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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중정당이 되기 위하여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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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3  10: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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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중정당이 되기 위하여

 [글 싣는 순서]

 1. 유럽에서의 기독교 정당
 2. 우리역사 속의 기독당
 3. 기독교 정당의 출현
 4. 대중정당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이 기독당과 관련한 의문 중 하나가 왜  보수 교회와 지도자들은 왜 계속해서 기독당 창당을 시도할까. 그것은 순수한 의미로 성경적인 의미의 참여라고 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잘못하면 기독당을 하자고 하면 불교당, 유교당, 천주교당을 부추기는 일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기독당 창당에 대해 “정치권력에 의탁해 교회 이익을 추구해온 보수 교회가 이제는 스스로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갖고 대처하려는 것” 으로 보기도 한다. “2000년 이후 정치권력이 과거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되면서 보수 교회와 권력의 유착이 약해졌기에 이에 대한 반로로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 기득권과 교회 이익을 도모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인 이유가 있다고는 해도 기독당 창당의 그 원론적인 당위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의 천리교는 공명당이라는 정당을 통하여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천리교의 전위대라는 비판을 받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힌 많은 정당들이 있지만 기독교의 이익 실현은 속 얘기지 외부로 표현하는 곳은 없다. 

지난  2007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전국교회 성도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4.7%의 성도들이 ‘대통령 후보의 종교가 중요한 판단요인이 된다’고 응답했다. 같은 설문에서 교인들은 정치문제에 관해 개방적인 입장을 보였다.  응답자의 42.7%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고, 52%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목회자들은 71.4%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공의 실현을 위한 정치 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는 사회적 신뢰나 공감을 얻어야지 정치적 슬로건이나 구호로 이뤄간다는 것은 세속적인 방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즉 기독교는 권력을 포기하고 비판하는 영역인데 정치참여는 세상적인 힘(권력)과 이권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정당 보다는 시민단체등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기독교가 사회변혁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정당활동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발적인 봉사와 참여도 그렇고 정치제안과 시민운동 참여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종교 사회에서 기독교만의 것을 추구하기 보다 인류공영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소통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 이념을 추구하기보다 기독교의 가치를 기성 정치에 투영하는 방안이다. 이는 성경도 특정 이념을 지지하지 않는 만큼 어떤 이념도 성경을 통해 완전하게 정당화될 수 없기에 이념이나 주의보다는 기독교 가치관을 이 사회에 녹여내는 것을 말하는 데 이것은 소속적 참여라고 보는 이유다.

기독교가 정당이라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자만이다. 오히려 기독교는 인권, 환경, 경제, 노동과 실업, 각종 차별 등의 문제를 언급하고 “기독교적 이념에 입각해 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정당도 그런 가치를 담는 것이 보편적이지 잘못하면 정당을 통한 종교전쟁이 될 수도 있다. 

기독당 왜 환영받지 못하나?
 

왜 한국에 인구가 1/4이 기독인데도 기독교정당이 어려운가“ 하는 질문을 한다면 유럽은 기독교 전통이 국가건립과 함께 뿌리를 내렸지만 우리의 기독교역사는 130년이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유교적 전통과 관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 기독당을 시작한 분들이 연구와 학습없이 기독교라는 이름을 들고 나가서 기독교인들 표를 받으면 국회의원이 된다는 근거없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개교회주의는 지나치게 목회자에게 의존적인 신앙으로 개교회 부흥과 성장에는 동력이 되지만 이것이 사회화하는 데는 아직은 미흡하다.  목사의 말한마디에 움직이는 평신도들의 수준으로는 아직은 이르다는 평이다. 따라서 지난 제20대 총선서도 그렇고 기독교정당들이 국회 진입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와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정당이 원내진입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해소되고 전개되어야 하겠는 가? 이것이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이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한다면 기성 정치인들이나 의원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 지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즉 외연의 확대와 지지의 확장성을 위해서 걸어야 하는 공의와 정의, 현재 사회에 만연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매력을 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독교정당인들을 보면,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한 조건들이 결여되어 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호소력 있는 정책 제시의 부족과 과거 실패에서 반성과 성찰보다는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철학의 부재가 극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도의 정치행위에 대한 판단과 지혜와 경륜이 필수적이다.

기독당이 극복해야 할 과제

정치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거래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줄 것과 받을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까지 기독당들의 행태는 보수우익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나 케케묵은 이념과 색깔론 편승, 반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등은 시민운동 차원의 과제들이지 정치적 슬로건이 되서는 식상하다.

기독교는 우선 다른 종교와 달리 교파가 난립하여 있다지만 기독교라는 면에서는 가장 큰 공통분모가 있다. 개인이 교파교회의 지도자로 그 신학에 복무하지만 정치나 사회적 지도자가 되려면 포용성 있고 확장성 있는 열린 마인드와 컨텐츠를 갖아야 한다.

그렇기에 극단과 극우를 모두 거부해야 한다. 유럽의 기독당도 중도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해야 기독교적 가치의 보편성을 보여 줄 수 있다. 신학의 차이와 정치적인 차이를 동일시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기독당에 도움이 된다고 어느 한편에 서려고 하는 것은 다른 지지층을 축소하는 것이 된다.

정치는 큰 산을 보고 가는 것이다. 숲은 보고 산을 보지 못하면 안된다. 한그루 나무도 귀하지만 그것만 봐서는 안된다. 따라서 안보,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 혐오종교, 이슬람 반대등을 마치 기독교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가치인 것 처럼 대변하는 것은 기독교를 협소화시키는 위험을 가쟈올 수 있다. 그것은 시민단체나 원내 진입 후에 해도 되는 일이다.

   
 

큰 산은 멀리 봐야 한다.

선거는 이슈들을 선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구호들을 보면 보수정당을 돕는 차원에서의 전략들이지 기독당 자신이 주체성을 갖고 표를 달라는 식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 준 구호가 아니라 기독교 고유한 가치의 정책들을 찾아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속에서의 기독교가 해온 긍정적인 역할과 정신이다.  그것이 바로 공공성이고 청교도들이 갖았던 청렴과 청빈이다.

미국에 유럽의 기독교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다른 민족과 종교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전통과 가치가 여러문화적 요인으로 부딛칠때 보수주의가 등장했다, 초기 하바드나 프린스턴과 같은 대학이 생겼지만 그 대학의 교수들은 이미 유럽의 명문학교에서 공부한 이들로 부자들 자녀들이 그들의 제자가 되고 문서설등을 받아드리게 되자 반작용으로 생긴 것이 무디 성경학교나 달라스 신학교나 밥죤스와 같은 바리블칼리지들이다.

학문적으로는 좀 떵러지지만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길러낸 것이다.  미국의 건국 초기에 복음주의자들이 벌렸던 창조론이나 축자영감설은 지금의 신학으로 보면 터무니 없어 보이고 무지의 소치라고 보지만 당시 사회변동을 예측하지 못한 복음주의자들로써는 세속주의와 자유주의를 막는 길은 순수하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기독교에는 그런 천진함과 순수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적 보수주의는 진보적이고 가변적인 사회를 견인하고 기독교의 가치를 지키는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 보수주의가 더 정치적이고 순수함도 잃어 버린다면 누가 성경의 원리와 가치를 지킬 것인가?

21대 총선 준비

한국의 기독교는 역사상 유래없는 성공을 이뤘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정신적인 면을 선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끼리의 자화자찬식으로  실력이나 기초가 약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의 지도자들의 비도덕성 불법성이 터져나오니 반기독교적 정서가 드높다. 예전에 비하야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당이 기독교인의 표만 얻자고 나온 것이 아니라면 외연을 넓혀야 하는 데 반 동성애나 차별금지법 반대등과 같은 기독교 내부의 문제를 슬로건으로 걸게 되면 분열의 구도가 된다.  그것은 정당에서가 아니라 기독 시민운동의 몫이다.  따라서 정치권 진입을 하려면 프로가 되야 하고 한마디로 운동적 사고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어떤 틀로 규정한다면 이는 득표에 도움이 안된다.  넓은 스팩트럼을 갖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참신한 공약을 내서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기존 정당의 지도자들은 직업적 정당인으로 너무 낡았고 구태의연하기에 진보성 있는 공약을 서슴없이 걸어야 한다. 

지난 총선에 얻은 표심에만 만족하지 말고 기독당이 다른 당과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지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보수든 진보든 기독교인들로 부터 시작하여 희망을 원하는 이들로 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정당은 교회가 아니다. 기도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도움심을 바라보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마음으로 대중과 만나는 것이다. 어떻게 좀더 우리사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회로 이행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큰 초점이 있어야 한다.

몇가지 이슈와 정책만으로 간판을 걸고 명망있는 이들의 이름을 이용하고 덕이나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구태의연한 정당들에 기대여 반사효과를 얻으려고 하지말고 독자성을 갖고 서야 한다. 이제 실험은 끝났다고 보고  당을 정비하고 일꾼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우선 기독당이라는 간판을 단 이들과의 통합이고 안되면 연합전선을 하고 간판으로 사회적으로 공신력있는 분들을 영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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