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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추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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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5  09: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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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추도식

김기만/바른언론실천연대 공동대표/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청와대 춘추관장(김대중 정부)/국회의장 공보수석, 초대 게임위원장(노무현 정부)/한국방송광진흥공사 사장(문재인 정부) 

   
 

70평생. 이런 추도식(追悼式)은 처음이었다. 추도식장에 박장대소가 터지는가 하면, 가슴을 찢는 장사익의 노래가 퍼지고,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들려온다.  24일 오후 5시. 강남성모병원 예식실에서 거행된 <故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추도식>에 갈 때만 해도 평생 처음 보는 진기한 추모행사가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기야 처음부터 좀 수상하기는 했다. 추도식 장소가 병원 장례식장 '예식실'이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예식실이 웬 말?". 그건 마치 '신생아실 옆의 장례식장'처럼 좀 괴이하지 않은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안내인에게 물었다. "장례식장에서 결혼을 하기도 합니까?". 그는 큰 웃음을 터뜨리더니 "신부님이 고인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는 방을 예식실이라 합니다"라고 친절히 답해주었다.
날 좋은 봄날 늦은 오후의 추도식은 적절한 긴장감과 오마이TV의 생방송이 내는 견딜만한 기계음속에 잘 진행되었다. 

전문 연출가가 기획했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추도식에 등장하는 면면도 훌륭했다. 특히 추도사를 여러 명이 계속하면 지리할 것까지 고려해, 추도사를 두 분이 한 뒤 추모시 낭송과 장사익 현장노래를 넣고 다시 두 분 추모사를 듣게 하는 기획력은 지금까지 본 추도식 중 최고라도 해도 좋을만큼 압권이었다. 상임 장례위원장 함세웅 신부님(80)은 "검찰 제도개혁 논쟁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변호사님의 삶이 대안이라고 믿는다. 상식을 잃어버린 시대, 변호사님의 빈 공간이 더욱 아쉽다"는 말씀으로 추도사를 맺었다.

이어 2005년 한승헌 선생님이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회' (사개추위) 위원장일 때 기획추진단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했던 김선수 대법관(61)의 추모사가 있었다.  이후 시 '강낭콩"의 민족시인 김준태(74)가 등장해 천정을 뚫을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77년 '분단시대의 법정'에서 선생님은 두 쪽으로 깨뜨릴 수 없는 '정의(justice)의 금강석'이었다"고 절규했다. 

장사익(73)이 등장했다. 이 민족혼의 가수는 선생님과의 남다른 인연을 밝혔다. 선생님은 당초 작년 9월 당신의 미수(米壽,88세)때 당신의 시 가운데 하나를 골라 노래로 만들어 불러달라고 장사익에게 부탁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시 '나의 길'을 부르면서 장사익은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말없이/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하늘 끝까지/저 하늘 끝까지/나는 말없이/나의 길을 가련다/하늘 높이 깃발 날리며/사나운 이 길을 가야겠다/하늘 끝까지/저 하늘 끝까지>. 한승헌 선생님이 당신의 살아갈 길을 예언하는 듯한 노랫말이었다. 

이어 한국기독교 민주화운동 상임이사인 김영주 목사의 추도사 한 대목에서 모두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1998년 감사원장에 취임한 선생님이 어느 날 "주님께 '감사합니다'라는말을 잘 안하고 살았더니 아예 감사원장을 시켜서 밤낮 감사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는 말씀을 추억할 때였다. 마지막 추도사는 사단법인 "평화의 길" 이사장 명진 스님(72). 그는 "승직을 박탈당하고 세간을 떠도는 제게 오셔서 냉면 한그릇 나누시며 힘든 시절에도 웃으며 같이 가자고 하셨던 고마운 어른이셨다"고 추모했다. 

유가족을 대표한 차남 규무 씨(대학교수)의 인사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아버님이 1975년 감옥에 가셨다가 8년만인 1983년 변호사 자격을 회복했지요. 그런데 곧바로 시국사건 변론을 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가족들은 솔직히 이번에는 좀 안하셨으면 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님이 '내가 이걸 변론 안하면 사람이 아니지'라고 혼잣말 하시는 것을 듣고 말았습니다. 

아버님은 세상이 말하는 용기, 소신, 강단으로 뭉친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안타깝고 애틋한 사람을 '차마' 어떻게 외면하는가? 그 '차마'라는 단어가 아버님의 표상(表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버님의 '명예'는 저희 자녀들에게는 '멍에'입니다. 그러나 저희도 안타깝고 애틋한 사람들 껴안으며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아버님이 남겨주신 가훈(家訓)은 '자랑스럽게 살진 못해도, 부끄럽게는 살지 말자'입니다". 감동, 또 감동이었습니다. 저도 울었고, 여기저기서 곡(哭)소리가 났습니다. 

호상(護喪)을 맡은 세 분을 대표해서 장영달 님(74. 김근태재단 이사장.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4선 의원)이 인사했습니다.  "14일 오전 10시 반에 뵈올 때만 해도 눈도 똑바르고 상태가 좋은 편이셨는데, 한방 치료차 내려갔던 고향땅 전주에서 황망히 가셨다"며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지표였다"고 회고했다.
한승헌 선생님은 언젠가 당신의 삶을 회고하며 "법조인으로는 모진 운명이었다.

검사가 된 1960년에 4.19가 일어났고, 그 1년 후에 5.16이 터졌다. 변호사 전업은 운명이었고, 1965년 남정현 작가의 분지(糞地) 필화사건 첫 변론도 운명이었다"고 회고하셨다. 변호사로서 가장 가슴 아팠던 사건은 1974년, 인혁당(人革黨) 사건이고, 그 주역 여정남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사형 선고 다음 날 새벽의 집단 사형집행이라니ᆢ당신의 아호 산민(山民)에 대해 선생님은 "산골사람 같은 민초들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며 "풍류나 덕담 차원의 아호는 아니었다"고 명쾌히 밝히셨다. 

그만큼 평소 '산민정신"을 소중히 여기셨다. 선생님은 깜짝 놀랄 얘기이지만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싫어하셨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 따라서 인권변호사라는 말은 '헤엄 잘 치는 수영선수'나 '역전앞'처럼 이상한 말이 된다"라는 게 선생님의 일관된 논리였다. 심지어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세 가지만 당부한다 . 인권변호사라고 칭하지 말자. 나를 의롭다 믿고 남을 학대하지 말자.사서 고생하는 변호사, 시대의 선구자가 되자". 

여성들 앞에서 강연하실 때면 "저는 항상 '친여세력'입니다.여성을 좋아하는 "친여(親女)세력'. 이런 말로 분위기를 풀어주시던 다정다감한 선생님. 1981년 동아일보 기자이자 전주고 19년 후배로 처음 뵈온 후 41년을 같이 한 한승헌 선생님은 지식, 지혜, 인품, 겸손함에다 비견할 수 없는 유머, 해학감각을 가지신 보기 드문 '완전체형 지식인'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두의 사람, 즉 앞장서 일을 꾸미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그 대열의 중간에서나마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따라다닌 사람이다"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다. 이러니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같은 전북 출신이지만 26년간이나 고향을 속이고, 5명의 대통령 정부에서 고관대작을 돌아가며 맡고, 예금이 52억원이면서 사회기부는 연간 1만원의 적십자회비가 전부이면서, 지족(知足)을 모르고 74세에 또 총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저 한(韓)모씨 따위와는 질적으로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다. 아, 한승헌 선생님. 참 스승이 드문 시대에 사회생활 62년이 온통 삶의 귀감(龜鑑)이셨다. '선한 영향력'에서 아마도 당대의 최고가 아니셨을까? 

이러니 우리는 그저 "오오메 기죽어!". 평생 몸무게가 55kg을 넘은 적이 없었지만, 선생님은 한 시대의 거인(巨人)중의 거인이다. 선생님 별세하신 하루 뒤인 15일 오전 <산민(山民) 한승헌(韓勝憲) 선생님 별세에 곡(哭)함>이라는 긴 글을 썼다.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것은 다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추도식을 보니 글이 천의무봉(天衣無縫)처럼 또 나온다. 왜일까? 선생님 자신이 용지불갈(用之不渴)의 무한한 '인간 보고(寶庫)'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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