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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은목사님의 가르침
유재무 편집인  |  webmaster@pc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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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8  12: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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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에 기억나는 목사님

김종희 목사/ 경신중.고등학교 전 교목실장, 서울노회 전 노회장

두 주일 간의 숙제 : 피를 한 방울씩 가져오라.

1950년대 말 내가 새문안교회 고등부를 지도하시던 때에 황광은 목사님은 부목사님으로 당시 한국교계에서 이름난 목사님이셨다. 하두 재주가 많으셔서 한국교계는 물론 우리 학생들도 황목사님은 팔방 미인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목사로서 서울 Boyscout 지도자이시기도 하셨고 교회연합기관인 기독교교육협회 총무를 하시기도 했다. 그외 아동문학가였고 장년설교 고등부 설교는 물론 아동교육 구연동화의 일인자이고 피아노 트럼팻 등 간단한 부채요술 등 땐스까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 때 황목사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마술과 휭거 땐스를 할 수 있다.

주일에는 중.고등부지도 목사로 예배 설교를 하셨고 여름 수련회때는 우리들을 YMCA수양관에 데리고 가서 4박5일 수련회로 말씀 공부는 물론 stunt night(촌극대회) 야구 마라톤 수영 야간 깃빨 점령하기 등 여러 가지 재미있고 흥미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신앙을 살찌게 하시고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뿐만 아니라 한 해는 여름 수련회를 불우청소년들의 집단 생활을 하는 난지도 Boystown에 인솔하고 가서 거기서 그 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수련회를 연합해서 하며 또 어떤 해에는 서울주변 볼일천 고아원에 데리고 가서 그들이 겨울에 입던 옷을 빨래하기도 하고 그들이 먹는 깡 보리밥(입에 한 수깔 넣으면 입 천장을 따끔따끔 찌르는)을 같이 먹도록하는 등 불우한 소년들의 삶을 체험하게도 했다.

심지어 한 번은 우리 고등부 남녀 임원들을 인솔하시고 명동 성당에 함께 가서 천주교 미사에 참여하도록하시는 다른 목사로서는 상상도 못할 요새말로 열린 목사님이셨다. 말하자면 에큐메니칼의 선구자시였다. 황광은 목사님이 대광중.고등학교 교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중 1960년 4.19때 학교 대학생들의 시위에 흥분한 대광 학생들이 밖으로 시위하려 나가려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내 보내기도 한 대담하고 과감한 목사님이셨다. 나는 경신중.고등학교 교목으로 38년간 재직하면서 학교에서는 물론 여러교회에 초청을 받아 교육목사로 활동을 했는데 그 분의 Learning By Doing의 교육방법을 나름대로 활용을 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이 글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1950년대 말 내가 새문안교회 고등부시절 지도목사이신 황광은 목사님의 신앙교육의 일단을 소개하고자 한다. 황목사님은 고등부 임원들을 매 월요일마다 학교 하학후 집에 가는 길에 먼저 교회로 오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월요기도회를 인도해주셨다. 한 번은 일주일간의 숙제를 주셨다. 다음 월요일 방과 후 월요 모임에 올때까지 한 주간 동안 어느 누구하고도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말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일주일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도 듣지도 않았다. 심지어 학교교실에서 선생님이 질문할까봐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도 하고 학급 학생들과도 말을 하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하고 일주일을 지나고 교회 월요모임에 갔다.

그날도 여전히 평소때같이 기도회를 인도하신 후에 또 다시 지난 번 보다 더 어려운 숙제를 주셨다. 그 숙제는 다음 월요일 올때까지 신체 어느 부위도 상관없으니 피를 한 방을 내 오라고 하셨다. 나는 일주일 후 월요일 하학후 집에가서 어디서 피를 낼까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못박힌 손 바닥을 생각했다. 쇠 못 하나를 구해서 왼 손 바닥 한 복판에 못 끝을 대고 오른 손으로 힘껏 눌렀다. 통증을 느끼기는 했는데 그러나 손을 펴 보니 조금도 살을 뚫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차 시도를 했다. 쇠 못 끛을 현관 앞 바닥 콩크리트에 갈아서 뽀죽하게 만들어서 다시 더 쎄게 누르는 시도를 했다.

손 바닥이 따끔하도록 눌렀다. 손을 펴보니 아무 반응이 없더니 조금 있으니까 손 바닥 가운데서 발간 피가 한 방을 겨우 솟아 올랐다. 얼른 종이에 뭍혀서 접어가지고 교회로 갔다. 임원중 고3 남학생만 셋이 피를 종이게 싸기지고 왔다 한 학생은 우리 교회 담임 목회자이셨던 강태국목사님 아들 강우정(현재 부친이 설립한 한국성서신대학교 총장)과 고등부 회장인(현재 모 장로교회장로)김찬주가 새끼 손까락을 면도 칼로 상처를 내서 피를 내왔다. 그 둘은 새끼 손가락을 하얀 반창고로 감고 있었다. 나는 피묻은 종이만 펴서 내 밀었다. 목사님은 확인만 하시고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평소 하시든대로 기도회를 인도하셨다. 우리는 왜 말을 일주일 못하게 하시고 왜 피를 내 오라고 하셨는지 묻지도 않았다.

   
 

교목의로의 나의 멘토

그 후에도 황목사님은 아무 언급도 안하시고 대광학교 교목으로 가실때까지도 무슨 뜻인지 설명도 안하시고 가셨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알 수 없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서야 왜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왜 피를 한 방울 내 오라고 하셨는지를 스스로 깨달았다. 필경 그 두 주간의 시기가 사순절 마지막 예수님의 고난주간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 받으실 때 아무 말로도 항변하거나 변명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리고 채찍에 맞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 손과 양 발에 대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에 찔려 십자가에 달려 선혈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신 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그 사실을 우리 임원들에게 지적인 이론이나 말씀으로가 아니라 또는 스스로 본보기도 아니라, 아예 우리에게 실천으로 체험하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된 것이다. 말로 이론으로 학식으로가 아니라 먼저 체험하게 함으로 후에 스스로 알고 깨닫게 하는 즉 체험 우선(learning by doing)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죤 두이의 교육철학을 실천하신 분이었다. 목사님도 대범하신 교육자였을뿐 아니라 교육자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고 피를 내가지고 갔던 우리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뜩하고 순진했다. 오늘날 그 목사님처럼 학생들에게 그런 숙제를 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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