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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 장로회신학대학교 동문회 총회 예배설교 =
임규일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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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27  15: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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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   성경, 마태10:16.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

1. 오늘 이 시간,
마태10:16절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이리 가운데 양을 보냄 같도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의 한국 교회와 교회가 서있는 시대현실과 주위환경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고 적용되는 말씀으로 듣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참담하고 추하고 부끄럽고, 나아가 두렵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오늘의 우리들 목회현장, 한국 교회 현실이 “이리 가운데 있는 양” 꼴이 되어있는 까닭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경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대학교 강의실에서 수업 중에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를 묻는 시간이 있었는 데, 불교인 손들라하니 여러 명이 손을 들고 천주교인 손들라하니 여러 명이 손을 들고 기독교인 손들라 하니 몇 명이 주위를 둘러보며 들가 말까 하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고 교수님이 물으니까 “창피해서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몇 년 전 까지만 하여도 교회에 나가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은 시대를 앞서 가고 지성인이고 자랑스럽고 명예롭고, 모두가 선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가장 부흥하고 발전된 기독교 시대에 가장 비난과 조롱과 욕설을 듣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한국 기독교 역사 130년에 열 믿음의 조상들과 선배들 생각할 때 죄송하고, 자라나는 후손들 앞에 부끄럽습니다.

“교회에 나갑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기독교인입니다“라는 게 부끄럽고 창피하게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이유여하를 물론하고 목회자로서의 우리 자신은 낯이 뜨거울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강단에 서고 교인들 앞에 나서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참담함과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2. 예수님은 “뱀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는 능력이고 순결은 존재 상태를 가리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를 모두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지헤롭기 만 하면 능력은 있으나 재주꾼, 기술자가 되기 쉽습니다. 순결하기만 하면 현실적으로는 무능력자가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순결해야 하고, 순결한 사람은 지헤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순결은 어디서 배웁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 자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세상과 사회, 세속의 여러 잡다하고 기술적인 방법론의 아류가 되지 말자는 말씀입니다. 요즘 교회가 왜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조롱과 없신여김을 받습니까? 세상 보다 더 세상적이고 조잡하기 때문 아닙니까? 교회들에서 이루어지는 이른 바 목회 성장과 부흥 방법론이 세속사회의 천박함에서 배운 잡다하고 조잡한 것들로 오히려 교회를 우습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 보다 세상적인 교회의 통속화입니다.
어떤 이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복음으로 충분한 기독교회가 뭔가 굉장히 부족한 기독교인양 오락화하여 엔터테인먼트에 물들고, 심리학에 물들고, 마켙팅 차원에서의 흥행 목회를 조작하며 허우적거리느냐고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3.여러분!
저는 우리가 오늘의 말씀을 들으면서, 뱀 같음이니 비둘기 같음이니 보다도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 을 주목해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여러분, 지혜롭기를 위하여, 순결하기를 위하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의 순결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를 구하고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순결하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습니다.

이리 가운데 양 같기로는 예수님이 누구 보다 먼저 그런 현실을 직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도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뱀 같이 지혜롭기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고 맡기셨으며, 비둘기 같이 순결하시기로는 오직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결과의 현실은 제자들의 부인과 배신과 도망이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당하심이시더라도 그리 하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이기셨으며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 지 함께 하리라”. 예수님이 마주하신 현실도 이리떼, 여우, 독사의 자식들이 득시글거리며 으르렁대 고, 그것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지혜와 순결로 그 모든 것을 이기셨습 니다. 바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입니다. 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지혜이며 순결 이며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며 능력이고 권능입니다.

5.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오늘 우리의 현장은 이리 가운데 있는 양 같습니다(행20:29-30). 그런데 싸우면서 배운다는 말 처 럼, 자칫하면 살기 위하여 이리를 닮아가는 것으로 지혜롭고 순결함을 말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참 쉽습니다. 이미 그리되어 버린 교회와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거짓 선지자를 경계할 일입니다. 양이 아니라, 노략질 하는 이리의 탈을 쓴 양 말입니다.

6. 지혜와 능력, 모든 이김과 영광을 주시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배우고 따라가신 분으로 바울 사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일찍이 이런 고백과 증거를 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서 건져내시고...” (딤후4:17-18).

그렇기에 바울은
환난과 핍박, 위험과 칼, 박해와 기근, 도살장의 양 같은 온갖 현실에서도 넉넉히 이긴다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곧 세상을 이기는 지혜요, 이 믿음이 순결함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빌3장의 고백으로 보면, 그가 알고 있던 뱀같이 지혜롭게 해줄 듯 싶었던 이전의 모든 유익한 것을 배설물 처럼, 오히려 피해가 되는 것으로 여기고 버렸다고 하였어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에 이르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을 본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고백과 증거, 한 곳을 더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이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 보다 강하니라.“(고전1:22-25)

7.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우리는 거의 대부분 18,19,20세 젊고 순수한 열망의 때에 광나루 선지동산에 올라왔습니다. 그 순수한 열망 하나로 신학수업을 하고 목회현장으로 나가서도 그 순수한 열망으로 임하였지만, 현장은 그야 말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 같아서 쉽지 않은 목회의 삶을 걸어가고 있으신 줄 압니다. 푸른 초 장도 아니고 쉴만한 물가는 더더욱 아니며, 곳곳이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아닌 곳이 없지 않 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이리나 늑대를 닮아가고 덩달아 시늉내거나 할 것입니까? 더러는 그런 이 들도 없지 않은 듯 싶으나 그리하여 얻은것, 이룬 것이 무엇입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름지기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언제 어디서 라도 오직 주님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이고 능력이며 우리의 순결입니다. 옛날 채플과 그 아래층 도서관 앞 잔디밭 에 새겨져있던 학교 마크 위 아래로 씌어졌 있던 흰 글씨를 기억하십니까? “주님만 따르리” 이 짧고 분명한 말이 바로 우리의 지혜요 순결함 아니겠습니까?

8. 세상 때 묻지 않은 젊고 순수한 청년의 때에 이 광나루 선지동산에 오른 우리 장신동문들이 처음 의 그 순결과 정열과 간절함으로 오늘의 목회현장, 교회현실에서 존재해야 하고, 존재해 주어야 합니 다. 이것이 우리 장신동문의 십자가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광나루 동산을 오르고 내린, 우리의 그 처음 마음과 순순와 열정을 잃버리지 마십시오! 

9. 이리를 닮아 그 흉내내고 시늉하는 비겁하고 비굴한 양이 되지 맙시다. 그는 처음부터 양도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이리한테 물리고 찢겨 상처가 난다 할지라도 주님 보내신 “양의 길”을 가십시오. 
여러분 섬기시는 교회와 교인들로 하여금 양의 탈을 쓴 이리들로 헷갈리거나 헤매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무리 우리의 현실은 “이리 가운데 있음“같고, 거기서 오직 하나로 남게 된다 될지라도, “주님이, 내가 너희를 보냄”의 그 한 사람으로 존재하여 주십시오. 이리 가운데서 이리떼에 밀리거나, 이리 떼와 몰려다니지 말고, 거기서 여러분을 보내신 주님 에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양”으로 존재하십시오.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 올곧고 당차게 머무르십시오!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 대로,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 모두와 함
께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2012.1.30. 장로회신학대학교 동문회 총회 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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