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감, 이대위 손원영 목사 이단 아니다. - 예장뉴스
예장뉴스
뉴스와 보도교계/기관/신학교
기감, 이대위 손원영 목사 이단 아니다.
예장뉴스 보도부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8.15  14:18:33
트위터 페이스북

             기감 총회이단대책위 “손원영 교수 이단이라고 할 수 없어”

평가와 결론  
감리교단 내의 문제이기는 하나 우리교단과도 상관이 없지 않아 보인다. 4년전 장신대 학생들이 채플이 끝난 후 모두 퇴장한 후에 몇명이 무지개색의 옷과 상징인 기를 들고 찍은 사진으로 인하여 징계를 당한 일이 있다. 불복한 학생들이 사회법에 제소하여 징계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문제가 아니다. 

군목입대를 앞둔 학생은 목사고시 합격을 하고도 발표직전 보류되었고 이후 낙인이 찍혀 임지도 고시도 다시 못본 체 군목입대가 좌절되 사병으로 입대했다. 다른 학생은 정신적 심리적 손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중이다. 형사에서 승소했으니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하나는 대전신학대학교 은퇴교수인 허호익 목사의 저서와 강연에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하여 소속 노회가 제소하여 면직출교된 사건이 있다. 현직 교수도 아닌 분이고 자기들 관할내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 내용을 제소 내용으로 삼은 것도 아니러니지만 일사천리로 면직 출교한 것은 과다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하여 당사자가 하도 어이가 없어 항소등 사회법에도 제소하지 않았지만 했더라면 당연히 승소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후문이다. 

사실 이단에 대한 낙인이나 고발 조사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지금 전광훈씨에 대해서 이단시비가 있으나 막상 이단으로는 결정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적이고 보수적이고 언어 실수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단이 되려면 다른 신앙체계를 갖고 집단적으로 지속적으로 신조를 갖고 회합하고 교육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항목으로의 치리는 가능하지만 억지 이단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감리교의 이단재판 아픔 역사 

감리교단이 오래전 고 변선환, 홍정수 교수를 이단으로 만들어 축출했다. 일단의 교권적 보수 세력들의 음모로 재판장소를 빌려주는 곳이 없어 금란교회서 한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면 억지 재판, 교권재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감리교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감리교에서도 손원영 교수의 처신이 일반 목회자나 교회에서는 정서적으로 받아드리기 어려운 점은 있으나 이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또 손원영 교수도 이전의 표현이나 언행에 대하여 사과한 것도 이런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표적이 되고 영웅시 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개신교의 특성상 목사의 설교권이나 행동은 개인에게 절대적 권한이 있고 교회도 독자적으로 당회라는 관할하에서 통제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단의 지침이나 정서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주장은 아예 교단을 나가서 자유롭게 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우리교단의 여성신학자 한분은 그렇게 하고 있다.  

자기가 속한 교단에 대하여 자기의 신학이나 사상과 맞지 않다고 하여 개혁되야 한다는 말은 할 수도 있지만 절차를 지켜야 한다. 교단에는 나름 헌의라는 절차를 통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같은 생각을 하는 회원이나 교회 노회등과 연대하여 하면 된다. 

그런데 혼자 주장하고 같이 해주지 않는 다고 하여 동역자들을 비난하는 등 개인적인 감정 표현은 개혁이 아닌 불평이나 불만에 불과하다. 따라서 어떤 개혁이란 그것으로 인하여 상식으로나 신앙적으로 안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하여 그것의 오류에 대하여 대중적인 이해를 구하는 수고와 노력이 수반되야 할 것이다. 

목사가 과연 절에 가서 설교를 해도 되는 지는 모르겠다. 간단한 축하의 인사나 강연이라면 몰라도 설교까지는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종교간 대화도 좋고 잘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각 종교안의 고유한 문화나 정서를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직자의 언행은 평신도들에게 덕이 안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

      “신학이나 신앙고백에서 이단이라고 확정할만한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손원영목사는 연세대와 미국 GTU에서 공부하고 서울기독대학(이사장: 이강평목사)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그러나 학교서도 해임 되여 지금은 가나안교회공동체를 목회중이다. 

   
 

손원영 교수(서울기독대학)을 이대위에 이단 조사를 의뢰한 기감 남선교회 충청연합회의 제소에 대하여 감리회 총회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김정석 감독)가 지난 11일 감리회본부에서 열렸다. 이대위는 손교수를 면접 조사한 결과  “손원영 교수의 신학이나 신앙고백에서 이단이라고 확정할만한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같은 내용으로는 더 이상 재론 않기로 했다. 

남선교회충청연회연합회는 지난해 3월 이철 감독회장에게 보낸 공문에서 “손원영 교수는 2018년 12월 9일 서울시내 소재 사찰인 열린선원에서 ‘예수는 육바라밀을 신철한 보살'이라는 등의 발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언행을 하였다”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비하와 더불어 감리교정체성 문제로 비화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주실 것”을 요구했었다. 

이대위 심사에 참석한 손원영 교수는 “감리회 목회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는다”고 고백했으며 “다만 선교 대상의 언어와 문화를 고려하여 표현하다 보니 오해 소지가 생긴 것 같다”, ”예수님께서 六波羅蜜을 실천하였다는 말에 대해 수정을 하겠다”고 사과하는 등 1시간여에 이르는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심문 결과는 이견들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손목사에게 이단성을 발견못했다고 결론 지었다. 손교수는 2019년 12월 8일 성탄절을 축하하고자 은평구 소재 태고종 사찰인 열린선원이 연 예수 탄생기념 축하행사에서 “예수님은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었다”를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살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실 때, 종종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과 또 십자가의 삶을 교훈삼아 우리도 육바라밀(피안)을 잘 실천하게 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중생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어느 날 홀연히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모두 열반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설교했다.(설교 내용전문) 

이 사건으로 손교수는 서울기독대학교의 교수재임용심사에서 탈락했다가 복직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손교수는 재임용에 반대하는 일부 학교측 인사들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손교수는 앞서 2016년 1월 중순경 개신교인에 의한 불상 훼손사건을 사과했다는 이유로 대학으로부터 파면당했다가 4년 8개월 만에 법원의 판결로 복직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대위는 이 외 ’퀴어신학‘에 대해 “신학적으로 가능한 주장이나 목회현장에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섣불리 결론 내리기보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

이런 이대위의 결정을 손원영 목사는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은 심경을 남겼다. 

<결과에 승복하기를 기대함>
1. 나의 사건에 대한 감리교 총회 이대위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분들이 감리교 내외에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것은 민주기독시민답지 못한 일이다.
2. 이제 앞으로 한국 감리교가 교리와 장정에 따라 한국문화를 더욱 존중하는 교회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는다.
3. 참고로, 아래의 언론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나의 설교 "예수보살과 육바라밀" 원본을 공유하였다.(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편, <연꽃십자가>, 2020) 가능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꼼꼼하게 읽고 의견을 나눈다면 한국교회가 한단계 성숙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감사> 해방: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단이 아닙니다!!
1.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제가 아침에 올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2.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진행된 심문은 날카로운 공방의 연속이었습니다. 시간은 나의 신앙고백을 정확하게 밝힌 후, 문제가 된 여러 오해를 해명하는데 주로 할애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보살의 의미와 무당 김금화 씨의 소천에 대한 나의 추모글이 주로 논쟁거리였습니다. 나는 내 글이 쓰여진 구체적인 상황(context)을 전제하지 않을 경우, 많은 경우 오해될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신학적 표현을 사용할 때 삼가 조심히 사용할 것을 밝히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의도는 현장 목회자들의 목회나 전도활동을 방해 혹은 폄훼하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오히려 교리와 장정에 명시된 감리교의 신조와 신학지침 위에 다종교 사회에서의 선교 및 종교평화 차원에서 그런 일이 벌러진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3. 특히 감사한 것은 심문을 마친 후 이대위에 참석하신 몇몇 여러 위원들로부터 앞으로 복음선교를 위해 이웃종교와 대화하는 일은 결코 이단이 아니며, 오히려 복음의 정신으로 더욱 정진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역시 한국 감리교회는 위대합니다!!
4. 끝으로, 회의가 논쟁을 넘어 자칫 험악한 비방의 공간으로 변질 될 수도 있었는데 열린 마음으로 회의를 잘 이끌어주신 대책위 위원장이신 존경하는 김정석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이대위 위원님들, 그리고 손원영 대책위 박경양 목사님, 새물결 대표이신 이경덕 목사님, 그리고 오늘 감리회관을 찾아와서 응원해 주신 여러 목사님과 동료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이제 자유입니다^^ 샬롬!(2022.8.11)
* 약간의 사정이 있어 포스팅을 내렸다가 다시 올립니다. 그 과정에서 격려의 말씀에 일일이 응답하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응원과 축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2022.8.14.수정)
----------------------------------------------------------

다음은 손원영 교수가 당시 불교 열린선원에서 전한 설교 전문이다. 

                      예수보살과 육바라밀 

손원영 (마지종교대화가나안교회)

2018.12.09. 열린선원/마지종교대화가나안교회 성탄절 공동축하 

1.오늘 성탄절 축하행사를 열린선원에서 저희 종교대화가나안교회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제 평생 처음으로 절에 와서 성탄절 축하행사를 갖게 되었는데,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지 모르겠습니다. 초대해 주신 법현 스님과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스님한테 절에서 성탄절 행사를 갖는다는 이야기를 처음에 듣고 참 놀라웠습니다. 교회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에 부처님 오신 것을 축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역시 불교는 기독교보다 훨씬 더 아량이 많고 성숙한 종교가 아닌가 싶어 큰 부러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법현 스님에게서 열린선원이 올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행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13 년 전부터 매년 이맘 때 크리스마스 파티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역시 불교구나!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혹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부근에 있는 작은 대학의 신학 교수로 있다가 작년 초 해직된 손원영입니다. 지난 2016년 1월 중순 경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개운사라는 절에 한 중년의 개신교 남자 신자가 밤늦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불상은 우상이라면서 모두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비구니스님인 주지스님에게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말하면서 위협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은 스님은 오랫동안 정신치료를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한 기독교 신자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또 불자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운사 스님과 또 불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제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면 진정성이 떨어지니까, 훼손된 불당을 회복하기 위한 모금을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았습니다. 제 모금활동을 지켜본 저희 대학당국에서는 저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였고, 저는 여러 번 재판을 받은 뒤 결국 작년 2017년 2월 파면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저의 파면사건을 안타까워하며 응원해 줘서 민사소송 1심에서 승소하였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재판에서 꼭 이겨서 저희 행동이 틀린 행동이 아니라 옳은 일이었다는 것이 법적으로 증명되고, 또 다시는 개신교인들에 의해 불교사찰이 훼손되는 일이 절대로 없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 

해직되고 나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많이 허전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는 그래도 목사로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가나안교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여기서 가나안은 ‘안나가’의 거꾸로 의미입니다. 요즈음 교회가 이런저런 일로 문제가 많으니까 교회에 안나가는 신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컬어 ‘가나안’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본래 가나안은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과 같은 ‘낙토’를 의미합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국토입니다. 말하자면 이상향이죠. 그런데 그 가나안이 이제 안나가란 의미까지 갖게 되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입니다. 암튼, 저는 가나안신자들에게 비록 교회에는 더 이상 안 나가지만 가끔이라도 만나서 하나님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계속 걸어 가자라는 취지로 가나안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교회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뒤 어디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것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재미있게도 경복궁 근처에 있는 ‘마지’라는 한 사찰음식점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 식당에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이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는 가나안 신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미워하는데, 오히려 불교인이 저희를 환대하니 말이죠. 정말로 한국불교는 정말로 대단한 종교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그 제안에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마지라는 이름을 붙여 ‘마지가나안교회’를 그곳에서 처음으로 2017년 6월 셋째주일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불교와 인연 때문에 학교에서 해직되고 가나안교회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곳에서는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이웃종교들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하는 가나안교회’를 하면 좋겠다구요. 그래서 매월 셋째주 일요일 오후에 ‘마지종교대화가나안교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보람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 인연으로 저희 마지종교대화가나안교회와 열린선원이 이렇게 함께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모쪼록 오늘 우리의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아져서 한국사회에 종교 갈등이 줄어들고, 또 종교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 땅이 더욱 아름다운 평화로운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2.스님께서 제게 크리스마스 설교를 해 달라고 해서 오늘 무슨 말씀을 전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 제가 생각하던 것을 좀 나누기로 하고, 설교제목을 “예수보살과 육바라밀”이라고 잡아봤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대부분이 불교신자이니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예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목사는 본래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니 예수 이야기만 한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도 선교를 해야 하니까요?(하하) 그리고 제가 불교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혹 잘못이 있다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 중 하나는 ‘보살사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을 때까지 모두가 다 고통에서 해방되어 부처가 될 때까지 나 스스로는 부처가 되는 길을 포기하며 중생의 해탈을 돕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대승불교의 보살입니다. 말하자면 보살은 위로는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자입니다. 한마디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존재입니다. 그가 보살입니다. 그렇다면 불자들에게 예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보살’입니다. 예수 보살! 따라서 오늘 불자와 기독교자 함께 공동으로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는 예수가 우리 모두에게 가장 훌륭한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상적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참 인간의 궁극적인 모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자가 되었든 아니면 기독자가 되었던 예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예수가 보살인지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육바라밀의 수행을 어떻게 철저하게 실천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지하듯이, 육바라밀은 보살도의 대표적인 수행법입니다. 물론 후에 육바라밀을 더욱 발전시켜 화엄경에서는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 등의 52위의 보살 수행계위를 말하지만, 어쨌튼 육바라밀이 그 핵심을 이룬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자들은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여기 오신 기독교인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간단히 더 첨언한다면, 바라밀은 ‘피안’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을 끝내고 해탈의 세계 저 너머로 건너가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바라밀은 과학적인 용어로 한다면, ‘임계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을 적당히 해서는 안 되고 임계점에 이르러야 되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넘어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넘어가야 합니다. 또 물이 수증기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라밀입니다. 그러니까 보시를 예로 든다면, 이웃을 돕는 것을 적당히 하면 안 되고 임계점을 넘어 끝까지 도와야 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만 하면 안 되고 보시바라밀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예수께서는 정말로 위대한 육마라밀 수행을 철저히 완수하여 모든 보살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우선 육바라밀의 첫 번째 수행덕목은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입니다. 보통 보시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금전적으로 돕는 ‘재시’(財施)나, 오늘 설교하는 저나 혹은 학교의 교사들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법시’(法施), 그리고 요즈음 의사나 상담사 혹은 사회복지사들처럼 공포를 제거하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무외시’(無畏施)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선에 대해 가르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 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6:3-4) 그런데 여러분, 최고의 자선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상대가 갚을 수 없도록 하는 선행입니다. 말하자면 남이 모르게 하거나 또 알더라도 너무나 커서 아예 갚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선행이 최고의 선행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선행 중에 최고의 선행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의 많은 분들에게 예수께서 자신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게 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인은 알지만, 여기계신 불자도 모르고 세상 사람들도 다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예수의 십자가는 설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예수께서 죽은 것임을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되갚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인류의 죄를 모두 다 대신 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가장 위대한 보시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요즈음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만, 누가 저 대신 재판을 받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큰 죄가 아닌 것에도 마음 졸이고 걱정하는데, 하물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의 죄를 누군가가 대신 짊어졌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15:13) 그렇습니다. 그렇게 예수는 우리를 친구삼아 주시고 또 그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는 보시를 한 것입니다. 아니 보시바라밀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시를 하더라도 예수처럼 그렇게 합시다.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시바라밀입니다. 

둘째는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입니다. 지계바라밀은 계율을 지키고 항상 자기반성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실천의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모두 613개의 계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계율을 크게 두 개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눅10:27-28) 예수의 삶은 이 두 계명을 철저히 지키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지계바라밀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예수 자신도 십자가를 지기 두려웠지만, 그는 하늘 아버지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기로 순종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는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26:39)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계율에 철저했습니다. 특히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를 통해 그런 삶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에게 못을 박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지금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나이다.”(눅23:34) 그리고 그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 말씀하시고 운명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계율을 십자가에서 다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지계바라밀을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가장 위대한 보살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합시다. 

셋째는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입니다. 인욕은 고난을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뭐라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과 모욕을 다 참고 인내하였으니 말입니다. 특히 제 경험을 보니까, 십자가와 같은 육신의 고통 못지않게 힘든 고통은 가까운 친구들의 배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을 견디는 것이 참 힘든 일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해직되고 재판을 받는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학교 측에서 제가 나쁜 놈이라는 증인으로 제 동료교수들과 제 제자들을 회유하여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 교수들과 제자들이 저에게 칼을 든 형국이었습니다. 그것을 참으려니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를 보십시오. 그는 자기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에게 팔려서 가장 끔직한 형벌인 십자가형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3년씩이나 따라 다녔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두 예수가 체포되자 스승을 부인하며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원망을 돌렸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끝까지 인욕바라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제자들을 먼저 찾아가서 그들을 위해 생선을 구워주고 아침밥을 손수 차려 주면서 옛 정을 나눴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보살행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억울한 일이 닥칠 때 끝까지 인내하며 참읍시다. 그럴 때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길이 열립니다. 

넷째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입니다. 정진은 보살로서의 수행을 힘써 닦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는 정말로 정진 바라밀의 모범이십니다. 당시 유대의 최고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고, 심지어 가족들조차 오해를 하는 상황에서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일구는 일에 결코 쉬지를 않았습니다.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5)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러면서 그는 쉬지 않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귀신들린 자들을 치료해 주고, 또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쉽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 공부할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외워든 독일어 단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langsam, stätig, und gründlich”입니다. 즉 “천천히, 꾸준히, 그리고 철저하게!” 말하자면 이 세 가지가 정진바라밀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는 정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정진수행에 있어서 천천히, 꾸준히, 그러나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정진바라밀의 모범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정진의 이 세 원칙만 잘 지킨다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훌륭한 보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입니다. 선정은 마음을 안정시켜 올바른 지혜가 나타나게 하는 수단인 선정(禪定)을 닦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한다면 ‘기도’ 혹은 ‘관상’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되고자 한다면, 기도는 필수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보살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철저하게 비우는 과정이요, 그래서 그 빈 공간에 절대자를 모시는 과정입니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불교의 공성(空性)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누구보다 선정바라밀을 잘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는 시간 나는 대로 고요하게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또 기도 중에 하나님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20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것을 신학에서는 ‘동일본질’의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호모우시우스(homoousios)!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라는 것을 기도를 통해 깨달은 모범이십니다. 그런 존재를 일컬어 정교회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 곧 ‘테오시스’(theosis/deification/神化)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기독교인의 꿈입니다. 신처럼 우리의 존재가 성화되는 것! 예수께서는 또한 선정에 들기 위한 수련법으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주기도문 수행을 통해 선정에 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처럼 선정을 실천합시다. 아니 ‘선정바라밀’을 철저하게 수행합시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입니다. 반야는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 즉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말합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죠. 대승불교에서는 아마 최고의 깨달음으로 ‘공’(空)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기독교에서는 최고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뒤에, 공생애 기간 동안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 비밀을 가르치기 위해 유대지도자들과는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고, 또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비유를 써 가면서 아주 쉽게 지혜바라밀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는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번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면서, “그 나라는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가 아니라 그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눅17:21)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마음속에(inside)’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천국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들이 모여 친교하며 사랑을 나누는 그 사이에(among/between) 천국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오늘 아기 예수의 오심을 축하하는 이 자리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3.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그래서 모두 열반의 세계에 이르도록 우리 모두 보살행을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육바라밀을 잘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육바라밀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 때 필요한 것이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살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실 때, 종종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과 또 십자가의 삶을 교훈삼아 우리도 육바라밀을 잘 실천하게 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중생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어느 날 홀연히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모두 열반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번 이대위의 조사에 대하여 감리교내 손원영 목사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동료 목회자들의 글  

   
                                               * 손원영 목사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목회자들 

<손원영 목사 문제와 관련하여 총회이단대책위원회에 드리는 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이 기독교대한감리회에 넘치기를 빕니다.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이단대책위원회가 손원영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소속, 서울기독대학교 교수)에 대한 이단혐의 조사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단대책위원회가 바르게 판단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첫째, 감리회가 목사의 설교 내용 일부를 문제 삼아 이단 운운 하는 것은 감리회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손원영 목사의 설교 내용 일부를 문제삼는 것은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아테네에서 이방인들에게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사도행전17:23)라며 설교했던 사도바울을 이단으로 모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더구나 감리회는 교리적선언 서문에서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어 우리와 단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중요한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함과 그를 따르려고 결심하는 것이다.(교리적 선언(1930년)”고 선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리회의 교리적 선언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둘째 총회이단대책위원회의 조사는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이 정한 절차에 반하는 것입니다. 

감리회 재판법 제2조 제2호는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처벌을 이중으로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2조 제3호 “고소를 고소를 취하한 사건에 대하여는 다시 고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원영 목사와 관련한 본 사건은 2020년에 이미 서울남연회에 고발되었고, 2020년 7월 10일 서울남연회 이단대책위원회와 7월 21일 교역자특별조사처리위원회가 문제 없다고 이미 판단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다시 고발했다는 이유로 총회이단대책위원회가 이를 다시 다루는 것은 감리회 재판법 제2조 “제2호, 제8조, 제12조 제3호에 반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헌법 제13조 제1호는 “모든 국민은 ...,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법 제39조는 “헌법재판소는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는 다시 심판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감리회 재판법 “제8조(준용규정)는 ”이 재판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은 사회재판법에 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남연회 이단대책위원회와 교역자특별조사처리위원회의 이미 심사하여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사안을 목사의 자격을 다룰 권한이 없는 총회이단대책위원회가 다시 심사하는 것은 규정에 반합니다. 

셋째, 총회이단대책위원회가 손원영 목사의 이단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교리와 장정이 총회이단대책위원회에 부여한 권한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조직과 행정법 173조 제2호 제1항은 “감리교회 정통교리와 신앙으로 감리회 성도를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기 위하여 이단대책위원회를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총회이단대책위원회가 감리회 성도를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이를 총회에 제안하는 것에 한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조직과 행정법 제93조(교역자의 신분처리) 제1항“어느 회원이든지 재판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징계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에서 보듯 감리회에서 목사의 처벌은 오직 재판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또 목사의 신분처리는 오직 연회 감독에게만 부여된 권한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이단성 여부를 판단하여 목사에게 징계에 준하는 처벌을 가하는 것은 이단대책위원회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2022년 8월 11일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박경양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새물결 대표 이경덕 목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5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장로교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9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