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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07  13: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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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묻지 않는 가?

유암칼럼
   
 

측은지심(惻隱之心) 은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 즉 곤경에 처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며, 수오지심(羞惡之心) 은 의(義)에서 우러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이며, 사양지심(辭讓之心) 은 (禮)에서 우러나는 사양하는 마음, 즉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이며, 사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에서 우러나는 시비를 따지려는 마음,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을 "인의예지"  라하여 나라의 문(숭례,돈의,흥인등)에도 써서 만백성들로 보게 하여 가르쳤다. 그럼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 "예" 라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무엇이라고 할수있을까? 윗 사람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잘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매사에 그져 존대하고 상대방께 깍듯한 예우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번 뒤짚어서 생각보자  "예" 에 어긋난 행동은 무엇일까? 인사도 안하고 안부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어떤이가 말과 행동에서는 겸손이 묻어나는 데 그것이 평가절하 되고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겸손으로 인한 것으로 바로 이 "예" 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다.

성경 고전 13장에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말의 뜻은 "성경을 외우고 사서삼경을 줄줄이 꾀도 진정한  "예" 가 없다면 그는 무식한 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이 "예" 의 기원에 관해 알아보자 이 말을 한 춘추전국시대 때 공자가 어느 나라의 지금으로 따지면 법무부장관 격의 직책으로 일할 때 그가 늘 존경해 마지 않는 주공의 묘에 참배를 간적이 있다. 그 묘에는 묘를 관리하고 예식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자가 그 묘에 들어가서는 줄곧 그들에게 어떡해 해야 할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들이 아주 귀찮아 하며 이랬다고 한다. "저 추인지자가 (추인지자란 공자의 아버지가 추나라에서 벼슬을 했었는데 추나라는 당시 아주 후진국이라서 무시하는 의미가 있다) 법무부 장관이면 주공의 묘에서 예의 범절을 당연히 알텐데 오히려 우리에게 가르쳐야 할 놈이 되려 우리에게 묻는구나" 하면서 조소를 했다고 한다.

그때 공자가 그 말을 듣고 한 유명한 말이 있다. "曰是禮也(왈시례야 -  공자왈 이것이 바로 예 이다)".  "예란 나는 너에게 묻는 다. "예" 바로 묻는 것이다.

그렇다 도올 김용옥선생도 이 대목에서 "예" 란 바로 묻는 것이며 "예" 는 바로 묻는 것에서 부터 시작 한다고 한바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면 그것에 전문성이 있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때 상황과 상대에 따라 물어야 한다. 묻는 것은 죄도 아니고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건방지고 아는 척 하고 묻지 않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어른들에게 인사 잘하는게 예가 아니라다. 직위고하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이렇듯 묻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지식에 상관없이 상대가 어린아이 일지라도그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것을 먼저 물어볼 용기가 있다는것, 이것이 바로 예인 것이고 설령 내가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라면 그에게 묻는다는것, 이것이야 말로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존중의 의미라는 것이다.

내가 이 의미를 알게 된 것도 부끄럽게도 나이가 꾀 들어서다. 일찍 알았더라면 목회에서도 또 책임있는 자리에서도 더 아름답게 감당을 할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말은 절도 있고 정숙하였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가르치는 예와는 거리가 먼 사람 이였다.  그래서 후배는 선배에게, 나중온자는 먼져온 자에게,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에게, 며느리는 시모에게, 높은 사람은 아래사람들에게, 큰 일을 맡은 자는 더 많이 크게 물어야 한다. 무척이나 겸손한데도 그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묻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종종 고부간에 갈등이나 실력있는 사원이 새로운 목회임지에서 실패하는 것은 바로 앞선 사람들에게 묻지 않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람이 있는 가? 그 사람에게 물으라, 반대자가 있는 가? 그에게  물어보라 그는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도와 줄 것이다. 

바로 이 묻는다는 것, 이걸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예"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야 말로 겉으로는 논어를 입에 달고사는 성인군자요 학식높은 양반일지라도 이 "묻는다" 라는 지혜의 철학이 없다면 사람들은 떠나가게 마련이다. 이것을 요즘 말로 소위 "멘토" 라고도 하던 가? 그러니 정치가도 "멘토단" 이라는 것을 두고 지근거리에서 묻고 있다는 표시를 내는 것이다.

"예" 라는 것은 지위나 학력에 비례해서 갖취지는게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큰 명절의 시작이다. 이번에 모두 물어보자,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어른들 에게 선배 에게 앞선이 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그것을 내 것과 비교해 보고 당면한 난제의 지혜를 구해 보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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