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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이야기유경재 목사의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oikos78@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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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01  23: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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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이야기
(창세기 11:1-9)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는 아주 고대의 이야기이지만 바로 오늘 우리 인간의 교만을 비판하며, 자신을 이 우주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끝 간 데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과 동물적인 정욕을 좇아 끝없이 추구한 쾌락에 대한 제동이 걸린 오늘의 역사를 미리 예견한 예언자적 통찰의 기록입니다.

인간의 거대증
첫째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고자 한 인간의 교만과 그래서 자기의 위대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무모한 행위들을 보고자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그의 창조의 동역자가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이성과 지성, 예술적 능력과 지혜를 주신 것은 하느님이 주신 세계를 보다 조화 있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을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데만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실험하기 시작하였고, 닥치는 대로 모든 것에 손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은 지금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무한한 능력을 추구하다 보니까 이제는 하느님이 필요가 없고 스스로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았다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느님을 찬양하기보다는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친 것은 예언자적인 통찰로 이런 미래의 세계를 내다 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하늘에서 몰아내고 하늘을 철거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이 되어 이 땅에다가 인간의 왕국을 높이 쌓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늘 꼭대기에 닿는거대한 탑을 쌓고 있습니다.
 
웃으시는 하느님
그러나 성경은 이런 어리석은 인간의 자만에 대해 아주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음모를 알아차리시고 인생들이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降臨)하셨다고 하였습니다인간들은 거대하다고 생각하고 쌓아 올린 성과 탑인데 하느님께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것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지금 하늘까지 닿겠다고 쌓아올린 탑인데 하느님은 그것을 보시려고 하늘에서 내려 오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탑이 너무나 작게 보여서 하늘에서는 볼 수 가 없어 땅에까지 내려 오셔야만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땅에서 올려다 볼 때는 그렇게 높고 거대해 보이는 것들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렇게 작아 보일 수 없습니다. 광활한 우주를 지으신 하느님께서 그 우주 가운데 먼지 같은 지구 한 귀퉁이에 아무리 거대한 것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티끌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오히려 큰 위로를 받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에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지혜와 섭리에 의해 이 우주가 보전되며 구원의 역사가 성취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큰 위로를 느낍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모한 불장난으로 저질러진 모든 비극에도 하느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시며, 그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을 얽어매는 수단으로서의 바벨탑
다음으로, 바벨탑은 뿔뿔이 흩어지려는 인간을 하나로 묶어 통치하려는 통치의 수단입니다.
 
,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여기에 보면,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한 말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하느님을 떠난 이후로는 하나로 결속하기보다는 흩어지고자 하는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을 섬길 때는 그 하느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하나로 뭉쳐져 그 백성으로 다스림을 받았지만,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느님 대신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대용물(代用物)이 필요하였고, 그것을 위해서 성과 대를 쌓자고 하였습니다. 성을 쌓아 함께 살아야 안전하다는 안보의 이유와 공통의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정치적인 이유를 제시하면서 하나로 묶으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왕국을 건설하여 하느님께 대항하고자 하는 인간의 음모였습니다.
 
오늘날의 정치가란 바로 이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얽어매는 수단을 찾아내는 사람이요, 그것으로 사람들을 묶어 놓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그들을 통치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벨탑이라는 구심점(求心點)을 통하여 흩어지려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대(連帶)시켜 하느님을 대항하는 인간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정치가들의 속셈입니다. 정치가들이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으려면 이런 바벨탑을 잘 쌓아야 합니다. 이런 명분을 잘 끌어다 대야 자기 정권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명분으로 내 세우는 것이 민족이요, 이념이며, 국가안보나 경제성장입니다. 이런 모든 행위는 잃어버린 중심의 대용 역할을 하려는 것이지만, 그 어떤 바벨탑으로도 흩어지려는 개인주의적인 욕망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인간의 흐트러지려는 마음은 하느님을 다시 찾으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인간이 그들이 바라보고 나갈 삶의 중심을 잃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을 다시 찾을 때 인간은 공동체적인 삶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이 좌정하셔야 할 자리에 엉뚱한 사람들이 나타나 자기가 하느님이라고 하거나 혹은 거기에 국가나 민족, 안보나 반공 같은 것들을 대치시켜 그것을 섬기라고 강요를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의 우상이요, 우리가 거기에 굴복할 때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상실한 채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모든 바벨탑을 단호하게 거부하여야 합니다. 하느님 이외에 어떤 것도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주님이 되실 수 있습니다.
 
흩으시는 하느님
하느님은 마침내 내려 오셔서 이 모든 일을 보시고 언어를 혼잡(混雜)하게 하시므로 인간들을 다 각기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왕국 건설에 제동을 거신 것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전쟁을 좋아하는 인간들에게 제동을 거신 하느님의 역사라고 하겠습니다. 더 큰 불행을 초래하기 전에 하느님은 원자폭탄 투하를 통하여 핵의 무서움이 어떤 것인가를 이 인류로 보게 하셨습니다. 암이 무서운 병입니다만, 그것은 무엇이나 탐욕스럽게 먹으려는 우리 인간들에게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하느님의 제동장치가 아닐까요?
 
이렇게 보면, 바벨탑을 더 이상 쌓지 못하도록 제동을 거신 것은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더 큰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잃어버린 중심을 되찾게 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마침내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그가 우리를 어리석은 망상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우리가 섬겨야 할 참 하느님이 누구신가를 보여 주셨으며, 그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 오셔서 우리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므로 혼잡했던 언어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바벨탑에서 흩어졌던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극도로 발달된 인간의 과학문명이 이 세계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는 특별한 바벨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벨탑을 쌓아야 살 수 있다고 외쳐대는 정치가들의 속임수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되는 하느님의 나라만이 바로 이 세계가 치료되고 이 사회가 구원받은 유일한 길임을 알고 겸손하게 그 나라를 추구해 가는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모든 바벨탑을 거부하고 오직 하느님의 나라만을 따르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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