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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공성 어디서 오나(1)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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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11  16: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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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인질링에서 나타 난 성직자 상  

1. 체인질링에서 나타 난 성직자 상
2. 조성돈 교수의 "사유화와 공공성" 강연

Changeling(체인질링)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는 데 이 작품은 1928년에서 1930년까지 와인빌 양계장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2005년에 만든 영화였다. 실재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가 실종되자 LA 경찰은 5개월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과 수사에도 아이의 행방을 찾지 못하자 시민들은 경찰의 무능과 태만을 비난이 커져갔다. 실화를 소재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아동 범죄, 여성운동, 부패한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고발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탄압을 고발한 영화로 큰 흥행이 된 바 있다. 여 주인공으로는 죤 보이드의 딸로 유명한 안젤리나 졸리다.

싱글맘 크리스틴은 전화 교환원으로 9세의 외동 아들 월터와 행복하게 살지만 아들을 실종한다.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실종 24시간이 지나야 조사를 한다고 하면서 그런 아이들은 보통 99% 아침이면 돌아온다는 답을 듣는 다. 다음 날 수사가 시작되지만 5개월이 지나 경찰은 일리노이에서 한 아이를 데려온다. 실종 아동을 찾지 못한 경찰에 대한 비판을 만회하려고 많은 매스컴을 동원하여 기차역에서 극적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경찰에 말한다. 그러나 경찰은 아이가 자라면 변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진짜가 아니면 자신이 책임진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여러정황으로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느끼지만 당시 경찰은 여성을 무시하고 묵살하고 욱박지르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 여성도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이을 찾기 위한 본능적 저항을 한다. 이는 사회정의나 경찰경시가 아닌 모성 본능이다. 그러나 이 유난스러운 여성을 귀찮하 하는 경찰은 엉터리 정신과 의사에게 면담을 하고 그래도 따르지 않차 그녀를 경찰직권으로 정신과 병원에 강제 구금한다. 이것은 치료목적이 아닌 격ㄹ기와 수용소로 인간 존엄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이렇게 외롭게 경찰과 투쟁하는 이 여성에게 한 구원자가 등장한다.

그는 바로 세인트폴 장로 교회의 구스타프 브리글렙 목사다. 그는 지성인으로 당시 LA경찰의 부패와 폭력적 시민통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당시 경찰은 국민으로 부터 위임 받은 힘과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민의 봉사자가 아닌 억압자가 된 것이다. LA 경찰의 자신들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불법 감금도 저지른 것이다. 병원도 마찮가지로 의사는 그녀가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고 있다고 쇠뇌시키고 강요하며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서류에 서명하면 퇴원시켜주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그녀는 받아드리지 않는 다.

결국 이런 반발을 억제하고자 의료진들은 그녀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려고 하고 그녀를 도와주려던 여성도 끌려가 전기 충격 치료를 받게 된다. 그후 한 경찰에 의하여 어떤 농장에서 소년들이  유괴되고 살인도 했다는 단서를 잡고 현장을 급습하게 되고 이후 도망간 범인도 체포한다. 이렇게 진실이 드러나자 시장과 경찰청장은 좌천되고 반장은 면직된다. 그 때 까지 당연시 된 악법과 관행도 개선이 이루어지게 된다. 범인 고든은 모든 1급 살인혐의 유죄가 결정되어 독방에서 2년간 복역 후 사형이 선고되고 크리스틴은 경찰을 상대로 하여 손해배상도 받게 된다. 

   
 

세인트 폴 장로교회 구스타프 목사
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지는 않치만 세인트 폴 장로 교회의 구스타프 브리글렙 목사의 역할이나 비중은 그야말로 크다. 대형교회 목회자로 그는 지식인으로 신학교와 신앙에서 배우고 확신한 대로 인간의 아픔과 아동과 여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생명에 강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이런 문제에 관심 갖지 않아도 개입하지 않아도 목회하는 데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고 회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사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인데 지식인 특히 성직자의 역할은 그야말로 막강한 것이다.

교회에는 어디나 그 목사를 존경하고 따르는 교인들이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무엇으로  교인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을 까? 은혜로운 설교와 푸근한 인상과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안에서 교인들과의 것에 머문 것이다. 그러나 한 지역에 자리한 교회와 목사는 그 교회 교인들만의 목사는 아니라는 마음으로 목회한 이들은 많다. 바르트가 스위스의 사회당을 지지하고 그의 신학사상을 잉태하게 된 배경에는 자펜빌의 산업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가난한 목부들의 처절한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에서 목회한 적이 있는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사상도 그 지역 자동차 공단의 가난한 유럽의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기인한다. 브라질 레시페의 주교였던 돔 헬더 카메라는 ”내가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돕자고 하면 나를 천사라고 하지만 그들이 왜 가난한지에 대해서 말하면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는 말 처럼 지역 주민들의 눈물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민중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목회자나 교회의 공공에 대한 책임과 반응이다. 공공성이란 그 반대를 생각하면 쉽다. 예을 들어 공공성은 개인의 취미나 관심이 아닌 직업이나 사명으로의 공적기능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공성이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국가공무원과 사회적으로 공익적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정신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어 '공공신학' 의 태동도 바로 이런데서 유래한다..   

   
 

목회자는 공공성의 대변자
성직자는 그가 자리한 지역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교회를 통해 구제를 하고 돌아보고 기도를 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다. 예수님도 회당에서 나와 마을로 가시고 중풍병자들과 고아와 과부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먹고 마실 때 바리세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자는 먹고 마시는 자로다“ 라고 교회가 자리한 곳에서의 사람들의 생존방식과 그들이 처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나 예수님도 자기 백성들의 그런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계시기에 그렇다. 그러나 의식만 갖고 나가서 그런 발언과 활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선교를 위해서는 자기 교회 교인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아야 힘있고 능력있는 변혁가가 될 수 있다. 교회가 크다고 부자라고 많이 배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양육하고 교인들의 지지를 받은 목회자만이 나와서 아픔과 고통을 당한 심령들을 위로 할 수 있다. 성실한 목회자일 때 존경받는 목회자일 때 목사는 비로써 사회적 발언을 할 수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는 단 한번 구스타프 목사의 설교 장면이 나온다. 그는 경찰의 폭력과 부정의에 대하여 가감 없이 비판한다. 그리고 교인들은 긍정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본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치만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성직자의 역할과 교인에 대한 것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생 추구해온 사회선교나 하나님의 정의 구현같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장로교회라는 곳의 역사성과 현재성이다. 아주 작은 곳이라도 제대로 된 장로교회의 목사라면 그것을 교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칼빈의 개혁정신과 그것을 정치제도로 이뤄 낸 화란의 총리를 지낸 아프라함 카이퍼의 역할에 주목한다. 화란은 독일 다음으로 장로교 정신이 깊이 뿌리를 내린 국가다.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등에서는 식민지지배로 욕도 먹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고신이나 합동측 인사들이 많이 유학을 다녀온 화란의 자유대학도 카이퍼가 세운 곳이다. 서울대의 손봉호교수나 총신대 정성구 학장등이 졸업을 했고  장신대 최윤배교수도 공부한 곳이다. 오늘날 오이코스 크레딛으로 불리는 소액은행도 화란에서 출발했다. 육지가 해수면 보다 낮은 풍차의 나라 나라 평생을 헌 티셔츠 하나로 나지만 장로교 정신이 녹아있는 나라이며 오늘날 공공신학의 태동을 알린 곳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구스타프 목사 처럼 하자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지적 감수성과 용기, 그리고 정의로운 행동을 지지하고 장로교회 목사로써의 표본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다.

   
 

이 시대의 구스타프 목사
지금도 도처에서는 힘있고 불의한 방법에 의하여 재산이나 권한을 빼았기고 신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또 무지하거나 몰라서 당하는 억울한 일이나 피해자가 있다. 세월호 사건은 국가의 안정불감증과 돈벌이에만 정신이 없는 해운회사의 초과승선과 짐의 과다에 좋지 않은 일기에도 불구하고 출항을 강행한 것은 자본논리 때문이다. 기간를 초과한 노령화된 배의 불법연장에서부터 해양경찰철이나 초동 보고를 받은 공무원들 대통령에 이르기 까지 하나같이 직무유기고 불법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가족도 그렇고 정당이나 학생들 양심적 시민들이 지금 까지 왜곡된 진상조사에 집착하는 것이다.

왜 다시는 그런 사고나 방치를 없에려면 강력한 책임과 제도방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몇푼 더받고 유명해지고자 하는 일들이 아니다. 여기에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 특히 해외에서도 함께 하는 이유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공공성 때문이다. 교회는 사회속에 있고 변화무쌍한 세상속에 있다. 우리의 교인들은 그런 위험한 곳에 나가 일하고 어울리고 생존한다. 거기 사람들의 안전과 정의, 바른 질서가 있어야 하지 않을 까?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고서야 만이 교적부와 구역회에 자치회에 소속되어야 만이 교인이 아니다. 교회는 이 땅의 구원선으로 선장인 목사는 그가 자리한 지역의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의 담지자가 되야 하고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 못지 않게 이 땅에서의 생의 의미와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우리 밖의 양이지만 그들도 모두 구원의 초청에서 제외되지 않는 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바 우리 안의 양과 우리 밖의 양들의 삶의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이 땅의 목사여야 한다. 

"공공신학"
기원: 1)1960년대 밸라(Robert N. Bellah)에 의해 시작된 ‘시민종교’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한다. 2)1972년 독일의 후버(Wolfgang Huber)가 ‘교회의 공공성’이라는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발표했다. 3)1974년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공공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소개했다. 4)비슷한 시기에 시카고의 트레이시(David Tracy)가 한 잡지에 ‘공적 담론으로서의 신학’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5)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성은 사회의 규범적인 비전에 대한 공적인 의견을 만들고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공적 영역, 공적실천이다. 공론장의 특징은 공개성과 접근 가능성이다.

공공신학은 세속화 이후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서로 합의와 협력을 통해 공적인 가치를 보존하고 만들어 가는 서구적 기독교 윤리이다.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공공신학이 가지고 있는 성격 가운데 ‘공적분노’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신학이 가지는 세 가지 특징은 1)공공신학은 모든 사람들이 지적으로 동의하고 인지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공공신학은 신앙의 사사화와 개인주의에 반대하고 성도들의 삶이 교회 내적윤리로 환원되는 것을 반대한다. 3)공공신학은 사회참여의 당위성을 넘어 그 방법의 정당성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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