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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혁배 동지 5월 9일 안장키로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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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25  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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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 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2023년 1월 말에 세상을 뜨신 고 최혁배동지 유골이 갈 바를 찾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한 전태삼 동지가 나서 마석 모란 민주열사 묘역에 안치하기로 합니다. 이런 사실을 가족들 동의를 얻어 유골안장 추모위원회를 조직해 전태삼 유재무 김명신씨가 실무를 맡아 공지한 가운데 3월 10일(금) 11시에 묘역에 가족과 추모객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안치전날 답사차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지정받은 묘역이 백기완 선생 묘역 앞으로 그곳은 절대 안된다고 하면서 전태삼 동지에게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뼈다구 장사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등 팽패를 부린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묘역 담당자는 대금을 완납하면 땅을 파놓겠다고 하여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당일 아침 정체 불명의 사람들 30여명이 동원되 땅을 파려는 인부들 작업을 저지한 가운데 안장 예배을 위한 현수막 설치를 못하게 하고 철거하는 등 유가족들을 밀치고 땅에 앉는 등 행패를 부려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에 경찰에 신고하여 예배자외에는 50 M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한 후 1시간 정도 지연되 예배를 드렸습니다.

   
                                             * 추모사를 하시는 장영달 전 의원

안장식에는 장영달 전의원과 새문안교회 대학부 활동을 하던 분들과 기독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대균사무총장, NCCK인권위서 함께 근무한 윤수경 선생(홍성거주)등 20여명이 증인들입니다. 안장을 못하게 하여 옥신각신하다가 다른 장소가 나오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원치 않고 오후가 되여 일단 유골을 집으로 다시 갖고 가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저들의 유골 안치를 반대 이유로는 최혁배 동지가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와 왜 이 일을 전태삼과 김명신이 나서느 냐? 인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또 안치장소가 고 백기관 선생 묘역 앞으로 백선생 기념사업회 행사가 크고 많은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안치을 못하게 하는 일에 앞장 선 것은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속 사정은 전태일 친동생인 전태삼 동지와 해묵은 앙금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작은 표지석(가로 세로 24CM)을 놓는 것이 행사 방해가 된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며 전태일기념사업회가 고인의 가족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묘역 안장을 반대하여 막는 이들도 결국 자신들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는 지 제3의 장소에 안장한다면 유가족과 실무진에게 사과하겠다고 하여 기다렸습니다(사과문 초안도 보냈음)그러나 한주가 지나 문서로는 못하고 유가족에게만 구두로 사과하겠다는 통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간 대화 상대자는 실무를 위임받은 이들인데 실무를 맡은 이들을 기피하고 유가족들에게만 사과한다는 것은 안된다고 하면서 항의하고 더 이상 사모님 마음을 혼란케 하는 일들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사모님께 말씀드렸고 안장을 방해하고 사과도 거부하는 이들을 고소하라는 내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관계있는 선배들이 만류하며 사과문 내도록 하겠다고 해 다시 한주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는 가운데 장영달 의원이 다시 주선해 문익환목사님이 계신 쪽에 자리가 있으니 사과받은 후 빨리 유골을 안장하자고 하여 답사를 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소식이 없어 유가족의 위임을 받아 현장 주동자 4인을 4월 7일에 남양주서에 고소했습니다.

당시 사모님은 묘역 책임자가 돈을 받고 지번을 주고도 일을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이라고 받으라고 하셨지만 그 분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반대자들의 무뢰함과 부주의함이 결국 오늘의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 묘역 관리자로 부터 부여 받은 번호와 입금액

달라진 시대에도 여전히 물리적인 수단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는 운동권식 때 법으로 전날도 그렇고 당일 사람을 동원하여 민주열사들이 잠든 공원에서 현수막을 뺏는 등 예배를 방해하고 방문한 이들이 보는 앞에서 난동을 부려 유가족이 유골을 다시 집으로 가져가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3월 말에 전태일 동지의 유지를 잇는 청계피복 노조 위원장을 지낸 민종덕동지가 구례에서 이런 사실에 대하여 안타까이 여겨 공개 글을 내게 된다. 그리고 갈등 당사자 기념사업회와 전태삼 동지를 나무래며 중재에 나서 늦었지만 기념사업회가 가족들에게 사과를 한 후 유골안장을 주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24일(월) 민종덕 동지와 기념사업회는 유가족들과 현장을 답사하고 오는 5월 9일에 최혁배동지의 유골 안장식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종덕 동지가 나서면서 전태삼 동지는 빠지라고 말에 대하여 그 말을 듣는 당사자는 섭섭했지만 일의 성사를 위한 것이지 본심은 아니고 추모행사의 성사를 위한 것이니 유골장장에서는 아니라고 한 것은 다행입니다.  

   
 

다만 당일 안장을 방해하고 폭언을 한 현장 실무자 4인외에 백기완선생의 사위 000를 전태삼 동지에 대한 명예훼손과 폭언에 대한 영상이 있어 이를 추가로 고소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현장 실무자 4인을 포함하여 "제사, 추모나 추도예배 방해“ 로 고발인 조사를 마쳤고 피고발인 조사가 진행될 것입니다.

최혁배 동지의 유골이 편안하게 안장을 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들은 현행범으로 고소한 것은 유골안장을 방해해서만은 아닙니다. 처음에 화해 시도로 사과을 한다고 했다가 번복하고 이후에도 성실하게 소통하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특히 평생 민주화운동을 한 영령들이 잠든 곳에서 한 행동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고 최혁배 동지의 장례나 유골안치에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여러분 들에게 이제야 이런 사정을 알려드리게 된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찰은 전적으로 저희 3인에게 있어 무슨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늦었지만 전태일기념사업회가 나서고 최혁배 동지의 유골을 편안하게 안장하게 되고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만은 감사하고 다행한 일입니다.

늦게나마 민종덕 동지가 나서고 최혁배 동지의 유골이 안장되게 된 것을 알려드리고 저희도 이에 따르기로 하고 그간 협조한 모든 분들에게도 일단 감사한 일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 저희 3인은 끝까지 협조할 것입니다. 다만 민종덕 동지도 언급한 바 그간 묘역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5인은 묘역안장 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저희는 최혁배 동지 상에 함께 해주시고 유골안장에도 이름을 내주시고 후원도 해주신 분들에게 이런 사실을 공지할 책임이 있어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재추진하는 측에서 수고한 분들도 추모위원으로 함께 해주실 것을 요청해 명단을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5월 9일(화) 11시 참여여부는 개인적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미리 알려드리는 것은 이번 유골안장식은 가족들이 원하여 스님을 모시고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에 처음 이 일을 추진한 저희는 기독교인이므로 따로 날을 정하고 준비하여 원하는 분들과 우리의 방식으로 최혁배동지의 안치에 대한 추모의 예의를 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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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운동단체는 고 최혁배 선생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민종덕(페이스북 글 3월 22일)  

1. 저는 이른바 시민단체 노동단체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아무런 관심이나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 최혁배 선생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한심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여 최대한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2. 고 최혁배 선생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및 시민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고 최혁배 선생은 유명인사도 아니고 단체의 대표도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의 숨통을 트이게 한 숨은 공로자입니다.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만, 대표적인것을 말씀드리자면 83년 전후 전두환 철권시절 전태일기념관 마련, 인천 골목집 공간 마련 구로 여성노동자 공간 마련, 공동육아 공간 마련, 민주언론, 환경운동 등 많은 곳에 자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엄혹한 시절 노동 및 민주화운동 단체에 생명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고 최혁배 선생은 그 댓가로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 몸이 망가지고 징역을 살고 나왔습니다

3. 고 최혁배 선생은 주변의 소위 출세한 사람들과 달리 불의에 타협 또는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한길로 일관한 사람입니다. 고 최혁배 선생과 초기에 활동했던 사람 중 변절자들은 지금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고 최혁배 선생은 그들처럼 추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4. 운동단체에서 고 최혁배 선생의 죽엄을 잘 모시지는 못할망정 최근 유골을 모시는 것을 가지고 분란을 일으키고 욕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짐승도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갚습니다. 하물며 좋은 세상을 위해 일 한다는 운동단체에서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5. 전태일재단은 지금이라도 고 최혁배 선생의 유골을 예를 갖추어 모시는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의향이 없다면 제가 저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나서겠습니다.

6. 전태삼 씨와 김명신 씨는 고 최혁배 선생의 유골을 모신다는 명분으로 활동하는 것을 당장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동안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유족한테 백배 사죄해야 합니다.

전태삼 씨를 비롯 그 일가는 고 최혁배 선생을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고인은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면 안됩니다. 그 이유를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딱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고 최혁배 선생이 미국에서 영구 귀국한 이후 단 한 번이라도 만나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장애자가 된 최혁배 선생을 위로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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