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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반역과 하느님의 성취유경재 목사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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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5  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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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반역과 하느님의 성취
(민수기 20: 2-13)

유경재 목사 (안동교회 원로)

민수기 10장에서 21장 사이에 보면 시내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내산을 떠나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원망과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 진에 도착하자마자 광야의 고통스러운 생활에 대한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야훼 하느님을 원망하며 지도자 모세를 욕하는 백성을 향하여 하느님은 진노의 불길을 보내셨습니다. 다베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1:1-3)

기브롯 핫다란 곳에서는 그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치자 하느님께서 메추라기 떼를 몰아다가 저들을 먹이시면서 저들에게 아울러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11:4-35)

이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정탐꾼 12명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40일간 그 땅을 답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아와 절망적인 보고를 하자 그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애급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격발되어 결국 40년 동안 광야의 유랑생활을 하게 됩니다. (13-14) 또 민수기 16장에서는 고라의 무리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다가 땅이 갈라져 모두 죽고 마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 또 다시 모세를 원망하자 이번에는 모세가 화를 내고 반석을 두 번 내려 쳤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야 했을 때도 다시 원망을 터뜨렸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그러자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불뱀들을 보내어 물게 하시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21:4-9).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은 하느님께 대한 계속적인 반역이요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침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반역은 계속되었지만 하느님은 그의 약속에 충실하시어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이 이스라엘의 반역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반역과 대조되는 하느님의 사랑의 역사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들은 어째서 자기들의 반역의 역사를 감추지 아니하고 적나라하게 그대로 기록하여 보존하였을까 하는 점입니다.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되는 이 반역의 역사를 숨김없이 그대로 기록하여 후대에 전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인간의 역사를 자랑하고 기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의 기록자들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기술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어떻게 자기 민족을 구원하셨는가를 기술하려 하였습니다. 역사가는 인간의 반역과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와 대조되는 하느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므로 이 구원사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이심을 기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공적으로 그 험한 광야의 길을 횡단한 것은 그 백성에게 인내심이 있었다던가 혹은 그들이 용감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신실성과 사랑 때문이었음을 나타내려 하였습니다. 성경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책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려진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반역의 역사는 곧 모든 인류의 반역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에도 우리 인간은 계속적으로 하느님을 떠나며, 그를 반역합니다. 오늘 우리가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 반역의 역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럼에도 거기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하느님을 반역하는 인간이지만 하느님은 이들을 사랑하사 그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무조건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은 순전히 그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의 약속에 대한 신실성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아담 이후 오늘까지 계속적으로 하느님을 배반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아무런 조건이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완전히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을 길이 열렸다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고난 앞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기억하기에 앞서 원망과 불평으로 대할 때가 많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문제 해결의 길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고난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인간의 욕망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반역한 이유가 인간적인 욕망과 쾌락을 추구한 때문이었습니다. 물이 없다든지 고기를 먹고 싶다든지 혹은 가는 길이 너무 험하다든지 하는 등의 불평이 하느님을 반역한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근시안적인 탐욕 때문에 하느님이 이룩해 가시는 위대한 구원의 사업, 신앙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야훼 하느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분명히 시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고,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 율법과 계시를 통하여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느님의 약속은 인간의 현실적인 욕망 앞에서는 아무런 매력을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멀고 현실적인 욕망은 눈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고 현실적인 욕망은 당장 급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이런 인간의 현실적인 욕망 앞에 유혹의 미끼를 던집니다. 물질과 명예와 권력의 미끼 앞에서 많은 사람이 미래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그 미끼를 따라갑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언제나 미래적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사단은 이 약속을 바라고 나가는 우리의 앞길에 현실적인 욕망으로 유혹을 합니다. 우리는 이 유혹과 부단히 싸워야 합니다.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기도하므로 유혹을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반역을 극복하는 하느님의 성취
끝으로 우리는 인간의 반역과 실패가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고자 합니다. 항상 하느님의 심판과 용서가 이스라엘의 반역을 극복하여 저들을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가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범죄 할 때마다 진노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심판이야말로 사랑의 채찍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택한 백성은 저들이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하느님은 저들을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택한 백성이기에 비록 미련하고 우둔하며 순종치 아니하여도 끝가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저들을 가르치시며 훈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내버려두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40년이나 지체하게 해서라도 그 백성을 가르쳐 깨우치시고, 그래서 그는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느님의 뜻을 바로 알기만 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채찍을 맞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낙심하고 때로는 아파도 우리가 절망하지 말 것은 우리가 아버지의 품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택 안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용기의 근원이 됩니다. 인간의 실패가 결코 하느님의 성취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반역해도 하느님은 우리를 찾아오시어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시어 그의 택한 백성으로 삼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시다. 이제 우리는 광야의 낙오자가 될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하느님의 택한 백성이 되도록 좀 더 멀리 보고 좀 더 크게 하느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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