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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교회 탐방(경북 안동교회)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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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5.14  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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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교회 탐방 경북 안동교회

C.E(면려회) 100주년 기념대회 안동교회서 열려, 면려회는 현재 남선교회와 장청의 전신
합동측에는 아직도 면려회라고 불러, 3대 목사가 시무하기도

   
 

경북 내륙지방인 안동은 선비와 전통과 예절의 고향이다. 퇴계 이황의 고택과 유성룡 가문의 하회마을 등 문화제급 보물들이 즐비하다. 이런 선비와 양반정신은 민족의 고난시기에도 큰 빛을 발한다. 한말 최초의 무장투쟁인 갑오의병이 안동에서 시작되어 일제하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종교적으로는 늦게 합류한 외래종교지만 기독교의 자취 또한 만만치 않다. 안동의 3·1운동은 안동교회에서 모의하고 앞장섰다. 그것은 경북안동교회도 유명하지만 더 유명한 것은 오늘날 남선교회와 청년회전국연합회(장청)의 시작이 바로 안동교회이기 때문이다. '기독청년면려회'라고 불리우는 데 지난 11일 기독청년면려회(基督靑年勉勵會, C.E. : Christian Endeavor Society)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기독청년면려회는 1921년 2월 5일 안동교회 당회의 허락으로 시작되어 1924년 12월 서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에서 만국기독청년면려회 조선연합회 창립총회 및 제1회 전선대회(全鮮大會)가 열렸고 현재까지 총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전국 남선교회연합회 수석 부회장 강창성장로가 직접 참석하여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기념대회 1부 감사예배에서 '선견자의 신앙'을 주제로 설교한 박종석 목사(경안노회 공로)가 설교했으며 2부 기념예식에서는 안동교회 면려회 창립 시 활동한 회원과 이후 평신도회, 남선교회로 조직이 변천해오는 과정에 공로가 있는 회원 등 18명의 회원과 유가족들이 참석해 그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공로패를 수여 했다. 1958년 서울 영락교회에서 개최된 제9차 총회에서는 발전적으로 고등 C.E, 청년 C.E., 장년 C.E.로 분할되었는데, 당시 안동교회 장년면려회 봉사부장이었던 김화석 장로는 95세의 나이에도 몸소 기념대회에 참석하여 공로패를 받았다.

3부 기념포럼에서는 '안동교회 기독청년면려회 100년의 역사', '예장 통합교단과 합동교단의 100년 역사'를 비롯해 한국에 면려회를 소개한 '안대선(Wallace Jay Anderson)선교사'를 연구한 논문이 소개되었다. 청년면려회와 남선교회의 역사는 이교남 목사(주영연구소)가 발표 했다.

   
                                    * 안동교회 당회록에 기록된 청년면려회 청원 허락

※ 당일 포럼 주제와 발표자
안동교회 기독청년면려회의 태동과 발전(임만조 장로, 안동교회 원로장로)
통합교단의 기독청년면려회 역사와 발전(이교남 목사. 주영연구소 대표)
합동교단의 기독청년면려회의 역사와 발전(모형호 목사, 새 부안교회. 합동)
기독청년면려회와 안대선 선교사(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담임)

   
 

100주년 기념대회를 주최한 안동교회 김승학 목사는 "안대선 선교사의 면려회를 통한 헌신이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며, " 지난 은혜의 100년을 감사하는 동시에 새로운 100년을 향해 거룩한 모험을 시작하자"고 전했다.

기념대회에서 안동교회 남선교회 회원들이 '안동교회 기독청년면려회 100주년 비전선언문'도 발표했다. 회원들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사역(使役)을 살펴보며, 미래의 역사(役事)를 소망하면서 날로 쇠약해져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안동교회는 안동시의 명물
안동시내에 들어서면 오래된 석조 교회당과 신축된 고층건물이 눈에 띈다. 1937년 4월 6일 준공한 2층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등록문화재 제654호)과 2009년 8월 8일 준공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안동교회100주년 기념관이다.

6.25 참화로 안동 시내 건물이 대부분 전소되었으나 1940년에 설치된 안동역 급수탑과 1937년에 준공된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만이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안동역 급수탑은 이미 오래전 2003년 1월 28일에 제49호로 등록문화재가 되었고,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도 늦었지만 등록문화재가 된 것이다.

안동교회는 한일병탄 한해 전인 1909년 8월 8일 8명이 함께 모여 집회를 가짐으로 시작되지만 교인이 증가하여 현 교회 예배당 경내에서 여러 모양으로 선교사 임시주택(큰 기와집 두 채) 과 천막교회(Tent church)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으며, 안동 성소병원도 여기서 시작된 것이란다.

경북지방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것은 부산 주재 배위량(Rev.W.M.Baird)선교사가 1893년에 선교여행으로 시작되었고, 대구주재 안의와(Rev. James E.Adams)선교사가 1902년에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방을 순행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들은 권서인과 함께 복음서 쪽복음을 팔기도하면서 국곡교회와 풍산교회를 설립된다.

이후 1903년에 베럿(Rev.W.M.Berrett), 부해리(Rev.H.M.Bruen) 두 선교사의 순행으로 방잠(현 와룡면 나소동)에서 기독교 집회가 1906년에 개최되어 참석했던 사람들이 각기 자기 마을에 교회를 설립하게 됨에 영주 지곡에 1907년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렇게 안동 인근과 시내에도 믿는 자들이 생겨남에 1908년 안동 선교부가 설치되어 쑈텔(Rev.C.C.Sawtell)선교사가 주재선교사로 활동하는 가운데, 풍산교회 교인 김병우씨를 매서(당시 복음서를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사람)로 파송하여 서문외(현 안동교회 건너편 대석동 대석상회 자리)에 있던 초가 5칸에 서원을 열고 교인들을 모아 예배가 시작된다.

1909년 8월 둘째 주일 처음으로 예배드린 감격스러운 이 날이 안동교회의 창립일이 되었다. 처음 예배드린 교인은 김병우 외에 강복영, 원화순, 원홍이, 권중락, 박끝인, 정선희, 김남홍 등이었다. 선교사들의 임시주택으로 옮겨다니던 예배 처소를 1914년 현 100주년 기념관 자리에 목조 2층예배당을 건축한다.

1910년 8월 18일에 최초의 학습교인 15인, 1911년 3월 2일에 최초의 세례교인 9인, 1911년 8월 17일에 최초의 유아세례 교인 3인을 세우고, 1911년 9월 김영옥 목사가 초대목사로 취임, 1913년 7월 20일 초대 장로로 김병우 장로가 장립함으로 경안노회에서 처음으로 당회가 조직되었다.

   
 

안동 인근 대부분의 교회(20여개)를 세워
안동교회가 안동시내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일은 교육과 의료 봉사 그리고 전도를 위한 교회 개척사역이었다. 안동읍 변두리에 전도대를 파견하고 열매를 맺으면 교회를 세웠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① 수상교회 (1924년부터 전도대 파견, 수하리 교회)를 시작으로 ② 이하교회(1924년) ③ 송현교회(1937년) 등 적극적인 전도활동으로 여러 교회가 생겨났다.

안동교회는 교인수가 늘어나자 시내를 동서로 하여 안기교회(1926, 현 안동서부교회)을 분가한다. 또 1932년에는 신세교회(현 안동동부교회)를 분가한다. 두 교회 모두 일제 말 탄압으로 안동교회에 통폐합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분립하여 현재의 안동서부교회와 안동동부교회가 된다. 1950년 태화동 함석집 6칸을 매입하여 1953년 태화 교회로 1965년에 도원교회로 변경되었다.

용상교회는 일제 강점기 성소병원이 지원한 용상기도실이었는데 일제 말엽 안동교회에 합병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용상교회로 분립했다. 이후 안동감리교회의 설립도 후원했다. 1953년에는 안동성결교회 설립도 후원하여 교파를 초월하여 안동지역에 기독교회가 자리를 잡는 데 일조한 명실상부한 큰집이다.

인근 농촌지역의 교회들도 대부분 안동교회가 개척하였는데 길안지방(1950) 이어 금곡교회,용계교회,송사교회를 개척했고, 1968년 묵계교회를 개척하여 1975년에 한국선교 90주년 기념 개척교회와 동시에 고 김수만 장로 기념교회로 예배당을 신축하게 된다.

1955년에는 임하교회를 1956년에는 금소교회를 설립하고, 이어 신덕교회를 개척했다. 1957년에는 와룡지방에 주하교회를 설립하고, 이어 명잣(명계)교회를 개척했다. 1968년 북후지방에 섶밭(신전)교회를 1969년 서복수 집사의 전도로 시작하여 1975년 오산교회를 설립에 이어 182년에 현내동에 현내교회를 세웠다.

   
 

안동교회 목회자들
창립 이래 111년간은 담임목사는 9대, 8명의 목사가 시무했는데 제 1대와 6대는 김영옥목사가, 7대는 37년(김광현목사) 8대는 24년(김기수목사)을 시무하여 역사에 비해 목회자는 많이 갈리지 않았다. 또 분가 개척은 하였어도 한번도 분쟁으로 인한 교인 이탈이 없는 교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중 1대 김영옥목사는 연동교회 김형태목사의 조부이고 4대 박상동목사는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박대선목사의 부친이다. 5대 임학수목사의 장남 임상경 장로는 본 교회 시무 장로를 지냈다. 7대 김광현목사의 장남 김서년목사는 미국LA 영은교회를 거쳐 서울 벧엘교회에서 시무하다가 은퇴했다.

특히 8대 김기수목사는 1994년 9월 제 79대 총회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안동성서학원 원장으로 23년간 사역하던 중 김광현목사 후임으로 부임했다. 우리 총회를 대표하는 큰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는 데 여성안수도 이때 통과된다. 장남 김신 목사는 미국 LA에서 라성빌라델비아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9대 김승학목사는 부목사를 거쳐 미국 유학중 박사 학위 논문을 중단하고 두말 없이 교회의 부르심으로 순종하여 2004년에 부임해 현재 17년 째 시무중이다. 역사있고 평안하며 은혜로운 교회는 달라도 무언가 다른 것이 김광현목사는 김기수목사를 김기수목사는 김승학목사를 모두 당회에 천거 하여 반대없이 청빙하였다.  

그 교회를 가장 잘아는 사람은 바로 목회자다 교회가 교회를 가장 잘아는 목사에게 후임 천거를 의뢰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다. 다수결이나 민주주의라는 것도 주님 안에서의 질서를 앞서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사심이나 권력연장이라는 인위적이지 않기에 통용되는 것이기에 모든 교회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인 것은 사실이다.  

   
 

안동교회의 지역사회의 정치 사회적 위상
안동교회는 경안노회의 중심교회로서 건국 초기에 입법의원을 지내고 총회장을 역임하신 김광현 목사가 원로목사로 계시던 교회로 유명하다. 이어 김기수 목사는 약관 43세에 정년 은퇴하는 김광현목사에 이어 교회를 섬기다가 은퇴를 하므로 두 명의 원로 '김 목사님'을 모신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한 교회에서 두명의 총회장이 난 것도 처음이다.

이는 두 목사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안동교회의 축복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많은 교회에서 비일비재한 전임자와 후임자의 갈등과 불변이 왕왕 화제가 되지만 안동교회에서는 큰 족적을 남긴 두 분이 생존하였음에도 한번도 불편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양반의 고향다운 일이라고 보여진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유지해온 유교적 전통과 양반의 본고장인 안동인들의 충효사상이 꽃피운 결과로 본다. 김기수 목사는 출타 후 귀가하면 반드시 윗어른에게 '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의 도리를 김광현목사에게 잊지 않았다고 한다.

   
        * 3대 목사 전경

그리고 이 두분의 교양과 지성 그리고 영성의 후덕함을 이어 받은 김승학목사의 충효목회가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다. 김승학목사는 한양공대와 장신대를 나와 5년 6개월 동안 전도사와 부목사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중 전임 김기수목사의 부름을 받고 귀국한다. 총회 세계선교부장을 지내고 경안노회와 경안성서 신학원 안동성서병원의 모태인 안동교회 위임 목사로의 위상과 경안대학원대학교 책임자로 봉사하고 있다. 또 전경상장로와 김대성장로는 기독학생운동(KSCF) 지도자들로 전교조 초기 활동으로 5공화국 시절 큰 시련를 겼기도 하였다.

   
 

그리고 1980년 30차  '전장청'(회장: 김윤환) 겨울대회가 '기독청년과 사회정의' 라는 주제로 안동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계엄하로 청년들의 집회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고 김광현목사의 보증으로 겨우 대회가 열렸으나 많은 청년들이 모여 이에 대한 후유증도 있었지만 모두 김광현목사가 책임을 지고 수습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87년 또 다시 여름대회로 안동서부교회에서 전국대회가 열렸다.  

최근에는 총회 재판국장을 역임한 권헌서 장로(변호사)가 안동교회 장로다. 그는 총회 헌법위원회 등 법리부서에서 활약하고 있다. 서울대 출신으로 변호사 자격을 갖은 장로는 흔치 않아 교회법과 교회분규의 법리와 소송에 전문성을 갖고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독청년 면려회(Christian Endeavor Sociaty)
3.1 만세 운동 후 교회로 모여든 청년들의 신앙활동을 위하여 안동주재 선교사 안대선(W.J.Anderson)의 지도로 1921년 2월 5일 안동교회 기독청년 면려회(C.E)를 당회에서 허락하여 조직하게 되니 이것이 한국 기독 청년면련회의 효시가 되었다.

면려회는 교회봉사 및 대사회사업으로 야간학교 개설, 금주운동,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지, 농촌 사업 등 범 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면려회 운동은 1921년 6월 7일~9일 경북 연합대회가 본 교회에서 개최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924년 12월 2일 서울에서 기독청년면려회 조선연합 창립총회를 한다.

여기서 안대선 선교사가 총무, 안동교회 기독 청년면려회 회장 권중윤이 부총무를 맡아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해방 후 고등 CE, 청년CE, 장년 CE로 분할되어 오늘의 고등부, 청년회, 남선교회 전국연합회로 발전하였으며, 장로교 교단에 따라서는 면려회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곳도 있다.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
돌제단을 쌓아 올린 것처럼 웅장하고 견고한 자태의 독특한 건축물은 당은 1926년에 신축 기성회 조직, 1936년 6월에 기공하여 1937년 4월 6일에 준공한 것으로 안동 선교부, 안동교회와 경안노회지역내의 온 교회의 협력으로 경안지역의 중심지에 세워진 것이다. 이를 설계한 이는 미국선교사 보리스로 이화여대와 대구의 영남신학교 등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공은 당대 한국엔 이런 기술이 없어 중국인 계통의 기술자들이 동원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회 4대 장로 나와
이중희 장로는 1913년 4월경 계명학교 교사로 안동에 이거하여 1915년 5월 7일 본 교회 장로로 장립한다. 2대 이재삼 장로는 그가 젊은시절 김천 장날 전도지를 얻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를 비롯한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48년 3월 15일 본 교회 장로로 장립하였다. 제 3대 이인홍 장로는 3.1운동 당시 임동 협동학교 출신으로 1964년 12월 13일 장로로 장립받았다. 4대 이정일 장로는 7남매중 유일하게 본교회를 지킨 이로 1983년 5월 8일 장로가 된 이래 안동중앙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재정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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