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불꽃 속의 하느님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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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 불꽃 속의 하느님유경재 목사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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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4  09: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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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기나무 불꽃 속의 하느님
(출애굽기 3: 1-15)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고뇌와 좌절 속에서 살고 있던 모세의 일상생활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곧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은 사건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앞에 이르렀을 때 그가 40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던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양치기로서의 보잘것없는 옛 생활이 변하여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되는 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 사건은 고난 받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억압당하며 눌린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속에 임재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고통당하는 자의 처절한 절규가 있었던 십자가를 온 인류 구원의 표상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긍휼과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르짖음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
쉽게 탈 수밖에 없는 저 연약한 가시떨기나무를 결코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연약한 떨기 속에서 강렬한 불길을 일으키며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느님은, 바로 보잘 것 없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눌림 받는 히브리인들의 울부짖는 탄식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그 하느님이심을 뜻합니다. 연약한 떨기나무는 바로 이집트에서 신음하며 고난당하던 히브리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이 지상에서는 결코 공명을 얻을 수 없어 하늘에 메아리쳤습니다. 그들 위에 작렬(炸裂)하는 태양열은 그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릴 듯 강렬하였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이집트의 왕 바로는 고난 받는 히브리인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뜨거운 태양이었습니다. 그 태양열에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연약한 무리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자랐기에 그 태양의 강렬함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그 뜨거움을 피해 미디안 광야의 한 보잘것없는 양치기로 은둔하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뜻밖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붙은 불이 그 나무를 태우지 않고 그 거대한 불길과 그 연약한 떨기나무가 함께 있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떨기나무 불꽃 한가운데로부터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이 들려주신 음성은 고난 받는 히브리인들, 저 떨기나무와 같이 연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탄식소리를 내가 듣고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고난당하는 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뜨거운 태양열로 소멸하기 직전에 있는 떨기나무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의 탄식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이 그 백성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고난의 순간에 하느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음을 모세는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셨다고 하나 고난 받는 그의 백성을 잊고 계신 하느님, 그래서 전설로만 존재하는 그런 하느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 하느님을 모세가 직접 대면하여 그의 음성을 들으면서 모세는 놀랐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모세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보잘것없는 자기를 부르셔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맡기실 때 더욱 놀랐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사명을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시면서 그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느님의 약속, 즉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용기도 신념도 없고 늙어버린 연약한 모세 속에 야훼 하느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 속에서, 약한 자 겸손한 자 속에 역사 하셔서 그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긍휼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고난 받는 무리인 히브리인의 하느님 야훼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들의 고난과 탄식 속에도 계시지 아니하였고, 또한 그토록 오랫동안 미디안으로 도망가 잊힌 채로 내버려진 모세에게도 나타나지 아니하시던 하느님이시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하느님의 계시지 아니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바로 그 고난 받는 히브리인의 탄식 가운데 야훼께서 함께 하셨으며,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좌절 속에 빠져 있던 모세의 삶 한복판에 야훼 하느님이 함께 계셨음을 바로 보여준 사건이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고난당하며 탄식하는 자의 부르짖음 속에서 시작되며, 눌림 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자의 신음과 애통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이스라엘 구원사에 기록된 하느님은 탄식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신이십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모든 장소는 거의 예외 없이 눌림과 억울함과 고난이 있는, 한이 맺혀 탄식과 울부짖음이 있는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연약한 떨기나무 한가운데서 타오르는 불꽃과 같으신 분입니다. 강렬한 불길이면서도 그 연약한 나무를 사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긍휼과 자비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임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입니다. 그는 우리의 탄식 가운데 오신 것이며, 우리의 애통하는 눈물 가운데 오셔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고난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쪼이는 사막과 같아서 거기에 서 있는 연약한 떨기나무들과 같은 약소국들이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약육강식의 국제 사회에서뿐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속에서도 너무나도 원통하고 억울한 일들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한으로 응어리진 가슴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실, 이 고통 받는 사회에서 언제 벗어나며, 언제 여기에 바람직한 현실이 이루어질까 한숨지으며 눈물로 하느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낙심치 아니하는 것은 바로 이 고통 받는 역사 속에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돌아가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오히려 여기에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저 떨기나무 불꽃 속 사건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신 하느님은 그 나무를 불사르지 아니하시고 그 연약한 나무와 함께 그것을 지켜 주시는 불로써 거기 계셨습니다. 연약한 자들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그들 속에 성육신하시고 그리고 그 연약한 자들을 잔인하게 불태우는 이집트의 태양신의 불로부터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느님, 그가 바로 야훼 하느님이십니다. 그는 오늘도 고난 받는 자들 속에 함께 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은 고난 받는 자 속에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애통하는 자 속에 함께 하셔서 위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타지 않는 떨기 불꽃 속에 계신 하느님은 연약하고 보잘 것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우리 속에 함께 계셔서 그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암담할수록 우리는 그 옛날 히브리인들이 부르짖었던 것처럼 하느님께 향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속에 함께 하셔서 우리를 그 뜨거운 압제자의 불볕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하느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연약한 떨기나무를 오히려 태우지 아니하시는 불꽃은 불의한 자, 억울케 하는 자, 폭력을 쓰는 자들을 불태우실 것입니다. 분명히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의 암담한 이 사회를 치료하시며 구원하여 주실 것임을 믿고 오늘의 고난을 극복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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