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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무한 개방 용서 긍휼 은혜의 나라이다.
이원돈 목사  |  부천 새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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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3  10: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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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무한 개방 용서

긍휼 은혜의 나라이다.

 

성서는 예수님의 공동체가 밥을 나누고 밥상공동체를 만드는 장면을 여러번 보도하고 있다,

하도 예수님이 밥상공동체를 펴자 예수의 적대 집단인 바리새파는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서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나 죄인들 하고만 어울리는구나" 라며 예수를 비난하고 나설 정도로 밥상공동체를 나누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세리나 죄인들 하고만 어울리는구나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확고하게 서 계셨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는 누구였는가?

 

첫째로 그들에게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가족, 고향, 소유라는 일체의 상(相)에 머물지 않고 머리 둘 곳 하나 없이 출가자(出家者)의 삶을 살았던 '사람의 아들'이었다.

둘째로 예수님은 또한 갈릴리 전역을 떠돌며 무상(choris)으로 병자를 치유하고

악령을 추방했던 치유자요 축귀자였다.

셋째로 예수님은 또한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로

사회적 약자들의 동반자로 살았던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가난한 민중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산성처럼 폐쇄적으로 장벽을 높게 쌓은 당시 지배 종교이었던 유대교의 분위기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가는 곳 마다 나타나 왜 당신이 세리와 죄인과 어울리느냐고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이사람은 이게 문제가 되고 저 사람은 저게 문제가 되고 무엇이 맘에 안들고 너무나 많은 조건과 요구를 제시 하여 아무도 무엇을 할수 없게 사회를 까다롭고 예민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유대교의 정체성인데 오늘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종교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분위기가 너무 좁고 막혀서 숨을 쉴수 없고 숨이 막히고 늘 목에 무엇이 걸린 사람들의 분위기이고 폐쇄적으로  민감 하여 늘 꽤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결코 따뜻함과 은혜가 없었다.

 이러한 바리새주의 신앙은 너무나 많은 세칙과 조항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숨통을 턱턱 막았던 종교 그것이 바로 유대교의 율법이고 종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대사회의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즉 배제와 차별을 넘어선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무제한의 개방성과 수용과 포용과 관용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고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수 많은 민중들이 바로 유대교들 넘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주 이유이었다.

유대교가 율법으로. 서민들을 숨 쉴수 없도록 죄어 올때,

예수님은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무한 개방 용서 긍휼 은혜를. 베푸셨던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 기독인들에게 다시한번 요청되는 예수의 기풍과 에토스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 7번씩 70번 용서하라하는 말씀처럼 무한 수용성. 관용성 그리고 무한 기다림의 무한 은혜의 기풍과 에토스라는 것이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일자리 일자리하고 창업 창업하면서 우리 한국이 살려면 창조경제를 해야 한다고 난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 경제의 모델을 미국의. 실리콘 벨리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의 창조적 창업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실리콘 벨리와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의 창업 과를 비교하면.

우리가 누구이고 오늘 우리가 어떠한 사회적 기풍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가 들어난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이야기 하는것이 실리콘 벨리와 이스라엘의 창조적 경제와

창업의 가장 성공적인 요인은 바로 그 사회가 실패에 너그러운 사회라는 것이다,

모든 성공은 실패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 그리고 실패를 성공의 기회로 만들어가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는 사회와 기업 생태계가 실리콘과 이스라엘에는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에는 그러한 실패를 관용하는 너그러운 생태계가 형성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바리사이처럼 한번만 실패하거나 실수하면 바로 끝이다,

 이처럼 오늘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실패나 실수에 대한 관용이 없다,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의 바리새파처럼 실패한 사람들이나 죄인들을 율법으로 억압하고 질식할 정도로 몰아 그 실패한 사람을 숨막히게 몰아붙여 숨통을 끊어 놓는것이 우리 사회의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율법으로 숨막히던 갈릴리 전역을 떠돌며 무상으로 병자를 치유하고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로 사회적 약자들의 동반자로 살면서 무상으로 오병이어와 같은 하나님 나라 잔치를 일으킨 하나님 나라의 축제자 이었다,

 그래서 이 하나님나라의 상속자의 하나님 나라 축제 주관자인 예수그리스도는 한번만 실패하면 바로 죽음이고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 목을 조여오는 바리사인과 같은

숨막히는 낡은 세상과 유대교의 생태계를 넘어서

세리. 창녀. 모든. 배제 차별. 마비된 자들을 7번씩. 일흔번. 용서하시는

무제한 개방 용서 수용 기회를 제공하는 하나님 은혜를 세상에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차별과 배제의 시대에 우리의 마음 밭이 먼지처럼

작아지고 속물과 잉여처럼 이 숨막히고 질식하여 마비 되어가는 이 세상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제한 개방 용서 수용 관용과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선포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을 되살릴 때이다,

다시한번 "하나님 나라는 무한 개방 용서 긍휼 관용 은혜의 나라이다!" 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 정신을 부활 시켜어 숨막히고 질식하여 마비 되어가는 이 세상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숨과 부활의 생명을 불어 넣어 이 사회를 다시 살아 숨쉬게 하는 무한 개방 용서 긍휼 은혜의 하나님 나라 축제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오늘 이 한국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 인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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