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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었던 이름 구럼비, 그리고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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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31  15: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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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잊었던 이름 구럼비, 그리고 송강호

구럼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 앞 바닷가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용암너럭바위를 말한다.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바위이지만 화산섬 제주도의 여느 바위와 달리 평평한 모습이며 길이가 1.2km, 너비가 150m에 달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당시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는 작업을 둘러싸고 그 보존가치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구럼비 바위와 해안’은 국내 유일의 바위 습지이자 생태계의 보고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구럼비는 제주도 일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지형으로 별로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행정명으로는 강정동 2731번지부터 4670번지까지의 논이 있는 곳을 말하며, 지금은 ‘구럼비’라고 부르고 있다. 구럼비를 ‘큰구럼비’, ‘조근구럼비’, ‘개구럼비’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는데, 옛날 해안가를 중심으로 초가로 된 아홉 채의 작은 암자들이 있어서 ‘구럼비/구암비’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하고, ‘구럼비낭’이 많이 있어 ‘구럼비’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정부와 군은 이 곳에다가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타당성 조사와 준비는 일찍부터 진행되었으나 군사 보안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달라진 시대에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졸속으로 결정이 된 것이다. 이에 강정마을 사람들과 종교단체 환경 시민단체들이 반대를 시작한다.
   
 
송강호와 구럼비

송강호 박사도 2011년 처음부터 반대운동에 합류한다. 그러나 공사방해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구속과 석방을 이어간다. 그러난 동안 공사는 상당히 진행이 되었고 반대 운동의 강도나 조건도 강해져 육상이 아닌 해상에서 그리고 목숨을 건 위험한 반대운동을 하게 된다 긴 시간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치쳐 떠나고 외면하는 동안에도 송강호 박사는 끝까지 생명을 내논 반대운동의 아이콘이 된다.

문정현 신부와 함꼐 제주 평화와 구럼비를 지켜내는 가장 큰 위협적인 인물이 되자 다시 구속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도 굴하지 않고 옥중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송강호 박사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국외내 인사와 그가 소속한 WCF(국제 프론티어) 경기도 국수리 소재의 공동체가 있다. 현재 강정에는 “강정평화네트워크” 라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다.

송강호 박사는 학부 시절 한 교회 전도사 시절인 1992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의 폭팔로 당시 722명의 사상자를 낸 참상을 목도하면서 교회 청년들과 이들의 피해를 아파하며 기도 모임을 하게 된다. 그후 1994년 독일 유학시절 같이 기도하던 청년 3인과 아프리카 부른디를 방문하게 된다. 여기서도 분쟁으로 인한 죽음과 가난 고통을 목격하면서 지구의 평화운동가가 되기로 결단한다.

그후 2001년 사단법인 ’개척자들‘ 이라는 단체를 당시 외교통상부에 등록을 하고 국내외에서 국제 분쟁지역 평화활동가 프로티어 교육을 시작한다. 2002년 WCF라는 이름으로 세계기도포럼을 매주 월요일 기도모임을 연다. 그후 분쟁지역에서의 봉사와 조사 평화활동을 위한 훈련과 캠프등을 아프칸등에서 열어왔다.
   
 
개척자들(WCF) (홈페이지http://wcfgw.nayana.kr/xe/)

현재 개척자들 본부는 경기 양평군 양서면 식곡길 153 전화031-771-5072에 있으며 송강호 박사의 부인인 조정래 여사가 책임자로 있으며 공동체 훈련과 기도 교육등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도 국내외 여러 현장들과 관계하면서 봉사자 파송과 훈련지원을 하고 있다. 송강호 박사는 장신대 학부를 나오고 독일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시민운동에 뛰어 든 것이다.

송강호 박사 재판 선고는 9월 24일 오전 10시에 제주지방법원에서 있다.  8월 27일 검사는 송강호 님에게 징역 3년, 류복희 님에게 징역 2년, 최수인님과 윤해성님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송강호 박사는 오늘 8월 31일 자로 155일 째 구속 중이다.
1. 주소 : (63166) 제주도 제주시 제주우체국 사서함 161호 송강호 (수용번호 219)
2. 온라인 편지 : 인터넷 → 교정본부 → 온라인민원 (인터넷서신) / 스마트폰 → 법무부 온라인민원서비스 (인터넷서신)
3. 면회 방법 : 면회는 주 2회, 회당 1명 교정본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 필수. 주말은 접견이 불가능 면회일정 조정을 위해 접견예약 전 사전협의 부탁드립니다. 문의 01072085039


그런 가운데 현재 구속되어 선고를 기다리는 중에 송강호 박사의 옥중편지가 나왔다. 그는 지난 3월 7일, 구럼비 폭파 8주년을 맞아 활동가 한 명과 함께 기 강정 해군기지 철조망을 끊고 구럼비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해군에게 고소를 당해 구속된 것이다. 이에 “판사님, 저는 해군이 파괴한 구럼비를 되찾아 평화의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 라는 제목의 편지다.
   
 
장찬수 판사님, 안녕하십니까.

판사님께서 현장검증을 제안하셨을 때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으로 지난 10년간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현장검증을 직접 요청하신 판사님은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해군은 제가 군사시설을 파손하고 영내를 무단 침입했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객기로 일탈 행위를 저지른 무법자로 간주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황은 폭력으로 남의 집을 차지한 도둑들이 집 안에 있는 보물을 찾으려고 울타리를 뜯고 들어온 주인을 재물 손괴와 불법 주거 침입죄로 고소한 것과도 같습니다. 강정에 지어진 해군기지는 국가 안보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편법과 불법으로 지어졌습니다. 정부가 주민들을 비밀리에 꼬드겨 돈과 이권을 약속해 자기편을 만들어 앞잡이로 삼아 마을 공동체를 붕괴시켰습니다.

강정마을 공동체는 찬성과 반대파로 갈라져 서로 싸웠고, 해군기지가 이미 완성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깊은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은 정부가 스스로 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 범죄행위였습니다. 2008년 9월 17일 제주도 유관 기관 대책회의에서 국정원은 주민들을 겁박해 공사를 진행하라고 충고했고, 이후 2010년 부임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수많은 시민을 사법 처리해 이 불법적 공사를 도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추진했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 다수가 현재 구속 수감되어 있거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현오 전 경찰청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군납 비리에 연루된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마을까지 찾아와 직접 사과까지 했다는 사실이 이 해군기지 건설 과정이 떳떳하지 않았음을 방증합니다.

이상한 일은 그들이 불법으로 완공한 해군기지는 지금 강정에 건재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구럼비바위는 그 기지 안에 갇혀 있습니다. 강정 앞바다 공유수면에 위치한 구럼비는 원래 모든 시민의 공공재였습니다. 구럼비바위는 많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했던,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한 느낌을 주는 천혜의 자연유산입니다. 해군은 대부분의 구럼비바위를 파괴하고 그 위에 시멘트 콘크리트를 부어 부두와 군사시설을 세웠지만, 차마 이를 모두 매장하기에는 양심에 걸렸는지 일부를 억지로 공원화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습니다. 웅장한 자태는 사라지고 초라한 몰골만 남았지만, 그것만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3월 7일은 공사 측이 구럼비바위를 화약으로 파괴한 지 8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구럼비가 일부 남아 있는 기지 내 수변 공원에 들어갔습니다. 예전에 그곳에서 늘 했던 것처럼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고 강정마을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도록, 구럼비가 다시 복원되어 모든 시민에게 개방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저는 2월 14일부터 그날까지 세 차례 정식 방문 요청을 하였으나 서로 다른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구럼비바위에 갈 방법을 달리 찾지 못해 기지의 펜스를 절단해 입장했습니다. 저는 구럼비바위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는 군부의 집단 이기주의로 부당하게 사유화된 점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구럼비는 모든 시민의 것입니다.

구럼비 안에서 솟아나는 할망물은 신성한 샘물이었습니다. 해군들은 주민들의 종교적 성정을 무시한 채 터부를 건드렸습니다. 저는 강정 해군기지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안 되는 곳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군부가 권력욕에 이끌려 세력 확장에 눈이 멀어서 성스럽게 구별되어야 할 공공의 자연유산을 국민에게서 빼앗아 배타적으로 점유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습관을 따라 구럼비를 향해 걷다가 불현듯 나타나는 철조망이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해군기지는 자신들이 삼킨 구럼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반드시 토해 내는 날이 불원간 올 것입니다. 저는 그 다가올 미래를 미리 살아 내는 것이고, 그로 인한 고통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저는 전쟁도 군대도 반대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 존중해야 할 것들을 무시하고 파멸하는 반인도주의적 범죄행위입니다. 저는 강정 해군기지를 폐쇄하고 이를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 회담과 협상의 장소로 전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럼비는 다시 복원해 원래 주인인 국민 모두에게 반환되고 개방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이미 군사기지가 지어졌는데 왜 10년이 다 가도록 끝난 일을 붙들고 있냐고 꾸중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힘 있는 자의 불의와 패악질에 저항해도 결국 피해만 보게 된다는 자기 검열과 강자 앞에는 스스로 무릎을 꿇는 비겁한 굴종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성세대는 비굴한 침묵을 철이 드는 것으로, 부끄러운 방관과 외면을 성숙해 가는 것이라고 세뇌해 왔습니다.

한때 강정마을 주민 대부분이 해군기지 건설이 부당하다고 강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때 강정마을 전체를 노랗게 뒤덮었던 깃발들은 꺾이고 부러져 변두리에나 을씨년스레 서 있습니다.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인 '해군기지 결사반대'는 이제 빛이 바래 알아볼 수조차 없고 세찬 바닷바람에 실밥들이 풀려 나가 손바닥만 해진 초라한 깃발들이 듬성듬성 서 있을 뿐입니다.

강정마을회는 더 이상 해군기지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정의롭다고 여겼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제는 포기했습니다. 해군은 마을에 평화가 왔으니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마을을 짓누르는 이 침묵과 고요는 찬성도 동의도 아닙니다. 좌절과 낙담이고 환멸과 체념입니다. 약삭빠른 이들은 나서서 정부의 보상금과 지원금을 나누어 갖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강정 안에 있는 어느 교회나 사찰도 정의를 외치는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유일한 정의의 소리는 작고 남루한 미사 천막을 지켜 오신 소수의 천주교 사제들과 수녀와 수사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정마을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소수의 마을 토박이들입니다. 저는 이들과 한 몸입니다. 아무리 시류가 변하고 대세가 기울어도 저는 "검은 것은 검다. 흰 것은 희다"고 하는 증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해군은 불법적으로 구럼비바위를 점령하고 그 위에 군사기지를 지었습니다. 저는 해군기지 안에 갇힌 구럼비바위의 진정한 주인인 시민 한 사람으로서 그 구럼비에서 종교적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3월 7일 그곳에서 평화의 섬 제주도가 전쟁도 군대도 없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도록, 상처 입은 강정마을 공동체가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2011년 3월 8일 강정에 내려온 후 지금까지 매일 아침에 드렸던 기도였습니다. 처음에는 구럼비바위로 걸어가 기도했습니다. 그해 9월 구럼비를 둘러싸고 철조망과 장벽이 쌓인 이후에는 바다를 통해 그곳까지 헤엄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해군이 저를 물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바다에서 구타하기도 했지만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해군기지를 지어 더 들어갈 수 없게 된 후에는 구럼비가 멀리서나마 보이는 강정포구 방파제 끝에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제 신념과 행동을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시민의 재산인 구럼비를 되찾아 그곳에서 이전처럼 평화를 위한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 재판장님은 이런 저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판결이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2020년 8월 20일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군참모 총장 구럼비 방문

지난 8월 31일 제주를 방문한 부석종 해군참모 총장은 과거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 및 과거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해군의 공식사과를 계기로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할 수 있을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커뮤니티센터 앞에서 열린 '해군본부-강정마을회 간 민군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식'에서 "기지 유치 과정과 공사 진행 과정에서 구상권 청구, 행정대집행 등 가슴 아픈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갈등을 초래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주민 여러분들께서 응어리진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지금껏 생활해 오신 것을 제주 출신이자 제주사업단장을 역임한 제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덧붙였다. 부 총장은 공식 사과에 앞서 마을을 대표해 협약식에 참석한 주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주 출신인 부 총장은 지난 5월 취임 직후 강정마을을 찾아 적극적인 상생 발전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해군기지 건설 당시)현장에서 반대한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최대한 마을편에 서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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