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아는 만큼 보인다.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2.21  15:05:30
트위터 페이스북

                보는 것 만으로은 부족하다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많이 알면 더 알게 없는 게 아니라 더 세계관이 열리니 더 많은 의문과 질문이 생겨나서 더 찾고자 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당시 사회가 가장 현자라고 명명한 배경에는 모든 사람들 보다 하나 더 아는 자라는 말이 있다. 그는 평생 자신이 모르는 것을 위하여 많은 이들을 찾았지만 결국 마지막 들은 말은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는 데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이다.

말장난 같지만 무지한 자 배우지 못한 자 깨닳치 못한 자의 눈은 현상의 표피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생각하는 자, 왜 그런지 상고하는 자는 그 배후가 보이고 결과가 예측된다. 따라서 지식인의 임무는 중요하다. 신학교에 갔을 때 성경공부 수준의 성서관을 깨우쳐 주신 분은 고 김영운 목사로 한스웨버의 성서해석방법론 소개였다. 1994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CCA-AEC 프로그램에 강사로 오셔서 소개했는 데 참가자들에게 큰 감동이 된 적이 있다. 

재구성해보면 과거엔 문자를 통하여 정보를 얻었다. 유럽도 그렇고 쿠테베르크의 활자 발명으로 인하여 지식은 보편화된다. 특히 종교개혁에 대한 이면에는 이런 정보의 균등성, 확장성을 통하여 개혁사상이 전래된 것이다(이전에는 어떤 지식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 한정) 근대화 최초의 정보 매체는 활자화 된 신문이다. 그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 혹은 그 신문을 사거나 볼 수 있다는 공간적 제약이 있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라디오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전달 매체였다.

그리고 더 전문적 지식과 영향을 주기 위한 잡지가 나온다(사상계,선데이, 주간동아,말,뉴스저널등) 잡지는 신문보다는 헐씬 더 영향력이 있었다. 러시아 혁명은 바로 이 잡지를 통해 당의 지침이나 사상,이론을 보급했고 학습을 통해 사상과 현신실의 일체감을 갖게 한다. 신문은 일정한 지역에 배포망을 통해 전달되지만 잡지는 멀리 그리고 완벽하게 전달되는 매체기 때문이었다. 말이 길어졌는 데 그 다음은 시청각으로 TV다.

그러나 초창기 영상은 영화나 연속극 스포츠 중계에 한정되었다. 뉴스라는 형식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국민적 욕구를 체워내는 패널을 통한 궁금증 해서가 아닌 국가정책이나 정보생산자와 전달자, 그것을 사려는 자의 일방적 전달이었다. 보는 매체에서 듣는 것으로 그리고 보는 것으로 지금은 쌍방향의 IP에 메타버스까지 발전 확대되었다. 그러나 역시 다시 E-Book으로 역시 보는 매체도 발전해가지만 최근 들어 다시 펜으로 쓰는 것이 유행이다. 성경필사본도 그렇고 시인들도 다시 노트에 필기체 글을 쓴다. 컨퓨터의 활자보다는 확실히 큰 감동을 준다.

   
 

역사 공부의 필요 

그러나 오늘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그져 보는 것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스웨버는 성서연구방법론에서 이 성서라는 것이 자국어도 아니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오랜 옛날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문자적 이해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잘알 듯이 성경은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며 시대별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쓰여진 자리도 그렇고 그 안에 사람들도 그렇고 주제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의 구성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도 아니고 유전을 구술로 다시 기록으로 사본에서 필사로 그리고 장절을 넣는 형식으로 진화된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따라서 아무리 원본에서 가까운 번역된 것이라도 우리의 문자문화와 정서로만 읽어서는 그 의미들을 본래대로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저자의 본래 의도와 본문의 상황을 있는 심미하며 받아드리는 것인데 역할극을 통하여 이를 체화하기도 한 기억이 있다. 누가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나오는 배역을 나누고 이를 현대화 시켜보는 것이다. 그 사람의 절절한 상황에 서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몸으로 읽는 성서다, 이는 실제로 그런 현장이나 상황에 참여하는 것이다.

억압받는 백성인 노동자들의 시위현장, 농민들의 삶의 한복판인 농활을 체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뇐 노동과 좌절 미완의 꿈도 듣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3중 읽기인 눈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읽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예을 들어 지금 기우려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언론들이란 국가나 그 사회의 힘있고 권력있는 이들이 사는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그런 분위기와 전통과 질서를 만들고 쇠뇌시키는 중이다. 그러나 이런 언론 시장의 재편으로 다양한 지평이 열린다.

미디어 시장의 경쟁은 결국 1인 미디어를 만들어 내고 페이스북과 트윗터로 시민이 가자라는 의미로 뉴스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중이다. 따라서 옛날처럼 한 두개의 매체를 보고 판단에서 복잡해기는 했으나 다양한 뉴스를 통하여 가리지 않으면 왼눈박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설교와 마찮가지로 뉴스도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언제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노출할지를 결정한다. 어떤 본문으로 어떤 톤으로 어디가다 강조점을 둬서 메시지를 전할까 하는 목사와 마찮가지라는 말이다. 공영방송이건 민영이건 자본과 생존을 위한 미디어는 모두 같다.

   
 

힘있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특히 대선과 같이 앞으로 5년간 국가 권력을 좌우지 하는 시기의 언론들의 사정이란 줄서기를 넘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미 언론고위층의 정치 이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에게 정당에게 줄을 대느냐가 언론인으로 제 2의 인생을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도 마찮가지로 바로 정치인으로 가는 것에 대한 규제가 있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공직 제한은 선출직의 경우 3개월전에만 사직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을 정한 이들이 모두 정치인이거나 정치에 기대이들로 느슨한 면이 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특이한 것이 현 정부서 임기도 안 끝낸 고위직 3인이 대선에 출마한 일이다. 과거 정부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나오는 것은 모르나 이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러나 완벽하게 금하는 것은 문제지만 앞으로 공직 출마 1년전엔 사임해야 한다는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 재직시절 인사권자와 척을지고 몸 값을 올려 사직 4개월만에 정당에 몸담고 대권 후보가 되었다. 최재형 감사원장도 임기를 마치지 않고 대권후보가 되기 위하여 사직하고 바로 정당인이 된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시간적으로는 좀 되었다고 하더라도 비슷하다. 대통령병도 아니고 이건 정말 문제다.

이런 것이 통용되면 전례가 될 까 하는 데 그렇게 되면 공무원들이 공무로 일을 열심히 하기 보다 자기 앞가림을 위하여 정치를 하도록 방치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후보들이 내는 공약도 보면 자기가 몸담았던 곳에 대한 선심인데 검찰청 재정 독립이나 법무부 지청이면서도 장관의 지휘를 안받겠다는 말은 여야를 떠나 참 큰 문제로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시대의 군이나 국정원 경찰등은 완전히 문민통치가 가능해 보인다. 남은 곳은 검찰과 언론이다.

그중 검찰은 알다시피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모두 사법연수를 하면서 동기가 된다. 그중 검찰은 가장 많은 숫자와 관행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이번에 확인되었다. 그리고 검찰이라는 조직의 카르탤 때문에 법원사회와 정치인까지 가세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힘있는 조직이된 것이다. 그러면 다른 기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 정부들어 겨우 윤곽을 잡은 검경 수사권의 핵심인  6대 중범죄(정치, 마약, 경제범죄)외의 교통, 가정등은 경찰에게 일임한다는 것인데 검찰은 필요하다면 다시 조사한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조사를 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갖는 데 기소독점주의에 빠지게 된다. 예을 들어 판사는 주어진 사건을 판단만 하지만 검찰은 이것을 기소할 지 공소유지 할지 항소할지 여부등 많은 경우의 수를 갖고 있는 데 여기서 정경유착이나 검언유착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판사도 변호사도 정치인도 경제인도 힘있는 검찰에게 아부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