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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각 목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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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26  00: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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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근 목민상 1회 수상자로  

올해 11주기를 맞이하는 고영근 목사 추모행사에 처음으로 제정된 목민 고영근 기념삼 수상자로 차선각 목사가 선정되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3일(금)오후 3시에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추모행사에서 시상한다. 이 상은 거룩한 빛 광성교회를 설립하여 목회하다가 65세로 은퇴한 정성진 목사(크로스로드 이사장)가 고영근 목사의 유지를 기념하고자 제안해 이뤄진 것이다.

선정위원회는 김동엽 목사(전 총회장) 정봉덕 장로(전 사회부 총무) 한국일 교수(장신대 은퇴) 유재무 목사(예장뉴스) 고성휘 박사(고목사 막내 딸) 5인이다. 여기서 목민 고영근 목사의 생전 사역이었던 고아원과 마을 목회, 기독교 지도자 교육, 부흥사역, 민주화와 인권운동으로 남기신 유업을 기념하는 실천적 사역을 하신 분들을 추천받아 최종 선정한 것인데 첫회라 사역내용보다는 고목사와 함께 하신 분들을 대표하여 정했다는 후담이다. 

1회 시상자이신 차선각 목사는 현재 안산에서 안산제일교회에 출석중인데 2012년 안산 고대병원에서 은퇴하시기 까지 원목실장으로 18년간 사역하셨다. 사역의 마지막은 병원선교를 하신 셈이지만 안산 YMCA 이사장과 2012-2014년엔 전국 연맹 이사장도 지내셨다. 그리고 고영근 목사를 도와 목민선교회 임원으로 고 목사님 소천시까지 충성하신 분들 중 한분으로 고목사 임종시까지 활동한 목민선교회 임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출생과 교육
차 목사는 1942년생으로 평북 선천에서 출생하여 한국전쟁후 월남해 부산에서 부산고등학교 졸업후 국립 수산대를 다니면서 KSCF(기독학생 운동)에 투신했다. 유신정권의 탄압인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고 이후 와해된 KSCF 총무 대행으로 75년에 약 8개월간 서울서 지내기도 한다. 부산지역에서 김광일 변호사, 최성묵 목사, 송기인 신부등과 같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40세에 장신대 77기로 졸업한다. 또 장신대 80기인 이형기목사(전 경주제일교회)를 주선하여 같이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장신대 재학중에는 압구정동에 신상길 목사가 개척한 현대교회에서 이화여대에서 해직당하신 서광선 목사를 도와 평신도로 교역자로 협력 목회를 하셨다. 83년 NCCK 훈련원의 부장으로 부임하여 88년 평화통일선언의 실무를 감당하셨고 모시던 NCC 총무 김소영 목사가 기독교서회 사장으로 부임하자 서회로 가셔서 총무 국장을 지낸 후 기독교교육협회 총무를 지내기도 한다.

김소영 목사는 카나다에서 실천신학을 공부하신 분으로 부산 장신대 학장으로 계실 때 부터 인연이 된다 또 통합 총회 교육부 총무를 지내고 NCCK 오시자 훈련원 원장이신 오재식 선생을 모시고 일했는 데 오원장도 기독학생운동의 선배로 인생중 한분이시다. 또 최근 회고록을 낸 안재웅 박사와는 갑자로 평생 에큐메니칼운동의 동지로 살아오셨는데 한국 YMCA 연맹의 후임 이사장이 되시는 데 서광선 박사와 같이 힘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차목사는 NCC에 근무할 때 신군부에 의하여 폐쇄되었던 목요기도회를 부활하는 데 인권위원회와 함께 힘을 쓰셨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마침 고성휘 박사가 지난 기독교사상 10월호에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정리한 연구논문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보면 가장 많은 설교를 한 분은 기장의 박형규 목사(서울제일교회)로 17회고 목사는 11회이지만 가장 많이 연행된 기록으로는 5회로 1위였다.  

   
   
 

차목사는 1942년 평북 철산군에서 부친 차형립과 모친 이인관의 장남으로 태여 나지만 일제하 부친에 이어 모두 이남으로 내려올 때 6세였다. 수색을 거쳐 아산 송악에서 초등학교를 마쳤고 이후 작은 아버지가 계신 부산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대신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1959년 국립 수산대에 들어가는 데 거기서 기독학생운동을 만난다.

부산의 국립 수산대 동기로는 오창학 목사(신촌교회 원로)와 채규웅 선생이 있다. 차 목사의 인생 전환점이 된 SCM(Student Christian Movement)을 만난 것이 가장 극적이다. 부산에는 손명걸 목사와 이직형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원성희, 해먼드(함명도) 캐나다 선교사에게 지도를 받았는데 이 분들이 신학도의 꿈을 키워 주셨는 데 졸업하면 캐나다 유학을 주선을 약조했었다.

   
 * 은퇴한 동지인 고 이명남, 백도웅 목사와 교토 동지사대학에서 이원중 선교사와 함께 

인생의 전환점
강문규 선생(한국 Y운동의 산증인)은 Y 학생부 간사로 시작하여 당시 한국기독학생운동의 살아있는 전설이였다. 당시 서울대 기독학생에는 5공 실세 3허의 농과대학의 허문도가 있었다. 매년 여름, 겨울 캠프에 참여했는 데 강원용 목사(기장 경동교회) 와 문동환 박사(한신대) 김용준 교수(고대 교수, 도원동교회 장로) 가 계셨다.

당시 경북대의 손인웅(덕수교회 원로목사)와 한남대(숭전대)의 주연도(여수성광교회 원로목사) 정장복(전 한일장신대 총장) 숭실대의 김호일(서소문교회 원로목사), 이용남 목사(장석교회 원로)와 대학시절 만났고 함께 평생을 같은 교단에서 후배 목사로 지내게 된다.

결혼과 처가
1970년에 결혼을 하게 된 사연은 극적이다.  사모는 서울음대 졸업후 서울 명성교회 음악교사를 하고 있었는 데 고향 김해로 주민등록 하러 왔다가 미션 스쿨인 이사벨 여중 교사가 된다. 감전교회 권사셨던 장모님도 불교학교 재학중인 것을 탐탁치 않으셨는 데 잘되었다고 생각했는 당시 나가던 성동교회 반주자로 누가 소개를 하게 되면서 나와 가깝게 된다.

그러사 결혼 후 차목사의 민주화운동으로 사모도 학교를 그만 두고 취미로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것이 생업이 되어 평생 자녀들과 가정을 뒤바라지 한다. 차목사가 평생 적지만 돈을 벌기는 했지만 정기적으로 가정에 준 적은 없다고 하는 데 후배들 어려운 이들과 나누고 쓰는 천성 때문이었다고들 한다.

처가의 장모는 안씨 가문으로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첫 부인이신 안00 사모의 동생이 오빠다. 그러니 주광조 장로(주기철 목사 아들)가 외삼촌이시니 외숙모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장인이 세상을 일찍 뜨시고 딸들을 키우셨는데 경남여고를 나와 여자로 서울음대에 갔으니 본인도 그렇고 어머니의 기도와 정성이 대단 했던 것으로 기억하신다.

   
 * 제자 정연원목사가 시무하는 오사카교회에서 

부산에서의 민주화 운동
부산서 다니던 성동교회는 유형심 목사가 계셨는데 장신대 박창환 목사와 중학 동창이라고 들었고 동경신학대학 유학도 다녀오신 분이다. 또 기독학생운동의 1년 선배 이직형 선생은 훗날 KSCF 연맹 간사와 NCCK 인권위 사무국장을 지냈는데 같은 교회를 다닌 것도 차 목사에게 큰 영향을 준 분이다.

특히 기독교장로회 고 최성묵 목사는 가깝게 지낸 어른으로 미문화원 방화 한 주인공들이 그가 지도한 기독학생들이였는 데 부산 중부교회의 목사로 부산민주화 운동의 개신교의 대부다. 또 초읍교회 김정광 목사가 산정현교회 있을 때 김 강 목사와 이응삼, 허성환 목사가 부목사를 한다. 맘좋은 차목사는 이렇게 교단을 초월하여 허물없이 사람들을 사귀고 지내왔다.

부산에 노경규라는 친구가 있는 데 김대중 선생의 부산 비서실장쯤 되였다. 당시 김영삼 씨의 정치적인 고향인 경상도서 김대중 선생을 위해 운동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와 뜻이 통하여 시민사회운동을 함께 하게 되는 데 훗날 서울에 가서는 이 친구를 통하여 동교동과도 연결을 갖게 되었고 양김이 분열할 때 금영균 고영근 목사와 같이 비판적 지지파로 DJ를 지지하게 된다.

1972년에는 영남지역(부산 대구) 고등부 간사로 당시 고교생이던 정연원 목사(오사카 교회)와 김병호 목사(재일대한 총간가)와 인연을 맺기도 한다. 지난 2013년 4월에 오사카를 방문하여 정연원 목사도 만나고 오사카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사업도 해보지만 물건을 주고 수금을 못해 망했다.

모친은 서울서 함께 사시다가 2000년대 대전의 동생 집에서 세상을 뜨셨다. 40세인 1982년 신군부 전두환 군사정권이 집권하자 전국의 민주화세력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저항했다. 임기 5년의 시간을 기다리자니 운동이 장기화 될 것 같아 생존과 사명을 담보할 수 있는 신학교로 대거 입학을 가게 된다.

가보니 기독학생 운동을 하던 서경석, 전응휘, 김민수, 강우경, 조선대 해직교수인 임영천 장청 출신의 임동규, 김은일, 김일재, 허춘중등이 있었는 데 77기로 동기가 된다. 그 외 김영락, 윤창현, 임대식, 이정수, 허성환등 젊은 구룹은 현대신학연구회로 우리 시니어들은 송정홍(송진섭 안산시장의 형)과 임동규, 김은일등은 목회연구회를 만들어서 써클활동을 하였다.

   
                    * 민청학연 사건으로 서울 KSCF가 와해된 가운데 선배 이직형 선생에 이어 총무 대행을 한다. 

77기로 장신대 늦깍이 입학
처음 서울서는 향린교회를 다니다가 부산에서 알고 지내던 신상길 목사가 당시 지식인 중산층의 거주지인 현대 APT안에 세운 현대교회로 옮긴다. URM을 하던 분으로 의식이 있는 분이다. 사임후 서울대학서 해직된 한완상 박사와 여성신학자인 최만자 선생이 설교를 하게 된다.

교회 구성원들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모두 깨여 있는 진보적인 분들이다. 김판술장로나 조창현 교수(한양대) 정희경 현대고등학교 교장(전 국회의원)의 남편 남양 알로에 회장등이 교인이었다. 그 때 이화여대서 해직된 사광선 박사가 장신대에서 청목을 하고 안수후 목회를 하였지만 이내 복직이 돼서 주일 날 만 설교만 하고 목회행정은 못해 동역한다.

그리고 2012년 서광선 박사가 세계 YMCA 회장을 역임할 때 한국 YMCA연맹 전국 이사장을 하게 되는 인연이 있다. 안재웅 박사는 동갑이지만 국제적으로나 국내 시민운동에서 큰 족적을 남긴 동지로 기억하신다, 신사다운 매너와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부럽다. 지난 11월 회고록을 내는 행사에도 직접 참석하여 감격적인 현장에 함께 한 것이 기쁘시다는 평이다.

훗날 안재웅 박사가 Y 이사장을 될 때 세계 Y회장을 역임한 서광선 박사를 도와 힘을 쓰기도 했는 데 서박사와는 기독자교수회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오랜 사이다. 또 박상증 목사는 당시 그 또래들의 우상이었는 데 시민운동을 하시다가 박근혜를 지지한 문제로 평가가 크게 엇갈리게 된다. 마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되시고 차 목사와 이계준 교수를 위원으로 천거했지만 차 목사는 동지들 뜻을 져버릴 수 없어 자의 사임하기도 한다.

의리와 정의 사이에서 사익이 아닌 공의를 택한 분이다. 언제나 후배들에게 넉넉한 웃음과 격려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천상 목회자로 고영근 목사의 유지를 기리는 목민상에 충분히 당대의 어른들을 대표하여 드리게 된 것은 잘된 것으로 보인다. 시상 소식을 접하자 " 왜 사람이 그렇게 없나" 라는 소리로 겸양하시는 모습 역시 차목사님 다운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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