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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100 주년을 준비하는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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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27  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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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CCK 에큐메니컬 정책토론회
“100년 성찰, 100년 계획” 의견 나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지지향)에서 '다시 쓰는 100년, 한국 에큐메니칼 대토론회'를 주제로 에큐메니칼 정책협의회로 모였다. 임원과 총대 가맹교단 관계자 지역 NCC 청년 여성 사회시민단체등 200여명이 모여 오늘부터 27일(화) 양일간 계속된다. 

한교협(회장 윤창섭·총무 김종생 목사, 이하 NCCK)은 한국기독교연합기관으로써는 가장 처음으로 조직된 단체로 올 해 100년를 맞이하게 된다. 이를 준비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운 100년을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대화 마당을 마련한 것이다. 

NCCK 윤창섭 회장은 환영사에서 "교회협의회는 100년을 달려오면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 큰 족적을 남겨왔다"며, "정책협의회를 통해 새로 맞이한 100년의 역사를 아름답게 써 내려갈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생 총무는 "교회협의회가 지난 100년 동안 민족과 교회를 위해 활동해 오면서 놓치고 온 것은 없는 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 지 살펴보고,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NCCK(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로 국내외에 불리우는 한교협은 지난 100년 동안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의 평화통일에 대한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아무리 시대가 달라지고 역량이 미흡하더라도 지난 100년의 역사속에서 이룩한 일을 돌아본다면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날 모임의 시작은 에큐메니칼운동의 원로 안재웅박사(한국 YMCA 전국연맹유지재단 이사장)의 기조발제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안박사는 “공의회로 출발한 NCCK는 파송 받은 대표들이 공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협의하고 공통분모를 만들어내야 한다” 며 “교회의 일치와 갱신, 정의와 평화, 화해와 치유, 생명과 환경, 사랑과 평등 등의 과제를 해결해나가자”고 강조했다. 

현존하는 NCCK 인사들중 국내외 에큐메니칼 조직에서 가장 오랜 경험을 갖은 선배로써 간결하게 정리해주신 역사는 군더더기 없이 잘정리되었다는 평이다. 예장뉴스는 이날 발표된 강의 원고 전편을 따로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모임에서 나온 얘기들은 정리되여 올해 NCCK 100주년기념 행사에서 발표할 ‘100주년 사회선언’ 의 기초 자료로 반영한다는 예정이다. 

   
 

기조강연은 안재웅 박사가

안재웅박사 발제 후 참석자들은 4번의 대토론회를 하게 되는 데 분과별 전체 혹은 세대 간, 집중과 분야별(일치연합, 디아코니아, 기후위기, 사회정의, 통일 국제)을 진행했다. 1번째 토론회는 “성찰” 이라는 주제로 이상철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의 사회로 신승민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이문숙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 전 총무, 송병구 색동감리교회 목사,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가 대표로 참여하여 토론한 후 참가자들이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이삼열박사의 소회는 NCCK를 역사를 3축으로 진단했다. 1. 일제하에서는 3.1 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족의 독립운동과 2. 1970년대 유신하에서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3. 1988년 민족의 평화통일 운동의 상징적인 88선언이었다고 알려주셨다. 이는 모두 역사적 사실로 한국정치에서나 국가적으로 정리가 된 얘기다.

정부가 바뀌기는 했지만 김대중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계속유지되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들어 제주 4.3이나, 여순사건 진상조사등 한국의 근현대사에 어두운 역사를 복원한 것은 모두 교회의 역할이 컸다. 이로 인한 국가폭력에 대한 배상과 교훈으로 재발방지까지 이르게 한 것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2번 째 토론회는 “진단” 이라는 주제로 전체 참가자들이 6명씩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황필규목사의 인도로 각 단위별 토론을 진행했다. 여기서 민주화와 인권운동, 교회 연합과 일치. 협의회적 과정에 대하여 자유토론 한 것으로 서기가 공개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3번 째는 식사후 “재구성” 이라는 주제로 최소영목사의 사회로 도방주총무(KSCF) 최수산나(YWCA) 전남병목사(인권센타) 채송희목사(PCK 기획국)가 대표 토론자로 나섰다. 끝으로 4번째 난장 토론으로 세대간,집중 토론을 했는 데 남기평목사의 사회로 도방주 총무가 기조발표를 한 후 진행했다.

   
 

평가와 결론
필자가 1978년부터 EYC활동을 시작해 NCCK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지금까지 견지하면서 활동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때 동지나 선후배들에게서 배운 것들이 나의 모든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고 자부한다. 덕분에 외국물도 먹었고 민중신학도가 되어 민중교회 사역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무관심 속에서 지내왔는 데 개인의 사역을 잘하고 집중하는 것이 돕는 것이란 판단도 있지만 달라진 시대에 과거에 너무 도취되었다는 개인적 판단이다. 

한국사회에서 NCCK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70년 청계피복 전태일의 죽음으로 인한 노동자의 인권과 삶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교회협은 당시만 해도 그져 교회연합기관으로 방송(CBS)과 성경(KBS) 찬송가, 기독교서적(CLS)을 펴내는 연합사업을 하고 회원 교단들과 교류하는 식이었다. 이 조직들을 만들고 운영하는 중심에 NCC가 있었고 또 설립자 자격이었기에 NCC 총무는 모든 기관의 자동 이사회원이었다.

또 NCC가 자리한 연지동 기독교회관에는 예장 총회와 기장 총회 CBS방송국, KSCF, 기사연, 교육협회, 새가정사등 기독교 연합기관들이 다 입주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기관을 대표하는 기관이었다. 지금의 연합회관은 나중에 지어졌지만 당시 기독교회관이란 한국 기독교 진보 운동의 메카라는 말이 기자들이나 정치권에게 나왔다(건물앞에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지라는 동판)  

당시 NCC 총무 김관석(복음)목사는 미국에서 공부도 하시고 세계교회(WCC)와 교류하시면서 정신적 신학적 재정적 지원도 받았다. 이는 억압된 한국 정치와 언론, 지성의 회복에 큰 힘이 된다(해직 기독자 교수들 생활비 ncc를 통하여 해외서 지원) 그러나 후임 예장의 김소영목사(예장)가 신학차, 교단의 몰이해로 불통을 우회하기 위하여 훈련원을 만들고 오재식 원장이 부임해 그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마침 야권의 두 산맥 김대중 김영삼중 누가 대통령이 되느 냐로 논쟁이 일자 오재식선생을 따르는 이들이 후보단일화 논리를 들고 나왔고 김대중선생을 지지하는 이들은 비판적 지지로 대항했다. 이로써 진보 기독교 운동은 분열되었고 박형규, 오재식, 김동완, 인명진목사는 김영삼지지를 문동환, 박영숙, 조남기, 김성재, 금영균, 고영근목사등은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또 사회선교협의회(권호경 총무) 을 만든 것도 NCC를 패싱하기 위한 것이였고 정의평화를 위한 목회자협의회(정평목협)를 만들어 목회자 대중운동을 조직한 것도 그렇고 모두 한국 정치의 복원을 위한 골욕지책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후 권호경(기장) 김동완목사 총무 시절엔  KBS 시청료 거부운동, 공명선거 감시운동, 기독교언론(새누리) 창립도 결국은 야당과 정치복원을 위한 것으로 지방의 인권위를 조직하고 재정적 지원은 한 것도 어떻게 보면 교회협 본연의 일은 아니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대적 사명에 손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은 이해가 되지만 반드시 잘했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자기 조직의 아이텐티티는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교회협 헌장 본연 임무인 협의체로써의 교단 교회와는 점점 멀어지고 교단 교권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급기야 보수교회와 정권은 한국기독교의 두목소리를 내게(약화)하기 위하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들게 된다.

   
 

정체성을 잃은 교회협 

이후 백도웅(예장) 권오성(기장) 김영주(기감)총무를 거치면서도 운동의 관성은 바뀌지 않은 체 외원이 끊긴 가운데 2013년 WCC 한국 총회라는 이슈에 과몰입해 지분과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인한 재정적자가 누적된다. 이전 적자를 백도웅 총무 시절 상당 부분 타계했지만 김영주 총무 이후 또 다시 큰 빚을 지게 된다. 그럼에도 회원 교단을 아우르는 사업보다는 한국기독교 역사박문관 사업등 외원 혹은 정부보조에 깃댄 자세를 끊지 못한다.

그런 관성으로 NCCK는 민주화운동이후 그 성과를 갖고 너무 오랜동안 성과나 녹슨 훈장의 꿈에서 깨지 못한 체 운동 이슈나 영향력을 내려놓치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한마디로 자생도 못하는 주제에 운동의 중심에 서려는 허영과 겉치레를 헤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카토릭교회와 일치와 연합을 혼합주의라고 반대하는 교단들의 저항과 비판도 가중되는 데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식한 소리 하지말라고 할 수 도 없는 처지가 된다. 

또 동성애나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로도 가명교단들의 반대와 비판을 받으며 급기야 이홍정 총무가 소속 교단과 갈등하고 연임을 받고 중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과거에는 외원이 끊겼고 교단들의 후원이 부족해도 총무가 어떻게 어디선지 돈을 만들어 NCCK가 추구하는 운동이나 사업을 연명을 해왔다. 그러나 이홍정 총무(예장) 취임후 만성적 재정적자가 악화되여 임대료 조차도 못내 사무실이 경매에 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NCCK는 헌장대로 교단협의체로 소속 교단들과 교류나 사업은 여전히 논외였다. 이는 자기 생존도 못하면서 걷치레 늪에 빠져 해외교류나 북한 방문등 외향에 나돌아 회원 교회와의 괴리현상은 더욱 고립화 된다. 그중에는 물론 가맹 교단의 보수화나 몰이해라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것 조차 감안하여 정면돌파하면서 가는 것이 운동임에도 이를 방기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니냐 하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NCC의 100년의 역사와 남긴 자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따라서 그동안 자기 생존을 위한 노력도 나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자기 조직의 목적과 헌장대로 자력갱생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어느 단체든 자체 생존을 못하고 빚내서 연명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데 이에 대한 염치가 없음을 이해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모두 NCC에 빚을 지고 있다.
한국의 정당, 언론, 대학, 노조, 노동 농민운동, 경실연 참여연대 공해와 환경문제등 모든 운동은 NCCK를 통하여 그 맹아기 싹텃고 분가를 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가맹교단의 신학이나 사역, 외국인 다문화도 모두 NCCK가 훈련을 시켰고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한 토론자는 현 NCCK의 지지부진 혹은 과거만 못한 영향력으로 에큐메니칼운동을 규정하고 한정 짓지 말라는 지적이 있었다.

더 많은 이들이 넓은 곳에서 NCCK가 주창하고 이어온 운동과 사역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NCCK는 이제 자기 존재 운동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헌장의 취지대로 신학이나 교회의 가시적 일치보다 한국 기독교회가 직면한 과제를 진보와 보수를 따지지 말고 선교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동성애 차별금지법도 어느 편에 설 것이 아니라 이를 중재하고 연합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또 국가적으로도 큰 난제인 저출산과 자살문제와 지역과 계급 성별에서 세대단 갈등으로 치닫는 이 때에 이런 분열과 갈등을 관리하고 해소하는 일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대형교회 작은 교회 농촌교회 개척교회도 품고 다수자 소수자 모두를 품어야 한다고 본다.

WCC나 세계교회와의 교류나 참여도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차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한가지 지적할 것은 귀한 행사에 100주년 기념사업 위원장이나 교단장이나 총대 실행위원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다. 사회자 토론자 배치도 목회자 운동가등이 조화롭게 참여하도록 했어야 하는 데 여전히 기관 운동가들이 앞장선 것은 유감이다.

교단이 다르더라도 모두 개인적으로는 존경하고 배울 것이 많은 분들임에도 서로 다른 자리에 있기에 다른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크게는 협력자였지만 때로는 비판자가 되기도 했으나 그 자리에서의 역할 떄문이지 개인에겐 감정이 없다. 2000년 이후는 좀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 보다 객관적인 자리에서 성찰할 수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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