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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에서 을로, 졸지에 전락하다
김인주 목사  |  thpr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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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7  08: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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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에서 을로, 졸지에 전락하다

 열왕기상 21:17-19

김인주 목사 (제주, 봉성교회)

주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 곳으로 내려갔다. ”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 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 

어느 마을에 덕망 있는 이장이 있었습니다. 성실한 인품으로 인해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았지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좋은 포도밭을 갖고 있다는 게 또한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 포도원을 탐내게 되어 일이 벌어집니다. 좋은 값으로 사고 싶으니 양도하라고, 혹 다른 밭을 원한다면 적절한 것으로 대체해 주겠다고 점잖게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절합니다.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이니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왕은 밥맛을 잃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끙끙 앓아 누웠습니다. 왕비가 다가와서 왜 그러냐고 묻자, 사정을 설명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왕비는 한심하다는 듯, 왕에게 내 뱉습니다. “그러고서도 당신이 이 나라의 왕이요? 내가 알아서 하리다.” 그리곤, 이장을 곤경으로 몰아넣을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재판이 벌어집니다. 공정하게 판결하기 위해, 모두가 금식하며 준비하였습니다. 이장은 재판장이 되어 당연히 상석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판의 사안을 제대로 모른 채로 그 자리에 왔습니다. 갑자기 거짓 증인 두 사람이 나타나 이장을 고발합니다. 하나님과 왕을 모독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는 것입니다. 마을의 유지들도 왕비의 지시를 받았는지라, 그 말에 힘을 보탭니다. 왕권에 도전하는 불충은, 더구나 신성모독이라면, 더 조사할 것도 없이 즉결처분할 사안이었습니다. 이장은 당장에 끌려나가 처형되었습니다.

여론재판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 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삼천년 전 일입니다. 성서본문에서는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다는 표현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여,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나마 저주하게 된다는 생각에서 본문은 살짝 바뀌어 있습니다. 거꾸로, 축복한다는 어휘를 사용합니다. 낭독될 때에,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왕을 욕했다고 알아듣게 만드는 트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전에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면서, 오바마의 이름 버락이나 자신의 이름 중 혜가 모두 축복을 의미한다고 연결했던 바로 그 어휘입니다. 욥이 곤경에 처하자 그 아내가 하나님을 마음껏 욕이나 하고 죽으라고 할 때도 이 표현이 동원됩니다.

당대 이웃나라에서는 아합을 꽤 능력있는 통치자로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아합과 이세벨을 가장 나쁜 군주로 꼽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예루살렘에서 왕비가 되었으니, 예수님의 조상으로 셀 수 있기도 합니다. 허먼 멜빌이 지은 소설 <백경>의 주인공 이름이 아합입니다. 고집불통의 선장으로, 자신을 불구자로 만들어 평생의 원수가 된 거대한 흰 고래를 잡으려다 자멸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세벨도 나쁜 여자를 떠오르게 하는 이름입니다. 주위에서 다 싫어하는 성깔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그 제목이 이세벨이었습니다. 성격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베티 데이비스가 이 역으로 1939년에 두 번째 오스카를 수상하였습니다.

갑과 을에 관계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갑의 횡포와 을의 분노가 부딪히면서 해결이나 절충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분위기는 험악하게 고조되는 국면입니다. 항공기에서 승무원에게, 끓여 온 라면이 너무 짜다며 승무원을 때린 일이 보도되었습니다. 라면 상무에 이어서, 주차관리원을 폭행한 빵 회장, 대리점에 무리한 요구를 당연시하며 폭언으로 괴롭히던 남양유업의 영업사원 등 갑의 위치에 선 사람들의 오만한 언행이 계속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국을 방문하는 대통령을 수행하던 대변인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이 문제는 정점에 올랐습니다.

갑과 을의 대결 구도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 생기기 이전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서 문자가 탄생하기 전에도 존재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문제가 보도 혹은 논의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라고 저는 기억합니다. 평생 기업의 경영자로서 이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껴온 터라, 갑을관계의 정상화는 당선자의 국정운영의 목표 중에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 과제를 시원하게 해결했습니까? 기업인이었을 때 을의 입장에서 당하던 서러움을 대통령이 되어서 마음껏 해소하였을지는 모릅니다. 이 거대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나봇은 그 마을에서 탄탄한 갑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남을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한 문제가 있었다면, 왕실에서 아주 쉽게 포도원을 차지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비리 한 두 가지만 들추어내도 절로 꼬리를 내립니다. 후하다고 볼 수 있는 왕의 제안에도 의연하게 버텼다는 것은, 그만큼 떳떳하게 살았다는 반증입니다. 마을의 유지들이 왕비의 밀령을 받고서 협조하였다는 것은, 저들의 음흉한 욕망의 코드가 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왕실과 맞닥뜨리는 대결구도로 진전되면서, 나봇은 졸지에 을의 처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사태는 전혀 손쓸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순식간에 죽임당하는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이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하거나 무시하면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미개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세상의 집권자들은 권세를 의지하여 남을 억누르는 것이 상례이지만, 하늘나라의 통치원리는 남을 섬기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사도도 서신에서 늘 같은 입장을 반복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약자들을 배려하고 강한 사람들이 양보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갑의 위치에 선다면, 누구라도 많은 것을 소유하며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의 근간이 되어 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만인이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시달리고 있습니다. 갑의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서 정당한 노력 뿐아니라, 편법과 술수까지 동원되는 실정입니다. 교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대형교회의 횡포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뉴스들이 생겨납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심판을 통고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합은 잘못을 시인하며 뉘우쳤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뉘우칠 줄 모르고, 갑의 지위를 탐내며 기도하는 한국의 사회와 교회들은 아합만도 못한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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