서는 일은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주의(근본주의)는 현실 정치에 대하여 정교분리의 원칙을 주장해왔다. 그래서 부정 부패와 불의 척결, 반공, 근대화라는 화두를 걸고 나온 1960년 5.16 군사쿠테타에 대하여 묵시적인 합의를 해줬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교수와 학생 언론인 지식인에 이어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참여한 반독재투쟁을 위에 있는 질서에 순복하자는 로마서의 말씀을 들어서 반대했다, 이 흐름은 1980년 신군부의 재 집권으로 더욱 공고화된다. 그 결과 노동자선교에 앞장선 산업선교 기관에 대하여 공세를 취한다. 보수 지식인들을 앞세워 교회가 세속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었다.

교회안의 보수가 밖으로
이렇게 보수기독교의 정치관은 처음에는 교회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보수기독교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이어 참여정부가 시작한 사학법 제정에 대한 반대로 정치 세력화 한다.  많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 운영자들이 장로들이었다. 당시 전교조가 주창한 사학족벌의 교육의 사유화을 막는 제도개혁을 막기 위한 일에 우리총회가 나선다. 

변화하는 세계는 이슬람의 스쿠크법(이자없는 자본)과 할랄식품 생산으로 가져올 경제적 이익보다 이슬람 포비아로 보수교회를 자극한다. 이어 선진국에서 개방화된 동성애 합법화에 대한 반대운동이 거세진다.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반대를 고리로 정치세력화된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 신앙의 논리적인 반대는 아니었다. 보수 정권 기반인 대기업과 정보기관 문민화로 더 이상 동원이 불가능해진 정치 세력이 마지막으로 돈과 사람이 있는 보수교회로 눈을 돌린다.

보수주의는 신앙적 뿌리는 미국인데 성서무오설과 임박한 종말론에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자는 기독교 왕국론이 출발이다. 그러나 이게 신학이나 기독교 주류로 정치전면이 아닌 교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976년 민주당 대통령 카터가 침례교도라는 이유로 지지를 하지만 민주당 정부가 낙태합법화와 이민자법 제정을 하자 배신당한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보수주의 교회는 공화당으로 눈을 돌려 레이건과 부시 부자와 트럼프을 만들어 낸다.

한국신학은 보수주의
한국선교 초기 들어온 미국인 선교사들의 훈련과 파송동기는 당시 복음주의가 주도한 세대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었다. 성서무오설과 전 천년설, 부흥운동과 종말론자들이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 최초의 신학자 박형룡 박사도 이러한 근본조의 신학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일본이나 독일 카나다에서 공부한 이들과의 신학적 견해로 분열의 씨앗이 잉태된다.

또 아빙돈 단권 주석번역(한경직, 김영주, 류형기 목사)에서 촉발된 신신학 논쟁으로 결국은 기독교장로회로 분열된다. 이후 WCC에큐메니칼신학문제로 합동과 통합이 다시 분열한다. 이후 한국신학계는 토학화는 무속으로 민중신학은 용공으로 기독교의 모든 사회참여는 적대시한 자유주의 신학의 산물이라고 죄악시 한다.

해방후인 1945년부터 한국교회의 근본주의는 이전에는 신학적 근본주의만의 문제였으나 이념문제가 나오고 정치,경제적인 문제들과 결부되어 새로운 형태의 근본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근본주의는 윤리적 근본주의로 발전한다. 주초 문제와 낙태, 동성애, 줄기세포와 소수자 보호와 양성평등 문제,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반대하게 된다.
   
 
시대를 넘는 보혁논쟁
이들은 이미 미국사회의 근본주의자들이 경험했던 것을 반복하면서 그들의 방식을 채용한다. 기독 학생 청년운동의 초기 리더였던 서경석은 미국유학을 다녀온 후 우파로 전향하게 된다. 처음에는 기독교틀이 아닌 최초의 시민운동으로 경실연을 만든다. 그리고 돈이되는 우파 기독교 속으로 들어가  '기독교사회책임' 같은 단체를 만들고 영향력을 키운다.

이렇게 나온 조직들이 태극기 부대이고 주옥순의 '엄마부대' 다 그러나 이미 이런 조직들은 1970년대 미국의 보수기독교와 관련된  ‘미국을 걱정하는 엄마들’ 들에게 배운 것이다. 우리 시민운동의 낙천낙선운동도 모두 미국이 그 효시다. 미국보수 기독교는 자신들을 대변하는 의원들을 만들기 위하여 지역구마다 압력단체들을 만든다. 

당시 미국도 낙태금지 철폐와 공립학교에서의 기도금지나 최근 동성애합법화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연대하면서 기독교의 근본적 가치의 회복을 위한 투쟁을 한다. 그렇게 해서 신학의 시대는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직도 근본주의 신학은 무시할 수 없는 데 이 신학이 생성된지는 100년도 넘지만 신보수주의로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19세기 이 신학이 미국에서 탄생하기 이전에 이미 겪었던 남북 전쟁, 도시화, 산업화의 부작용, 근대성(Moderiniyty)으로 인한 근대사회의 도덕적 위기와 맞물려 출현한 것이다. 이에 저항하는 프린스턴 신학교와 세대주의 성결운동 구룹의 이론적 배경은 '성서무오설' 이었다. 이들은 성경은 구원만이 아니라 윤리와 과학까지 예정되었다고 믿는 이들로 창조과학을 주창한다.

미국의 보수주의 퇴조
스콥스 재판(일명원숭이 재판)에서 완패한 근본주의는 공적영역에서 퇴조하지만 목회와 신학에는 오직 성경으로 충분하다고 하여 당시 지성적 신학 풍토를 거부하며 바이블 칼리지들을 만든다. 그리고 창조론의 옹호을 위해 남부 벨트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백인 기업가들의 후원은 신 복주의와 반공주의의 옷을 입는 다.

그리고 근본주의 1세대 자녀들 중 온건한 입장의 지식층은 미국에서 일던 무신론의 발원지를 공산주의로 지목하고 이에 대항하는 막강한 전선을 구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근본주의는 뉴라이트로 다시 돌아온다. 미국의 근본주의는 좀 세련되게 기독교 우파가 되어 정치 세력(뉴라이트)으로 화려하게 귀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주의 정치 세력이 바로 한국기독교의 뉴라이트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유학파인 서경석 목사와 김진홍 목사등이 그 효시다. 그러나 복음주의에는 손봉호 교수등이 앞장서서 기윤실이나 ‘복음과 상황’ 같은 사회적 정의을 주장하는 지성적 저녈(미국 소저너스 창립자 짐 웰리스)도 만든다.

뉴 라이트 등장
미국의 복음주의 지성은 짐웰리스가 내는 ‘소저너스’나 메노나이트의 아미쉬가 내는 ‘쟁기(Plough)’, CT 같은 저널들이 이끈다. 한국에도 기독교사상이나 월간 ‘목회’ 누란노의 '목회와 신학'등이 있다. 그러나 이중에 신학전문지로는 ‘기독교사상’ 과 '복음과 상황' 만이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하지 그 외에는 큰 영향력은 없다.

한편 기독교 정당론자들은 기독교 내부에서 신학과 신앙안에서의 합의나 운동이 아닌 체 교권형으로 파행을 겪는 다. 기독당이 역사적 신학적 연구와 흐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이 앞장섬으로 지금 까지 실패를 연속하고 있다. 특히 전광훈 목사와 같은 덕망없는 부흥사들이 교권과 힘의 정치로 관여하므로 실패한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의 뉴라이트는 기성 정치에 메몰되었고 기독당은 갈피를 잡지 못하여 실패하고 이 둘의 기반이 되는 반동성애 구룹과 차별금지법 반대구룹들이 시민단체들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호전적이고 선동적인 쌈꾼으로 인식될 뿐 복음주의 기독교안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 대표격인 염안섭 원장은 총신대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다.
   
 
모든 논쟁 담아 낼 그릇 필요
이에 한국교회가 직면하게 될 동성애 문제와 정치참여, 기업의 윤리성, 복지정책등 굴찍한 이슈에 대한 긴 담론 형성과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은 언론의 시대이다. 어떤 사상이든 실천이든 꾸준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특히 기독교 내부에서의 더 이상 갈등과 분란을 그쳐야 한다. 대 사회 문제와 미래문제에서 공유할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작은 차이는 극복된다.

이에 필요한 이론과 실천을 담을 기독교 마당이 필요된다. 이미 빛과 소금 혹은 목회와 신학, 월간 목회등 목회나 신앙인격에 좋은 잡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목회정보나 소식에 머물러 있다. 웨슬레 옥스퍼드운동, 무디부흥운동, 역사에 보면 운동이 아닌 것은 오래못간다. 정보나 미담소개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정치적이고 합의적인 저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한국교회의 가장 큰 공통분모인 장로교의 연대가 필요하다. 15세기 종교개혁은 이전의 인문주의 운동으로 고전을 시대의 장으로 소환한 르네쌍스 운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등안시한 평신도을 주체로 한 운동을 회복해야 한다. 장로교회의 대의제는 바로 성직독점에서 평신도을 동역자로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제도적 뒷 받침으로 교황제와 수장제(성공회)에 저항한 민주적 의회제인 공동의회와 당회라는 민주적 제도을 만들어 냈다. 칼뱅은 원래 법학자였다. 그는 기독교강요에서도 그렇고 제도와 법을 중시한 안수받지 아니한 지도자다. 제네바에서는 신정국가의 실험을 도입했다.

그러나 장로교의 시도는 스토틀랜드에서 죤낙스를 통하여 정착된다.   그리고 꽃은 화란에서피웠다. 자유대학은 바로 국가와 종교(카토릭)으로부터 반대하는 지성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새롭게 재 해석하고 조망해야 한다. 이를 신학자들의 박제화된 연구에만 의존할 수가 없다.

현장과 학술적 성과를 담아내는 용광로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의 저널 중 그런 것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한국신학의 뿌리는 보수 신학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가 이룩한 다른 신학의 성과와 만나게 해야 한다. 따라서 열린 마음으로 한국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역사적 사회적 결실로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의 힘이나 파워가 아닌 가치와 비전으로 미래사회를 인도할 무형의 지적재산이 필요하다.

이 시대 진보와 보수 중도를 아울를 수 있는 마당이 필요하다. 따라서 진보에서 보수까지 기독당과 반동성애 구룹들까지 끌어 않는 큰 담론의 장이 요구된다. 넓은 신학적 담론과 역사적 지평을 여는 모든 신학의 주제와 목회상의 드러나는 문제를 사회와 연결하는 공론이 장이 필요하다. 여기서 신예 논객들을 필진들을 발굴한다.

보수와 진보를 모두 담아내는 그릇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영혼들이고 복된 존재들이다. 문제는 자신들의 얕은 신학지식이나 주관적 신앙관이라는 잣대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한계다. 거기 학문적 신앙적 아무런 권위가 부여된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와 다르고 싫으면 적대시 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에 더 이상 반동성애 구룹들이 교회 밖에서 기성교회와 신학교를 자기들을 지지하지 않는 다고 무차별공격하는 것은 안된다. 그렇다고 반동성애를 이질적인 집단으로 규정하고 피하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서로의 주장을 들어보고 한국기독교가 나갈 바를 생각해야 한다.

평신도 지도자 양성해야
더 이상 목회자들 장로들만이 교회의 대표가 돼서는 안된다. 평신도 지도자인 건전한 장로들과 평신도 인텔리들을 자각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목사의 능력 안에 국한되는 외눈박이 신앙을 넘어 성장과 참여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건전한 평신도 기독교 지도자로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평소에 연구와 독서를 많이 하지만 평신도들은 여전히 지교회의 한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 잡지는 장로나 권사 집사등 평신도들의 지적인 자산을 넒히고 장로교회를 배우고 연구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동안 상명하복식의 양육 목회에서 소통하는 목회 평신도들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목회를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또 장로교회들의 연대와 하나됨의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

따라서 그간 듣고 보는 설교와 목양에서 보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삶으로의 책임있는 평신도로의 성장케 한다. 또 그동안 한국 기독교가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과 물질등 사회적 비용을 낭비한 것을 반성하고 현실 정치에 대하여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문을 열어 건전한 기독자들의 정치참여도 권장한다.

그리고 교회의 합의로 현실 정치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기독교 본래의 가치인 사랑과 화해, 통합과 상생의 모토를 걸고 진짜 사회적 약자와 평화담론을 갖고 나가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기독교인이기에 우리를 찍어달라는 식의 호소는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가능한 논의와 담론을 구성하고 담아내고자 하는 Pool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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