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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비극, 우리들의 비극위대한 개츠비
김인주  |  thpr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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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0  14: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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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의 비극, 우리들의 비극 

   
 

   
 

1925년에 발표된 미국 소설 중 단연 으뜸은, 시오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이었다. 대박이었다. 20년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부와 권세에 대한 욕망과 청교도적인 양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소재로 다룬다. 이 소설은 이차대전이 지난 후에야 <A Place in the Sun>이라는 제명으로 흑백영화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원작과 영화는 그 결말이 사뭇 달랐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 수긍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양심의 마비가 아메리카의 비극이라는 뜻일 게다. 영화에서는 옛 애인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새 연인과의 안락한 삶을 생각하며 헤엄쳐 나왔다는 것을 시인한다. 양지를 지향하는 선택이었다는 뜻으로 제명도 그렇게 바꾸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젊은이의 양지>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이 플롯으로 똑 같은 이름의 드라마가 만들어진 일도 있다. 꽤나 높은 시청율을 기록한 것으로 안다.

같은 해 4월에 스코트 피체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했다. 그 해 말쯤에는 이 작품은 거의 잊혀졌다.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영미문학의 최우수작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극>은 너무 길다. 마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합쳐 놓은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설교에 가까운 이야기는 정독 혹은 독파하기에 꽤 부담스럽다. 분량으로만 따지면, <개츠비>는 그 십분의 일 정도, 좀 늘어진 중편소설이라는 느낌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1920년대의 미국, 금주령 시대의 타임캡슐이 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독자들에게 잘 전해준다는 점이다.

<개츠비>가 여섯 번째로 영화팬들을 만나고 있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바로 만들어진 무성영화부터 시작해서 여럿이지만, 1974년작,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가 나오는 영화 하나만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타임지 커버스토리로 다룰 만큼 화제작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후의 역작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는 그 영화를 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언젠가, TV 화면을 통해서 일부를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5월에 루어만 감독의 작품으로 시선을 모으는 개츠비는 퍽 성실한 화면이다. 아니, great라는 뜻을 애써 드러내듯이 화려하다. 내용을 요약하면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삼가련다. 개츠비는, 좋게 보면, 순정남이다. 한 여인을 소유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부를 쌓았다고는 하지만,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그 과정은, 계속 그의 입지를 압박하고 있다.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집중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자이안트>의 주인공 제트 링크(제임스 딘)은 레슬리(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향한 마음 속의 연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평생 열등감 속에 살아왔다. 끝내는 그녀의 딸 라즈(캐롤 베이커)에게 접근하여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신 실습하고 있다. 두 이야기의 작가가 남자와 여자라는 점에 차이가 있는 듯도 하다.

 

   
 

마음에 그리던 연인을 앞에 두고선, 한 없이 작아지는 마음 여린 소년으로 변한다. 떨리는 가슴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오랫동안 바라던 재회의 순간을 맞이한다. 혹시 잊혀진 사람은 아닌지 조바심하며, 긴 시간 많은 투자를 통해 만남의 순간을 연출해 간다. 한 순간에 자신의 존재는 물거품도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기에. 혹여 그녀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온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누구시더라...”

일단, 옛 연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확인하자, 그는 더욱 욕심을 낸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한다. 현재와 미래 뿐만 아니라 과거까지도. 부득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는 했지만, 그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떠나기를 요구한다. 오늘날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와는 꽤 다르다. 이 시간 되돌리기는, 마치 중세 신학의 사변적인 논쟁의 명제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매춘부를 순결한 여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나님이라면...”

문제의 여인 데이지나, 그 남편 톰, 혹은 화자인 닉의 이야기를 더 늘어놓지는 않으련다. 단지, 화려한 화면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만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나는 3D로 본 것도 아니고, 스크린 가까이에서 앉았기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바즈 루어만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 늘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로미오와 쥴리엣>, <물랑 루쥬>, <오스트레일리아> 모두 화려한 영상에 비해 허전하게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대가 크기 때문일까?

 

   
 

지혜와 권력 그리고 사랑 중에 하나만을 고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할까? 파리스에게 주어진 질문은,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퍽 당혹스러운 시험대가 된다. 권력과 부가 있으면, 사랑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충고를 대부분 사람들이 따라 간다. 개츠비도 그 길을 택하였다. 그것이 비극의 갈림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역시 그러한 선택을 무시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어이 부정할 수 있을까? 금주령시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던 무한 경쟁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그러한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

                                                                    김 인 주 (제주, 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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