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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뉴스 관서지방 탐방기(2)유재무 목사(전 일본 선교사, 예장뉴스)
유재무 목사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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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4  09: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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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관서(간사이)지방, 그리고 한인교회

                                                                               유재무 목사(전 일본 선교사)

 

 

   오사카성에서 좌로부터 허춘중,박홍순,백도웅,이명남,필자,차선각목사

 

  오사카는 동경 다음으로 큰  일본 제2의 도시다.  神戶(고베)에서 名古屋(나고야) 까지 잇는 名神(메이신)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관서지방의  최대 도시다.  역사적으로는 전국을 통일한 도쿠후 막부의 중심지인 江戶(에도)이전의 황궁이 쿄토에 있었고 그 이전의 왕국 나라와 같이 유서깊은 도시로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 최대의 도시라고 볼수 있다.   메이지 유신이후 수도를 쿄토에서 에도로 옮기는 데 京을 東으로 옳겼다고 해서 東京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오사카에는 무엇보다도 일본을 상징하는 오사카성이 있다. 오사카성은 일본 쇼군 시대('오다 노무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각축하던 시절) 토요토미가 절이 있었던 자리에 3년 간 지은 성으로 토요토미가 직접 성에 거주하며  정사를 돌보던 중앙청사 격이다. 그 당시 천하의 특산품을 배로 이곳으로 집산하여 쿄토에 올려 보냈는데 근대 이후에는 교역과 관련한 사업의 중심지가 된다. 오늘날의 행정 단위는 오사카부의 오사카시인데  시장인 '하시모토 타로'는 이전에는 오사카부 지사를 지낸 젊은 변호사로 동경 도지사를 여러번 지낸 '이시하로 신타로'라는 노인과 함께 지역 정당을 만들어서 약진한 젊은 정치인이다. 젊은 변호사로 TV에 나와서 인기몰이를 한 후 정치가로 변신한 사람이다. 

  오사카는 경공업 중심으로 일제시대 한국에서 많은 징용자들이 강제 이주를 당해 건너 왔는데 특히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왔고 더러는 밀항도 했다.  그들이 지금 오사카교회가 자리한 곳에서 인공개천을 파는데 동원되었다.  일본은 동양의 나폴리로서 각 도시의 중심도시인 성을 바다에서 배로 들어 갈수 있도록 운하(수로)로 연결되었는데 도시들도 이런 인공수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징용자들은 방직공장이나 여러 분야의 하층 노동자로 일하면서 정착하게 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경교회가 조선인 유학생들이 중심이었다면 오사카교회는 여공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곳이다. 그래서 교회들이 도시의 중심에서 시작되지 못하고 한인들이 많이 사는 변두리나 외곽에서 출발하였다. 관서지방에는 15개의 교회가 있는데 역사가 긴 교회들은 모두 재일동포들이 중심이 된 교회이고 15년 미만의 교회들은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하여 한국식으로 개척된 교회들로 잦은 이동과 합병,  이탈등으로 아직도 안정되지 않고 있다.

 오사카의 동쪽인 쭈루하시 이마자토  布施(후세) 平野(히라노,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 는 대표적인 한인촌이다. 이곳에는 전통적인 한인 시장이 있는데 특히 코리안 타운(백제촌)은 유명하다. 이곳은 민단과 총련이 공존하는 곳이다. 근래에 한류열풍을 타고 한인 뿐 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많이 찾는 곳으로 한국식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가 주류이다.  근처의 일본 재래식 시장이 퇴락해 가는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활기를 띄고 있는데,  시장으로 정착해서 이만한 상권을 형성하기까지는 동포들의 눈물 어린 수고가 있었다. 차별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러서 가게의 주인이 되었고 낙후된 그곳을 일본의 쇼핑가처럼 현대화 해서 만든 것이다.  오사카교회를 뒤로 하고 형성된 한인시장은 대중교통은 불편하지만 쭈루하시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쭈루하시 한인 타운 입구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종교법인으로서 10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교단에는 예장 통합, 합동, 기장, 감리교, 대신, 합정 등 다양한 국내 교단적 배경을 가진 목회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유일하게 일본교회와 선교협약을 맺고 있으며 '일본 기독교협의회'(NCCJ)의 멤버이다. 태평양 전쟁중에는 일본기독교단과 강제로 합병되기도 했었다. 일본기독교회는 작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일정한 학력과 안수자를 기준으로 하기에 한국처럼 모든 교단들을 망라하지 않는다.  이 교단안에는 재일동포 출신 30%,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본에서 안수 받은 목사가 30%,  한국에서 안수 받고 파송되어 온 선교사 30%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성비로 인해 다양성이 있지만 긴장과 갈등을 본원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시무 형태는 각기 특색이 있다. 동포 목사들은 동포들의 교회에서 주로 시무를 하는데 일본어를 주로 사용하는 교회들과 일본어가 주이면서 한국어를 병용하는 교회,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고 일본어를 병용하는 교회, 한국어만 사용하는 교회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오사카에도 그렇고 '재일대한기독교회' 교단 소속 교회는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 전체로 놓고 볼 때도 교단에 소속된 교회는 100개의 교회에 불과하다. 독립교회 혹은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교회나 주류 사회에서는 '재일대한기독교회'가 교세는 약하지만 유일하게 동역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주류 기독교는 다른 곳은 교단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외면한다.  자기들과 격이 안맞는 교회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여타 교단들의 신학교육과 목사안수 절차에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일본 내 한류열풍을 타고 시작된 우에노 공원의 노숙자 선교를 하는 목사도 있고 온누리교회가 하는  “러브 소나타” 란 이벤트성의 선교로 인하여 생긴 각 지역의 온누리교회도 결국은 개교회 세력 확장을 위한 것으로  전체 일본선교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철학이 없이 만들어진 자기만족의 결과물들이다. 그들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 선교사들과 동역하고  겸손히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어떤 협력이 필요한지를 묻기보다 물량적이고 공격적인 선교를 한다는 비판이다. 한국의 온누리 교인들이 비행기를 전세 내어 휴가를 즐길  겸 현지 선교 명분으로 방문한다.  결국 국내에서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여유있는 교인들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놀이에 불과하다.  그래도 어찌든지 복음만 전해지면 된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곱게 보는 시선은 아니다.   

  그 외 동경 요한교회의 김기동 목사는 우리교단 출신의 평신도로  일본에 왔다가 CCC간사를 거쳐서 안수는 불분명하지만 목회적으로 전무후무한 성과를 내는 대표적인 교회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 요한이라는 지점형 교회를 새우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자신이 교주격이 되여  교단 없는 개인화된 조직이다.  한 때 예장 교단의 목사로 입적했다가 제명을 당했다. 관서지방에는 효고현 서부지방, 간사이는 관서지방으로 조직이 구성되었고,  그 외 주변의 작은 도시마다 한 개씩의 교회들이 있다.

 한인교회들의 출발은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효고현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는 1921년에 세워진 고베교회이다. 고베 중앙신학에 유학 온 박상동과 김병우를 비롯한 한인들이 시작했다. 1918년 8월 31일 평북선천에서 열린 본 교단의 총회에서는 고베신학원의 임권택이 보고하기를 “고베에는 한인 신자가 13명이 모이고 있으며 그 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수천명이 있다” 라는 보고를 한 후 예배당을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하여 허락되어 1922년에는 고베지역에 7개의 예배처와 신자가 129명이 있다는 자료가 있다. 효고현에 소속된 이 지역은 서부지방으로 히로시마에서부터 고베까지로 14개의 교회가 있다.

 오사카교회는 관서지방을 대표하는 한인교회이다. 관서 지역은 오사카, 경도, 나라, 와카야마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일본에서도 가장 많은 한인이 살고 있고 본국으로부터 왕래가 많은 곳이다. 교회가 있는 자리는 生野(니쿠노)리는 곳으로 민단과 총련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현재의 담임목사는 정연원 목사(장신대 74기)로 부산 출신으로 동경신학교에 유학을 온 후 동경중앙교회를 거쳐서 이곳에 부임한지 10여년이 되었다. 그는 '재일대한기독교회' 교단 총회장도 지냈다. 그리고 장신대 동기인 김병호 목사(조후교회)와 같이 총회의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교회의 출발도 역시 1921년 고베신학원에 유학중인 김우현과 박상동이 오사카지역에 한인들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오사카 난파방적에 강연을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던 한인 여공 황의생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후 그의 기숙사 방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이내 숫자가 10며 명이 넘게 되어 예배처소를 옮기게 되면서 교회로 출발하였다.  이어 아카시의 신남수 자매들이 동참하고 한국에서 김이곤 목사가 유학와서 초대목회자로 시무하게 된다.
   

                        일본서는 드물게 붉은 십자가가 달린 대판(오사카)교회와 

                                      뒷쪽 가운데로 솟은 벽돌건물이  재일대한기독교회관  

 그리고 이 교회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목회자는 고 김덕성 목사이다. 김목사는 1970년 11월 15일 부임하여 1999년 4월 14일에 소천하기까지 일본내 한인교회들의 지도자가 되었고 현재의 5층 건물의 오사카교회를 건축을 주도하였다. 일찌기 1950년 선교사로 파송받아 나고야와 후쿠오까교회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오사카교회에서만 21년간 목회를 하였다. 두 아들들은 오사카교회의 장로(의사)가 되었고 두 딸들들도 재일대한기독교회의 권사와 장로로 재일대한기독교회의 중요한 여성지도자들이다.

오사카교회 김덕성 목사의 후임은 감리교의 노정일 목사로 나고야 교회 부목으로 있다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당회원들과의 긴장속에서 분열되여 가까운 곳에 신오사카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는 데 교회는 교회는 교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노 목사만 회원이 있는 형편이다. 정연원 목사 부임이후 교회는 회복하고 동포들과 새로운 이주자들에 대한 열린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포들 중심의 교회의 교인  감소는 전반적인 현상이다. 지역과  동포들의 노령화와 새로운 이주자들이 각지로 분산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사카교회의 수요예배에서 차선각 목사가 설교를 하였다. 차 목사는 부산에서 기독학생회(KSCF)간사로 일할 때 당시 고등학생이던 정연원 목사와 동경 조후교회 김병호 목사를 지도했던 인연이 있다.  이 둘은 장신대 75기로 졸업을 하고 일본에 온지 20년이 넘은 최고참 선교사이다. 이날 오사카교회 수요예배 찬양은 60이 넘은 권사들이 인도하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국내의 교회 찬양 모습과 달리 더 은혜스럽고 좋게 보았다.  

  과거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살거나 사업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 항상 변두리에서 살던 한인들이 이제는 도시의 한폭판에 일본인들의 밀집지역에서 살고 한국풍의 개척 교회들이 속속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새로운 젊은 이주자들은 모두 그런 현대적인 개척교회들에 나가게 된다.  재일동포 중심의 오래된 교회들은 한국 신앙생활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수용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의 텃세가 없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새롭게 이주하는 사람들은 그런 전통적인 교회보다는 자유 분방한 한국인 중심의 교회에 출석하기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해외 이민교회는 목회자가 모든 교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목회를 하여야겠지만 구성원들의 중심적인 요구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오사카교회 수요예배에서 설교하는 차선각 목사

 재일동포 선교에 관심을 가지려면 그들의 문화와 역사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재일 동포를 중심에 놓고 사역하면 그곳에는 새롭게 이주한 세대들은 다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동포들이 아닌 새로운 이민자 혹은 유학생을 대상으로 목회하면 또 그곳에는 동포들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동포교회들을 붙잡고 목회하는 이들이 교회의 성장과 復興을 위하여 동포들을 캐어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일본사회속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버릴 것이기에 작은 교회지만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있는 것이다.

 시가갱의 비약코 호숫가 주변 다카시마야라는 곳에 '신기교회'가 있다. 관서지방에서 가장 멀고 깊은 오지이다. 그곳에는 65세의 최병옥 목사가 30년 째 시무를 하고 있는데 청년시절에 일본에 와서 공부를 하고 안수를 받은 분이다. 왜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을까? 번화한 도시와 발전하는 곳이 아닌 곳인데 왜 우리 선조들은 교회를 그곳에 세웠을 까?  그 답은 이렇다.  전후 조선인은 일본인이 사는 도시에서 편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지와 시골로 가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였다. 그 교회도 고물상을 하던 한인들이 주로 모여 살았지만 세월이 가고 이제는 세상을 다들 떠났다. 그래서 남은 교인은 가족뿐이다. 그래도 교회는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최병옥목사는 이임할 임지도 없고 전도할 대상도 없지만 교회의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목사는 거기서는 살기만 하고 인근의 '오츠'라는 큰 도시로 가서 일본인 교회를 빌려 그곳의 한인들을 모아서 목회를 하고 있다.
   
                                     2008년 당시 오사카(관서지방회)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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