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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유경재 목사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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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01  16: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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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
(창세기 50: 15-21)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창세기 50장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요셉의 형제들은 혹시나 복수를 당하지 아니할까 두려워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지난날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울며 형들을 간곡하게 위로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느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느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어떻게 보면 이 한 절을 위해 긴 요셉의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이 한 구절 속에 성경의 전체 역사를 이해하게 하는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구원사를 이해함에 있어 그 역사를 훼방하는 악의 세력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악의 역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유혹하고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나가는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낙담케 하여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하고 광야를 40년간 방황케 하였던 열두 정탐꾼 사건에서 우리는 악의 훼방을 봅니다. 이스라엘 역대 왕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섬기며 의지하는 대신 인간의 권력과 지혜를 따름으로 저들을 심판받게 하였던 악의 간계를 여러 예언서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을 때 사탄은 그를 유혹하려 하였고, 마침내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구속사업을 봉쇄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역사 속에서 악의 준동(蠢動)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악의 준동은 박해와 핍박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교회 내적으로 부패와 분열과 이단과 혼란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사의 페이지마다 피로 얼룩져 있으며, 악이 준동하며 남기고 간 상처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짧은 역사 속에서 너무나도 아프게 할퀴고 간 사탄의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일본강점기 때 혹독한 박해 아래서 그 신앙의 정조를 굽혔는가 하면, 해방 후에는 거듭된 분열로 오점을 남겼고,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여 그 시대를 변화시키지 못한 무기력하고 나약한 교회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집요하고 끈질긴 것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이 악의 준동과 투쟁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로 요셉은하느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이런 악의 준동이 한 번도 성공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은 이런 악의 역사를 모두 변화시켜 그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악이 아무리 발악을 하여도 결국에 가서는 하느님의 구원사를 저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사탄이 하느님의 역사를 훼방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역사를 성취시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하고 좋아했지만, 하느님은 그 요셉을 통하여 오히려 그 가족을 모두 구원하실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기근 가운데서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역사 방법입니다. 성경 전체가 바로 하느님의 이런 역사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하느님의 모든 구원 계획에 종지부를 찍은 줄 알았지만 바로 그 십자가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원의 길이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가장 처참한 죽음을 하느님의 아들에게 안겨 주었지만 그 죽음을 통해 인간의 모든 죄가 용서되고 그 죄의 대가가 모두 치러지는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로마의 혹독한 박해가 기독교를 지상에서 다 쓸어버릴 것 같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기독교를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는 교회를 완전히 몰락하게 할 것 같았지만, 종교개혁을 통하여 새로운 교회가 태어났고, 로마 가톨릭교회도 종교개혁에 자극을 받아 부정과 불의를 털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습니다. 한국 기독교도 분열의 분열을 거듭했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의 보편적 교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런 역사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모든 고난을 극복하며 성실하게 하느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고 이집트에 팔려갔을 때도 낙심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함으로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 안에서도 성실하게 생활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닥친 시련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그의 꿈을 이루어 주실 줄 확신하면서 모든 고난을 참고 견뎠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가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도 교만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자기를 통해 성취하시려는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열중하였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권력자로 인식할 때 요셉은, 자기는 권력자가 아닌 하느님이 사용하시는 구원의 도구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악의 모든 준동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역사에 대한 신앙을 오늘 우리가 갖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의 밑바닥에 비참하게 내팽개쳐졌을 때에라도 그 삶을 선으로 바꾸어주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능히 그 고난을 인내로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낙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주어진 삶을 살 때 하느님은 그 역사를 변화시켜 선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에 보면, 원수가 밭에다 가라지를 뿌리고 간 후 가라지가 싹이 나자 일군들은 주인에게 금방 뽑아 버리자고 하였지만, 주인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두라고 하였습니다. 악이 번성할 때 또 그 때문에 고난당할 때에 너무 조바심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면서 기다리노라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조바심은 우리의 불신을 드러낼 뿐입니다. 조바심친다고 하느님의 역사를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악이 준동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악의 역사를 선으로 바꾸어 가시는 하느님께서 오늘도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참고 기다리면서 당한 바 모든 시련과 시험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요셉은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당한 모든 고난의 삶을 하느님의 역사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자기를 미워하여 죽이려 했던 형들의 죄에 대하여 너그러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 채 인간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있을 때는 서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이해관계를 떠나 하느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을 올바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나를 아프게 한 형제의 허물도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역사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이해관계를 떠날 수 있고, 그 이해관계에서 맺혔던 원한과 미움들이 사라지게 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비록 악이 준동하는 세계 속에 살지만 이 악을 선으로 바꾸어 가시는 하느님 나라 가운데에 있음을 깨닫고, 인내와 소망으로 그날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악이 무성한 나무와 같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낙심치 말 것은 잠시 후에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역사 속에서 나의 삶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생활 위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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