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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효목사 정년은퇴(35년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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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2.31  12: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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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가 송정교회 임직식과 같이  

 

 
 

예장내 민중교회로는 가장 먼져 세워진 성수삼일(1983년)의 정태효목사가 정년은퇴를 했다. 지난 12월 17일 주일 오후 서울노회가 같은 시찰 송정교회 임직식 날 함께 은퇴식을 해준 것이다. 이로써 지난 35년간의 교회 사역을 마무리를 하지만 여성 노숙인 쉼터(강서구) 는 계속해서 사역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목사는 전남 광주가 고향으로 고등학교 졸업후 서울로와 명동의 의상실에서 장차 디자이너의 꿈을 꾸는 소녀였다. 당시 서소문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손은하목사를 만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워 신학대학으로 진학하고 통합교단 여목사가 된 것이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이 끝난 후 였고 당시 조선대 재학중인 남동생이 구타와 고문으로 고생을 하한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자격증도 땃지만 건강문제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지역적 가정적 배경으로 정치 사회에 대한 의식이 남달랐던 정목사는 신앙생활에서 안정을 찾으며 마음을 달래던중 장신대에 입학후 현대신학연구회를 만나고 이후 다시 산선훈련을 받고 민중교회 목회자로 안하원(부산), 고 최주상, 오규만과 함께 동기 김정은목사(영광)와 같이 노동목회 훈련을 이수했다. 이후 성수삼일 설립자 유재무목사가 이임을 하는 성수삼일교회로 1988년 부임하여 2023년 까지 시무했으니 35년을 근속한 것이다.

   
 

정목사 부친은 교사생활을 하셨고 모친은 고령으로 현재 정목사가 모시고 있으며 5명의 자매중 위로 언니 한분과 동생 하나가 와병으로 세상을 먼져 떳다. 그리고 남은 2명의 여동생은 독신들로 아프리카 니제르와 티벳 선교사를 거쳐 현재도 아프리카 선교사로 사역중이다. 정목사도 미혼으로 일반교회가 아닌 성수삼일교회을 지역사회에 응답하는 사역으로 1998년 시작한 시작한 여성 노숙인 쉼터는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또 하나 정목사가 노동자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헌신을 결단한 데에는 1980년 초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선구자였던 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의원(민주당 비례대표)을 만난 뒤였다. 그후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하여 지원하고 함께 하는 사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국 단위의 큰 노동문제 사건에 현장을 찾아 위로하고 기도하며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에는 한국진보기독교의 대표적 목회자 운동 단체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에서 부의장을 거쳐 여성으로는 최초의 상임의장으로 선출된다. 그의 취임 일성은 "여성과 더불어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하는 목정평이 되려 합니다. 우선 서울과 광주·전남, 청주 등 지역 목정평 모임을 재건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였다.

예장 내 진보적 여성 2세대로 교단내 여성안수나도 그렇고 개혁적 목회자 운동, 기여민등에서 대표를 지내면서 그의 사회적 목회를 감당했다. 그중 지금까지 함께 하는 정의기억연대 활동이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 단체의 이사와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존자 복지 위원장을 지내면서 할머니들의 국제기구에서의 증언에 모시고 다녔다. 또 재일동포들의 교육운동에 힘쓰는 해외활동에도 관영중이다.

   
 

서울노회 산하 성수삼일교회는 일반교회의 정서와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는 선교적 사역을 갖은 곳이다. 특히 이 교회 교인의 주축은 여성노숙인 쉼터의 여성들인데 이들은 매맞는 여성, 워크아웃된 가정의 여성등 오갈 곳이 없는 여성(자녀)들을 보호하고 자활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곳이다. 일정 기간 회복한 후에는 사회로 복귀를 하거나 그렇치 못한 경우 매임 임대주택을 알선한다.

   
 

이 시설을 거쳐간 이들이 한 800여명이 될 것으로 추정하는 데 그들은 모두 아프고 외로울 때 만나 정목사를 언니처럼 엄마처럼 따르고 관계하고 있다. 지금은 쉼터가 10년전인  2014년 3월 서울 양천구로 이주하여 활동중이지만 그동안 정신적 고향인 성수동을 떠나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성수삼일교회는 동부지역 노동자들이 있는 센타에 함께 하고 있는 데 지역 노동자 운동의 역사에 한 몫을 감당한 단체중 하나이다.

   
 

동부지역 야학연합회와 동부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도 그렇고 재화노조 또 K2 노조의 회생과 케이블 방송 노조 탄압에 함께 하여 이겨낸 곳이다. 지금은 성동구청의 지원으로 동부노동자쏀타도 운영중이며 지역활동가들과 수다방을 운영하며 통일운동도 함께 했다. 그리고 성동근로자회관 건립도 추진중이다. 우리사회가 발전하고 절대적 가난은 극복이 되었지만 상대적 빈곤과 소외계층은 여전하다.

그런 곳에서 지난 35년간 사역하고 퇴임하는 정목사에게 큰 감사와 위로를 드린다. 성수삼일교회는 유재무목사가 1983년 4년을 목회하고 일본 선교사로 귀국하자 정목사가 다시 교회 목회를 맡겨 5년간 함께 동역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노동자 야학과 내일의 집이라는 어린이 보육시절을 했지만 정목사 부임후 내일의 집은 여성 노숙인 모자 쉼터로 서울시 1호로 지정되여 지금 까지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황홍열교수가 집필한 민중교회 역사에 기록된 성수삼일교회 역사

예장민중선교회 활동

전국적으로 노숙인, 실직인을 위한 단체가 116군데가 되는데 실제로 활동을 제대로 하는 곳은 민중교회들이다. 노숙인을 위한 쉼터(영등포산선, 안양 청지기교회, 수원한벗교회, 대전새나루교회, 대구 구민교회, 전주 나실교회, 부산 새날교회) 여성전용쉼터(성수삼일교회)와 실직자를 위한 자활센터(대구구민교회)가 있다. 전국적으로 7군데의 노동상담소가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선교활동을 하는 곳도 4군데 있다.

장애인 선교를 전담하는 곳도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50년 산업선교를 경험으로 아시아의 교회와 나누고자 아시아 URM 디아코니아 훈련원을 세워 아시아 도시농어촌 선교 실무자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시켜 지도자로 양성하고 있다. 한편 노동자, 빈민에 주목했던 과거와 달리 생태계의 위기와 관련해서 생명에 대한 관심 속에서 농촌의 생산공동체 속에서 대안적 목회, 대안적 선교를 찾으려는 흐름도 있다.

그래서 과거 민중선교에 주력했던 목회자들이 농촌으로 가서 직접 농사를 짓거나, 도시의 노동자(소비자)와 농촌의 농민(생산자)을 연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생산 공동체, 생활 공동체의 영성이다.  

내일의집(청소년 노동자 선교) 야학을 시작
1988년 3월 정태효목사 훈련받고 부임
1988년 9월 슬기아이방 개원(지역탁아소연합과 동부지역 어머니대회를 통해)
1990년 5월 우리들공부방 개원(서울공부방 연합회와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는 운동함께)
1997년 여성교실(한글, 컴퓨터, 키타반등)
1998년 9월 성수삼일교회내일의집(모자노숙인 쉼터) 시작
1998년 11월 실직여성가장 지원사업 시작(한국여성단체연합 동부지역 창구로 400여 성동구, 광진구, 중랑구 여성실직가장 만남) -99년까지 10만원 전달체계함.
2001년 녹색나눔터 운영시작
2006년 예나의 집 운영시작(위기여성센터) - 중장기 쉼터로 예정
2007년 생명살림터 시작
2008년 우리들공부방 지역아동센터 독립해 나감(8,000만원 정부 전세지원 받음)
2009년 1월 유재무목사 일본서 귀국하여 목회 담당 사역(5년 시무)  
2014년 강서구로 여성 쉼터 내일의 집 이전 
2023년 12월 정태효목사 서울노회 성수삼일교회 정년 은퇴

 

   
   
   
   
   
   
   
 

 < 성수삼일교회 정태효 목사 은퇴를 축하하며 >

                                 하나님의 역사책에 기록될 선교사역

서 덕석 (시인, 열린교회 목사)

명동 의상실 디자이너로 촉망받던
정태효를 교회로 부르셔서
성가대원과 주일학교 교사를 거쳐
마침내 신학교로 이끄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를 사용하실 계획이셨다.
성 평등시대에 걸 맞는 선교를 담당 할
여성 사역자를 찾고 계셨던 것이다.
518 희생자 남동생과 일찍 불려간 언니를 대신할
자칭 집안의 ‘재산1호’였던 정태효는
집안보다는 하나님의 기업을 잇기로 하였다.
신학교에서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을 만나고
산업선교 민중목회 훈련을 통하여 사회복음에 눈을 떠
영혼 구원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이들에게’ 들려져야 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전적으로 깨달았다.
여성안수 제도가 없어 7년간 전도사로 사역하며
담임이면서도 성례전을 베풀지 못하다가
62년 동안 헌의 해 왔던 여성안수가 하락되자마자
안수 받아 예장 통합의 첫 번째 여성목사1)가 되었다.
밖으로 향하고 낮은 곳을 향하여야 할 예수사랑이
나와 우리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 때,
성수삼일교회와 정태효 목사는
교회의 벽을 허물고 품을 넓혀서
멀리 빛을 비추고 더 넓게 세상을 품어주는
예수사랑을 실천하였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안기에 힘썼다.
노동자와 맞벌이 부부의 꼬맹이들이 눈에 밟혔고
거리를 방황하던 노숙여성들이 뒤를 이었다.
노동야학 ‘내일의 집’에서 노동자들은 못다 한 공부와
인문 교양을 쌓으면서 자존감을 키웠다.
아이들의 천국 ‘슬기 아이방’과 ‘우리들 공부방’은
주일학교 학생들을 키워내는 못자리였고
부모들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대안교육 기관이었다.
영유아와 초등아동 돌봄 제도 법제화를 요구하여
각각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로 자리매김 되었다.
‘녹색 나눔터’, ‘여성교실’, ‘할머니밥집’, ‘생명살림터’는
성수지역 여성들의 갈증을 씻어주는 우물이자 마실 터다.
IMF 사태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실업자, 노숙인 중
갈 곳이 없던 여성 노숙인을 위해 ‘내일의 집’을 열어
아픈 상처를 안고 찾아 온 여성 노숙인 가족들이
행복한 자립을 꿈꾸며 공동생활을 하게 하였다.
‘내일의 집’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노숙인 쉼터이다.
이 모두가 예수 사랑으로
가난한 가운데서 내게 있는 것으로 봉사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실천들이었다.

정태효 목사는 삼일공동체 사역뿐 만 아니라
목회자 운동과 시민운동에도 열심을 내었다.
‘전국목정평’2)의 예언자적 활동을 감당해
29대 첫 여성 상임의장을 지냈다.
‘기독여민회’에서 기독여성들의 의식 개혁에 나서고
‘일하는 예수회’와는 노동자/민중선교를 함께 하였다.
‘정대협’3)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도움으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힘없는 여성들 편임을 증거하고,
‘재일 조선학교 차별반대’4) 운동과 ‘416 세월호’5) 활동은
차별당하고 고난 받는 사회적 약자를 품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소중한 사회선교였다.

오지랖이 넓고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울타리 밖 잃은 양들과 작은 자들을 찾으신
목자 예수처럼 눈앞의 작은 자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뿐이다.
오직 예수 사랑만이 고통스런 삶에 지쳐
닫혔던 마음을 열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어서다.
기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모자 가정과 집 나온 여성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며
그들의 어머니, 누나, 언니, 이모로써 동분서주하며
서른다섯 해를 보낸 정태효 목사님과 함께
생명이 움트는 ‘성수삼일교회’와 ‘내일의 집’이 되었다.
희망을 찾지 되지 못해 방황하던 이들의 등불이요,
불신의 벽으로 가로 막혔던 세상과 교회를 이어주는
따뜻한 포옹이며 기분 좋은 악수이다.
가난한 교회가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기만 하여
고단한 여정을 마친 정태효 목사님에게
변변한 퇴직금도 원로목사 예우도 할 수 없지만
그것들과 비할 길 없이 귀한 하늘의 상급과
큰 위로를 주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작은 몸집으로 언제나 당당하고 용기 있게
불의를 꾸짖고 약자들을 감싸 안는 예언자이며
자상한 목자였던 정태효 목사님의 사역은
영원히 하나님의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주>1) 1994년 헌법개정, 1996년 봄 노회서 19명이 처음 안수 받음
2)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
4) ‘재일조선학교 차별반대 고교.유보무상화 적용요구‘
5) 세월호참사의 진실과 책임규명을 위한 시민활동 (416연대 등)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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