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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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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7  22: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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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hristian right, the Republican Party and Donald Trump’

           '냉전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필자: 존 뉴싱어, 번역: 이예송, 감수: 김종환

이 원고는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존 뉴싱어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65호(2020년 겨울)에 기고한 ‘The Christian right, the Republican Party and Donald Trump’를 번역한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합법적 권리로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데 이어 소수인종 우대 조치도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낙태권과 소수인종 우대 조치 공격에 앞장서 왔던 미국 기독교 우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원문은 2020년 1월에 발표됐기 때문에 그 이후 미국 기독교 우파와 공화당, 트럼프 사이의 관계 변화 등은 반영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 기독교 우파가 부상해 정치 세력화한 과정을 잘 다루고 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팀이 삽입한 것이다. ‘기독교’라는 말은 1970년대 이후 상황을 논의하는 경우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 정교회 등도 포함하는 말로 사용했다(한국의 보수 복음주의자들과 다른 용어법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킨 것은 기독교 우파의 표였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약 81퍼센트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 대다수는 투표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이들 중 수만 명은 트럼프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의 승리를 위해 단식하거나 기도했다. 그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매우 중대한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들의 후보가 모든 예상을 뒤집고 승리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役事)하신 결과로 보였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구하기로 마음먹으신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물음을 제기한다. 첫째, 어떻게 기독교 우파는 미국 정치, 특히 공화당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는가? 둘째, 어째서 기독교 우파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자를 지지하게 됐을까? 분명한 것은 기독교 우파는 1970년대부터 공화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왔고, 오늘날 공화당 정치인은 누구든 선거에 출마하려면 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존 매케인[1936~2018]은 보수 우파이자 전쟁광인데(선거유세장에서 미국의 유명밴드 비치보이스의 노래 〈바바라 앤〉을 개사해서 Bomb, bomb, bomb, bomb, bomb, Iran[‘이란을 폭격하자, 폭격하자, 폭격하자, 폭격하자, 폭격하자’]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 우파를 경멸했으면서도 2008년 대선에서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세라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택해 그들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세라 페일린은 “물고문은 우리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세례를 내리는 방법”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1) 또한 2015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기간 동안 출마자들 중 “그 어떤 후보도 자신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많은 후보들은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2) 이것이 21세기인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과학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미국은 (각종 종교 지표에서) 역설적이게도 “산업화된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 국가”이기도 하다.(3) 기독교 우파의 정치적 영향력은 복음주의 하위문화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고, 그 문화를 알아야 한다.

트럼프 지지 문제에 있어서는 트럼프가 기독교 우파가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을 포함한 판사임명권 통제를 약속했을 뿐 아니라, 신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자 전직 하원의원이며 인디아나 주지사 출신인 마이크 펜스를 러닝메이트로 택한 것이 주효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째서 기독교 우파는 트럼프처럼 온갖 죄악에 물든 자(성범죄자, 여성차별주의자, 사기꾼, 인종차별주의자, 권위주의자, 습관성 거짓말쟁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라고는 털끝 하나 품고 있지 않을 사람을 지지하게 됐을까? 트럼프의 가까운 보좌관이며 그 자신이 안수받은 설교자이기도 한 어떤 인물은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아마 트럼프에게 성경은 한 덩어리 종이 벽돌에 불과할 것이다.”(4) 한 보수적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성의 수호자라는 이들이 기꺼이 지지한 후보는 십계명이 금기시하는 죄악들을 자신의 위시리스트로 삼는 자다.” 심지어 “이들이 트럼프에 대해 보인 헌신이 너무나 절대적이고 확고한 나머지, 이들이 트럼프를 마치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5) 노련한 텔레비전 복음전도자 팻 로버트슨이 2017년 7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700 클럽〉에서 트럼프를 인터뷰했을 때, 팻 로버트슨이 세운 CBN기독교방송국에서 일했던 한 복음주의 전직 직원은 견디다 못해 이것은 인터뷰라기보다는 “목사가 자신의 손으로 트럼프의 자위를 돕는 행위”에 가깝다며 역겨움을 드러냈다.(6} 이 즈음에서 기독교 우파들이 빌 클린턴을 탄핵하려던 핵심 세력이었고 그 사유는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백악관에서 벌인 불륜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같은 도덕성으로는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우파는 당시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소위 “보지-게이트”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트럼프를 지지했다. 다른 대선후보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을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선 캠페인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우파의 지지 덕분이라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최근에는, 2017년 8월 ‘대안 우파’가 샬러츠빌에서 우파 결집 시위를 열었을 때 트럼프는 당시 시위에 참가한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신나치 세력을 비난하길 거부했다. 그 시위에서 반反파시즘 활동가 헤더 헤이어가 살해되고 많은 이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백악관 경제 관련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여러 CEO들은 넌더리를 내며 사임했다. 그렇지만 백악관 신앙 자문위원회 소속 목사·설교자는 한 명도 사임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 중 한 명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우리는 백 번이라도 더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7)

미국 기독교 세력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고하다는 것을 좌파들이 간과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얼마쯤은 “현대 사회는 필연적으로 ‘세속화’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하는데, 진실은 미국에서는 세속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8) 왜 미국은 세속화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분명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에 답하려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앙-산업 복합체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에서는 종교 활동이 두드러지게 성장했는데, 이는 서구권에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종교를 믿는 비율이 하락하고 있던 반면, 미국에서는 종교가 전례 없이 부흥했다. 미국의 종교 부흥은 여러 면에서 엄청났고, 역사적 맥락에 놓고 살펴봐야 한다. 1850년에는 미국인의 16퍼센트만이 자신을 교회의 일원으로 여겼다. 이 수치는 1900년 36퍼센트, 1910년과 1920년 43퍼센트, 1930년 47퍼센트, 1940년 49퍼센트로 늘어났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35퍼센트라는 최저점”에 이를 정도로 감소했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종전 이후 급속하게 회복한 데 이어 상승세가 가팔라져 교회 신자 비율이 1950년 57퍼센트, 1960년 69퍼센트로 늘었다.(9) 그뿐 아니라 교회의 수입도 급증해 교회들은 “자신들이 상상조차 못 했던 부를 쌓게” 됐고, 그 결과 중 하나로 1950년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교회 건설 호황이 일어났다. 이 호황 속에서 “종전 직후부터 1955년 여름까지 교회 건설에 30억 달러가 쓰였다.” 성경과 신앙 서적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1955년 설문에서는 미국인의 94퍼센트가 기도에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 답했다.(10)


이러한 신앙 부흥은 어쩌다 벌어진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는 “유기적” 현상, 즉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조너선 헐저그가 주장하듯, 위로부터 계획된, 즉 강력한 “신앙-산업 복합체”에 의해 달성된 것이었다. 신앙-산업 복합체는 모든 수단과 자원으로 기독교를 동원해 미국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지키려 했고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그 적수라고 봤다.(11) 기독교를 냉전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하는 과정은 트루먼 정부[1945~1953] 때 시작됐다. 이미 1946년부터 트루먼은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FCC에 참석해, 신앙 부흥이 없으면 미국이 “방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12) 신앙 부흥을 주도한 것은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찰스 E 윌슨이었다. 윌슨은 트루먼에 의해 국방동원국 국장으로 임명됐고 상시군비경제의 설계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1949년 윌슨은 기업·교회·정부를 끌어들여 “미국인의 삶에 믿음을”(이하 RIAL)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국내 전선’의 사기를 높이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례 없는 기독교 선전 공세였다. RIAL 캠페인은 대기업들이 후원하고 정부가 지지했다. 이것이 “신앙-산업 복합체”의 핵심이었다. 미국의 광고업계는 [제2차세계대전 중 ‘전쟁광고협회’로 출범한] 광고협의회 활동을 통해 적극 가세했는데 미국인들에게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하고 기도하고 교회에 나가는 것은 애국적 임무라고 설득했다. 트루먼은 RIAL 캠페인을 개인적으로 축복했을 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지지했다. 조너선 헐저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RIAL 캠페인이 1949년부터 1958년까지 10년 동안 끊임없이 추진되며 미국인 수백만 명에게 영향을 미쳤다. 캠페인 첫해에만 2000곳이 넘는 기독교 커뮤니티들이 풀뿌리 집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1950년에는 3000곳의 소도시와 대도시가 캠페인에 합세했다. 옥외광고업협회는 5200개의 옥외 광고판을 미국 전역에 기부했고, 1800개가 넘는 일간지가 캠페인을 지지하는 사설을 싣거나 RIAL 캠페인 광고를 실었다. 1956년에는 300여 편의 TV 프로그램에서 기독교 집회 참가를 호소했다. 당시 인쇄된 RIAL 캠페인의 포스터를 죽 쌓으면 그 높이가 거의 12마일[약 19킬로미터]에 이를 것이다.(13)

고속도로를 따라 세워진 광고판과 더불어, 예를 들어 1956년 RIAL 캠페인은 “9857개의 포스터를 … 버스와 기차, 기차 정류장에 부착했고 5만 9590장의 작은 광고카드가 버스, 기차, 지하철, 전차를 장식했다.” 실제로 RIAL 캠페인은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 전국 수준과 지역 수준, 신앙과 세속을 불문하고 삶의 모든 공간에 침투했다.”(14) 유명인사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미국 유명 가수] 빙 크로스비, 로널드 레이건, [미국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라이오넬 배리모어, [FBI 초대국장인] J 에드거 후버 등이 미국인들에게 신앙을 가지라고 촉구했다. 현대 광고업이 발전시킨 모든 기술을 동원해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이렇듯 영적인 부흥을 이끈 것은 유물론적 수단이었다.”(15)

RIAL 캠페인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1952년 27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재향군인단체 ‘아메리칸 리전’[미국인 군단]은 “하나님에게 돌아가기” 캠페인을 벌이며 미국이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도록 힘을 보탰다. 엔젤라 라흐르는 이렇게 지적한다. “옥외 광고판, 기도문 배포, 라디오와 텔레비전 대본, 신문 사설, 영화, 엽서가 모두 같은 주제를 담고 있었다.” 한 전형적인 옥외 광고판은 이렇게 선전했다. “미국의 일차적 방어선은/ 하나님과 그의 교회/ 매주 일요일 참석하자.”()16) 1952년 1월에 창립된 순복음기업인협회도 신앙 부흥 운동의 중요한 일부였다. 복음주의 설교자이자 신앙치유자 오럴 로버츠와 기업인 디모스 샤카리엔이 창립한 이 단체는 [부와 권력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번영 복음”을 통해 수많은 소상공인을 결집시켰다. 이 단체는 “성령파의 가르침을 미국 중간계급 사이에서 널리 알리는 데서 독보적으로 효과적인 기구”였고 오럴 로버츠의 전기에 따르면 “현대사상 가장 강력한 준準교회 조직의 하나”이기도 했다.(17) 1970년대 초에 순복음기업인협회의 회원 수는 30만 명에 달했다. 할리우드도 신앙 부흥 운동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예컨대 [성공회 신자] 세실 드밀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영화 〈십계〉(1956년)가 그런 선전 공세의 일부였다. 세실 드밀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사람들이 하나님 아래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돼야 하는가, 아니면 [소련에서처럼] 국가에 속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18) [역사가] 앤드루 프레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냉전 시기 미국은 종교적 상징들로 가득했다.”(19)

“하나님 아래 한 나라”
기독교 선전 공세는 계속됐고, 특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1960년 재임)의 대통령 당선으로 더욱 거세졌다. 아이젠하워는 “특정 교회에 정식으로 신도가 될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 무늬만 기독교인”이었다.(20) 1948년 출판된 그의 베스트셀러 회고록 《유럽 십자군 — 제2차세계대전 연합군 병사, 수병, 항공병들에게》에서 아이젠하워는 “신앙, 세상사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역할, 기도, 도덕”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21) 하지만 [1952년] 대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하면서 그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대통령 후보 지명과 당선을 위해서, 둘째로는 국내 전선에서 한창 벌어지던 기독교 선전 공세에서 자신도 온전한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아이젠하워는 당시 인기 있던 [미국 남침례회] 목사 빌리 그레이엄에게서 신앙 조언을 구했다(그레이엄에 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대통령에 출마하는 이유가 미국인들이 “성경에 기반을 둔 기독교로 회귀해야 하고 자신이 이를 위해 미국인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경건하게 말했다고 한다.(22)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식 직전에 아이젠하워는 냉전을 “어둠에 맞선 빛, 예속에 맞선 자유, 무신론에 맞선 신앙의 전쟁”으로 포장했다.(23) 아이젠하워가 나치와 열전을 벌일 때는 이 같은 감정을 부추기거나 그런 언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실제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953년 1월 20일,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 최초로 12만 5000명으로 추산되는 관중을 이끌고 취임식에서 기도를 올렸고, 며칠 뒤 백악관에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장로회 신자가 됐다. 이는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그는 “대통령의 의무를 수행하려면 신자가 되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며 종교적 모범을 보이고 나라의 도덕적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24)

같은 해 2월 아이젠하워는 “상원의원, 하원의원, 대법관 판사들, 내각 관료들, 외교대사들, 군 장성들, 기업인과 노동계 지도자들, 외국 고위관리들”이 참석한 대규모 공식 행사인 미국 조찬 기도회를 최초로 주관했으며, 기도로 내각 회의를 시작하는 관행을 최초로 세웠다.(25) 이 모든 움직임들은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54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문구가 우표에 추가됐고, 다음 해에는 지폐에 새겨졌으며, 1956년에는 “미국 최초의 공식 모토”가 됐다.(26) 아이젠하워는 또한 ‘국기에 대한 맹세’에 하나님을 언급하는 문구를 넣자는 캠페인을 지지했다. 의회는 서둘러 “하나님 아래 한 나라”라는 문구를 추가했고 아이젠하워는 1954년 6월 14일 이 법안을 승인했다.(27)

전후 신앙 부흥에 관해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이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복음주의 개신교의 아성인 미국 남부·중서부가 상시군비경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곳이었다는 점이다. 액셀 셰퍼는 이렇게 썼다. “막대한 군비 지출은 ‘선벨트’ 지역[일조량이 높은 미국 남쪽 지역]을 ‘건벨트’로 탈바꿈시켰다. 예컨대 ⋯ 샌디에이고에서는 제조업 고용의 20퍼센트를 군수 산업이 차지했다.” “이처럼 복음주의자들은 냉전이 선사한 막대한 부에서 비롯한 사회경제적·사회인구학적 변화에서 혜택을 입었다 ⋯ 이런 변화는 보수적 개신교인의 계층 상승, 근교화, 수적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로 1960년대에 이르면 “복음주의자들은 더는 평균적 미국인들보다 농촌 거주 비율이 높지도 않고 나이가 많거나 교육 수준이 낮지도 않았다.”(28)

둘째, 교회가 이처럼 미국 자본주의를 열정적으로 지원하고 대기업과 부자들을 그토록 찬양한 것은 당연히 교회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회는 점차 사업체가 됐고, 탐욕이 신성시됐고, 목사들은 뻔뻔하게 부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대에는 “근본주의적이고 성령파적인 ⋯ 백만장자 목사들”이 “수십 명” 있었고, 이들이 “감세와 규제완화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는 점은 놀랍지 않았다.(29) 미국 남부와 중서부에서 설교자들은 대체로 많은 부를 쌓았고 심지어 막대한 부를 쌓은 이들도 흔했는데, 이들은 자신의 신도들과 추종자들을 가차없이 착취했다. 이를 위해 온갖 현대적 마케팅 기술과 구닥다리 미신을 결합해 교외에 거주하는 복음주의 중간계급에게 번영 복음을 설파했다.

빌리 그레이엄
1950년대와 그 이후 신앙 부흥의 주역 중 한 명은 복음주의 설교사 빌리 그레이엄이다. 그는 1949년 9~10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인 부흥회를 계기로 전국적 인사가 됐다. 그 행사는 지역 기업인들의 후원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기업인이 할리우드 토그스라는 스포츠웨어 기업의 소유주였다. 그러나 미디어 백만장자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그 부흥회를 지원하면서 그레이엄은 특별할 것 없는 지역 부흥회를 이끄는 설교자에서 일약 전국적 유명 인사가 됐다. 한 역사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허스트가 미국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30) 그러자 다른 언론들도 그를 띄우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타임〉지 등을 거느린 미디어 제국의 소유주 헨리 루스가 그를 후원했다.

당시 상황적 맥락 또한 중요한 요소였는데, 소련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직후인 상황에서 그레이엄은 소련의 위협을 설교의 소재로 한껏 이용했고 언론은 기회를 놓칠세라 이 점을 대서특필했다. 매일 밤 그는 자신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에게 “내부의 적 ⋯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 미국 내 다른 도시들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특히 심각하며, 로스앤젤레스가 뉴욕·시카고 다음가는 소련의 핵 공격 목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선택지, 바로 생존이냐 심판이냐 하는 선택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피할 수 없었듯이 … 로스앤젤레스도 그리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자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주장했다.(31) 그레이엄의 부흥회는 예정을 넘겨 연장됐고 그 기간 동안 총 35만 명이 그의 설교를 들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 결과, 1957년 5~9월 뉴욕에서 부흥회가 열릴 무렵에 그레이엄은 이제 지역 기업인들이 아니라 헨리 루스와 같은 거물들([보험회사] 뮤추얼라이프의 회장 로저 헐, [미국 최대 제철기업] US스틸의 회장 하워드 아이샴 등)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부흥회를 광고하는 650개의 옥외광고판, 4만 개의 차량 범퍼 스티커, 50만 장의 리플릿을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홍보비용에 자금을 대주었다. 뉴욕 부흥회가 끝나기 전까지 그레이엄은 97차례 설교를 했고, 도합 300만여 명이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레이엄은 미국 전역과 해외를 순회하며 친기업·반공주의 메시지를 퍼뜨렸다. 그는 노조를 이기적이며 사악한 집단이라 비난한 만큼 노조는 방문하지 않았다. 1952년 그는 열정적으로 환호한 신도들에게 에덴 동산에는 “노조 조합비도, 노조 지도자들도, 뱀도, 질병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32) 그레이엄은 미국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 산업의 자유가 보장되는 땅”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할 것이 아니라 “충실하고 능력있는 근로자”라고 스스로 입증해야 하고 “볼트에 나사를 조이는 일만 끊임없이 반복하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33)

그레이엄은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다. 그는 1966년과 1968년 성탄절에 베트남을 방문해 파병 군인들에게 설교했다. 설교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그는 당시 대통령 존슨에게 “우리가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이기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학살에 대해 그레이엄은 사실을 축소시키거나 사소한 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베트남 미라이에서 벌어진 학살이 마침내 보도됐을 때 그레이엄은 〈뉴욕 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우리도 다들 저마다의 ‘미라이’가 있지 않던가. 총을 쏘지는 않았을지라도 생각 없이 내뱉은 말과 거만함, 이기심으로 다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던가.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그는 반전 시위를 (모든 교파를 아우르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했음에도) “이 나라에서 온갖 혐오와 반란을 일으키려는 사탄의 악랄한 영적 힘”을 보여 주는 증거라며 비난했다.

또한 [1969~1974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반전 시위대가 던진 계란에 맞자 그레이엄은 “이런 사건을 엄단할 강력한 법”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닉슨이 베트남 전쟁을 캄보디아로 확대하고 켄트주립대학교와 잭슨주립대학교에서 반전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을 때에도(이로 인해 학생이 각각 4명과 2명 사망했다) 그레이엄은 닉슨을 돕기 위해 나섰다. 그레이엄은 녹스빌에 위치한 테네시대학교에서 열린 부흥회에 닉슨을 초청해 연단에 함께 세웠다. 전쟁과 닉슨 정부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관중 8만 명 앞에서 (부흥회 중간중간 “개소리!”를 외치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이날 시위대 47명이 구속됐다) 그레이엄은 “성경은 권위에 복종하라고 가르친다”고 설교했다.(34) 다음 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의 날” 행사에 닉슨은 그레이엄의 차를 함께 타고 환호하는 군중들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 이후 마련된 부흥회 집회에서 그레이엄과 함께 연설했다. 그레이엄은 닉슨을 그야말로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1971년 그는 닉슨에게 이렇게 썼다. “닉슨 당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저는 기대하는 바가 컸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모든 면에서 저의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당신은 미국에 도덕적·신앙적 지도력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그것을 제공했습니다.”(35)

그레이엄의 전기 작가들 중 하나는 이 시기에 그레이엄이 사실상 “닉슨 내각의 또 다른 각료, 닉슨 정부의 비공식 정무 목사”가 됐다고 썼다.(36) 좌파 저널리스트 I F 스톤은 그가 닉슨의 “매끈한 버전의 라스푸틴으로 사탕 발린 신앙을 배급했다”고 일컬었다.(37) 그레이엄은 닉슨이 중국과 국교를 터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자아냈을 때도, 심지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정부가 몰락하기 시작할 때도 닉슨을 지지했다. 때에 따라서는 닉슨의 반反유대주의에도 장단을 맞췄다. 그레이엄은 유대인 자유주의자들이 언론의 “목줄”을 쥐고 있고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미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닉슨에 동조했다. 유대인들이 “포르노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내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레이엄은 닉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제가 이스라엘에게 친화적이라는 점을 알기에 제 곁에 떼 지어 몰려와 친절하게 굽니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짓에 대해 제가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자들은 전혀 모릅니다.”(38)

기독교 우파의 부상
1940년대와 1950년대, 심지어 1960년대 초입까지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미국 국내 상황에 대해 흡족했고 반공주의 공세의 일부로 행동하는 데 만족했다. 전후 호황으로 형성된 미국 남부·중서부의 복음주의 중간계급 집단은 “번영 복음”을 신봉하고 폐쇄적인 기독교 하위문화 속에서 살고 당시 그들에게 염려 거리란 가톨릭 교회의 위협이나 유대인, 자신들 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교파 갈등 정도였다. 그러나 1960년대 동안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러 요소들이 기독교 우파가 등장하도록 자극했다: 반전 운동, 낙태권 운동, 페미니즘, 성소수자 해방 운동, 세속화의 증대 등.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첫 주안점은 그들이 “세속 인본주의”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온갖 ‘죄악’들을 막고 또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이른바 “문화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최초의 강력한 추동력은 흑인 평등권 운동과 그 운동이 인종분리 정책을 강하게 타격한 것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훗날 기독교 우파는 자신들이 정치적 조직과 활동을 시작한 핵심 계기가 낙태권 문제였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공립학교에서 인종분리 정책이 폐지된 것이 핵심 계기였고, 미국 남부·중서부에서는 인종분리 정책 폐지에 대한 반발로 공립학교에서 자퇴가 대거 벌어지고 백인 전용 사립 기독교 학교가 급증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1970년대 “복음주의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하루에 신규 사립학교를 매일 평균 두 곳씩 건립했다.” 그래서 1979년이 되면 백인 사립 기독교 학교가 5000여 곳에 이르렀고, “10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다.

이후 ‘도덕적 다수’를 창립하게 되는 [목사] 제리 폴웰 또한 당시 흑백 인종 분리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백인 사립학교 건립 운동의 일부였다. 그래서 자신의 교회가 위치한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백인 교인들을 위한 백인 기독교 사립학교를 직접 설립했다. 그는 흑백 인종 통합은 “진정한 흑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며 “인종분리 폐지는 소련이 막후에서 작업한 것이 분명하다”거나 이 모든 것은 “사탄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했다.(39) 또한 그는 “함족이 유대인과 비非유대인”을 시종으로서 섬길 저주를 받았으며, 인종 분리가 철폐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벌할 것이다”고 주장했다.(40) 폴웰 자신은 흑인 평등권 시위대와 직접 맞닥뜨린 적이 있는데 당시 한 무리의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들이 그의 교회에서 “무릎 꿇기” 항의행동을 벌이며 폴웰에게 흑백 인종 통합을 요구하자, 그는 경찰을 불러 이들을 쫓아내 버렸다.(41) 한편 기독교인들의 홈스쿨링도 급증했다. 그렇지만 이 운동이 본격 정치화한 계기는 1978년 미국 국세청IRS이 흑백 인종 분리를 유지하는 사립학교의 면세 지위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기독교 우파의 동원 잠재력을 온전히 일깨워 준 운동은 성평등헌법수정안(이하 ERA) 반대 운동이었다. ERA는 “법에 따른 권리의 평등은 성별을 이유로 부정되거나 축소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헌법에 포함시키자는 것으로, 의회에서 압도적이고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ERA는 1971~1972년 미 의회에서 발의된 후 하원에서 354표 대 23표로, 상원에서 84표 대 8표로 통과됐으며 닉슨도 완전히 지지했다. 그러나 이 수정안이 최종 통과되려면 38개 주州에서 비준을 받아야 했다.

기독교 우파는 이를 저지하러 나섰다. 이를 주도한 것은 강경 극우파 가톨릭 교인인 필리스 슐래플리였다. 슐래플리는 오랫동안 냉전을 지지해 온 전투적 인사였고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우파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의 열성 지지자였다. 그녀는 원자폭탄을 가리켜 “현명하신 하나님이 미국에 주신 놀라운 선물”이라 주장하기도 했다.(42) 슐래플리는 1972년 10월 ‘스탑 ERA’ 운동을 시작해 각 주에서 ERA의 비준을 막고, 이미 비준한 주에서는 그 결정을 뒤집도록 압박했다. 폴웰 또한 ‘스탑 ERA’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ERA는 “우리 사회 구조 전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움직임”이었고, “가정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었다.(43) ‘스탑 ERA’ 운동은 여러 주에서 성공을 거뒀고 놀라울 정도로 온건했던 ERA는 결코 비준되지 못했다. ‘스탑 ERA’ 운동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우파 가톨릭 교인들과 협력했다는 점이다. 슐래플리는 심지어 폴웰의 교회에서 설교도 했다. 이렇게 차별주의자들이 종단을 뛰어넘어 단결한 것은 새로운 변화였다.

슐래플리의 ‘스탑 ERA’ 운동은 의심의 여지없이 제리 폴웰, 팀 라헤이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공화당 우파 활동가들을 모두 고무했다. 폴웰 입장에서 ‘스탑 ERA’는 자신을 전국적으로 알릴 기회였다. 1976년 폴웰은 미국 건국 200년을 기념하며 그가 이끄는 리버티대학교 성가대를 동원해 각 주 의사당을 순회하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미국” 설교 순방에 나섰다. 훗날 폴웰은 이 설교 순방이 “낙태 등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사회적 흐름에 맞선 정치적 행동에 미국 전역의 기독교인들을 동원하기 위해 나섰던 최초의 공세”였다고 묘사했다.(44) 1979년 폴웰은 다시 한 번 설교 순방을 했다. 같은 해, 그는 《미국은 구원될 수 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일종의 선언문 성격을 띠었는데, 거기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나의 정치 성향을 묻는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보다 무조건 더 오른쪽에 있다고 답하겠다. 나는 골드워터가 너무 자유주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45)

폴웰과 라헤이 등은 전국적 복음주의 정치조직의 필요성을 느꼈고, 일련의 공화당 강경 우파 인사들(폴 웨이릭, 하워드 필립스, 리처드 비거리, 로버트 빌링스)과 합세해 1979년 6월 단체 ‘도덕적 다수’를 설립했다. ‘도덕적 다수’는 앞장서서 복음주의 교인들 사이에서 유권자 등록을 촉구하고(이들에 따르면 이를 통해 유권자 등록을 한 기독교인이 1년 만에 300만 명에 이르렀으며, 몇 년 만에 700만 명을 유권자로 등록시켰다고 한다), 공화당 표를 조직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도덕적 다수’를 공동 설립한 공화당 의원] 웨이릭이 보기에 폴웰을 비롯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이런 운동을 새로 띄운 결정적 계기는 그들이 설교했던 대단한 도덕적 대의가 아니라, 국세청의 처신에 대한 불만이었다는 것이다.(46) ‘도덕적 다수’의 목표는 두 가지였는데, 복음주의 교인들로 하여금 공화당에 투표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공화당이 기독교 우파의 의제를 채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을 북받치게 만들고 그 지지를 조직하기 위해 이른바 “문화 전쟁”이 선언됐는데 ‘기독교 국가 미국’이 온갖 형태의 “세속 인본주의”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도덕은 위기에 처했다. 또 낙태, 성소수자 권리, 공교육의 세속화, 환경 운동, 포르노, 페미니즘 등 이 모든 것들이 미국을 타락시키고 있었고 그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들은 충격적일 정도로 비열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도덕적 다수’ 창립자 중 한 명이며 그 자신이 안수받은 목사였던 로버트 빌링스는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자극하고 격분하게 해 TV를 보다가 뛰쳐나와 행동에 나서게 만들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쟁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동성애 문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47) 성소수자 기독교인인 멜 화이트가 서술하듯, 폴웰은 “동성애와 동성애자들에 대한 총력전을 일으켰다 … 폴웰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격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폴웰의 어조와 분위기는 그가 수백만 교인에게 여러 차례 보낸 헌금 호소 편지 중 하나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지난주 수요일, 저는 동성애자 무리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그 일로 저는 미국이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가 됐다고 확신했습니다. ⋯ 오늘 35달러를 기부해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폴웰은 수년 동안 성소수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차없이 조장했다. 그는 1994년에 해외 운동선수들이 뉴욕에서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종합경기대회인] ‘게이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을 때 클린턴 행정부가 비자를 발급해 준 것을 격렬히 비난했다. 그들이 “치명적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AIDS 바이러스에 감염된 외국인들”이라고 주장했고, “게이와 레즈비언, 복장도착자, 바이섹슈얼, 소아성애자, 소돔인들이 참가하는 올림픽 경기를 동성애자들이 개최하도록 해 주려고” 미국인들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변태”들이 “우리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들기 위해” 밖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둥 끝없이 비난을 늘어놓았다. [〈텔레토비〉 중 한 명인] 보라돌이가 [모습은 여자아이지만 목소리가 남자아이고 가장 덩치가 크지만 빨간색 가방을 들었다는 이유로] 미국 그리스도인들을 노린 동성애자들의 음모 중 일부라고 주장한 것도 당연히 폴웰이었다.(48) 이런 일련의 동성애혐오 물결의 결과로 1998년에는 여러 복음주의 단체들이 [대표적 영어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을 더는 쓰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갔다. 이들은 킹 제임스 성경이 동성애자의 의뢰로 편찬된 성경이고 “동성애자가 의뢰한” 것은 무엇이든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오염됐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49)

기독교 우파들만의 세계
기독교 우파의 정치는 미국인 수백만 명이 받아들이는 미국만의 독특한 복음주의 하위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하위문화는 미국 바깥은 물론, 같은 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것을 실제로 접한 사람들은 그 기이함에 놀라고 또 미신적인 성격과 상업주의의 희안한 결합에 적잖이 놀란다. 그 하위문화를 여기서 체계적으로 다룰 수는 없지만, 기독교 우파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려면 그것의 몇몇 측면들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우선, 그 규모와 폐쇄성을 감 잡게 해 주는 사례가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1982년 미국의 베스트셀러는 《제인 폰다의 건강 유지 비결》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제대로 된 통계가 아니다. 〈뉴욕 타임스〉는 기독교 서점의 판매 실적을 집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를 포함시키면 그해의 베스트셀러는 제인 폰다의 책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 더 많이 팔린 프랜시스 셰퍼의 《기독교 선언》이 된다. ‘도덕적 다수’는 이 책을 “우리가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책으로 받아들였다.(50) 저자 셰퍼는 기독교 우파의 지도적 이데올로그이자, “세속 인본주의”가 (공산주의를 밀어내고) 기독교 국가 미국이 직면한 새로운 적이라고 주장한 원조로 종종 거론되고, 낙태 반대를 기독교 우파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로 흔히 인정된다. 셰퍼의 저서 23종 중 많은 수가 베스트셀러이고 기독교 학교·대학과 교회 공부 모임의 교재로 사용되지만, 셰퍼는 복음주의 하위문화권 바깥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우파를 논의하려면, 그 하위문화의 문화적 현상으로서 측면과 그 독특한 성격 모두를 약간이라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크레이그 언거에 따르면, 복음주의 교회는 “무수히 많은 미국인의 실제 필요나 그들에게 필요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충족시킨다. 그 미국인들은 “현대의 홍보 수단을 총동원한, 정교하고 전방위적으로 발달한 복음주의 하위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 자녀들은 기독교 학교나 홈스쿨링을 통해서 교육받고, 그런 교육은 성교육 대신에 금욕을 가르치고, 진화론 대신에 창조론을 가르친다. 또한 사탄이 일으키는 “세속 인본주의”로부터 기독교 국가 미국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고 경고한다. 만약 이 흐름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신의 분노로 미국은 즉각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기독교 여름 캠프가 개설되고, 기독교 만화, 기독교 영화, 기독교 음악이 제작된다 … 복음주의 신도들은 아이들을 디즈니랜드에 데려가는 대신에 짐과 태미 페이 바커 부부가 세운 2300에이커 크기 기독교 테마파크인 헤리티지 PTL(Praise The Lord[신을 찬양하라])로 아이들을 데려가곤 했다 … 이 테마파크가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릴 때는 일 년에 6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위치한 ‘성지체험’ 테마파크는 헤롯 성전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예수가 십자가를 매고 걸어가던 예루살렘 거리를 복원해 놓았다.”(51)

더 최근인 2007년 5월, 켄터키주 피터스버그에 47에이커 크기의 창조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진화론이 아닌 설명을 제시하며 하나님이 “24시간을 여섯 번 거치는 동안” 세상을 창조했고 그 시기는 “1만 년이 채 안 되는 과거”였음을 입증하려 한다. 박물관이 개관한 첫해에 4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고, 2010년 4월에는 “100만 번째 방문객을 맞이했다.” 이 박물관을 연구한 트롤링거 부부가 지적하듯, 이런 현상이 많은 이들에게 실로 “이해할 수 없고 특이하며”, “기이한” 일로 여겨질지 모르나 사실 “창조론 박물관은 미국의 문화적·정치적·종교적 주류의 오른쪽 한 켠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 미국 인구 중 상당수가 따르는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대변하고 또 그에 부응하는 것이다.”(52)

또한 학교 교육을 마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100여 개의 기독교 대학과 전문대학 중 한 곳으로 진학한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 체육관과 골프장, 복음주의 스케이트보드 클럽, 기독교 레슬링 연합, 기독교 락 페스티벌, 기독교 전화번호부, 기독교 중고물품거래, 기독교인들을 위한 [이동식 집들이 모여 있는 공간인] 트레일러 파크, 기독교 식단(《예수님은 무엇을 드셨나?》, 《건강을 위한 십계명》), 기독교인 변호사, 기독교 가구점, 기독교 패스트푸드 체인, 신자들을 위한 기독교 행사 맞이 여행 패키지를 제공하는 기독교 여행사가 있으며, 온갖 종류의 판매상들이 존재해서 기독교 서점이나 기독교 식료품점뿐 아니라 타이슨푸드·월마트와 비슷한 창고형 대형마트까지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용품점인 ‘라이프웨이’에서는 기독교 연필, “생명 존중” 티셔츠(‘엄마, 제발 살려주세요’나 ‘한땐 나도 태아였다’ 문구가 쓰인) 등을 판다. 많은 복음주의 목사들이 전화 기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기독교 섹스 매뉴얼도 있는데 그들 중 일부는 팀과 베벌리 라헤이 같은 기독교 우파 지도자들이 쓴 것이고(《결혼행전》과 《40세 이후의 결혼행전》 등)과 기독교 성인용품도 있다. 또는 야외활동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전미총기협회 회장을 지낸] 올리버 노스 대령과 함께하는 ‘총을 든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위한 오리 사냥 체험도 있다. 기독교 라디오와 TV 방송국들도 당연히 존재한다.(53) 심지어 기독교 우파들에게 줄곧 증오의 대상이 돼 온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기독교 우파적 대항물이라 할 수 있는 미국법정의센터ACLJ도 있다.

또,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방대한 복음주의 출판물도 기독교 우파가 세력을 유지하도록 일조한다. 1970년 출판된 이래 오늘날까지도 팔리고 있는 할 린지의 세기말적 예언을 담은 책 《대유성 지구의 종말》은 1970년대 베스트셀러였으며 20세기 말까지 3000만 부가 팔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책은 팀 라헤이와 제리 젠킨스가 쓴 12부 연작소설 《레프트 비하인드》이다. 이 시리즈는 1995년에 시작돼 2004년에 마지막 책이 발표되며 마무리됐지만 엄청난 성공 덕분에 이후 여러 권의 후속편과 프리퀄이 나왔다. 이 연작소설은 휴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구원받은 자들이 천국으로 간 뒤, 남겨진 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바로 적그리스도 무리와 “새로 태어날” 준비가 된 이들 사이의 전쟁이다. 여기서 적그리스도는 당연히 유엔 사무총장으로 그는 두 남성 동성애자의 정자로 수정돼 수정관 아기로 태어났다는 설정이다. 7년 뒤 마침내 예수가 재림하는데 그는 가차없이 학살을 저지르는 마초 전사가 돼 일말의 자비심 없이 [성경의 아마겟돈인] 메기도에서 적그리스도 군대를 모조리 깨부수고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자들을 잔인하게 죽여 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죽어서 지옥에서 평생 고통을 겪는다. 이스라엘 그 자체와 이스라엘 지지는 기독교 종말신학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소설에는 반反유대주의 냄새가 진동한다. 라헤이 자신이 강조하듯,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소리쳤다.”(54) 구원받을 자격이 되는 유대인들은 오직 복음주의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뿐이며 이들의 숫자는 14만 4000명이라 한다. 그 외에는 모두 지옥 불에 떨어진다.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게이, 레즈비언, 세속주의자, 유대인, 무슬림, 불교 신자, 힌두교 신자, 무신론자, 그리고 [복음주의자가 아닌] 나머지 기독교(특히 가톨릭)이 그렇다.

이런 서적들은 미국의 주요한 문화적 현상이다. 2007년 크레이그 언거에 따르면 이 서적을 모두 합치면 “6300만 부 이상” 팔렸다.(55) 파생 산업도 거대한데, 이 연작 소설들을 기반으로 한 연작 어린이 동화 시리즈 20권, 그래픽 노블 시리즈 40권, 비디오 게임, 여러 편의 영화가 제작됐고, 이 영화 중 한 편에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했다. 하지만 미국 바깥에서는 이런 시리즈물의 존재조차 사실상 알려져 있지 않다.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들
‘텔레비전 목회’는 현대 미국 복음주의와 기독교 우파의 핵심 주춧돌 중 하나다. 사라 다이아몬드는 텔레비전 목회 활동을 “기독교 우파의 부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요소”로 꼽았다. 1987년 텔레비전 목회는 “매년 20억 달러 매출을 낳는 산업이 됐고, 기독교 전문 방송사들은 1000개의 라디오 방송국과 200개의 TV 방송국을 거느리고 있었다.”(56) 텔레비전 목회 방송 시청자 수는 1960년대에 600만 명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에는 2500만 명으로 대거 불어났으며” 이는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졌다.(57) 1986년이 되면 제리 폴웰의 일요일 아침 설교를 “매주 미국 가정 넷 중 한 곳에서 들을 수 있었고”, 기독교 TV와 라디오 방송국뿐 아니라 다수의 “세속적” 방송국에서도 그의 설교를 방송했다.(58)

텔레비전 목회의 주된 소재는 “번영 복음”이다. 부가 하나님의 은혜이자 하나님이 주는 보상이라고 보는 교리다. 이 교리에 따르면, 궁핍하거나 부가 충분치 않은 이들은 텔레비전 복음전도자에 기부를 하면 (더) 부유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물론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들도 부유해진다. 이 복음전도자들이 엄청난 부를 쌓는다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며 오히려 “번영 복음”이 옳다는 증거다. 가장 성공한 번영 복음 전도자들 중 한 명인 짐 바커는 “목사는 최소한 자신이 이끄는 교회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누리는 만큼의 부를 누려야 한다. 설교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 은혜가 자신에게 돌아온다.”(59)

오럴 로버츠는 이런 “번영 복음”의 선구자이며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었다. [한국에서 원조는 조용기 목사였다.] 그는 신앙치유자로 죽은 자들 수십 명을 다시 살려 냈다고 주장했고 그중에는 예배 도중 살려 낸 아기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이 이끄는 교회에 헌금을 내면 하나님께서 7배로 되돌려줄 것이라 약속했을 때, 수십만 명이 그 말을 실제로 믿었다. 1975년 로버츠의 추수감사절 방송은 시청자가 2500만 명에 이르렀다.(60) 그렇지만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들 사이에서도 로버츠는 저속하고 장사치나 다름없다고 여겨졌다. 그는 “자신의 치유의 손이 새겨진” 천 조각을 팔았고, 성수가 담긴 비닐 봉지를 팔며 “시청자들이 투자에 대한 빠른 수익을 원한다면 지갑에 성수를 바르라고 조언했다.”(61) 하지만 로버츠의 가장 악명 높은 사기극은 1987년 1월 4일에 있었던 모금 캠페인이었다. 그 자리에서 로버츠는 3월 말까지 800만 달러를 모으지 못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며 눈물 흘리며 헌금을 호소했다. 어느 시점에는 하루 헌금액이 16만 달러에 이르렀고, 마감 하루 전 누군가 130만 달러를 기부한 덕분에 로버츠는 ‘목숨을 건졌다’. 물론 유명한 초능력 사기꾼 색출자 제임스 랜디가 지적했듯이, 로버츠가 그렇게도 돈이 급했으면 “베벌리힐스, 털사, 팜스프링스[미국의 대표적 부촌들]에 있는 그의 집들 중 하나만 팔았어도 됐을 것이다.”(62)

[목사] 팻 로버트슨은 자신이 소유한 CBN기독교방송국을 통해 여러 면에서 텔레비전 목회를 선도했으며 이후 ‘기독교연합’을 설립한 인물로 신앙치유(신유)가 헌금(비과세 대상)을 모으는 데에 굉장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버트슨은 텔레비전에서 정기적으로 신체적·금전적 장애를 ‘치유’했다.

캔사스 시티에 부비동염을 앓고 있는 여성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콧물을 멈추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한 남성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수십만 달러 정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문제는 해결되고 있으며 앞으로 3일 안에 성령의 힘으로 그에게 필요한 돈이 제공될 것입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신시내티에 사는 악성림프종 암에 걸린 한 여성이 있습니다. 아직 암 진단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몸이 좋지 않다고 느꼈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그 암을 치유해 주고 계십니다.(63)

로버트슨은 이런 식으로 “소액의 헌금을 내는 … 주로 노인들”을 기반으로 헌금을 모아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스코틀랜드은행과 [섬유·의류 기업] ‘로라 애슐리’와 파트너십을 맺게 되지만 그 파트너십은 로버트슨의 동성애혐오에 대한 항의에 직면해 끝나게 된다. 그러나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과의 거래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로버트슨과 머독은 정치가 비슷했다”). 로버트슨은 그가 소유한 ‘패밀리 채널’을 [머독의] 폭스 사에 1997년 19억 달러를 받고 팔았다. 이 채널은 로버트슨과 머독을 공동 운영진으로 하는 ‘폭스 패밀리 채널’이 됐고 로버트슨의 일일 프로그램 〈700클럽〉을 계속 방영했다. 2001년 디즈니가 채널을 20억 달러에 사들였고 이번에도 〈700클럽〉을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비록 로버트슨은 디즈니가 올랜도 리조트에서 [1년에 한번 LGBT+ 커뮤니티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모이는 날인] “게이 데이스Gay Days”를 주최한 것을 문제 삼으며 “테러리스트 폭탄 공격, 지진, 토네이도, 심지어 소행성 충돌”로 신의 분노가 떨어질 위험에 처했다고 한때 비난했었지만, 둘은 아무렇지 않게 계약을 했다. 로버트슨은 또한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인] 자이르의 모부투 독재정권을 지지하며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을 확보했다. 그 후 소위 구호 물품을 싣는다는 구실로 비행기를 동원해 실제로는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기구를 옮겼다. 이 비행에 참가한 한 파일럿이 이후 폭로하기를, 6개월 동안 자신이 수행한 총 40회의 비행 중 인도주의 목적의 비행은 1회뿐이었고 나머지는 채굴기구를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64) 

이처럼 끔찍할 정도로 돈만 밝히는 돌팔이에 사기꾼(백혈병을 앓는 아이들을 치료했다고 주장하고, 기도를 통해 허리케인의 경로를 바꿨으며, 동성애에 대한 포용 탓에 홍수와 지진이 일어났다고 상습적으로 주장했다)은 공화당에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더 최근에 부상한 인물로는 존 해기 목사가 있다. 그는 400만 회원을 자랑하는 미국 최대의 친親시온주의 단체 ‘이스라엘을 위한 기독교인 연합’의 설립자다. 매주 그의 설교는 대규모 방송 네트워크인 ‘살렘 커뮤니케이션스’가 소유한 방송국 수백 곳에서 방송됐다 … 해기는 교인들이 자신에게 후한 헌금, 즉 “사랑의 선물”을 주면 불치병, 신용카드 빚, 대인관계 문제 등 온갖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기적으로 설교했다 … 그리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끌어모아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설교자 중 한 명이 됐다.(65)

레이건에서 부시까지
로널드 레이건은 복음주의 신자가 아니었다. 종교적으로 신실하기는커녕 교회에 다니지도 않았고, 낙태 등에 관해 자유주의적 태도를 취했었고 동성애를 혐오하지도 않았었다. 그는 미국 최초로 이혼 경력을 가진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레이건의 두 번째 아내인 낸시 레이건은 점성술을 믿는, 복음주의자들이 보기에 이단자였다. 그런 레이건이 1980년 대선에 맞붙은 [재선을 도모하던 민주당 대통령] 지미 카터는 복음주의자이며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었고, 대통령 임기 중 주일 학교에서 가르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터는 자유주의자로, 기독교 우파의 문화 전쟁 의제를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레이건은 1980년 대선 승리를 위해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구했다. 1980년 7월 레이건 선본 측은 제리 폴웰과 ‘도덕적 다수’ 지도부를 만나 “학교에서 기도를 부활시키고 낙태를 금지하는 헌법 수정안을 지지하고, ERA 반대를 천명하겠다”고 약속했다.(66) 게다가 [잡지 〈뉴스위크〉 종교 섹션 편집자였던] 케네스 우드워드가 지적하듯, “이 전직 배우[레이건]는 신실한 교인이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미국은 영성 부활에 목말라 있다’는 복음주의 레퍼토리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67) “종말론적 수사를 뉴딜 국가에 대한 비판”과 능숙하게 결합시킨 덕분에 레이건은 기독교 우파가 “꿈꾸던 대선후보”가 됐다.(68)

‘도덕적 다수’는 레이건의 선거 운동에 복음주의자들을 동원하는 데 핵심 구실을 했고, 레이건 혼자서는 얻지 못했을 종교적 후광을 부여했다. 그 대가로 기독교 우파는 레이건 정부가 문화 전쟁에서 자신들을 확실히 편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을 뿐 아니라 레이건의 우익적 경제 정책과 강경 냉전 정책은 자신들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이었다. 레이건은 상징적 제스처를 통해 기독교 우파 사이에서 지지를 끌어올렸지만 그런 제스처를 실제 행동으로는 결코 뒷받침하지는 않았는데, 복음주의자가 아닌 미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임명한 31명의 내각 관료들 중 오직 4명만이 기독교 우파였다. 그는 기독교 우파에게 “사진 찍을 기회, 친절한 말 외에는 아무것도 준 것이 없었다.”(69) 예를 들어 낙태의 경우, 레이건 행정부는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립서비스를 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이를 지지한 적은 결코 없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낙태 금지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르면 1982년부터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반짝이는 구슬과 거울”에 현혹된 “신대륙의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불평하고 투덜거릴 수는 있어도 … 레이건 정부를 지지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70) 기독교 우파들은 [레이건이 재선에 도전한] 1984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희망을 잠시 키우기도 했었지만, 결국 레이건의 두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목표들 중 어느 것 하나 실제로 이루지 못했다. 이 시기 미국은 재계와 부자들의 영향력이 역사상 최고로 강화되며 확실히 탈바꿈했고 이 모든 일은 기독교 우파의 지지 덕분이었지만, 레이건은 정작 문화 전쟁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은 결코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레이건 선거 운동이 기독교 우파에 의존하며 생겨난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바로 기독교 우파가 주·지역 단위의 공화당 조직에 더 많이 관여하게 됐다는 점이고 남부와 중서부의 많은 지역에서 공화당 조직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독교 우파가 성공적으로 깊숙이 관여한 정책 분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레이건 정부가 중앙아메리카에서 벌인 대리전이었다. 레이건은 베트남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까 두려워 중앙아메리카에 미군을 파병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 대신 대리전을 벌였는데, 그 일환으로 니카라과의 [좌파 민족주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려고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서 잔인한 살인 정권들을 후원했다. 일각에서는 레이건은 “기독교 우파 운동이 문화 전쟁과 관련된 희망을 버리지 못할 정도의 상징적 제스처만 제공”했는데도, “기독교 우파 운동이 레이건 캠프에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은 정부의 외교정책에 기독교 우파가 적극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71)

팻 로버트슨은 1983년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를 순방하며, 니카라과에서 테러와 학살을 저지르며 잔인한 전쟁을 수행하던 우익 반군 콘트라를 “신의 군대”라며 찬양했고, 엘살바도르의 극우파 무장단체 데스 스쿼드의 지도자인 로베르토 다우부이손을 가리켜 “매우 좋은 친구”라 불렀다. 로버트슨은 심지어 자신의 CBN 방송국에서 니카라과 콘트라를 위한 장시간 모금 방송을 진행해 그 결과 700만 달러를 콘트라 측에 기부하기도 했다. 다른 복음주의 조직들 또한 콘트라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레이건 정부가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 이란-콘트라 스캔들[미국이 콘트라를 지원하기 위해 무기 판매 제재 국가인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사건]으로 마침내 백일하에 드러나자, 기독교 우파들은 이 사건의 희생양이 된 올리버 노스 대령(그 자신이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다)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폴웰은 노스를 예수에 비유하기까지 하며 그의 재판 비용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다.(72)

레이건 정부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무렵, 기독교 우파들 사이에서는 크나큰 실망감이 자리잡는다. 레이건 행정부가 문화 전쟁에 제대로 임하지 못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의 유력한 후임자이자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1세의 정치도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도덕적 다수’는 붕괴됐고 1989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팻 로버트슨은 직접 198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다(당연히 하나님이 출마를 명령하셨다!). 그는 기독교 우파의 문화 전쟁 이슈들과 작은 정부를 열렬히 지향하는 재정 보수주의를 결합해 선거운동을 벌였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언론은 그의 첫째 아이가 혼외출생으로 태어났다는 것과(로버트슨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결혼 날짜를 수년 동안 속였다), 자신이 한국전쟁 야전용사였다는 로버트슨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그를 일본에 주둔시키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로버트슨은 4개 주에서만 이겼고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는 9퍼센트를 획득하는 데 그쳤지만, 두 가지 중요한 성공을 거뒀다. 첫째, 부시는 기독교 우파를 달래기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그의 경선 캠페인을 거치면서 공화당 안에 존재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부시의 리더십 아래 결집했고 향후 1990년대에 부시는 이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우게 된다. 부시는 기독교 우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그 자신이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건은 1989년 9월 로버트슨이 기독교 우파의 새로운 선봉으로 미국기독교연합CCA을 출범시킨 일이었다. 2000명의 회원과 8만 2000달러의 자금으로 출발한 이 조직은 1997년이 되면 19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2700만 달러 규모의 예산을 굴린다고 주장할 정도로 성장해, 복음주의 중간계급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조직의 힘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주류 공화당 의원들에게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정도였다.”(73)

기독교 우파는 조지 부시 1세의 임기 동안 주·지역 수준에서 역량을 키우는 데에 집중했다. 로버트슨은 부시가 “사탄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새로운 질서 설립을 지향하는, 끈끈하게 조직된 강도 집단의 주장을 대중 앞에서 되풀이하며,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의심했다.(74) 기독교 우파에게 설상가상이었던 점은 부시가 기독교 우파의 문화 전쟁 의제를 무시했고 심지어 백악관에 게이 커플들을 초청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미국기독교연합은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에 반대해 부시를 여전히 지지했지만, 아무 열의 없는 지지에 불과했다.

클린턴이 당선하자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적그리스도’로 여겼다. 클린턴 집권으로 세속 인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차지했으며 기독교 국가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위험에 처했다고 봤다. 클린턴은 임기 동안 탄핵 시도를 포함해 유례가 드문 중상모략과 비방에 시달렸는데, 상당 부분은 기독교 우파가 주도한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복음주의자들은 공화당 안에서 더한층 영향력을 키웠고, 그 결과 2000년에는 자신들의 후보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게 할 수 있었다. 그 후보는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인 조지 부시 2세였다. 기독교 우파는 조지 부시 2세의 당선을 기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가 민주당 상대 후보였던 앨 고어보다 [유권자] 득표수로는 졌음에도 [미국의 선거제도 탓에] 당선했기 때문이고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백악관에 앉히신 것으로 여겨졌다. 기독교 우파에게 이는 9·11 공격이 다가올 것을 (당연히도) 알고 계셨던 하나님의 역사役事였다.

부시 2세는 기독교 우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대선 후보로 보였다. 그는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어서 신실함이 담긴 말과 감상을 늘어놓는 능력이 있었다.[조지 부시 2세는 미국 연합감리회 교인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도 부시는 문화 전쟁에서 기독교 우파들에게 약속한 만큼 행동하지 않았다. 당시 문화 전쟁 전선이 동성 결혼 쟁점으로 특히 첨예해졌는데도 말이다. 부시 자신은 정부가 친기독교임을 표방하는 구실을 했지만 실제 정치를 담당한 인물은 부시의 책사 칼 로브였는데 그는 [종교적으로는] 불가지론자였고, 로브가 보기에 기독교 우파는 매수하고 관리해야 할 여러 유권자 집단 중 하나(비록 아주 강력한 집단이기는 하지만)에 불과했다. 로브에게는 미국을 기업을 위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는 “종교는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며, 기독교 우파를 조직하고 이용하는 데 써먹기에는 동성애자들이 “완벽한 적”이라 여겼다.(75) 

그러나 기독교 우파를 부시 정부에 계속 묶어 놓은 핵심 고리는 복음주의 버전의 “태머니 홀”[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뉴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정치 조직], 즉 부시 행정부가 기독교 우파에 쏟아붓는 수십억 달러였다. 부시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했는데, 현실에서 이는 복지 서비스를 교회와 기독교 자선 단체에 넘기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상, “복음주의 목사들을 위한 이 같은 엽관제獵官制[정치적 지지자에 대한 보답에서 공무원이나 관직에 임명하는 제도]를 통해 이들은 교도소 프로그램과 직업 훈련, 청소년 혼전순결 등 온갖 복지 사업에 관여하게 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한 가지 결과는 더욱더 많은 사회복지 서비스가 동성애자, 유대인 등 ‘지옥에 떨어질 이들’을 고용하기를 거부하는 단체의 손에 맡겨졌다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신앙 관련 프로그램에 2003년 약 11억 7000만 달러를 썼는데, 이듬해에 그 액수는 20억 달러로 늘렸다고 으스댔다. 그리고 첫 임기(2001~2004년) 동안 “순결 교육”에 거의 10억 달러를 썼으며 더 많은 학교들(전체 학교의 3분의 1)에서 오직 순결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을 가르쳤다.(76)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부시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부시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기업과 부자들에게 이롭게 경제를 관리하고 미국 제국주의의 권력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우파는 2001년 9·11 공격을 계기로 부시를 더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리 폴웰은 이 사건을 문화 전쟁을 고조시킬 기회로 붙잡으려 했다. 9·11 공격 이틀 뒤, 폴웰은 팻 로버트슨의 〈700클럽〉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낙태 옹호론자들은 이 공격에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더 이상 당하고만 계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4000만 명의 작고 죄 없는 아기들을 죽이자 하나님이 격노하셨다. 나는 이교도들, 낙태 옹호론자들, 페미니스트, 게이와 레즈비언들 … 이 모두가 미국을 세속화하려는 세력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나는 이들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들이 자초한 결과다.’” 로버트슨 또한 폴웰의 주장에 동감을 표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에게 9·11 공격은 미국의 중동 지배를 강화하고 이라크 석유 통제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기독교 우파 중 일부는 중동 공격을 그 지역에서 무슬림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킬 기회로 여겼을지 몰라도, 부시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기독교 신앙을 금지한다)를 미국의 중동 공격을 지지하도록 끌어들이는 데 관심을 더 뒀다.

조지 부시 2세가 기독교 우파에게 준 것은 “3S 즉, 상징, 공감, 선택적 양보”였다. 기독교 우파가 부시 2세에게 이뤄준 것은 미국의 불평등 수준을 1929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기회였다.(77) 기독교 우파는 부시가 그의 두 번째 임기(2005~2008년)에서는 자신들을 대신해 문화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부시의 두 번째 임기는 재앙으로 끝났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이 이어지고, 2008년 경제 위기가 분출하며 미국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하고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오바마는 기독교 우파와 어느 정도 타협을 하려 했지만, 기독교 우파가 보기에 이제 세속 인본주의가 승리하고 기독교 국가 미국은 다시 한번 파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오바마의 집권기가 기독교 우파에게는 “기독교에 대항한 가차없는 전쟁”이 벌어진 시기였다. 그들이 보기에 오바마는 “신앙을 가진 미국인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오바마는 어떤 낙태든 죄다 마다하지 않았고”, 그는 “[낙태 시술 제공 단체인] 미국가족계획협회에서 최초로 연설한 미국 대통령”이고,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할 뿐 아니라, “동성애자 자긍심 운동의 상징인 무지개 색으로 백악관을 장식한” 자였다.(78) 실제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오바마를 기독교인인 척하는 무슬림이라 생각했다.

기독교 우파와 트럼프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될 자는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받는 자여야만 했다. ‘도덕적 다수’나 미국기독교연합 같은 지배적 조직은 이제 없었지만,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화당은 각종 기독교 우파 단체들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이런 단체들의 회원들을 다 합하면 수백만 명을 헤아린다. 그럼에도 기독교 우파가 복음주의를 진짜로 믿는 다른 후보들이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기독교적이지 않은 후보인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택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트럼프 자신은 정략적으로 모종의 장로교인 행세를 했다.]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이었던 듯하다. 첫째, 그들은 트럼프가 이기는 패라고 봤다. 둘째,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트럼프는 기독교 우파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연방대법원을 포함해 연방 판사들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겠다고 약속했고, 기독교 우파 인사[마이크 펜스]에게 부통령 자리를 주고, 기독교 우파 인물들로 정부 요직을 채우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독교 우파는 법원에 대한 통제권이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동성애자 권리를 후퇴시키고, 낙태를 금지하고, 환경 운동에 제동을 거는 데 핵심이라고 봤다. 기독교 우파는 그 대가로 트럼프의 병적인 거짓말, 부패, 범죄, 여성혐오, 인종차별, 오만방자한 약자 괴롭힘과 깡패짓거리, 기가 막힐 정도의 무식함, 파시스트들과 네오 나치들에게 던지는 추파 등을 모두 눈감아 주기로 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 우파는 어떻게 그들이 [트럼프와] 맺은 합의를 정당화할까?

일부는 트럼프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며 이제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주장했다. 물론 트럼프 자신도 하나님이 대통령 출마를 명하셨다고 이따금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유력한 논리는 트럼프가 이교도이자 죄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자를 통해 뜻을 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트럼프는 발람의 나귀[구약성서 민수기 22장에 등장하는 이야기.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발람을 막아선 천사를 보지 못한 발람이 천사를 보고 움직이지 않는 나귀를 마구 때리자, 나귀가 말을 하며 발람에게 이스라엘로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에 비유되기도 했다. 하나님이 당나귀의 입을 빌리기도 했는데 트럼프의 입을 빌리지 못할 것은 뭐냐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는 자신이 당나귀에 비유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호된 비유 대상은 페르시아의 건국왕 고레스(키루스)였다. 하나님께서 [복음주의 기독교 저자이자 설교자인] 랜스 월나우에게 이르시기를, 기독교 우파가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이사야서 45장에서 찾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월나우는 이사야서 45장이 키루스를 “선택 받은 자”라 묘사하며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위해 이스라엘을 재건할 임무를 그에게 맡기셨다고 쓰인 것을 발견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하나 더 내리셨다 한다. 바로 2016년 대선은 미국의 45번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기에, 이사야서 45장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월나우는 이런 궤변을 늘어놓으며 심지어는 트럼프가 복음주의 목사들과 갖는 모임에 참석해 이 모든 것을 트럼프 본인에게 설명하려 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하며 … 고개를 끄덕였다.”(79)

기독교 우파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가장 뻔뻔한 입장 중 하나는 데이비드 브로디와 스콧 램이 쓴 트럼프의 영성에 관한 전기 《트럼프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보기에 “하나님께서는 수백만 명이 상상조차 못 하는 방식으로 이 자를 통해 역사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그 방식을 알고 계시고 그것으로 족하다.” 트럼프는 “여태껏 공화당이 내놓은 것 중에서 가장 ‘생명을 중시하는’ [즉, 낙태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트럼프의 공약은 가족, 전통적 결혼, 친-기독교적 자유의 가치를 한결같이 옹호했다.” 기독교 우파에게 트럼프는 “꿈에 그리던 대선후보”였다. “트럼프의 취임식에서는 미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긴 기도문이 낭독”됐으며, 트럼프는 “믿음이 있는 자들로 내각을 채웠고” 트럼프 내각은 실제로 “믿음이 있는 자들로 이뤄진 올스타 정치 팀”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점들에 비하면 트럼프가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별것 아닌 것이다.(80)

이렇게 속된 동맹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현재[2020년 1월]까지는 독실한 복음주의자인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그림자 대통령” 구실을 하고 트럼프가 “유명인 대통령”을 하는 식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듯하다.(81) 백악관 성경공부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성원들 중에는 부통령과 함께 장관 10명이 포함돼 있다. 마이크 펜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펜스가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의 보좌관 중 최근 이탈해 나온 한 인물은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지독해 보일 수 있지만, 마이크 펜스도 매우 우려스러운 자다 ... 펜스가 대통령이 되면 오히려 트럼프 때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82)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트럼프 탄핵이 통과되거나, 2020년 대선 결과가 논란거리가 되거나, 또 다른 경제 위기가 찾아오거나, 전쟁이 벌어지거나, 이런 일들이 동시에 결합돼 벌어지면, 미국 기독교 우파의 일부 인자들은 미국 파시즘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8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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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man, 2018, p196.↩︎
Boot, 2018, pp87-88. 부트가 억울하지 않게 덧붙이자면, 부트는 트럼프와 공화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이 보수주의와 완전히 결별했음을 분명히 밝혔고, 그 이유가 한때 존경하고 친구로까지 여겼던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방식이 너무도 역겹기 때문이라고 했다.↩︎
Heaton, 2019, p190↩︎
Brody and Lamb, 2018, p305.↩︎
Wald and Calhoun-Brown, 2011, p3↩︎
Kruse, 2015, p68; Herzog, 2011, p170.↩︎
Hudnut-Beumler, 1994, p37.↩︎
Herzog, 2011, p5.↩︎
Wuthnow, 1988, p66.↩︎
Herzog, 2011, p151.↩︎
Kruse, 2015, p138.↩︎
Herzog, 2011, p149↩︎
Lahr, 2007, p67.↩︎
Harrell 1985, pp153 and 288.↩︎
Kruse, 2015, p142.↩︎
Preston, 2012, p440.↩︎
Woodward, 2016, p45↩︎
Gunn, 2009, p57. 흥미롭게도,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시기 자서전 2권 어느 곳에도 하나님과 신앙에 관한 서술은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아이젠하워가 공식 인정한 1500페이지 전기에서 필자 스티븐 엠브로스는 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고작 반 페이지만을 할애했다.↩︎
Herzog, 2011, p95.↩︎
Williams, 2010, p26.↩︎
Hall, 2018, p144.↩︎
Lichtman, 2008, p193.↩︎
Kruse, 2015, pxii.↩︎
국기에 대한 맹세의 원안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1890년대 사회주의 성직자 프랜시스 벨라미였다. 그와 비슷한 종류의 신념을 가진 성직자들과 목사들이 1950년대에는 매카시즘 공격 속에서 마녀사냥 당했고, 우파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을 지목하며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chaffer, 2012, pp73-74.↩︎
Phillips, 2006, p217.↩︎
Silk, 1988, p55.↩︎
Frady, 2006, p198.↩︎
Kruse, 2015, p37.↩︎
Grem, 2016, p58.↩︎
Gibbs and Duffy, 2007, pp185 and 191; Frady, 2006, pp428-429 and 452.↩︎
Aikman, 2007, p338.↩︎
Frady, 2006, p453.↩︎
Stone, 1970, p468.↩︎
Gibbs and Duffy, 2007, pp202-203.↩︎
Williams, 2010, pp33 and 85.↩︎
Trollinger and Trollinger, 2016, p187.↩︎
“무릎 꿇기”는 흑인 평등권 운동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인데, 기독교 시위대들은 흑백분리 교회에 항의하는 행동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은 백인 목사였던 애쉬튼 존스인데, 그는 조지아주 아틀랜타에서 6개월 형을 살았다. Jones, 2016, p.165를 보라.↩︎
Haberski, 2012, p120.↩︎
Blaker, 2003, p81.↩︎
Sutton, 2013, p18.↩︎
Fitzgerald, 1986, p173.↩︎
Jones, 2016, p171. 국세청은 흑백분리를 여전히 유지하는 기독교 학교와 대학의 면세지위를 박탈하려 했다.↩︎
Lichtman, 2008, p321.↩︎
Winters, 2012, pp375-376.↩︎
White, 2006, pp57 and 137.↩︎
Young, 2015, p179.↩︎
Unger, 2007, p87.↩︎
Trollinger and Trollinger, 2016, pp1-2 and 13.↩︎
Unger, 2007, pp88 and 151-152. ‘총을 든 신실한 기독교인들’에 관해서는 Sharlet, 2011, p87를 보라.↩︎
Lienesch, 1993, p232.↩︎
Unger, 2007, p15.↩︎
Diamond, 1990, pp1-2.↩︎
Bowler, 2013, p104.↩︎
White, 2006, p51.↩︎
Bruce, 1990, p76.↩︎
Hinn and Wood, 2018, p37; Bowler, 2013, pp48-49 and 74-75.↩︎
Martz, 1988, p54.↩︎
Randi, 1989, pp63 and 66.↩︎
Randi, 1989, p199. 미국 신앙치유 사기꾼 무리들의 레파토리 중에는 (기적적으로 필링을 채워 넣거나 치아를 교체해 주는) 신앙 치과와 (기적적으로 많은 양의 체중을 감량시켜 주는) 신앙 다이어트 업체도 있었다는 점도 일러 두겠다.↩︎
Marley, 2007, pp187-188 and 190.↩︎
Blumenthal, 2009, pp267-268.↩︎
Williams, 2010, p1.↩︎
Woodward, 2016, p344.↩︎
Sutton, 2014, p355.↩︎
Marley, 2007, p69.↩︎
Diamond, 1995, pp234-235.↩︎
Diamond, 1995, p228.↩︎
Lienesch, 1993, p217.↩︎
Hardisty, 1999, p56.↩︎
Williams, 2010, p221.↩︎
Moore and Slater, 2006, p32.↩︎
Goldberg, 2006, pp107, 108 and 137.↩︎
Lichtman, 2008, pp444 and 446.↩︎
Mansfield, 2017, pp110, 112 and 113. For the ferocity of Republican attacks on Obama see Press, 2012.↩︎
Wallnau, 2016, pp22, 73 and 78.↩︎
Brody and Lamb, 2018, pp220, 261 and 300.↩︎
For Pence see D’Antonio and Eisner, 2018.↩︎
Newman, 2018, p325.↩︎
크리스 헤지스는 2006년 자신의 책 《미국의 파시스트》[국역 《지상의 위험한 천국》, 개마고원]에서 기독교 우파가 파시스트가 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펼쳤다. 그의 2018년 최근 저서 《트럼프와 미국: 작별 투어》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시 다뤘다.↩︎

출처: John Newsinger, ‘The Christian right, the Republican Party and Donald Tr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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