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53주기 맞아 - 예장뉴스
예장뉴스
뉴스와 보도인물/사건/소개
전태일 열사 53주기 맞아
예장뉴스 보도부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3.11.15  21:50:18
트위터 페이스북

                   전태일 열사 53주기   

                  <전태일 53주기 유족 전태삼 씨 인사말>

   
 

그동안 변함없이 형을 기억하고 형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온몸을 받쳐 투쟁해 오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날씨도 추우니 제가 하고 싶은 자세한 말은 인쇄물로 대신하고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05년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은 그동안 노동자들의 투쟁과 민중운동의 성과를 총결산한 것 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전태일 동상은 당시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으로 세워졌습니다. 전태일 동상이 세워지자 우리는 35년 만에 전태일이 분신 현장에 부활 했다고 얼마나 감격했습니까?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전태일 동상을 18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에서 트집을 잡아 철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쌓아온 민중운동의 성과를 허물어뜨리고, 청계노동자들의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로 밖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처사에 대해 80년대 청계피복노조 복구세대를 비롯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가족의 일원으로 전태일 동상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제가 동상 존치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동상이야말로 어머니의 손길과 숨결이 깃들어 있는 동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인정하고 감격한 현재의 동상 이외 그 어떤 동상이라도 이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늘 동상 앞에만 가면 살아있는 형을 느끼고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태일재단은 지금부터라도 전태일 동상을 지키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족으로서 드리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80년대 복구세대는 81년 청계노조 강제 해산으로 인해 선배들이 버리고 간 그 자리를 지켰던 자랑스러운 후배들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허허 벌판에서 전태일정신과 청계노조의 맥을 잇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들은 온몸을 던져 84년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했습니다. 그들은 전두환, 노태우 군부 정권 내내 길거리에 내쫓기고, 경찰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발길에 밟히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오직 노동자의 자존과 전태일 정신을 지키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전태일 정신의 맥이 이어졌을까요? 청계노조의 정통성이 이어졌을까요? 그들이 있었기에 전태일기념사업회가 가능했고,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이루어 놓은 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전태일재단이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동상 철거를 둘러싼 논의에서 이들을 철저하게 배제 시켰습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절차도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단은 이에 대해 사과하고 복구세대의 의견을 존중할 것을 권합니다. 아무쪼록 진정한 전태일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전태일 동상이 굳건하게 지켜지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1월 13일 전태일 동생 전태삼 올림

   
 

대구, '전태일의 친구들' 

한편 전태일의 가족들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진 대구에서는 송필경선생(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전태일의 친구들' 이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그들은 한 때 전태일이 살았던 집을 시민모금으로 구입하여 그 가족들의 증언으로 복원하는 중이다. 아직은 공사중이지만 매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날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행사를 예고하고 알리고 있는 데 송필경 선생이 페이스 북에 소개한 글을 소개한다.

                오늘은 전태일 열사가 53년 전 숭고한 불꽃을 이 땅에 남기고 간 날이다.

1. 전태일 정신은 ‘어린’, ‘여성’, ‘노동자’를 위한 <연민>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논리학, 수학, 철학 모두 뛰어난 20세기 대석학이었다. 1950년에 노벨문학상 받은 문장가였다. 영국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캠브리지 대학 졸업했지만 반전‧ 평화‧인권을 외치면서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실천적인 대사상가였다. 러셀은 자신의 회고록 서문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사랑하고자 하는 갈망, 지식을 얻기 위한 탐구욕, 고통 받는 인류를 위한 연민이었다.” 사랑, 지식, 연민 가운데 20세기 인류가 러셀에게 위대한 존경을 보낸 행위는 연민이었다. ‘연민’은 위대한 종교의 가르침인 사랑, 어짊, 자비와 다름없다. 삶의 목표가 사랑과 지식 탐구를 넘어 ‘고통 받는 인류를 위한 연민’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양심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20세기 미국의 지성이자 양심이라 일컫는 놈 촘스키( Noam Chomsky; 1928∼)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 걸은 러셀의 초상화 아래 러셀의 위 회고록 문장을 붙여 놓았다. 

전태일은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 2년과 중학 1년 과정만 다녔고 어릴 때부터 가출과 걸식을 반복하는 비렁뱅이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전태일은 수기에 자기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만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의 이 감정은 착한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성숙했다.

전태일 가족은 동대문구 용두동 천막촌에 살 때 천막 살 돈이 없었다. 남의 처마와 처마 사이에 나무 막대를 세워 기둥으로 삼아 비닐을 걸쳐 천장으로 삼고 바닥에는 거적을 깔고 살았다. 길가에 버린 곰팡이 핀 무말랭이를 주워 냇가에 씻어 소금 뿌려 끊여 반찬으로 먹었다. 그럼에도 평화시장 ‘어린’, ‘여성’, ‘노동자’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는 한없는 연민을 베풀었다. 어린 동생 전태삼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불우했던 과거를 원망만 하면 그 불우했던 과거가 삶의 영역에서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불우했던 과거를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 우리의 꿈과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불운을 희망의 새로운 미래 등불로 삼아야 한다.”

우리 무지렁이 전태일의 지성은 20세기 최고의 석학이자 인류의 양심이라 일컫는 버트런드 러셀의 고귀한 지성에 견주어도 의미의 깊이와 폭과 무게에 있어서 한 치의 모자람이 없다. 전태일의 연민이라는 숭고한 감정은 러셀의 연민과 마찬가지로 그 본질과 핵심을 확대하면 위대한 인류애였다. 먼지 한 톨만큼도 이기심이 없는, 한가위 보름달보다 더 밝고 맑은 이타심으로,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면서 ‘사랑의 사자후’를 울린, 우리 전태일 열사 같은 인물이 인류 역사에 과연 몇 사람 있었을까?

전태일 열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핍박받은 ‘어린’, ‘여성’, ‘노동자’를 ‘사랑스런 동심’이라 불렀다. 전태일 열사는 깨끗하지 않은 물에 살았지만, 더러움을 자신의 꽃이나 잎에 묻히지 않은 아름다운 연꽃이었다.
『우리가 전태일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일은, 사회 약자에게 사랑과 자비와 어짊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짐과 다름없다.』

2. <사단법인 전태일의친구들>은 전태일의 고향인 대구의 시민들이 열사의 삶과 정신을 더 많은 시민대중들에게 알리고자 2018년 12월 준비위원회를 거쳐 2019년 3월에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2019년 5월부터 열사 가족이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옛집 매입을 위해 시민모금운동을 전개하여, 각계각층의 3,200여 분의 동참으로 5억5천만 여 원을 모금했다. 2020년 11월, 열사 50주기에 옛집의 매입을 완료하고‘전태일’ 문패를 달았다.

3. 옛집 살리기 경과.
건축위원회(건축가, 목수, 도시재생전문가 등)를 구성하여 전태일 열사 가족이 살았던 셋방의 터를 조사, 기초석을 발굴하여 유가족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옛집 고증 기록 작업을 했으며, 옛집의 보존 방향을 위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논의의 과제는 크게 옛집의 용도와 보존 방향 그리고 건축을 위한 재정 마련 방안이었다.

4, 앞으로 건설 계획
논의를 통해 우선 집주인이 거주했던 본채는 최대한 원형의 모습을 살리는 형태로 보존하여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알릴 수 있는 기록관으로 건축하고, 전태일 가족이 살았던 셋방터는 21세기 지금의 전태일 정신을 표현하고 담아낼 오브제 방식으로 재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무엇보다 시민, 노동자들의 기금을 통해 이룩한 성과인 만큼 지역의 공공자산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활용 방안과 세부적인 건축방향은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완성 해나갈 계획이다.

5. 시민들에게 드리는 당부
코로나19의 여파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 건축을 위한 재정 마련 방안에 대한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으나 오랜 논의를 통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대지 않고 다시 한 번 ‘시민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2024년 9월에 [대구 전태일 기념관]을 준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민모금을 통해 3억 원의 건축비를 마련하고자 한다. 시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당부 드린다.

시민모금운동 계좌; 《대구은행 504-10-351220-9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사)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 송필경 드림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5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6
장로교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9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